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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윤의 시선] 급변하는 벤처 패러다임, 정부 대신 민간이 나서야

  • 기사입력 2024.03.24 12:00
  • 최종수정 2024.03.25 21:17
  • 기자명 포춘코리아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1980년 제1호 벤처기업 삼보컴퓨터가 창업했다. 이후 역대 모든 정부는 벤처정책에 적극적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코스닥을 개설하고 특별조치법까지 제정해 벤처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어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벤처기업을 적극 활용했다. 노무현 정부는 모태펀드를 만들어 벤처기업 활성화를 꾀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1인 창조기업으로,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로 벤처기업 성장을 유인했고, 문재인 정부는 중소벤처기업부를 출범시켜 벤처 정책을 전담케 했다.

이 결과 벤처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1998년 2,042개였던 벤처기업 수는 2022년 3만 5,123개까지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벤처투자회사는 72개에서 231개로, 투자조합 수는 12개에서 380개로 늘었다. 벤처펀드 신규 결성액은 825억 원에서 10조 7,286억 원으로 무려 130배 성장했다.

최근 지속 증가하던 벤처기업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2020년 3만 9,511개를 기록한 이후 2년 연속 감소해 2022년 3만 5,123개까지 줄어들었다. 그동안 벤처기업은 전체 729만 개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혁신과 성장의 상징이었다. 결국, 중소기업의 혁신과 성장이 멈춘 게 아닌가 하는 우려와 걱정이 많아졌다.

벤처정책이 커다란 전환점을 맞고 있다. 벤처기업 수가 감소하자 모두 정부만 쳐다봤다. 정부가 주도하는 모태펀드의 규모가 크게 줄었기 때문인데 2021년 1조 700억 원 규모에서 2022년 5,200억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일부는 모태펀드가 줄면서 벤처기업이 줄었다고 주장한다. 인과관계를 전혀 부인할 수 없지만, 언제까지 정부를 탓할 것인가?

지금은 정부가 처한 상황도 한몫한다.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 기조가 상당히 오래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예산 투입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보상금과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서 나라의 곳간도 비어있다. 게다가 벤처기업의 양적 팽창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수요도 만만치 않다. 즉, 정부의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민간의 투자가 정부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민간이 그런 준비가 돼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국의 민간 투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벤처투자 규모가 작다. 단일 조합의 결성금액이 최소 1천억 원 이상이 될 때 기업에 100억 원 이상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투자조합의 평균 결성금액이 241억 원(2019년)에 불과해 건별 투자규모는 20억 원에 그쳤다.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최소한 수백억 원대의 과감한 대형투자가 5회 이상 이뤄져야 한다. 우리의 벤처투자는 유니콘기업을 이끌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둘째, 벤처투자에서 초기 비중이 매우 높다. 보통 벤처투자는 초기 투자(시드·엔젤투자에서 시리즈 B까지 투자)가 절대적이다. 근데 한국은 그 비중이 94.9%에 달해 미국(86.5%), 인도(88%), 이스라엘(88.3%)보다 월등히 높다.

셋째, 시리즈 C 이상 후기 투자는 외국자본이 주도한다. 벤처기업은 창업 후 데스밸리를 건너고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데 한국의 민간 투자가 그 역할을 못 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쿠팡에 투자했고, 투팡이 나스닥에 상장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보면, 한국의 민간 벤처투자는 소규모로 투자가 결성되고, 대부분 초기 투자에 집중하며, 후기에 발생하는 대규모 투자는 외국자본이 주도한다는 것이다. 결국, 민간 투자는 모태펀드로 설명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투자한다는 것은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이고, 민간 투자는 정부를 좇아 투자함으로써 위험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벤처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시장의 변화가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넷플릭스가 온라인 서비스 사용자 100만 명을 달성하는 데 3.5년이 걸렸다. 이 기간이 더욱 빨라져서 인스타그램은 2.5개월, 요즘 가장 뜨거운 챗GPT는 불과 5일 만에 100만 명을 달성했다. 또한, 기업의 수명도 매우 짧아져서 S&P 500 기업의 평균 수명은 1965년에 33년이었으나, 지금은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시장의 변화가 엄청난 속도로 빨라졌는데 우리는 아직도 정부에 기대고 있다. 시장이 가장 먼저 움직이고, 기업은 그 변화를 읽고 정치인들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이에 국회가 예산을 통과시키면, 예산은 정부의 지원사업을 통해 기업에 도달한다. 지원받는 기업이 마주한 시장은 이미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면 기업은 다시 지원을 요청하고 정치가 반응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정부는 절대 시장을 쫓을 수 없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벤처 생태계에 있어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돕는 방식이어야 한다. 정부는 자금 지원보다 정책의 목표 - 글로벌화를 제시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가령, 창업 단계에 외국인 기술자가 장기 거주할 수 있도록 비자제도를 손보는 방식이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영주권을 받으려면 5년 동안 연 소득 4800만 원 이상이어야 하는데 창업 초기에 이 정도 소득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끼리 창업하고 국내시장에 머문다. 그러고 나서 정부는 글로벌화를 지원하지만, 성공 사례를 찾기 어렵다. 비자제도만 바꾸면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화할 수 있는데 말이다.

미국에 1921년 창업한 라디오쉑이란 전자제품 전문 소매업체가 있었다. 창립 100년을 앞둔 2015년 라디오쉑은 문을 닫았다. 라디오쉑은 1990년대까지 혁신의 상징이었는데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혁신의 상징인 아마존에 무릎을 꿇었다. 시장에서 혁신은 혁신을 낳는다. 정부는 시장에서 혁신을 이끌 수 없다. 벤처정책에서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글 오동윤(중소벤처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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