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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나는 ‘썩지 않는’ 앨범

올해를 기점으로 'KPOP 앨범 1억 장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함께 불거진 앨범 폐기물 문제 때문에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 기사입력 2024.01.22 07:47
  • 최종수정 2024.01.22 07:48
  • 기자명 이세연 기자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운영하는 써클차트에 따르면, 지난 1~10월 상위권 400개 앨범 누적 판매량은 약 1억 100만 장으로, 지난해 총 음반 판매량(8000만 장)을 훌쩍 뛰어 넘었다.

하지만 판매량 중 99%는 '명목상의 소비'다. 한 음반사 대표는 "CD앨범 구매 후, CD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은 1%에 불과하다. 거의 10년 넘게 지속된 고질적인 문제다"고 말했다.

여기에 '랜덤 포토카드', '팬사인회 응모권' 등 수십에서 수백 장씩 구매하게 만드는 상술 마케팅까지 더해져 지나친 중복 소비 문화가 조성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앨범 폐기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지난 10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획사가 앨범 제작에 사용한 플라스틱은 2017년 55.8톤에서 지난해 801.5톤으로 6년 사이 14배 이상 증가했다.

 

◆ 거대해진 CD앨범, 그 시초는?

엔터사들은 하루만 하고 장사를 접을 것처럼 CD앨범을 '푸짐하게' 만든다. 30cm×30cm 앨범, 1kg 앨범 등이 그 예이다. 여기에 음반을 가장한 두꺼운 화보집까지 끼워넣는다. 

이러한 문화의 시발점으로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꼽힌다.

오늘날 활황인 KPOP 음반 시장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사양 산업으로 취급됐다. 2010년대 들어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CD 플레이어 사용이 줄어 앨범 수요가 함께 감소한 것이 원인이다.

이에 SM은 앨범을 크고 화려하게 리뉴얼하며 대응책을 찾았다. 기존 앨범들이 주로 투명한 쥬얼 케이스에 CD 한 장과 사진 몇 장이 들어간 '간단한' 형태였다면 SM 앨범은 종합 선물세트에 가깝게 변했다.

오늘날 팬들의 앨범 중복 소비를 조장하는 요소인 '랜덤 포토카드'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2010년 발매된 소녀시대 2집 앨범 '오!(Oh!)'에는 당시 9명 멤버 중 한 명의 포토카드가 랜덤으로 들어가 있었다. 때문에 모든 멤버의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해서는 최소 9장 이상을 구매해야 했다.

SM의 파격적인 앨범 마케팅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에 다른 엔터사들도 앨범을 패키지식으로 제작하면서 음반시장 전체가 동조화하는 모습을 보였고, 사양길을 걷던 음반시장은 회복세에 들어섰다.

 

◆ 엔터사의 '상술' 마케팅

엔터사들은 더 많은 앨범을 팔기 위해 각종 상술을 끼워넣는다. 앨범 판매는 엔터사들의 막대한 수익원이자, '팬덤 화력 지표'라 불리는 차트 순위와 연동되기 때문이다.

한 음반사 관계자는 "최근 미국 아티클에 따르면 음악 스트리밍을 100만 번 달성할 시 아티스트에게 500만원이 주어지고, 앨범을 100만 장 판매하면 50억원이 돌아간다. 이 차이가 앨범 판매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엔터사는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앨범 발매 주기를 줄이고 가짓수를 늘리는 방법도 사용한다. 어떤 앨범은 20가지 버전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여기에 랜덤 포토카드와 팬사인회 응모권 마케팅까지 더해진다. 특히 팬사인회 추첨권은 팬들로 하여금 수십에서 수백 장까지 앨범을 중복 구매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보통 앨범 하나당 응모권 한 장을 넣어, 많이 살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구조다.

여기에 팬데믹으로 생겨난 '영상통화 팬사인회'라는 새로운 포맷까지 끌어들여 온·오프라인 팬사인회를 대폭 늘리고 있다. JYP의 여자아이돌 '엔믹스'는 올 한 해에만 팬사인회를 92회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해 기후행동 공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이 앨범 폐기물들을 각 엔터사에 전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케이팝포플래닛이 팬들로부터 수거한 앨범 8000여 장이 창고에 쌓여있는 모습. [사진=케이팝포플래닛]
지난해 기후행동 공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이 앨범 폐기물들을 각 엔터사에 전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케이팝포플래닛이 팬들로부터 수거한 앨범 8000여 장이 창고에 쌓여있는 모습. [사진=케이팝포플래닛]

◆ 환경 이슈 대응 노력

하지만 최근에는 미디어·엔터계에서도 환경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음반 폐기물 양을 크게 줄인 '스마트 앨범'이 주목받는다. 네모즈랩에서 출시한 '네모 앨범' 등이 좋은 예이다. 이들 앨범은 신용카드 크기 수준으로, 기존 CD 앨범 대비 크기가 8분의 1에 불과하다. 전용 앱을 다운로드한 후, 앨범을 스마트폰 근처로 이동시키면 손쉽게 음원을 받아볼 수 있다.

