나는 외환위기 시절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으로부터 관리를 받던 1998년 봄 처음 미국에 왔다. 1997년 초반 800원대였던 대미 원화가치는 1998년 1월 2000원을 넘어섰고 같은 해 3월을 지나서야 1500원대 이하로 떨어졌다. 실제로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이 시점에 귀국했는데 나도 미국에서 두 계절만을 보내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6개월이라는 짧은 체류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돈을 쓸 때마다 환율을 적용해 실물 가격을 체감해야 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풍요롭게 보였던 미국이
경영대학원 과정을 시작하면서 듣게 된 첫 과목의 이름이 ‘Professional Responsibility’였다. 직역을 하면 ‘직업적 책임감’인데, 사실 이름만으로는 가장 나중에 수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과목은 ‘기업윤리학(Business Ethics)’이라는 교과 과정에서 이수해야 하는 것이었고, 수업은 기업 차원에서 발생하는 다종다양한 불법과 부조리, 리더십의 부재와 부실 경영, 선택적으로 외면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배상에 관한 부정적 사례들을 분석·평가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2009년 당시 이 과목이 우선적으로
지난 9월 중순 서울에서 GBPP(Global Bio Pharma Plaza)라는 국제 제약-바이오 행사가 있었다. 필자는 한국무역협회(KOTRA)와 의약품수출입협회(KPTA)의 지원을 받아 이번 행사 세미나 발표자로 참가했다. ‘미국 의약품 시장을 지금 도전해야 하는 이유 – Reasons to Challenge the US Drug Market Now’라는 주제로 미국시장을 준비하고 있는 국내 제약기업들에게 재직 중 경험하고 분석했던 일들과 함께 제안과 당부를 전했다. 제한된 시간 때문에 현장에서 자세히 다루지 못해 아쉬웠던 내
지난 3월 칼럼에서 동업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ACS Dobfar S.p.A. (이하 돕파)라는 이태리 제약사를 간단히 소개했었다. 돕파는 항생제 (Antibiotics) 원료의약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글로벌 제약기업.지난 6월 9일 돕파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트리비아노 (Tribiano, Italy)에서 있었다. 이곳은 돕파의 주요 생산시설이 넓게 자리 잡고 있는 밀라노 외곽의 작은 도시다.일반적으로 한 회사의 창립 기념식이 본사 사옥이나 호텔 연회장등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돕파는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로 현재 가
최근 텔레포비아(Telephobia), 폰 포비아(Phone Phobia) 또는 전화 불안증(Phone Anxiety)이라는 단어를 주변과 언론 매체에서 많이 듣는다. 세 단어는 모두 전화를 걸 때나 받을 때 심리적인 부담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를 뜻하는 말. 통화 상대에 따라 느끼는 감정의 편차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전화 통화 자체에 압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이는 MZ 세대를 표현하는 하나의 신조어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내가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이메일이 업무 간 의사 소통의 주요 매체로 정착된 시기였음
미국 FDA 실사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기 위해 준비하고 대응하는 일은 우리 제약기업에 큰 성장의 기회가 되지만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충과 한계로 인한 부담감도 상당하다. 필자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파견 주재원으로 8년 동안 서울에서 일했고 이 과정을 비교적 가까이서 경험했다. 이 기간 합성 기반의 의약품 원료와 완제품 제조사, 위탁생산업체와 의료기기, 그리고 동물의약품 제조업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과 미국 진출을 위한 협력 사업을 추진했다. 이때 시작된 사업 프로젝트 중 본사로 귀임한 이후에도 진행하고 있는 일도 많다
어렸을 때 주변에 동업하시는 분들 얘기를 종종 들은 기억이 있다. 동업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생소했을 어린 나이임에도 대부분 이야기의 끝은 사업이 망했거나 동업자 간 신의가 깨져 서로 원수가 되었다는 등의 씁쓸한 결말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내게 동업은 지금도 약간의 거부감이 남아있다.생각해 보니 당시 주변에서 동업을 한다고 하면 작은 규모의 유통업, 동네 음식점이나 가게, 또는 소규모 제조소를 함께 운영하는 정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친인척이나 친구와의 혈연, 의리를 빌어 사업관계로 확장한 것이라고 봐야겠다. 반대로 가까운 사
미국 뉴저지주 칼스테드(Carlstadt, NJ)에 위치한 국제 표준 컬러 매칭 업체인 팬톤 (Pantone)사에서는 매년 ‘올해의 색 (Color of the year)’을 정해 발표회를 연다. 2023년엔 짙은 심홍색의 ‘비바 마젠타 (Viva Magenta 18-1750)’를 선정했다.새로운 힘의 표현이자 역동과 긍정의 의미를 가진 비바 마젠타는 색 고유 번호를 가지고 국경과 산업을 초월해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한 해의 트렌드가 될 색을 미리 선정해 의류, 뷰티, 디자인, 건축 같은 산업군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소통의
지난 11월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CPhI (Convention on Pharmaceutical Ingredients) Worldwide라는 국제 규모의 제약 행사가 있었다. 전 세계 의약품 원료 제조사들이 매년 유럽에서 모이는 전시회다. 지난 2년간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참가를 미루다 필자의 회사도 이번에 전시부스를 열고 모처럼 각국에서 참가한 업체들과 활발한 미팅을 가졌다.한국 제약사들 역시 새롭게 재편되는 글로벌 의약품 시장을 대비해 변화와 도전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행사 기간 주요 안건들은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인한
2020년 기준 미국 식약처 (US FDA - The United State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에 등록된 한국의 전문의약품 원료와 완제품, 그리고 화장품 제조사 수는 약 350 개다. 화장품 관련 제조사를 빼면 실제 의약품만을 제조하는 업체의 수는 이보다 훨씬 적다.전문 의약품 원료 제조사만을 보면 약 30개 업체 정도. 전문 의약품보다 등록 절차와 기간, 그리고 비용이 비교적 적고 간소한 의료기기 제품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미국 식약처에서 긴급 승인 (EUA - Emergency Use A
기업은 성장할 때 힘을 얻고 위기 중에 강해진다. 이윤 창출은 영리 기업이 가진 불변의 목표이자 동력이지만 과정과 방법은 기업마다 다르고 시간을 통해 그것이 곧 기업의 정체성이 된다. 기업의 홈페이지엔 사명 선언문 (Mission Statement)이 있다. 일반적으로 비슷하지만 필자는 꼭 읽어본다. 기업이 추구하는 사명과 가치가 제품을 통해 고객에게 잘 전달되고 있는지를 평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업력이 오래된 회사들을 보면 사업분야와 범위는 세월을 지나며 변화했을지라도 기업철학은 그대로 유지하려는 노력도 확인할 수 있다
KSM (Key Starting Material) 또는 RSM (Regulatory Starting Material)이라고 부르는 소위 의약품을 만들기 위한 주요 원료들은 서유럽에서 개발, 생산해왔다. 그러다 80년대 이후부터 의약품의 최종 원료가 되는 API (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s)의 생산거점이 제조 원가 절감이 가능한 아시아권, 특히 인도와 중국으로 옮겨졌다. 여전히 전 세계 API 공급량의 약 30%가 유럽에서 생산되지만, API의 원료가 되는 전구물질 (API Precursors)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