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포춘코리아 매거진 최신호를 무료로 읽어보세요.

본문영역

[Spice-breaker, 김정수①] “음식도 패션이 된 시대, 삼양의 시간이 시작됐다”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 부회장

  • 기사입력 2023.11.06 07:00
  • 기자명 유부혁 기자

‘나가야 산다.’ 김정수 부회장은 불닭볶음면을 만들면서 생각했다. 해외시장 개척이 답이란 의미. 생각대로 됐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은 약 70%. 증권업계에 따르면 창업 62년, 삼양라면 출시 60년을 맞은 올해 처음 1조원 돌파가 확실하다. 포춘과 만난 김 부회장은 “성공했다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유부혁 기자 chris@fortunekorea.co.kr 사진 김용호

 

불닭볶음면을 만든 삼양라운드스퀘어가 지난 9월 14일 서울 익선동에서 삼양라면 출시 60년을 기념해 비전 선포식을 열었다. 삼양식품그룹의 그룹명과 지주사명도 삼양라운드스퀘어로 변경했다. 이날 김정수 부회장은 “미래 시대에 걸맞게 음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K-culture 플랫폼으로 진화해 미래 글로벌 식문화의 리더로 거듭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새로운 비전도 공개했다. ‘음식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식품을 만든다’는 기조에 맞춰 과학기술 기반의 ‘푸드케어’와 문화예술 중심의 ‘이터테인먼트(EATertainment)’를 축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비전선포식을 통해 처음 공개석상에 나온 김정수 부회장의 장남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기획본부장은 핵심 전략으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통한 맞춤형 식품 개발 ▲식물성 단백질 ▲즐거운 식문화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 및 글로벌 커머스 구축 ▲탄소저감 사업 역량 집중 등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라면시장을 개척하고 한때 재계 순위 20위에 올랐던 삼양식품. 전성기를 다시 열어젖힌 인물은 김정수 부회장이다. 그는 불닭볶음면을 기획했고 성공시켰다. 불닭의 성공은 ‘새로운 삼양’의 바탕이 됐다.

 

[사진=최근우]
[사진=최근우]

요즘들어 제가 바빠졌다지만 전 늘 바빴어요.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직접 팔을 걷어 붙이고 판매채널을 확보하러 다니느라 바빴죠.

 

10월 초 서울 울프강 포춘룸에서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 부회장을 만났다. 그는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6개월 전 삼양라운드스퀘어가 컨테이너 3대 분량의 식량을 우크라이나에 보낸 것에 대한 감사를 나누는 자리였다는 것. “유럽에서도 북미 시장만큼 불닭이 인기인가요?” 자연스레 유럽 시장에 대해 물었다.

“이번 출장 중에 폴란드에 들러 유럽 거점공장 후보지도 둘러봤어요.” 유럽 시장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매출이 130% 늘었다.

2012년 출시한 불닭볶음면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4년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에 소개되면서다. 이후 차츰 성장하다 2019년 코로나와 함께 먹방이 인기를 끌며 불닭볶음면의 성장도 본격화했다. “유튜브 조회수가 자체 게시물은 150억 뷰, 관련 게시물까지 합하면 약 300억 뷰에 달해요. 유튜브와 소셜 등 영상 플랫폼을 통해 불닭볶음면 먹는 것 자체가 놀이문화(불닭 챌린지)가 됐죠. 제가 생각하는 성장 비결 중 하나예요.”

실제로 올해 3월 BTS 멤버 뷔가 tvN의 예능 프로그램 ‘서진이네’에 출연해 간접광고를 진행하며 국내외에서 톡톡한 효과를 누렸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2022년 BTS 라스베이거스 콘서트의 메인 스폰서로 참여해 별도의 부스를 마련하기도 했다.

“요즘들어 제가 바빠졌다지만 전 늘 바빴어요.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직접 팔을 걷어 붙이고 판매채널을 확보하러 다니느라 바빴죠. 지금은 무엇이 더 필요할지 점검하느라 바쁘고요.” 김정수 부회장은 불닭볶음면 출시를 준비하며 매운맛의 인기는 국경이 없을 거라 확신했다. 출시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두드린 이유다.

2014년엔 중동 시장을 목표로 KMF(한국이슬람중앙회) 할랄 인증을 획득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푸드트럭을 끌고 학생들을 직접 만나며 매운맛을 전수했다. 지난 8월 말레이시아에선 KFC와 불닭소스로 만든 메뉴 3종을 선보였다. 미국에선 작년 1월 월마트, 올해 6월부터는 코스트코에 입점해 판매에 가속도가 붙었다.

