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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소 섬 제주’는 한국의 묵시록일까

[인터뷰] 김구환 그리드위즈 대표

  • 기사입력 2024.02.08 09:39
  • 최종수정 2024.02.08 09:45
  • 기자명 문상덕 기자

26조 8000억원. 정부는 제주 재생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자면 이만한 돈이 든다고 추산한다. 이 돈으로 ESS를 설치해야 한단 것. 스마트그리드 시장을 개척한 그리드위즈의 생각은 다르다.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김구환 그리드위즈 대표 부산대 컴퓨터공학 학사, 석박사. Wiznet Technology CEO를 거쳐 2013년 그리드위즈를 창업했다. 현재 탄녹위 위원, 산자부 전력정책심의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에너지 운영은 미적분 문제입니다. 더하기 빼기가 아니에요.

 

김구환 대표의 등 뒤로 대형 전광판들이 늘어섰다. 전광판에 뜬 지도와 숫자, 그래프는 고객사별 전력 데이터를 보여줬다. 그리드위즈는 1700여 개 고객사에서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 분석한다. 그러다 전력거래소가 수요감축 요청을 보내면, 고객사 전력사용량을 줄이도록 유도한다. 대신 고객사는 인센티브로 정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리드위즈가 하는 수요관리(DR) 서비스의 얼개다. 

사업장에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있다면, 전력을 모아뒀다가 값이 비쌀 때 거래소에 팔 수도 있다. 설비를 새로 만들지 않고 흩어져 있던 전력을 확보해 공급한다고 해서 가상발전(VPP)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그리즈위즈는 전력 수요와 공급 곡선의 기울기를 완만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둘 중 한쪽이 튀면 정전이 벌어진다. 그의 말처럼 ‘미적분의 문제’를 푸는 것. 

반면 그가 보는 한국의 전력정책은 사칙연산에 가깝다. 전력 공급이 모자라면 발전소를 늘리는 데 집중한다. 그가 앞서 지적한 ‘더하기’의 정책이다. “수요 공급의 변동성만 중간에서 잘 관리하면 발전소를 새로 짓는 비용을 지금보다 아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빼기’의 정책도 있다.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출력제한 문제가 그렇다. 전력거래소는 풍력, 태양광 발전량이 치솟아 전력수요가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마다 발전기와 송배전망의 연결을 끊고 있다. 이를 ‘출력 제한’이라고 부른다. 제주가 2030년 ‘탄소 없는 섬’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면서 문제가 생겼다. 출력 제한 횟수는 2015년 3회에서 2022년 132회로 늘었다. 

잦은 출력 제한에 발전사업자들은 2023년 6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정부 조치가 위법하다는 것. 소송에 참여한 곽영주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 회장은 “미국이나 유럽에선 연간 발전량의 2~3%까진 사업자가, 그 이상은 정부가 보상하도록 기준을 정하고 있다”며 “기준이 없으면 누가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은행도 대출을 꺼린다”고 호소했다.

출력 제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다시 ‘더하기’다. 2023년 11월 감사원이 낸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전력거래소는 제주도가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달성하는 데 26조 8000억원어치의 ESS가 필요할 것이라고 봤다(2036년 기준). 이를 전국 단위에 대입하면, 비용을 가늠하기 어렵다. 사실이라면, 재생에너지는 비싸고 부작용만 큰 에너지원일 터다. 

하지만 김 대표는 “(정부의 접근이야말로) 경제성을 따지지 않는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가장 경제성 있게 해결하느냐, 그게 에너지 테크가 말하는 오퍼레이션”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Q 한전과 전력거래소도 전력계통을 ‘운영’하지 않습니까?

하드웨어 중심입니다. 과거엔 전국에 흩어진 발전소가 400곳도 안 됐어요. 제어 포인트가 400곳이었어요. 그때는 전화로 제어합니다. 전화해서 “발전량 좀 올려주세요” 말하는 거죠. 앞으로는 작은 발전소가 100만, 1000만 곳이 들어옵니다. 1000만 개의 관리 포인트가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재생에너지가 더 늘면 앞으로는 예비력, 그러니까 스탠바이하는 발전기가 변동성을 감당 못 합니다. 10분 만에도 발전량이 출렁일 수 있어요. 갑자기 전국에 비가 내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해가 지는 시간대를 ‘덕 커브’라고 하는데요. 오리 배 모양처럼 1시간 만에 전력사용량이 바닥에서 끝까지 올라갑니다. 그 안에 예비력이 충분히 들어올 수가 없어요. 

