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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el of Fortune⑨스타트업] ‘실리콘밸리’ ‘후츠파정신’ 같은 창업 브랜드가 없다

김유경의 저널리즘

  • 기사입력 2023.12.06 07:00
  • 기자명 김나윤 기자

기업 경쟁력 못지 않게 국가 창업 생태계의 경쟁력도 중요한 시대다. 특히 '실리콘밸리' '후츠파 정신'과 같은 한국만의 창업 브랜드를 만들어야 할 시기다.

경기도 판교 테크노밸리 모습.
경기도 판교 테크노밸리 모습.

 

지난해 서울의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는 글로벌 12위(스타트업 ‘게놈’ 기준)였다. 1위는 미국 실리콘밸리, 2위는 뉴욕이다. 이어 3~11위는 런던·로스앤젤레스·텔아비브·보스턴·베이징·싱가포르·상하이·시애틀·워싱턴DC 순이다.

서울이 어느새 세계적으로 쟁쟁한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서울의 스타트업 생태계 가치는 2110억달러(약 277조원)로 글로벌 평균(약 346억달러)보다 무려 7배나 크다. 초기 단계 자금 조달액은 36억달러로 세계 평균(9억 7000만 달러)에 비해 4배 큰 규모다. 한국 경제의 역동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제 어엿한 스타트업 선진국이라고 부를 만하다.

2019년 30위권 밖이었던 서울의 순위는 매해 20위(2020년), 16위(2021년), 10위(2022년)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은 결과다. 정부는 2013년부터 창조경제를 미래 패러다임으로 설정하고 스타트업 지원 인프라를 닦기 시작했다. 2019년부터는 스타트업 지원에 연 1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다. 정부의 적극적 행보에 구글은 2015년 서울에 첫 아시아 캠퍼스를 열었고, 페이스북은 판교 테크노밸리에 이노베이션 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서울은 1000만 명의 고학력 인구를 보유해 고급 인력 수급이 용이하다. 빠른 인터넷과 95%에 달하는 스마트폰 보급률,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 등 환경적 측면도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에 한몫 거들었다. 주요 외신들은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과의 강력한 유대 관계와 지리적 이점을 서울의 강점이라고 평가한다.

최근 국내 일각에선 스타트업 지원이나 생태계 육성 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적지 않게 나온다. 정부의 재정지원이나 민간의 대규모 투자를 받고도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부 플랫폼 기업의 성공에 경도됐을 뿐 한때의 유행에 불과하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것은 단지 경제·경영적 측면을 넘어 사회·문화·정치적 구조적 전환을 초래하고 있다. 이에 창업 정책은 단지 일자리 창출 효과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 가치를 만드는 활동으로 접근해야 하며 지속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미래학자들의 조언이다. 인구 오너스(onus) 시대로 접어든 한국은 미국과 이스라엘처럼 산업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경제를 지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미 아펠바움 이스라엘혁신청 의장은 지난해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기술에 투자해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미래기술에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며 "대기업도 새 혁신과 아이디어에 투자하지 않으면 노키아처럼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혁신성장 회의론

지난 2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2023 아워크라우드 글로벌 인베스터 서밋’의 세션 모습. 이날 미국·아랍에미리트·한국·싱가포르 등 전 세계 80여 국에서 온 투자자 9000여 명이 현장을 찾았다. [사진=아워크라우드]
지난 2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2023 아워크라우드 글로벌 인베스터 서밋’의 세션 모습. 이날 미국·아랍에미리트·한국·싱가포르 등 전 세계 80여 국에서 온 투자자 9000여 명이 현장을 찾았다. [사진=아워크라우드]

 