2016년 약 3600억원대였던 매출은 올해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증권업계는 예상한다. 불닭 브랜드의 제품 가짓수는 오리지널을 시작으로 까르보, 치즈, 로제, 하바네로, 핵 등으로 계속 늘고 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밀양 제2공장 건설도 추진 중이다.

 

 

Q 불닭볶음면이라는 길고 생소한 이름을 지은 이유가 궁금해요. 봉지 색상도 제품이 출시된 당시엔 상당히 파격적이었죠.

이미 알려졌듯 딸과 명동에 갔다가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제품을 착안했어요. 매운 소스와 닭, 그리고 면을 볶았으니 불닭볶음면으로 하자고 했죠. 어렵게 말할 게 아니라 간결하게 설명하는 게 낫겠다 생각했어요. 사실 속내는 마케팅할 여력(예산)이 없던 상황이었어요. 제품이 나오면 설명도 좀 하고 알려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그냥 제품 이름만으로 제품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도록 한 거죠.

원조 제품 이후 핑크색을 사용한 까르보 불닭볶음면도 그렇고 라면 봉지 색상이 알록달록한데 그건 음식도 패션의 일부란 생각 때문이에요. 남들이 그때까지 안 한 건 이유가 있기도 하죠. 하지만 때론 그냥 내가 하면 되는 이유기도 해요. 자주 생각하는 게 ‘안 될 거 있나’예요. 불닭 시리즈 이전에 ‘맛있는 라면’도 당시 업계 관행을 깨고 흰색을 배경으로 한 패키지 디자인이었어요.

 

Q 경쟁사는 분말스프인데 액상소스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선택의 문제이긴 해요. 다만 삼양은 과거에 부천공장에서 삼양콩간장을 만들었던 이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 장점을 극대화하고자 전략적으로 액상소스에 집중한 겁니다. 부천공장 당시 삼양콩간장을 소비자 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셨어요. 불닭소스는 당시의 전문성과 노하우가 기반인 셈이죠.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끌면서 소스를 별도로 출시했어요. 여행 중에 다양한 음식에 넣어 비벼 먹을 수도 있고 때론 고기를 구워 찍어 먹을 수도 있죠. 이미 불닭소스는 국내에선 핫소스 분야 1위예요. (※지난달 미국의 한 매체는 불닭소스를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치킨 핫소스로 평가하기도 했다.)

테이블 위 소스가 요리를 지배한다는 말도 있듯, 세계인들의 식탁에 한국을 대표하는 소스가 하나 올라가 있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라면 시장보다 더 큰 소스 시장을 공략해 케첩, 머스터드처럼 기본 테이블 소스로 자리 잡는 게 목표예요.

 

Q 과거와 달리 요즘 봉지라면보다 컵라면(용기라면)이 더 인기인 것 같아요.

여전히 봉지라면 인기가 더 높긴 해요. 다만 과거 봉지라면과 컵라면 판매비율이 9:1 정도였다면 지금은 6:4로 컵라면이 상당히 성장했죠. 하지만 이건 불닭볶음면이 가져온 변화라기보다는 식생활 변화가 가져온 변화 아닐까요. 편의점이나 야외에서 취식하는 경우도 많이 늘었고요. 얼마전 결혼한 저희 회사 구성원의 경우만 하더라도 집에 가스레인지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간편식 또는 외식으로 식문화가 바뀐 거죠.

 

Q 불닭 제품의 인기로 다른 제품들도 덩달아 시장의 주목을 받았는지도 궁금한데요.

없었어요(웃음). 이미 국물라면 시장은 경쟁사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어요. 경제성을 따져봐도 마케팅을 강화할 요인도 없어요. 포화된 시장에서 무리하게 광고비 경쟁을 하는 것도 효과적이지 않다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지금 삼양=불닭이란 인식이 강한데 국물라면이나 기존의 제품을 뜬금없이 끼워넣으면 안 될 것 같았고요.

 

Q 인기를 실감하는 건 급성장 중인 매출에서입니까, 인력 채용에서입니까.

둘 다인 것 같습니다. 지인들이 국내외에서 우리 제품이 선전하는 모습을 촬영해 보내주곤 하는데 특히 세계 도처에서 사랑받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격려받는 만큼 잘해야겠다 생각합니다.

2015년 해외영업을 담당하는 직원이 1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90명을 넘었고 중국의 경우 법인 직원만 100명이 넘습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단기간에 많은 인원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손쉬워진 해외 인재채용에서 브랜드 파워를 조금은 느끼고 있어요. 좋은 아이디어는 많지만 결국 그걸 짜임새 있게 만들고 또 획기적으로 실현하는 건 구성원들이라고 생각해요.