그리고 예비력을 보통 24% 내외로 유지합니다. 우리가 100만큼의 전기를 쓰고 있으면, 124만큼의 발전소에 시동이 걸려 있는 거예요. 예비력을 위한 발전소도 엑셀만 밟으면 나갈 수 있게 준비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정부에서 발전대기비용을 줍니다. 킬로와트당 4만원 되는 큰돈이에요. 그런데 수요와 공급의 변동성을 중간에서 잡아주면 예비력 비율을 줄여볼 만하죠.

 

Q 출력 제한 문제를 운영으로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수요관리입니다. 세상의 모든 수요는 관리해야만 안정적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패턴을 관리해야 해요. 100을 쓰던 사람에게 90을 쓰라는 말이 아니라 그대로 쓰되, 쓰는 시점을 옮겨달라는 거예요. 발전량이 적을 때는 사용량을 조금 줄여달라. 

두 번째는 수요 관리만으로 안 될 때의 방법이에요. ESS입니다. 그런데 배터리는 상당히 비싼 장비예요. 하나의 용도로 써서는 경제성을 뽑아낼 수가 없습니다. 사용자 근처에 설치해서 활용도를 극대화합니다. 전기료가 쌀 때는 충전했다가 비쌀 때 팔아 주고 전체 전력망이 위기일 때 방전해서 수익도 만들어 주고. 1년 24시간 돌아갑니다. 이걸 그리즈위즈가 대신 운영해 줍니다. 

지금 제주도에서는 변전소 근처에 설치해요. 변전소나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거죠. 사용량이 피크를 칠 때, 혹은 너무 떨어질 때만 동작합니다. 정전을 방지하기 위해서요. 1년에 몇 번 동작 안 합니다. 그런 식으로 ESS를 쓰면 자원을 산수로 쓰고 있는 거죠. 

또 ESS 말고도 에너지 스토리지 역할을 하는 물건이 많아요. 대표적인 게 전기차입니다. 전기차를 모바일 ESS로 보는 겁니다. V2X(Vehicle-to-everything) 혹은 V2G(Vehicle-to-Grid)라고 하는데요. 핵심은 양방향이에요. 전기차 배터리에서 꺼낸 전기를 집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전력망에서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027부터 V2X 기능을 탑재하지 않은 차는 판매할 수 없도록 법제화했어요. 한국도 이를 법제화하면, ESS에 26조원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사진=그리드위즈]
[사진=그리드위즈]

 

Q 전기차를 모바일 ESS로 쓰자면, 전력망과 전기차를 연결하는 충전기의 역할이 중요하겠네요. 그런데 국내 스타트업도 그렇고, 유통업체에서 자사 유휴부지를 활용해서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잘 작동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운영을 잘하느냐, 그리고 충전기가 사회에 기여하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충전기가 잘 동작해야 되는데 동작을 안 합니다. 전국에 설치된 충전기의 3분의 1은 고장 난 상태로 방치돼 있습니다. 유지보수가 안 돼요. 보조금 타 간 설치업체가 많이 망했습니다. 망하고 또 새로 만들어집니다. 얼마나 고장 났는지 전수조사해야 하는데, 지금은 못 합니다. 데이터가 없어요. 데이터가 올라오는 충전기를 내년부터 공급한다고 환경부에서 말합니다. 

또 사회에 기여해야 합니다. 충전기가 충전만 해서는 사회에 기여할 수 없어요. 전력망에서는 전기가 없어서 정전 대란을 걱정하는데, 누구는 급속 충전을 해요. 용량의 80%가 차 있는데 10% 더 밀어 넣는 거예요. 왜냐, 정보가 없으니까요. 데이터가 있으면 충전이 급하지 않은 차량은 나중에 충전해 달라, 대신 보상을 더 해주면 됩니다. 미국의 경우엔 전기료가 5센트라고 하면 급한 순간에는 50달러까지 보상해 줘요. 1000배거든요. 그래도 세금이 아깝지 않죠. 

그리드위즈는 2020년 전기차 충전 서비스 ‘스카이 블루’를 출시했습니다. 지금은 제주도, 한전과 같이 전기차 충전기를 활용한 플러스 DR 사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지금 충전하겠느냐, 인센티브를 받고 한 시간 뒤에 충전하겠느냐. 이런 충전 제어만 돼도 변동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카이 블루 충전기에는 이미 V2G 기능이 탑재돼 있어요. 매년 10억원씩 저희 자본으로 투자해서 설치하고 있습니다. 선행 투자이죠. 2030년 전기차 보급 목표 대수가 360만 대입니다. 앞으로 다른 충전기들도 똑똑해져서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국내 전기차가 동시에 갖고 있는 에너지의 양이 제주도가 5개월 쓸 수 있는 양이 됩니다.

