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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지혜와 대응의 속도

[나민우의 제약기업 리포트]

  • 기사입력 2023.06.24 08:00
  • 최종수정 2023.07.07 09:33
  • 기자명 포춘코리아

최근 텔레포비아(Telephobia), 폰 포비아(Phone Phobia) 또는 전화 불안증(Phone Anxiety)이라는 단어를 주변과 언론 매체에서 많이 듣는다. 세 단어는 모두 전화를 걸 때나 받을 때 심리적인 부담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를 뜻하는 말. 통화 상대에 따라 느끼는 감정의 편차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전화 통화 자체에 압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이는 MZ 세대를 표현하는 하나의 신조어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내가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이메일이 업무 간 의사 소통의 주요 매체로 정착된 시기였음에도 사실 초창기 업무의 상당 부분은 전화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영어가 여전히 익숙지 않던 당시에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오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던 기억도 있고 걸려 오는 전화를 잘 대응하지 못한 실수도 많았기 때문에, 어쩌면 나름의 텔레포비아나 전화 불안증 같은 것을 나도 경험했던 것 같다. 

요즘 MZ 세대에서 이런 현상이 더욱 많은 이유는 문자나 SNS 메시지 서비스가 극도로 발달한 이유가 크다. 또한 멀티태스킹이 익숙한 세대에서 통화가 소통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메시징과 텍스팅이라는 소통의 방식은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 삶의 방식이 되었고, 우리는 이런 가상의 소통 공간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평균 이메일 응답 시간(Average Email Response Time)’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미국 워싱턴주 주도인 올림피아(Olympia, WA)에 위치한 소프트웨어업체 ‘이메일애널리틱스(EMAILANALYTICS)’사에서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팬데믹 중이던 2021년 2월 한 달간 한 개인이 수신한 업무 관련 이메일(스팸메일 포함)의 총수는 하루 평균 83.6개이고, 발송한 이메일의 수는 34.3개다. 

받은 이메일을 회신할 때는 업무시간인 경우 평균 3시간 40분 소요됐고, 하루에 약 10시간 40분, 회신을 받을 때는 이보다 좀 더 긴 11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시기에 재택근무를 하면서 이메일을 통해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했던 내 상황을 돌아보니 이런 통계수치들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렇게 이메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소통은 참여한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이에 따른 기다림의 시간도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진행 중이다” 또는 “추진 중이다”라는 표현은 일의 진행을 나타내는 동시에 기대하는 결과와 성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일상의 언어로는 인내심, 바람 또는 소망 등이겠지만, 업무적인 용어로 바꾸어 보면 기다림이란 관용(Tolerance)이자 임계(Threshold), 좀 더 적극적인 의미로 말미(Verge) 등으로 해석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상호 기다림의 기준은 서로 간 관계성에 바탕을 두고 경우에 따라 변동적이지만, 회사 대 회사, 조직 내 부서 간, 부서 내 직원들 간의 명제로서 사용되는 경우 반드시 이에 대한 범위와 한계, 규정과 예외 등 동의된 나름의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회사에서 과제를 수행할 때는 2주 간격을 두고 중간 상황을 평가해 사업 방향이나 진행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다. 업체 방문의 경우가 아닌 화상이나 내부 미팅의 일정을 잡을 때 2주 전에 알림을 하면 나와 상대 모두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2주라는 시간 단위는 종종 업무 평가의 척도로서 진행 상황을 주시할 때, 방향을 새로 잡거나 전략을 수정할 때, 때로는 프로젝트의 존폐를 결정하는 평가의 시간적 도구로서 사용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1주일을 연장해 3주라는 시간을 가시적 평가와 방향 설정을 완료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FDA 실사 관련 일을 하다 보면 시간에 쫓기는 몇 가지 상황들이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실사 후 대응이다. 의약품 제조 시설이 FDA 실사를 마치고 관찰사항이라 불리는 ‘Form-483’ 또는 ‘경고서신(Warning Letter)’이 공식적으로 발행되면 업체는 발행일로부터 업무일 기준 15일 이내에 시정 및 예방조치(Corrective And Preventative Action)를 정리해 FDA에 제출해야 한다. 약 3주 정도인 이 기간을 조정 또는 교정기간 (Remediation)이라고 하는데, 업체에서는 이를 잘 대응하기 위해 전문 컨설팅 업체를 고용하기도 한다. 