이미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대기업들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ormation)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같은 정보기술(IT) 역량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많은 스타트업들을 인수·합병(M&A)하거나 투자에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앞으로 기업들은 디지털 전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터커넥티드(Integrated), 즉 데이터 중심(Data-Centric) 프로세스와 예측 모델을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수행할 것이다. 자동화와 인공지능(AI)의 확산도 경험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인사·영업·마케팅 등 기능을 중심으로 재편된 기업 조직 체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이에 외부로부터의 혁신을 수용하기 위한 스타트업 활용이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지난 10년간 한국만큼 스타트업 지원에 진심인 나라도 없었다. 민관이 협력해 전국 팔도에 혁신경제 생태계를 구축하고 정부 지원금을 마중물 삼아 민간 투자 유치를 끌어내는 팁스(Tips) 같은 프로그램도 대거 등장했다. 청년창업사관학교 같은 보육 프로그램도 탄탄하게 구축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지의 대형 벤처캐피탈(VC)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이런 정부의 책임감 있는 자세 덕분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붐은 크게 두 차례로 나눌 수 있다. 닷컴버블로 불리는 2000년대 초와 스마트폰 혁신에서 비롯된 2010년대가 대표적이다. 외환위기 직후 벌어진 닷컴버블은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과 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한 IT 기업 육성, 취업난 극복을 위한 창업 독려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벤처 기업 정책은 창업 기술과 자금 지원에 집중됐다. 한국벤처투자공사(KVIC)도 이때 설립됐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같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기술창업 생태계의 초석도 놓였다. 당시 정보통신부는 국내 벤처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킹과 해외 진출을 지원했고 기술 인프라를 구축하는가 하면 기업 간 교육 및 교육 활성화에 나서는 등 현재 스타트업 생태계가 자리 잡는 산파 역할을 했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2010년대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전보다 창업의 보편화·다양화의 길을 걷게 됐다. PC에 머물던 온라인 세상이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스마트폰으로 뛰쳐나오며 투자가 온오프라인 영역으로 넓어졌다. IT 일변도였던 창업 분야도 바이오 헬스케어·신재생 에너지·문화 콘텐츠 등으로 다양해졌다.

한국 경제의 성장과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자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 상장을 하거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또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창업 공간·연구소·인큐베이터·액셀러레이터 등을 통해 스타트업들이 업무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민간 투자도 활성화됐다.

 

정부 투자 마중물, 2010년대 벤처 싹틔워

 

벤처 1기는 닷컴, 2기는 모바일로 규정한다면 앞으로 2030년대는 디지털 전환으로 비롯된 ‘비즈니스 온 디지털’(business on digital)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닷컴 열풍은 PC를 매개로 온라인에 연결된 모든 사용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식으로 유통 구조를 혁신해 정보 평등을 불러일으켰다.

모바일은 몸에 항상 휴대할 수 있는 기기를 통해 끊임없는 온라인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언제 어디서든 주식거래나 e커머스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호텔예약·모빌리티·e뱅킹·개인인증 등 오프라인 영역을 온라인으로 끌고 들어왔다. 1·2기 벤처는 사용자의 생활양식과 습관을 바꾸는 기업-개인 간 거래(B2C) 영역에서의 혁신인 셈이다.

2020년을 전후해 나타나기 시작한 AI 같은 기술은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를 용이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기업의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온라인 인프라 기술이 발달해 비즈니스 영역을 고도화하고 있다. 비즈니스 온 디지털 시대의 혁신은 기업 간 거래(B2B)나 개인 간 거래(P2P) 영역에서 날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인터커넥티드 인프라의 확산과 기계학습(ML), 자연어처리,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등이 여러 산업에서 도입되고 있다. 더불어 디지털 기술을 통해 개인화된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하는 고객 경험(CX)의 중요성이 커지고 클라우드 기술의 보편화, 블록체인과 같은 사이버보안 기술이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간은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의 사용자 확대 경쟁이었다면 앞으로는 플랫폼이나 빅 엔터프라이즈의 커뮤니케이션·비즈니스 경쟁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기술이나 서비스가 중요해질 거란 의미다. 세계적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앞으로 기업은 단순 온라인 플랫폼을 넘어 모든 기술을 연계하는 e테크놀로지스 기업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러한 가교 역할로 비즈니스 온 디지털 생태계와 플랫폼의 경쟁력을 앞세우는 컴포넌트(하부) 기술들의 융합이 앞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창업 생태계에 중요한 점은 글로벌 범용 기술과 플랫폼의 경쟁력을 높이는 고도화 기술, 혁신성과를 낼 수 있는 창업자의 지속적 등장이다. 아마존·구글·MS·알리바바처럼 글로벌 플랫폼이 국경을 넘나들 뿐만 아니라 엔비디아·삼성전자 같은 기업의 기술 차별화가 날로 더해지고 있다. 이들 기업의 내부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창업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벤처 3기, 플랫폼 넘어 e테크놀로지스 대두될 듯

