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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el of Fortune⑪] 벤처투자 먹구름 몰고 온 글로벌 머니무브

김유경의 저널리즘

  • 기사입력 2024.03.10 15:00
  • 기자명 김나윤 기자

증시에 투자됐던 대규모 자금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예금으로 대거 몰리면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탱해 온 모험자본 시장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

"금리 ‘인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은 2020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내린 뒤 ‘비둘기파’적인 발언으로 시장을 안도시켰다.

팬데믹 여파로 얼어붙은 시장 심리를 녹이기 위한 발언이었다. 이후 연준은 1.75% 기준금리를 단 두 번 만에 0.25%로 끌어내렸다. 그렇게 2년간 사상 유례없는 저금리의 시대가 흘렀다. 당연하게도 증시·부동산을 비롯해 각종 파생상품과 암호화폐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임금과 물가 상승률도 역대 최대 규모로 상승하며 경기 과열 우려가 불거졌다.

그러던 2022년, 세계 주요국이 엔데믹을 선포하면서 미 연준도 빠르게 자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총 11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25%에서 5.75%로 가파르게 끌어올렸다. 여기저기서 ‘급진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파월 의장은 2023년 7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시장에 기대하지 말라는 듯 3년 전과는 정반대의 말을 뱉었다. “금리 ‘인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당시 시장은 저금리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연준이 실물경기 부양을 위해 머지않아 금리를 낮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파월 의장은 금리정책의 ‘파동’보다는 ‘좌표’를 더 중시하는 듯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의 말마따나 금리 정책의 원칙은 시장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유연한 대처만 있을 뿐이다. 2023년 말 파월 의장은 실물경기에 긍정적 평가를 내리며 다시 비둘기파적 발언으로 시장을 달래고 있다. 그만큼 시장에 변동성이 크며 종잡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팬데믹 이후 충격요법 반복한 금융정책

팬데믹 사태 이후 지난 4년간 펼쳐진 금융시장 변화는 그야말로 충격요법의 반복이었다. 연준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충격적 완화 정책을 통해 시장에 강한 경기회복 의지를 드러냈다. 재무 여력 한계를 드러낸 미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연준의 힘만으로 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팬데믹 정상화 시기에는 단계적 출구전략은 없다는 듯 무서울 정도의 긴축 모드로 돌아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펼쳐진 ‘제로금리’ 시대는 2023년으로 막을 내렸다. 이제는 고금리가 ‘뉴노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금리가 높아도 안정적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설비투자가 뒷받침되고 있어서다. 인플레이션의 쓴맛을 본 연준이 다시 초저금리 정책으로는 회귀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금리라는 뉴노멀이 펼쳐질 2024년 이후 세계 경제는 어떤 모습일까. 특히 버블의 단맛을 양분 삼아 성장한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떤 변화를 맞을까 궁금하다. 이를 가늠하기 위해선 먼저 거시경제적 흐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제를 3년 시계로 살펴보자. 2024~2026년은 완만한 성장 흐름을 보일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3년 11월 발간한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와 2024년 세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각각 2.9%와 2.7%로 제시했다. 금융 긴축과 전쟁 등에 따른 무역 성장세 약화, 기업 및 소비의 신뢰도 하락 등 영향으로 성장세는 다소 둔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2025년은 2023~2024년 경기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 등으로 실질 소득 증가율 회복과 정책 금리 완화가 벌어질 것이며 이 영향으로 세계 GDP 성장률이 3.0%로 상승할 것으로 봤다.

글로벌 성장률을 견인하는 것은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이다. OECD는 중국의 부동산 리스크로 변동성은 있지만 중국 정부의 통화정책 완화와 인프라 투자로 2024~2025년 4%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차기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는 서비스 수출과 공공 투자 증가의 영향으로 6%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했다.

글로벌 경제, 신흥국 중심 2024~2025년 4%대 성장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통화긴축의 영향으로 2024년 1.5%로 정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로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2023년 0.6% 성장에 그쳤으나, 에너지 문제의 단계적 완화 등에 힘입어 2024~2025년 모두 1%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통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가늠자인 물가상승률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6.2%(2023년)→5.8%(2024년)→3.8%(2025년)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물가상승 압력의 완화로 금융시장 여건과 경제성장률에 따른 금리 정책을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2024~2025년 경제성장률이 각각 2.3%, 2.1%로 2023년 대비 소폭 상승할 전망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회복 등에 따른 수출로 내수는 부진한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4~2025년 시중 자금은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폭 감소할 전망이다. 기준금리 인하는 지급준비율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 등 다양한 형태로 시차를 두고 시장 유동성에 영향을 미친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5.75%로 인상했어도 2020~2021년 시중에 풀린 자금은 여전히 투자 형태로 자산 버블을 형성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풀린 자금은 잉여저축과 잉여유동성 등의 형태로 여전히 안정된 양을 유지하고 있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린 2022년 3월부터 2023년 9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시중 통화량(M2)은 21조 9000억 달러(약 2경 8909억원)에서 20조 7000억 달러로 5.3% 감소했으나 여전히 팬데믹 이전 대비 많은 수준이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저축성예금 등의 현금성 자금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자금량을 뜻한다.

