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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스파라에서 만난 사람] 김삼중 에스제이듀코 회장

겸손하면 삶도 사업도 편하다

  • 기사입력 2024.01.18 17:53
  • 기자명 유부혁 기자
"과시하는 건 럭셔리가 아닙니다. 아름답지도 않죠. 품질과 스토리가 중요한데 둘 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느것 하나 쉽지 않죠" [사진=강태훈]

30년이다. 김삼중 회장이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스.티. 듀퐁과 쟈딕앤볼테르, 브로이어 등을 유통·판매하며 패션기업 에스제이듀코를 중견기업으로 일군 시간. 그리고 다시 첫해. 그는 “부족함을 아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장사꾼이라고 했다. 무엇을 팔면 이윤을 남길지 금새 알아차렸다. 성인이 될 무렵인 70년대초, 일본을 오가며 전자계산기와 가전제품, 라이터를 독점으로 수입했다. 사업은 작은 도매업으로 시작했지만 패션기업으로 세를 불렸다. 일본을 오가며 가전제품을 유통하던 그의 보폭도 넓어졌다. 유럽과 홍콩을 오가며 럭셔리 제품을 유통하기 시작한 것. 75년 남대문의 작은 가게 삼일사는 89년 세중통상, 93년 에스제이듀코로 성장했다. 지금도 세중통상이 소형가전 도소매를, 에스제이듀코가 패션사업을 이끈다. 지난해 30주년을 맞은 에스제이듀코는 새해 새로운 도약에 나선다. 기존의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스.티. 듀퐁과 쟈딕앤볼테르를 기반으로 프랑스의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 브로이어가 재정비를 마치고 활로를 모색한다. 좀처럼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김삼중 회장을 만난 것도 같은 이유. 30년을 정리하고 첫해를 맞이하는 각오를 듣기 위해서다.

비 내리는 겨울, 빗방울에 떨어진 낙엽이 도로를 덮은 날 김삼중 회장이 파라스파라를 찾았다. 파라스파라 리조트 프라나오너스의 라운지 ‘그루지아’에서 차담을 나누고 함께 식사를 했다. 그는 식사 시간 내내 자신의 삶에서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를 말했다. “경영자로든 아버지로든 부족함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도 그렇고요”. 그는 이후 몇 번 더 이 말을 되풀이했다. 내세우지 않는 그의 삶은 단조롭지만 편안해 보였다. 김 회장이 정식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파라스파라 포춘룸에서 김삼중 에스제이듀코 회장과 나눈 대화의 일부. 

Q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해 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듣고 배워야 하는 사람이지 뭔가 이야기해 줄 만한 게 없어요. 그래서 요즘도 인기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보고 젊은 창업가들을 찾아가서 듣고 배웁니다. 장사꾼이니까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듣고 제품에 반영하는게 제 일이예요. 인터뷰를 통해 나눠줄 만한 인사이트는 아직 없습니다. 사실 오늘 인터뷰도 색다른 공간에서 진행한다고 해서 경험하고 배우려는게 목적이에요. 제가 살아보니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유익합니다. 

Q 식사하면서 계속 겸손을 강조하시던데, 어떻게 겸손할 수 있을까요?

타고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당당하게 살라고 하지요? 좋은 말이예요. 그런데 그 바탕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게 겸손이라 생각해요. 방법이라면 교육과 환경이겠죠. 겸손도 처음엔 배우고 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경쟁이 지나쳐서 겸손하기 어렵습니다. 안타까워요. 겸손한 사람이 잘 듣고 잘 배우지만 배우다 보면 겸손해지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Q 왜 그렇게 겸손을 강조하세요? 

자만하면 넘어지니까요. 시간이 갈수록 넘어지고 일어나는 게 어려워집니다. 겸손하면 오히려 살기 좀 더 편한 것 같아요. 사업도 마찬가지고요.

Q 파라스파라 포춘룸은 쉼과 여유라는 키워드로 마련한 공간입니다. 회장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은 어디인가요?

