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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혀버린 홍해에 ‘울고 웃는’ 해운사

주요 항로가 국제 분쟁에 휘말리면서 해운사들은 보다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해운업계에 득일까 독일까?

  • 기사입력 2024.01.31 13:41
  • 기자명 육지훈 기자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홍해를 거치는 수에즈 항로는 전 세계 핵심 물류망으로 통했다. 미국 행정부에 따르면 세계 해상무역의 약 15%가 홍해를 통과했다. 

위 문장이 과거형인 이유는 지난 12월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홍해 바다가 위험지대로 급변했기 때문이다. 홍해 인근 국가인 예멘에서 후티 반군이 민간 상선을 공격하자, MSC·AP몰러-머스크 같은 국제 해운사들은 수에즈 항로 이동을 포기했다.

해운사들은 대안을 찾아 나섰다. 남아공 희망봉 항로가 대표적이다. 기업들은 우회항로로 이동하며 유통망을 유지하려 하지만 필연적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배들이 전보다 더 먼 항로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닥친 위기 앞에, 또 이런 위기가 만든 각각의 상황에 따라 해운사들의 표정은 복잡하게 엇갈린다.

 

뜻밖의 행운? 운임 상승 시작

한 부류 해운사들은 미소를 짓고 있다. 주가가 치솟고 있어서다. 글로벌 선복량 2위 해운사 AP몰러-머스크 주가는 12월 1일 1만 925크로네(약 1040달러)에서 15.7%가량 상승해 1월 30일 1만 2645크로네(약 1210달러)를, 또 다른 글로벌 해운사 하팍-로이드는 같은 기간 114.4유로(약 124달러)에서 약 22.1% 올라 139.7유로(약 151달러)를 기록 중이다. 

주가 상승의 배경으로는 급등하는 해상운임이 꼽힌다.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 지수(SCFI)는 지난 12월 1일 1010.81포인트에서 약 1달 뒤인 1월 19일 121.56% 이상 뛰어오른 2239.61포인트를 기록했다. 2022년 10월 이후 1년 3개월 만의 최고치다.

선복량 부족이 가격 상승을 유도했다. 항로가 길어지면서 운항기간이 덩달아 증가했고, 결과적으로 노선 간 운송횟수가 줄어들었다. 운송 서비스 공급이 전보다 제한되면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높아졌다. 한 해운업 관계자는 "컨테이너 선사들은 보통 한 항구에서 주 1회 항차가 기본이다"며 "운항거리가 7일~10일 정도 늘어나면서 일정을 지키기 위해 배를 더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운임 상승의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항해 기간이 길어지면서 선박 연료 소비도 덩달아 늘어나 부담을 주고 있다. 유류비는 전체 매출의 약 10%~25%를 차지하는 해운사 주요 지출 항목이다. HMM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선박이 우회하면서 이동거리가 길어져 기름을 더 많이 먹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운임 인상 폭이 부가적인 지출부담을 넘어서 비용부담을 상쇄했다는 평이 시장에서는 지배적이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용이 올라간 것보다 운임이 더 많이 올랐을 것이다"며 "(연료비) 증가분 이상으로 이익을 봤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장기간 항해로 인한 해운사의 추가 유류비 부담이 적을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박이 우회하면서 연료를 더 소비하지만, 수에즈 운하 통행세를 절감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며 "2만 4000TEU급 컨테이너 선박 기준으로 (우회항로를 항해하는 데 드는) 추가 연료 비용보다 수에즈 운하 이용 비용이 더 큰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해운사가 화주와 체결할 유럽노선 장기계약 운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선사 입장에서는 유럽 항로 연간 입찰 계약이 실적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며 "운임이 많이 상승한 (현재) 상황에서 1월에 연간 단위 계약을 체결하면 유리한 부분이 있다"고 정리했다. 

 

과잉 선박 공급에 울상인 곳도

하지만 모든 해운사들이 미소 짓는 건 아니다. 해운사들은 과도한 선박 공급이라는 악재에 맞닥뜨렸다. 호황이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더 울상이다.