사명도 그래서 바꾼 거예요. 대외적인 선포도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구성원들에게 우리가 어떤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삼양라운드스퀘어의 새 로고. [사진=뉴시스]
삼양라운드스퀘어의 새 로고. [사진=뉴시스]

‘맛있게 맵다’고 했는데, 여기에 뭘 추가해야 지겹지 않을지 고민했어요. 결국 패션과 같다고 생각했죠.

 

Q 삼양라운드스퀘어 그룹의 첫 광고였는데, 평가가 궁금합니다.

제가 처음 영업직으로 입사했을 때는 무엇보다 화의 절차(97년 신청, 05년 종결)를 지나는 게 급선무였어요. ‘내일’이란 말이 겁나던 시기였죠. 이번 광고를 만들면서 그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텼냈기 때문에 ‘기대가 되는 내일’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구나 싶어서 감사했고, 그래서 더 의미가 있었어요.

(광고는) 서로 다른 세계관이 만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삼양의 내일, 새로운 미래를 말하고 있어요. 식품을 기반으로 다양한 길을 모색하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광고의 내용이나 형식, 음악 모두 전 마음에 들어요.

 

Q 지주사명과 그룹명을 새롭게 바꾼 계기도 마찬가지겠네요.

네. 60년이면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하잖아요. 우지 파동부터 다양한 위기를 겪었어요. 어떤 준비를 해도 우리가 생각지 못한 미래, 위기를 우리는 그냥 맞이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위기가 왔을 때 사람들이 어떤 면면을 갖췄느냐가 중요하더라고요. 결국 사람에게 달렸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담을 그릇, 즉 삼양이 바뀌어야 하고, 바뀌고 있다는 걸 알려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죽을 고비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삼양에 있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우지 파동’이겠지요?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우지파동의 아픈 기억은 말하자면 끝이 없겠지요. 과거에만 사로 잡혀있으면 새로운 발전은 없을 거예요. 억울한 부분이 있고, 여러 일이 있었지만 이젠 털고 일어나야죠. 그때의 충격과 어려움이 강한 자극이 변화의 의지를 만들어 냈고 이렇게 성장했으니까요. 입사 후 10년 동안은 여러가지 어려운 일이 많아 오롯이 경영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웠어요. 당시에는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싶어요. 이제는 전세계의 많은 고객이 삼양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시니까요.

 

 

Q 불닭의 인기는 먹방으로 시작됐습니다. 의도하신 건가요?

먹방을 의도적으로 제작한 적은 없어요. 또 대규모 광고를 집행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뭐라도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바이럴 영상을 찍었죠. 어떻게든 공감하려고 접촉 기회를 만들고자 학교 앞에 가서 제품을 나눠주고 식경험도 제공했어요. 제가 직접 ‘라면의 정수’란 영상 콘텐츠도 만들어 봤고요. 그러다 기회가 온 거죠. 불닭 먹방이 자연스레 만들어지고 인기를 끌었어요.

 

Q 불닭 시리즈 제품이 18가지 이상 나왔다죠? 다양한 제품을 출시한 건 제품 인기를 지속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선지 아니면 다른 배경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받은 관심을 지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운맛의 시대가 열린 만큼 매운맛 자체를 지겨워하지는 않겠지만, 제품은 지겨워질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맛있게 맵다’고 했는데, 여기에 뭘 추가해야 지겹지 않을지 고민했어요. 결국 패션과 같다고 생각했죠. 지루하지 않도록 하면 되겠다. 다른 음식, 다른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트렌드를 계속 읽었어요.

젊은 층이 자주 먹는 파스타와 불닭을 접목한 것이 까르보 불닭볶음면입니다. 아까 패키지 색상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마찬가지예요. 가격과 상관없이 먹는 것 자체가 즐겁고 재밌고 예쁘다는 가치를 심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죠. 1920년대에 처음 햄버거가 나왔는데 아직도 식상하지 않잖아요. ‘불닭볶음면’도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김정수 부회장과의 식사 미팅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후 그를 다시 만난 건 일주일 후. 파라스파라 포춘룸에서였다.

 

※[Spice-breaker, 김정수②] “들끓는 혁신 에너지 담을 새 그릇 필요했다”에서 이어집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15 (엘림넷 빌딩) 1층
  • 대표전화 : 02-6261-6149
  • 팩스 : 02-6261-615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노경
  • 법인명 : (주)에이치엠지퍼블리싱
  • 제호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 등록번호 : 서울중 라00672
  • 등록일 : 2009-01-06
  • 발행일 : 2017-11-13
  • 발행인 : 김형섭
  • 편집국장 : 유부혁
  • 대표 : 김형섭
  • 사업자등록번호 : 201-86-19372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1-서울종로-1734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kpark@fortunekorea.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