 

플러스 DR 수요관리(DR) 제도의 일종. 전력수요를 줄이는 게 목표인 기존 DR과 달리, 전력수요를 늘리는 데 목표를 둔다. 재생에너지 발전은 많지만 전력 수요가 낮은 시간대 충전을 유도하는 식.

 

Q 2023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핵심 안건이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었지요. 그런데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 같은 신기술을 활용하면 기존의 에너지믹스를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요?

탄소중립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봅니다. CCUS를 보면, 경제성이 입증된 바가 없습니다. 기술 수준이 높지 않다 보니 너무 비쌉니다. 

그리고 CCUS를 활용해서 수소 산업을 육성하는 목적도 있습니다만, 역시 과제가 많습니다. 수소는 디젤 트럭이 운반합니다. 탄소중립 단계에서 스코프 1~3이 있습니다. 스코프 2에선 생산 단계에서의 배출만 따져요. 그런데 3에서는 수송 단계에서 배출하는 탄소까지 따집니다. 호주에서 수소를 만들고, 에탄올로 바꿔서 배에 실어서 가져오고, 트럭으로 충전소에 갖다 놓는 게 청정 수소의 원리예요. 

단지 우리가 기존에 잘하던 오일, 가스 중심의 구조와 유사한 것이 장점이죠. 물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연구자금이 들어가야 해요. 그런데 10년, 20년 후에 경제성이 있을까 말까 한 사업에 올인하는 것은 이상하다는 겁니다. 지금은 투입 자본 대비 탄소 저감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쪽에 투자를 집중해야 해요. ‘Hanging fruit’이라는 말이 있어요. 손만 뻗으면 딸 수 있는 사과가 있는데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서 사과를 따려고 하는 겁니다. 

 

CCUS 친환경 수소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기술로 꼽힌다. 현재 대부분의 수소는 천연가스에 화학반응을 일으켜 얻지만, 수소 1㎏을 생산하는 데 이산화탄소 10㎏이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Q ‘제주 무탄소 섬’에 대한 인식이 왜곡된 듯합니다. ‘신재생에너지 과잉의 결과’라는 식으로요.

그리드위즈는 재생에너지 발전을 직접 하는 게 아니에요.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요소 기술, 선행 기술을 개발하는 겁니다. 이게 없으면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지었더니 계속 출력제한이 걸려서 경제성도 안 나오고 소송 걸리고. 그래서 돈 벌기 힘든 사업이다, 이렇게 되면 에너지전환이 어려워집니다. 변동성을 관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 발전량 과도할 때 리스크를 줄일 수 있잖아요. 이걸 안 하는 상태에서 산수만 하는 거예요. 

특히 앞으로 재생에너지 직접 거래(PPA)가 작동하려면 이런 것들이 해결돼야 합니다. 제주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법은 다 풀려 있잖아요. 그런데 아직 계약이 없어요. 왜냐, 첫 번째로 변동성을 해결할 수 없어요. 내가 전기를 쓰는 패턴이 오전에는 시간당 50, 낮에는 150을 씁니다. 그런데 평균으로 보면 시간당 100이에요. 그런데 이런 패턴에 맞춰서 전력을 공급해 줄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는 자원을 수요와 공급 양쪽에 둬야 해요. 

두 번째는 공급자와 사용자 간 정보 교환이 안 됩니다. 공급자가 얼마나 발전하고 이에 맞춰서 사용자가 써야 하는데 서로 관리가 안 되는 거예요. 마지막 세 번째로 재생에너지 발전이 모자랄 때는 한전이 도와줘야 해요. PPA 계약은 둘이서 했는데, 한전은 공짜로 전력을 제공하면 경제성 논리에 안 맞습니다. 그래서 한전이 PPA 요금제를 따로 만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반발이 심해서 유예했어요. 

 

PPA 민간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가 정해진 가격에 직접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하는 제도. 한국은 재생에너지에 한해 2021년 도입했다. 기업이 직접 발전을 하지 않아도 RE100을 할 수 있게 했다.

 

Q 생소한 용어가 많습니다. 시장을 사실상 개척하다시피 하며 여기까지 오신 것 같아요. 힘든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 뭘까? 인류가 배출하는 모든 나쁜 것이 에너지 형태로 들어오고 나가요. 예를 들어 농업을 미국에선 오일 인더스트리라고 합니다. 항공기로 농약을 살포하잖아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답이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마침 우리가 산업 제어 쪽의 기술들을 갖고 있으니 이걸 에너지 제어에 적용해 보자 생각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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