고금리·통화량 감소로 머니무브, 변동성 커져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증시에 투자됐던 돈이 예금으로 몰리고 채권에 투자됐던 자금도 대거 머니무브를 시작하며 시장의 잔균열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일례로 최근 불거진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문제는 증시 부진으로 투자자들이 재투자하지 않은 결과로 벌어졌다.

특히 한국 등 신흥국은 변동성 위험이 더욱더 크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고공행진하며 한국 등 신흥국에 투자된 유동성이 축소됨에 따라 외환·채권·주식 가격에 상당한 하방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당분간 시중자금이 전환하는 시점마다 ‘삐그덕’ 소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가와 실물경기의 예측안정성이 확보될 때까지 금융 시장은 파월 의장의 ‘입’에만 주목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금융시장의 머니무브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탱해온 모험자본 시장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대규모로 조성된 벤처투자 펀드의 해산과 재결성 과정에서 자금의 썰물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한국은 2017년부터 스타트업 창업 지원 정책을 강도 높게 펼치며 매년 조 단위의 벤처투자 펀드를 결성했다. 국내 벤처펀드 결성액은 4조 8413억원(2018년)→9조 4978억원(2021년) 등 매해 가파르게 증가했다. 2022년에는 10조 7286억원으로 역대 처음으로 10조원을 돌파했다.

벤처펀드의 운용 만기는 통상 7년이다. 정부가 모태펀드에 기반을 둔 벤처투자 활성화에 본격 시동을 건 2018년에 결성된 펀드 대부분은 2025년 만기가 도래한다. 펀드는 청산을 앞두고 보유 중인 포트폴리오를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차익을 실현해야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수익을 돌려줄 수 있다.

이에 실패한 경우 신규 결성 펀드에 이를 매각해야 한다. 다만 2019~2022년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이 과도하게 높아진 시기에 많은 투자가 이뤄졌기에, 포트폴리오를 주식시장에 상장하더라도 상장 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 2023년 상장해 기업가치 1조원을 목표로 했던 한 스타트업은 현재 상장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 직전에 투자를 통해 5000억원 밸류에이션을 받았으나 현재 증시가 부진해 실제 초기 상장가치는 5000억원에도 못 미칠 것이란 관측이 커지면서다. 투자자에게 이익을 약속하려면 5000억원 이하로는 상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장 상황이 좋아 성장주가 주목 받을 때는 사용자 수와 매출액만으로 기업가치를 매겼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오른 뒤부터는 실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이 회사에 투자한 펀드는 추가 투자를 하든가, 일부 손실을 감수하고 밸류에이션을 낮춰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이처럼 선택지는 많지 않다.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역시 자산 매각 등 자구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신규 벤처펀드 규모 감소, 상장도 어려울 듯

만약 청산한 펀드와 같은 숫자와 양의 펀드가 재결성한다면 투자자산의 부실화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재결성 펀드 규모는 과거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라 스타트업의 혹한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위험자산 투자 회피 심리로 기관출자자(LP) 등이 출자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2023년 1~3분기 누적 기준 벤처투자액은 7조 6874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5% 급감했다. 투자건수는 전년 5857건에서 5072건으로 감소했다. 기업 한 곳당 투자유치 금액도 32억 2000만원에서 25억 9000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분야별로는 게임이 50.4%로 가장 크게 줄었고, 비중이 가장 큰 ICT서비스는 48% 감소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유입되는 자본은 과거보다 희소해졌다. 앞으로 투자 분야도 투자회수 가능성이 크고 기간이 짧거나 실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이전에도 벤처캐피털(VC) 업계에는 명성 있는 투자사가 앵커 투자자로 참여한 거래에 투자가 몰리는 경향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앞으로 그 경향성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 시대의 돌입과 벤처 투자의 위험성 확대는 곧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장기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 스타트업 재무컨설팅 회사인 버클랜드의 스티브 로드 전무는 최근 미디엄을 통해 “VC 생태계는 이미 수정되고 있으며 스타트업이 의존하는 자금 조달 엔진은 앞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투자는 인공지능(AI)처럼 시장을 지배하는 트렌드의 기업이나, 기후변화처럼 정부기관의 지원금이 뒷받침되는 분야, 신약 물질 개발 등 민간의 실질적 수요가 발생하는 분야로 집중될 가능성도 크다. 지분을 희석하지 않는 대출이나 보조금, 정부지원과 같은 방식의 자금 조달 방식도 새로운 투자 옵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더불어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VC 투자사 창업자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법안이 2025년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신규 투자 수요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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