실사 대응 컨설팅 업체 중 ‘파렉셀(PARAXEL)’이나 ‘라크먼(LACHMAN CONSULTANTS)’ 같은 글로벌 업체를 제외하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소 규모의 업체를 찾기가 쉽지 않고 컨설팅 비용도 상당하기 때문에 업체는 이를 미리 준비하고 정부에서 컨설팅 비용을 보조하는 지원책에 우리 업체가 해당되는지도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나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2주의 법칙이나 3~11시간 등 통계적인 이메일 응답 시간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때는 소위 골든아워(Golden Hour)를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위기 극복의 열쇠가 된다. 

위기관리 권위자인 힐리오 프레드 가르시아(Helio Fred Garcia-Logos Consulting Group) 대표는 위기 상황 발생 후 45분, 6시간, 그리고 3일 내에 취할 수 있는 순차적인 소통과 행동강령에 대해 강조하는데,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빠른 사과, 상황에 대한 정직한 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실행 계획과 상황 종료까지의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그 핵심으로 한다. 

위기 상황 발생 후 약 2주의 시간이 지나면 통제할 수 없는 소문과 억측으로 개인이든 기업이나 국가의 수준이든 그 부정적 여파는 이미 증명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SNS가 빛의 속도로 빨라진 시대를 감안한다면 소통과 대응의 속도는 기다림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위기소통과 대응으로 유명한 두 기업 사례를 보자. 먼저는 글로벌 제약기업인 존슨 앤드 존슨(Johnson & Johnson)이다. 1982년 미국 시카고 지역에서 존슨 앤드 존슨의 대표적 진통제인 타이레놀(Extra-Strength Tylenol)을 복용한 일곱 명이 거의 같은 시기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제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청산가리로 알려진 사이안화 칼륨(Potassium cyanide) 독성 화합물을 임의로 제품에 넣은 충격적인 테러사건이다. 

존슨 앤드 존슨은 리콜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당시 회사 전체 수익의 17%를 담당했던 타이레놀 3100만 병을 리콜했고, 외부에서 이물질 투입을 방지하는 새로운 포장 방식을 개발해 약 2개월 만에 최악의 상황을 극복, 성공적 위기관리를 실행했다. 

이때 빛났던 것은 사고의 해결과 방지를 위해 취했던 기업의 발 빠른 행동도 있었지만, 위기 때에 회사가 보여준 진실하고 민첩한 소통의 모습이었다. 당시 제임스 버크(James Burke) 회장이 먼저 사과 성명을 내면서 구체적인 상황 설명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해 기업이 앞으로 할 일들을 설명했고 이를 그대로 실천했는데, 이 모든 과정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고 대중과 밀접한 소통을 이어간 것이다. 

제약 회사로서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었으나 이를 잘 통제하고 대응하며 관리하는 과정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신뢰와 재무적 가치를 모두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동일한 수법의 범죄를 방지할 새로운 포장 방식은 미국에서 같은 해 법규정으로 채택되었다. 이는 동종 업계를 초월하여 선한 영향력까지 끼치게 된 예시이다.

미국 최대 패스트푸드 체인기업인 맥도널드가 2004년 취했던 위기 대응 사례도 있다. 2000년대 초반은 미국에서 비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던 시기였다. 맥도널드의 메뉴와 마케팅이 이에 일조하고 있다는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던 상황이라 맥도널드에 있어서는 피할 수 없는 고난의 시기이기도 했다. 

새롭게 회장, CEO로 취임한 제임스 캔탈루포(James Cantalupo) 회장은 회사의 전략을 전면적으로 바꾸어 샐러드와 같은 새로운 메뉴를 출시하고 슈퍼사이즈 (Supersize)로 불리던 기존 대용량 사이즈를 없애는 등의 노력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쇄신하기 시작했다.  