스마트 앨범보다 더 친환경적인 것으로는 디지털 앨범을 꼽을 수 있다. 싱글 음원 등에서 상용화해 최근엔 전체 앨범을 오프라인 패키지 없이 온라인으로만 유통시키는 엔터사들도 있다.

앨범 소재 측면에서도 환경적 부담이 덜한 친환경 소재 사용이 늘고 있다. 플라스틱 케이스 대신 바이오 플라스틱 '에코젠'을 사용하고, 국제산림관리협회(FSC) 인증을 받은 지류에 콩기름 잉크로 인쇄한다. 포장 비닐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PLA 소재를 사용한다. 

소비자가 구매한 수량만큼 생산하는 주문 생산 방식도 확산 중이다. 음반사 한 관계자는 "우리 스마트 앨범 재고율은 1%도 안 된다. 최근 업계에서는 우리같이 주문 생산 방식을 사용하는 곳이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 또다른 마케팅일뿐?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마냥 선한 의도로만 해석되지는 않는다. 특히 스마트 앨범의 경우 그저 수익 다각화를 위해 실물 앨범 포맷을 하나 더 추가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 음반사 대표는 "26조원 규모의 실물 앨범 시장이 현재 4조원 정도로 줄었다. 이를 커버해줄 것이라 여겨졌던 음악 스트리밍 시장은 아직 규모가 7~8조원에 불과해 시장이 반토막이 난 상황"이라며 "하지만 CD나 LP앨범은 디바이스가 없으니 확대 판매가 어려운 상황에서 스마트 앨범 같은 새로운 포맷이 등장하니 엔터사들은 기꺼이 환영하는 것이다. '친환경'이라는 네이밍 또한 팬들에게 구매할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완전히 주객전도가 됐다"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는 "엔터사의 수익 다각화를 이끌고, 국내 차트에 집계되고, 친환경적인 이미지도 내세울 수 있으니 스마트 앨범이 점점 확산되는 것이다"라며 "만약 스마트 앨범이 국내 차트에 집계되지 않는 등 문제가 생기면 바로 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기획사의 니즈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꼬집었다.

 

이다연 기후 활동가 인터뷰

KPOP 팬들이 참여하는 기후행동 공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의 이다연 기후 활동가. '죽은 지구에 KPOP은 없다' 캠페인을 통해 앨범 폐기물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BBC 방송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됐다.

Q. 앨범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저희 케이팝포플래닛이 크게 두 가지 활동을 진행했는데, 첫 번째 활동은 불필요한 앨범 소비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이다. 90개국 이상의 KPOP 팬들에게 만 명이 넘는 청원을 받아 메이저 엔터사들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분위기의 엔터사들답게 직접적인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그래서 두 번째 활동으로 처치곤란이었던 앨범 폐기물들을 수거해 엔터사들에게 전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3주 만에 8000장이 넘는 앨범을 수거해 팬들의 메세지와 함께 전달했다. 특히 하이브의 경우에는 2021년 기준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엔터사였다. 그래서 하이브 사옥 앞에서 스피치와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는 메세지를 전했다.

Q. 엔터사들 반응은 어땠는지.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엔터사들이 팬들과의 소통창구를 열어놓지 않은 점이다. 어떠한 연락처도 공개되어 있지 않아 매우 힘들었다. 또 앨범을 직접 전달할 때, SM을 비롯한 몇몇 엔터사들은 거부하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이건 팬들의 목소리니까 전달하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받으시더라. 거부한다는 것 자체가 팬들의 요구를 알면서도 무시한다는 뜻인 것 같다. 그런 엔터사들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Q. 케이팝포플래닛의 대안은 무엇인지.

아무리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스마트 앨범이라도 여기에 랜덤 포토카드 등 상술 마케팅이 들어가면 결국 중복 구매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결국 폐기물로 이어진다. 이에 배달업계에서 '일회용 식기 선택 옵션'을 도입한 것처럼, 엔터사들도 팬들이 '(아티스트를 응원하고 싶으니) 100장 구매하지만, 실물 앨범은 나한테 정말 필요한 3장만 받겠다', '나는 포토카드만 필요하니까 이것만 구매하겠다' 등 배송 받을 상품 종류와 개수를 직접 고를 수 있는 '그린앨범 옵션'을 메인으로 요구하고 있다. 보수적인 엔터산업 특성상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직 리스크가 클 것이다. 이에 그린앨범 옵션을 먼저 이야기했다. 이를 영구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받아들여진 곳은 없다.

Q. 왜 엔터사들의 환경 이슈에 집중하게 되었는지.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전 세계 산업계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엔터사만 제자리걸음이고,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상황이다. 이건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KPOP이 더이상 우리나라에서만 향유하는 문화가 아닌, 세계인이 즐기는 문화로 확장된 만큼 환경적 책임감도 커져야 한다고 본다. 또 KPOP 팬들, 특히 내일을 살아갈 청년층이 KPOP의 환경 이슈에 대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만큼 엔터사들도 팬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세연 기자 mvdirector@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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