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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제약·바이오업체 ‘수난시대’

제약·바이오산업의 높은 성장성은 규모가 작은 업체들엔 별나라 이야기이다.

  • 기사입력 2024.03.18 07:00
  • 기자명 이세연 기자
[사진=셔터스톡]

제약·바이오산업은 경기를 크게 타지 않는다. 현재 고령화 등으로 소비가 지속적으로 늘고, 경기가 어려워졌다고 의약품 투약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사례가 드문 덕분이다.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성장 산업’이다.

하지만 이런 배경에도 규모가 작은 제약·바이오업체들은 각종 규제와 투자 심리 위축, 미흡한 지원책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 제약사 “신약 R&D는 엄두도 못 내”

제약산업은 유독 상위 업체들에만 관심이 쏠린다. 판매 마진이 높은 전문의약품(ETC) 비중이 상위 20위권 제약사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빅5 제약사(종근당·유한양행·대웅제약·한미약품·GC녹십자) 중 가장 눈에 띄는 실적을 기록한 종근당의 경우에도 전체 사업에서 전문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이다. 반면 중하위권에 위치한 중소 제약사는 제네릭(복제약)과 일반의약품(OTC) 비중이 높다. 그보다 더 영세한 업체들은 타사 의약품을 단순 유통하는 데 그쳐 사실상 제약사가 아닌, ‘도매상’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신약 개발도 상위 제약사 위주로 진행된다. 업계에서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도약은 신약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가 흔하지만, 규모가 작은 업체들엔 별나라 이야기이다. 신약 개발에는 평균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이 기간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의 투자가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업체로서는 이 같은 ‘하이 리스크’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중소 제약사들은 수익성은 낮지만, 비교적 개발하기 쉬운 제네릭(복제약)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당장 이익을 내기 위한 방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성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제약협동조합 관계자는 “신약을 개발하면 소위 블루오션을 개척하게 되지만, 제네릭은 계속해서 레드오션에 진입하는 것”이라며 “시장에서 차지하는 파이가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네릭을 고집하는 것은 구시대적 수익 모델이다. 현실적으로 제네릭을 우대하기 힘들고, 자금도 혁신 신약에 쏠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중소 제약사들은 정부가 제네릭 난립 방지를 위해 ‘1+3 공동생동’ 규제를 시행하면서 더 코너에 몰리고 있다. 이 규제는 기존 생동성 시험 또는 임상시험 자료와 동일한 자료로 허가받을 수 있는 품목 수를 최대 3개로 제한한다. 2020년 기준 90가지 성분에 총 8671품목이 등재될 정도로 만연했던 제네릭 난립을 막기 위함이다.

규제 시행 이후 제네릭은 허가 건수가 급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2023년 식품의약품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 인정품목은 235개로, 직전년(648개) 대비 약 63% 줄었다. 생동성 인정품목은 원조 의약품과 동등성을 인정받은 제품으로, 대부분 신규 허가 제네릭이 차지한다.

중소 제약사들은 대형 제약사와 비교해 자체 생산 비중이 낮은 만큼 ‘기등재약 상한금액 재평가’ 타격도 크게 입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1차 재평가 때 총 7677개의 약가를 인하한 바 있다. 오는 3월 1일부터는 지난 1월 발표한 2차 재평가 결과에 따라 총 1096개의 약가가 더 떨어질 예정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가가 떨어지는 만큼 제약사 영업이익이 그대로 떨어진다. 제약사들이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제조 원가는 동일하니 팔수록 적자인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상위 제약사의 신약 R&D도 모두 자체 개발 제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아직 라이선스 아웃(기술 수출)에 의존하는 모습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자체 개발한 신약을 직접 판매하면 참 좋겠지만,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시장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 현재 25조원 정도로 추정되는데, 글로벌 빅파마의 한 해 R&D 비용만도 못한 수준이다. 그 정도로 작고 열악하다”며 “국내 기업들은 투자 대비 성과가 잘 나오는 편이지만, 시장의 한계 때문에 결국 글로벌 빅파마에 라이선스 아웃하는 전략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낮은 약가로 직접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어렵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재정을 절감하기 위해 약가가 비교적 낮게 책정되는 편인데, 이 약가 기준으로 해외 수출 약가가 책정돼 제약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또 미국, 유럽 등 소위 ‘선진 의약품 시장’의 까다로운 수출 장벽을 넘는 것도 어렵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국내 신약은 2020년과 2021년 각 1건, 2022년 2건, 2023년 3건에 불과하다.