 

한국의 창업 생태계가 더욱 강고해지기 위해선 글로벌 기업이 매력을 느끼는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이 속속 등장하는 한편 국경을 벗어난 혁신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벤처 1기의 창업 정책은 ‘국가경쟁력 향상’이었고 벤처 2기는 ‘혁신성장’과 ‘고용난 해소’였다면 3기의 경우엔 ‘국가 경쟁력을 지킬 수 있는 혁신 창업 생태계 구축’이 돼야 한다.

다른 나라들과 차별화된 한국 창업 생태계의 매력은 전자·전기·화학·정유·조선·건설·물류·소비재·콘텐츠 등 산업 전분야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분업화된 글로벌 공급사슬 안에서 한국은 어떤 분야 하나 뒤처지는 분야가 없다. 이는 디지털 전환을 통한 IT 혁신의 여지가 큰 동시에 협력 관계를 맺을 대기업들이 많다는 뜻이다. 또 변화와 속도가 빠르고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자양분이다. 이런 점들이 모여 한국 창업 생태계의 고유 브랜드가 되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이나 싱가포르처럼 스타트업의 규모를 키워낼 금융시장이나 글로벌 네트워크는 빈약한 점으로 꼽힌다. 챗GPT 검색 결과 미국의 창업 생태계를 규정하는 10대 키워드 안에 투자 관련 키워드가 3개나 들어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에서 창업해 나스닥 상장을 일구는 사례가 더 등장하거나 이를 일궈줄 마케팅·네트워크가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벤처캐피털과 협력해 스타트업들에 단계별로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성장을 지원하며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 개발 및 기술 이전을 촉진한다. 이스라엘의 창업 생태계는 미국과 밀접하게 연관돼 M&A나 미국 상장 전문 기업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 혁신 동력 충만

 

더불어 해외의 실력 있는 창업자를 끌어올 수 있는 창업 인바운드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여파로 일본 경제가 활력을 상실한 것처럼 한국 역시 경제가 성숙하고 고령화될수록 성장과 혁신 동력은 저감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비즈니스 온 디지털과 e테크놀로지스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창업자의 유입이 절실하다. 이를 통한 인구 증가와 지역 경제 활성화, 국내총생산(GDP) 증대 같은 부수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김동환 전 하나벤처스 대표는 "싱가포르가 글로벌 금융 혁신의 중심지가 된 것처럼 한국과 외교적 이해관계가 적은 국가들의 창업자들이 자유롭게 창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며 “여기에는 지역적·경제적 독립성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여기에는 외국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법적·제도적 지원과 문화적 수용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창조계급론'을 내세운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관용(Tolerance)'이 경제 발전과 성숙을 이끈다고 했다. 관용 있는 사회라야 인재(Talent)와 기술(Technology)이 몰려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플로리다 교수는 이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도시로 실리콘밸리가 있는 새너제이와 바이오 클러스터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를 꼽았다. 한국이 스타트업 3.0을 일구려면 실리콘밸리만큼은 아니어도 높은 시민 의식과 관용, 혁신 성장에 대한 이해, 낯선 것을 품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환경적 뒷받침이 정부 정책보다 더욱 중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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