뻔한 말 같지만 풍족하지 않은 시절에 사업을 시작해서 늘 치열했고 몸부림치며 살았어요. 저와 나이가 비슷한 세대라면 쉼과 여유라는 말을 하면서 제대로 누리게 된건 얼마 안 됐을 겁니다. 저 역시 사업이 어느 정도 안착한 이후에도 쉼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 일과 일의 사이가 쉼이었던 것 같아요. 반농담 반진담으로 답하자면 개인적으로 가장 편안한 공간은 화장실인 것 같은데요?(웃음) 쉴 수 있죠. 집중하기도 좋고요. 

Q 사업을 하면 결정적 장면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세중통상 이후 에스제이듀코와 같이 B2B에서 B2C로 전환 또는 추가한 경우가 있을 텐데요. 

좋게 포장하면 유통에 머물지 않고 아이템을 직접 기획해 팔아보고 싶단 생각을 했던 게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 그런 중요한 순간, 저의 결정적인 장면은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면 좌절과 오기로 인한 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고 했지요? 자만하다 넘어진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에요. 

Q 그 장면이 궁금합니다.  

과거엔 흡연율이 상당히 높았고 좋은 라이터도 흔치 않았습니다. 라이터는 가격이 꽤 비쌌지만 수요가 상당했어요. 물건을 사러 일본을 오가다 보니 일본에선 지포(ZIPPO) 라이터가 한 달에 20만 개씩 팔리더군요. 수익성도 좋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어요. 마침 지포 본사에서 한국 독점 유통사를 찾다가 제게 연락을 줬어요. 만나서 구두로 계약을 하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었죠. 하지만 연락이 없어 알아보니 정작 본계약은 다른 곳과 했습니다. 

내 부주의였어요. 이제까지 잘됐으니 잘되겠지 하는 오판도 있었고요. 전 그때까지 실패하지 않았거든요. 배신감도 들었고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만회하고 싶단 생각뿐이었죠. 

‘수익성 좋은 라이터를 놓쳤으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터를 들여오자’. 그래서 듀퐁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그런데 듀퐁에선 라이터만 독점 유통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의류와 잡화 일체를 조금씩이라도 유통해야 했어요. 패션기업 에스제이듀코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Q 주요 업무를 결정하시다 보면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으실 텐데요. 직관이 경험이나 데이터를 앞서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회장 생각과 경험이 궁금합니다. 

직관이라고 하지만 그게 결국 경험에서 쌓인 자신감이거든요. 하지만 그 자신감에서 출발한 도전에는 겸손도 함께 따라가야 합니다. 그게 객관성이거든요. 지나고 보면 그런 경우가 많아요. 될 것 같았는데 안 된. 제가 큰 실패는 없었지만 실수했던 것들은 모두 직관만 따랐던 게 원인인 것 같아요. 

우리 고객도 점점 나이가 들어갑니다. 좀 더 다양한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찾은 브랜드가 브로이어입니다. 보는 순간 마음에 들었어요. 1892년 유대인이 만들어 가업으로 이어온 브랜드인데 매우 정직해요. 품질은 좋을 수 밖에요. ‘되겠다’ 싶더라고요. 조금씩 들여와 판매하는데 역시나 반응이 좋았어요. 프랑스 본사와 미국, 일본 등을 제외하고 브랜드 운영권을 샀습니다. 하지만 들여온 이후 목표만큼 성과를 거두진 못했어요. 투자도 여의치 않았고요. 지금 리브랜딩 중인데 곧 편집숍 형태의 매장으로 새롭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직관이 틀렸다기보단 직관적인 선택 이후 잘 관리하고 전략도 수립해야 하는데 이젠 김선기 대표가 잘 알아서 보완하고 새롭게 할 거라 믿어요. 지금도 이 일로 유럽 출장 중입니다. 

Q 빈치스 벤치란 잡화 브랜드가 한때 인기를 끌었는데 최근엔 보이지 않습니다. 

네. 백화점에 듀퐁을 입점시키고 보니 1층 잡화 매장을 채우고 싶더군요. 빈치스 벤치라는 잡화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럭셔리 브랜드를 수입하고 유통하다 보니 ‘내것’에 대한 갈망도 생겼고 기획하면 되겠다는 자신감도 있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만들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빈치스 벤치 론칭 시기가 IMF 외환위기 때라 부도로 인해 백화점에서 철수하는 매장이 많았거든요. 우린 손쉽게 매장에 들어갔고 독특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어요. 최근 브랜드 정비를 위해 잠시 중단한 상태예요. 때를 살피고 있습니다. 