매장 매출은 다시 오르며 수년간 적자이던 운영 사업이 흑자로 전환되는 성과를 냈다. 이 시기에 맥도널드 전체 매장의 점주들과 관리자들을 초청해 경영진들과 모임을 갖는 대규모 행사가 예정되어 캔탈루포 회장은 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행사 당일이었던 2004년 4월 19일 새벽 3시경 회장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2시간 후 이송 중인 앰뷸런스 안에서 사망하는 불운의 사고가 발생한다. 맥도널드의 변혁과 혁신을 축하할 행사를 바로 앞두고 모든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벌어진 이 개인적 비극은 기업의 위기로 직결되었다.

맥도널드 경영진은 패닉과도 같은 상황에 신속한 대응을 하게 되는데, 같은 날 오전 8시에 언론을 통해 캔탈루포 회장의 부고 소식을 알렸고, 주식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 30분 전에 이사회를 긴급 소집해 신임 CEO로 최고 운영 책임자(Chief Operating Officer)인 찰리 벨(Charlie Bell)을 선임해 약 1시간 뒤 언론에 바로 공개했다. 예정되었던 행사는 신임 CEO에 의해 무사히 치러졌고, 위기상황을 잘 극복한 맥도널드는 이 대처 과정을 통해 어느 때보다 높은 기업신뢰도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전임 회장이 생전에 추진했던 전략과 수행작업들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경영진들의 민첩한 의사 결정과 언론을 통한 대중과의 발 빠른 소통은 위기의 기업을 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위기를 대비하기 위한 반석과 같은 지침으로 남는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예도 있다. 국내 제약 기업 한 곳과 미국 시장 에이전트 계약 체결을 준비하면서다. 계약을 앞두고 미국 본사에 방문한 한국 업체와의 최종 미팅 중 본사 회장이 참석해 한국업체에서 생산하는 주요 품목들이 기존 거래처와 이해관계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러한 요소들을 감안해 오랜 기간 계약서를 준비해 오던 터라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계약 조건을 조정해 협의에 따라 품목을 선정하는 선별적 제안에 어렵게 동의했다. 때로는 계약체결 직전에서야 발견되는 새로운 사실들과 그 안에 잠재적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현장에서 이를 바로 해결한다면 업체와의 관계성을 유지하는 데도 실효가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기다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일상의 업무나 정상적 기업활동 중에 요구되는 소통방식에도 절차와 틀이 있듯 위기의 상황에도 적용되어야 할 의사소통 방식과 대응의 매뉴얼들이 있다. 공통적인 것은 기다림의 시간이다. 이 기다림의 시간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것이 경영자와 중간관리자 역할임을 알기 때문에 이제는 ‘어떻게’라는 질문을 자신과 소속된 부서나 조직에 구체적으로 던져보길 바란다. 준비된 답변들이 줄지어 나온다면 이미 방식과 절차가 체계화된 것이겠지만, 고민해 보아야 할 질문으로 받아들인다면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들이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는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

팬데믹 이후 출장은 이전보다 더 많아진 모습이고, 급변하는 비즈니스 생태계 안에서 다양한 소통과 의사 결정의 방식들이 생겨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업무들은 상식적인 룰 안에서 해결되는 것 같다. 새로운 일은 누구에게나 도전이지만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해결 방식이 생겨나고 익숙함의 과정을 거쳐 조직 내에서나 업체 간 협력관계에서 상식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바르게 자리 잡은 상식은 업무의 효율성 면뿐 아니라 개인 간, 조직 간 관계를 유지하는데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더하여 위기관리(Risk Management)와 비상 계획(Contingency Plan)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들을 다루는 도구로서 유용하게 사용됨도 잊지 말자. 준비된 위기와 경험한 역경은 기업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래서 때가 되면 버릴 것 없이 모두 값지게 사용될 것을 믿자. 그리고 기다림 중에 요구되는 소통의 지혜와 위기 중에 빛나는 대응의 기술들이 우리 기업들과 소속된 개인들에게 값진 자산이 되길 소망한다. 

/ 글 나민우 파마스피어 제약그룹 아시아 사업총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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