2022년 7월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 연구원들이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 개발 연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바이오텍 “투심 위축 가운데 지원도 미흡해”

바이오텍 역시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바이오산업의 고부가가치성에도 약 2년 전부터 전례 없는 투자 혹한기가 지속되고 있다. 과거 ‘너도나도 뛰어들던’ 바이오 버블의 거품이 빠지고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으나, 사실상 기술력 있는 벤처들도 자금난에 힘을 못 쓰고 있다.

바이오산업은 성장세가 사인 곡선을 그리는 편이다. 과거에는 침체기에 빠져도 출구가 보였으나, 지금은 이조차 ‘올스톱’된 모습이다.

오병용 한양증권 연구원은 “과거에도 이런 적은 없었다. 보통 바이오업종이 부진하다가도 사람들이 투자하면 금새 살아나는 등 회복세가 빨랐다”며 “특히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텍들은 자금을 계속 투자받아 개발을 이어가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고금리로 인한 투자심리 위축 등으로) 자금 수혈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바이오텍은 자금 여력이 부족해 보통 한 두 개의 후보 물질에만 전념한다. 해당 물질이 임상시험에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회사 전체가 휘청일 수 있어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투자 심리까지 위축돼 바이오텍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바이오텍은 제약업체들과 달리 마땅한 수익모델이 부족해 리스크가 더 크다. 제약업체들은 의약품을 판매해 안정적인 캐시카우가 존재하는 반면, 바이오텍은 사실상 매출이 나오지 않고, 투자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바이오텍의 위기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을 중심으로 의약품이 전략물자화되며 코로나19 백신, 치료제 개발이 화두에 올랐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일반적인 개발을 하는 업체들은 임상시험 순서가 자꾸 뒤로 밀렸다. 그런데 이 업체들은 이미 글로벌 임상시험수탁기관(CRO)에 컨택을 완료한 상황이니, CRO에서 청구하는 비용은 계속 지불해야 했다”며 “이 가운데 금리까지 높아지니 앉은 자리에서 비용이 25%는 상승해 버렸다. 결국 글로벌하게 의미 있는 퍼포먼스를 낸 업체들이 타격을 크게 입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 등 소위 ‘바이오 선진국’으로 불리는 국가들은 기술 초기 단계부터 임상 1상~2상까지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활발하다.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기회를 잡은 업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니 바이오텍이 ‘최대주주 변경 가능성을 수반하는 주식담보 대출’ 등을 받아 경영권이 휘청거리는 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정부 주도로 조성 중인 메가펀드 규모가 턱없이 작은 것도 문제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지난 2022년 보건복지부가 ‘신약 개발을 위한 K-바이오백신 펀드 조성 계획’을 발표한 시점부터 “5조원 규모로 조성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2023년 상반기 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 뒤, 2025년까지 1조원 규모로 키우겠다고만 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2023년 민간 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기존 목표액의 절반 수준인 2616억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이 관계자는 “보통 바이오 선진국에서는 메가펀드를 평균 10조원 규모로 만든다. 못해도 1조원 이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수천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일반 펀드도 그렇게는 안 만든다”고 지적했다.

다른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자꾸 펀드 규모가 줄어드니 LP(출자자) 입장에서는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메가펀드는 일반적인 펀드와 다른 구조로 만들어져야 한다. 일반적인 경우 정부 자금이 15~20% 들어가고, 나머지는 LP들이 모아서 펀드를 구성한다면, 지금처럼 투자 심리가 위축된 경우에는 정부 자금이 50% 이상은 들어가야 할 것이다. 또 LP들 먼저 엑시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상황에서 누가 펀드에 참여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 포춘코리아 이세연 기자 mvdirector@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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