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하림 리스크’
결국, 하림그룹의 HMM 인수가 무산됐다.
우선협상대상자인 하림그룹과 채권자측 대표인 산업은행•한국해양진흥공사는 끝내 마지막 한 가지 조건에 대해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하림그룹과 채권단은 지난 7주 동안 협상만료일을 한 차례 연기하면서까지 협상을 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하림은 배당제한, 1조 6000억원 규모의 잔여 영구채 주식전환 3년 유예, 5년동안 인수자 측 지분 매각 제한 조건 등 채권단의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하지만 하림은 채권단의 ‘5년간 지분 매각 제한’ 대상에서 “재무적 투자자인 JKL파트너스는 주식보유 기간을 3년으로 해 달라”는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
하림은 딜이 깨지는 순간까지 유독 JKL파트너스와 관련된 예외조항 만은 양보하지 않았다. 2015년 팬오션 인수 당시 가장 큰 우군이었던 JKL파트너스가 HMM 인수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하림그룹이 이번 HMM 매각 입찰에서 제시한 가격은 6조 4000억원이다. 인수금은 보유 현금성 자산과 팬오션 유상증자 3조원, 인수금융 2조원으로 대부분 조달할 예정이었다.
JKL파트너스가 책임지는 금액은 6000억원에 불과하다. 전체의 10%도 안된다. 규모도 작은 재무적투자자 때문에 국내 유일의 글로벌 컨테이너선사인 HMM을 인수할 절호의 기회를 포기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그동안 보여준 HMM 인수에 대한 열정을 무색하게 한다.
김 회장은 HMM인수자금 확보와 관련, “팬오션 증자로 3조원 정도, 인수금융으로 2조원 가까이 쓸 생각”이라며 “인수금융 한도는 3조원 넘게 확보했지만 60% 정도만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의 말대로라면, JKL파트너스가 빠져도 HMM 인수 자금마련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
채권자 측은 김 회장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JKL파트너스를 빼면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판단했다.
김 회장은 양자 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채권자 측의 요구대로 JKL파트너스가 5년동안 HMM 주식을 보유하는 것과 HMM 인수를 포기하는 것.
김 회장은 후자를 선택했다. 채권단과의 ‘치킨게임’에서 진 것이다.
김 회장은 왜 HMM을 버리고 JKL파트너스를 선택했나?
하림그룹과 JKL파트너스는 2006년 NS홈쇼핑 매각 자문을 시작으로 인연을 맺었다. 2016년에는 팬오션 인수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해 큰 역할을 했다. 한 마디로 ‘오래되고 끈끈한’ 파트너 관계다.
더욱 관심을 끄는 대목은 김 회장의 장남인 준영씨가 JKL파트너스에서 수석운용역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HMM 인수와 관련된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회장이 왜 JKL파트너스를 컨소시엄 파트너 이상으로 보고 있는 지 설명해 준다.
하림그룹은 지난 10년간 계열사를 쪼개고 합치고, 주식을 매수하고 소각하고, 계열사 부당지원 등을 통해 준영씨의 그룹승계를 완성한 상태이다.
하지만 준영씨가 HMM 인수에 큰 역할을 하고, 그룹 경영에 폼나게 데뷰한다는 시나리오는 물 건너 갔다.
국내 물류업계는 하림의 HMM 인수포기를 반기는 분위기다. ‘하림 리스크’가 사라졌다는 것.
HMM은 이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엄혹한 시장과 마주하고 섰다. HMM의 '생존게임'이 시작됐다.
/ 포춘코리아 채수종 기자 be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