Q 결국 지난 30년은 작은 실패와 큰 성공의 합이네요. 실패와 성공을 떠나 아직 버리지 못한, 버리고 싶은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전 도전이란 말을 참 좋아해요. 반대로 제가 버려야 할 건 오기죠.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오기에서 시작됐어요(웃음). ‘날 무시해?’ 하는 마음. 예전에 결핍이 있다 보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좋은 건 아닌데. 오기 대신 겸손을 우선했다면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인 판단이 중요합니다. 마냥 감정적인 오기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될건 없어요. 사업도 정치도 삶도. 한편 좋게 생각하면 제 오기 덕분에 좋은 브랜드와 좋은 사람들, 좋은 직원들도 만났죠.

Q 온라인 구매가 일상화되면서 백화점의 위기라고 하는데 에스제이듀코의 상당수 브랜드와 매장이 백화점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수익과는 별개로 백화점은 앞으로도 성장할 거라고 생각해요. 온라인과 경쟁하는 것 같지만 스스로 뼈를 깎으며 계속해서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백화점이에요. 상대적으로 보면 온라인은 변화를 보여주기 쉽죠. 하지만 오프라인 특히 대형 공간의 변화는 정말 어려워요. 많게는 천억원 이상 투자를 해야하는 것으로 압니다. 신중하지만 과감하죠. 

또 하나. 백화점이 좋은 브랜드 유치에 집중하는 것 같지만 그보다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데 관심이 커요. 이를 위한 전략 중 하나가 명품 브랜드 유치였고 요즘에는 주목받는 신진 브랜드도 입점시키는 것 같습니다. 

유통의 큰 흐름을 온라인이 차지하다 보니 백화점이 모든 점에서 순조롭진 않겠죠. 저희도 매장이 꽤 축소가 됐어요. 한때 백화점 매장이 330개, 백화점에 
나가있는 판매원만 1000명이 넘었죠. 지금은 매장 수가 180여개 정도입니다. 하지만 매장 한 곳 인테리어하는 데 상당한 금액을 투자해 만드는 이유는 분명 오프라인의 중요성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섭니다. 

Q 럭셔리 브랜드를 유통하시니 이건 꼭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회장이 생각하시는 럭셔리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럭셔리에 대한 정의가 많지요. 분명한 건 과시하는 건 럭셔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름답지도 않죠. 품질과 스토리가 가장 중요한 요소 같아요. 둘다 시간이 필요하고요. 그걸 과시하지 않고 고유함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죠.

Q 몇 해 전 사별한 아내 고 이일태 여사님의 회사 내 역할이 상당히 컸다고 들었습니다. 

아내가 회사 기틀을 마련했어요. 가장 고마운 것도 가장 미안한 것도 아내고 가장 슬픈 일도 아내와 사별한 겁니다. 아내가 회사 구성원을 잘 챙기고 제게 바른 말을 많이 했죠. 직원들이 제게 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으면 아내가 했습니다. 주변을 잘 살피는 사람이었어요. 아내가 갑자기 떠나서 그 헛헛함이 정말 컸어요. 아내가 평소에 베풀고 봉사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 뜻을 이어 저와 아내의 이름을 조합한 삼일장학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재단 사무실을 제 집무실 옆에 두고 챙기고 있어요. 이런 일 역시 아내가 아니었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Q 지난 10월, 장남인 김선기 부사장이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됐습니다. 당부하신 말씀이 있나요?

아들이니 저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면이 더 많아요. 믿고 맡겼고 잘할 거라는 믿음도 있습니다. 회사를 바통터치를 하듯 이어갈 게 아니라 창업가인 제가 만든 토대 위에서 다른 모습의 회사를 만들면 좋겠어요. 새롭게 창업한다는 생각으로요. 전 저와 일하는 사람들이 에스제이듀코를 좋은 일터로 생각하길 바랍니다. 이것 만큼은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유부혁 기자 chris@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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