과잉공급의 시작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운사들은 선단를 확장할 재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경제가 회복되며 상품 수요가 늘어나고, 물류 병목현상이 나타나 해상운임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2021년 당시 "2021년 1월에서 8월 사이 LA항과 롱비치항을 통해 수입된 화물량은 약 689만 TRU로 2019년 대비 23%, 전년 대비 약 30%가 증가했다"며 "팬데믹 이후 외식, 여행, 레저 등에 대한 소비가 억제된 미국인들이 온라인 쇼핑을 더 즐기면서 물류 시스템에 과부하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상운임은 상승하며 2022년 초 SCFI가 사상 최고치인 5109.6까지 치솟았다.

호황기에 들어선 해운사들은 선단 확장에 나섰다. 유럽이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규정에 적합한 친환경 선박을 구매하려는 수요도 선단 확장 열기를 더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코로나 영향으로 선사들이 거의 상상해 보지 못한 수준으로 2021년, 2022년 해상운임이 올랐다"며 "해운사는 여유가 될 때 선단을 확장하고, 또 환경규제 비용을 줄일 필요가 있어 선박들을 구매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급망이 회복되고 소비가 잦아들면서 분위기가 변했다. KOTRA는 지난해 4월 발표한 해상운임 분석에서 "2022년 하반기부터 물류 병목 현상이 완화되었다"며 "인플레이션으로 재량소비가 줄어들면서 생필품 위주로 소비 트렌드가 변해 유통사별로 적체 재고가 쌓였다"고 말했다. 이어 "재고를 감당하기 위해 발주량을 줄였고, 물동량은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해운정보 기업 CTS에 따르면 2023년 1~9월 아시아-북미 항로 컨테이너 물동량은 전년 동기 대비 15.5% 감소했다.

줄어든 수요에도 발주된 선박들은 해운사에 차례로 인도되고 있다.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컨테이너선 신조선 인도량은 199만 8000TEU였다. 약 100만 TEU에 머무르던 기존 인도량에서 두 배가량 뛰어올랐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선박 과잉 공급의 파도가 다가온다

대규모 컨테이너선 공급은 한동안 이어질 예정이다. 컨테이너선 발주 잔량은 약 760만 TEU로 이는 현재 글로벌 선단의 약 30% 규모다. 다만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해운업황 저하로 컨테이너선 인도가 지연될 것을 감안할 때 2024년 인도량이 약 256만 TEU선에서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과잉공급으로 홍해사태 이전 해상운임은 가파르게 하락했다. 2022년 연평균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 지수(SCFI)는 3410포인트였으나 2023년에는 70.5% 하락한 1004포인트로 내려앉았다. 홍해 이슈로 상승세를 타기 전, SCFI는 지난해 1월부터 지속적으로 떨어지며 9월 886.85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SCFI가 900포인트 이하로 무너진 경우는 지난 2020년 5월 이후 처음이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2023년도에 운임이 하락한 배경에는 수요가 꺾인 것도 있지만, 2021년도부터 발주된 선박들이 2023년도부터 많이 인도된 영향도 있다"며 "수요는 저조한데 새 선박이 많이 투입되면서 공급 과잉으로 운임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수에즈 운하의 통행제한으로 운임이 오르고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 시절처럼 높은 가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요 증가가 아닌 공급 부족으로 발생한 '선복 수급 불균형'은 해상운임 상승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팬데믹 시기에는) 수요가 반등하면서 동시에 정체가 발생해 운임이 폭등했지만, 지금은 (수요 부분에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공급 차원에서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해 선복이 부족한 것"이라며 "수요가 많이 따라줘야 운임이 팬데믹 때처럼 오를 텐데, 그때와 지금은 수요에서 차이가 많이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해운사들은 비대해진 선단 운영 및 확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HMM은 "선사들이 선박들을 계속 발주하는 이유는 경쟁력을 위해서"라며 "시장이 안 좋다고 투자를 안하고 최신 선박을 확보해 두지 않으면 그해는 괜찮을지 몰라도 이후 시황이 좋아졌을 때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포춘코리아 육지훈 기자 jihun.yook@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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