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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 인문경영 서평] 지리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 기사입력 2023.08.01 15:21
  • 최종수정 2023.08.01 15:22
  • 기자명 포춘코리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지난 2월 말, 두 나라 군인 사상자가 이미 20만 명을 넘겼고, 민간인 희생자도 1만 명에 달했다.

우크라이나 기반시설의 절반가량이 파괴됐고 국민 3명 중 1명이 난민 신세가 됐다. 에너지와 식량 가격 폭등, 유통망 마비는 지구촌에 살인적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안겨 줬다. 올해 말까지 세계적 경제 손실이 2조 8000억 달러(약 3600조원)에 달한다고 하니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역사상의 다른 무수한 전쟁들처럼, 이번 전쟁 역시 국제정치의 한 과정이자 현 시점의 지정학적 변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어떤 지정학 전략과 또 다른 지정학 전략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지리의 힘⟫ 팀 마샬 지음 / 김미선 옮김 / 사이(2016)
⟪지리의 힘⟫ 팀 마샬 지음 / 김미선 옮김 / 사이(2016)

이제는 지리를 알지 못하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넓게 말하면, 지정학(geopolitics)은 지리적 요인들을 통해 국제적 현안을 이해하는 방식을 말한다.

전 세계 30여 개 국가에서 출간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지리의 힘(Prisoners of Geography)⟫은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핵심적인 통찰력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인 팀 마샬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특파원과 외교부 출입 기자, BBC 기자로 일하면서 30년 이상 국제 문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지리의 힘⟫은 전 세계를 중국, 미국, 서유럽, 중동, 인도 등 10개 지역으로 나눠 지리에서 비롯된 경제 전쟁, 영유권 분쟁, 빈부 격차 등을 심도 있게 다뤘다.

중국과 인도를 예로 들어보자. 엄청난 인구를 지닌 이 두 대국은 상당히 긴 국경을 마주하며 수시로 충돌하고 있다. 1962년에 국경 분쟁으로 근 한 달간 전쟁을 지속하는 등 반세기 동안 크고 작은 분쟁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쨍하고 부딪치는 일은 생각보다 적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바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 두 나라 사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가 히말라야를 관통하거나 넘어서 진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현대기술이 좀 더 정교해지면서 이 장애물을 극복할 방법도 나오고는 있지만 세대가 바뀌어도 인도와 중국은 여전히 힌두쿠시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남는다.

때가 때인 만큼 4장, ‘러시아, 가장 넓은 나라지만 지리에게 복수의 일격을 당하다’를 먼저 펼쳐 읽었다. 그중에서도 ‘서방에도 추파를 던지고, 모스크바의 당근도 받으려는 우크라이나’라는 소제목에 눈길이 먼저 간다.

우크라이나는 2008년부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했다. 당시 나토도 가입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헛약속이 문제였다. 한편으로는 러시아를 불안하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에 헛바람을 넣은 셈이다. 원서가 2015년에 출간된 ⟪지리의 힘⟫에는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만약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정부가 들어서고 나토와 유럽연합이라는 서방의 양대 기구에 가입하려는 야심을 품고 러시아 선박의 흑해 입항에 반대한다면? ---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양측을 오가는 게임을 하고 싶어 했다. 그는 서방에 추파를 던지면서도 모스크바에 경의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러시아에게는 무엇보다 크림 반도에 있는 세바스토폴항을 손에 넣는 것이 절실했다. (지리의 힘, 137~139쪽)

크림 반도는 신이 러시아에게 선사한 지리적 패이다. 2014년 4월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 반도는 러시아와의 합병을 결정하는 주민 투표에서 90퍼센트 이상이 찬성을 함에 따라 러시아에의 합병을 결정했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남부 전선에서 러시아의 병참 기지 역할을 하는 군사적 요충지이고, 러시아 흑해함대는 러시아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부동항인 크림반도 최대 도시인 세바스토폴에 주둔하고 있다. 지금부터 1세기 후에도 러시아는 평원 너머의 서쪽을 여전히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7년 만에 ⟪지리의 힘⟫ 후속편이 2022년 국내에 번역출간 되었다. ⟪지리의 힘2(The Power of Geography)⟫ 원서의 부제는 ‘세상의 미래를 보여주는 10개의 지도’이다. 저 멀리 남쪽 끝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저 높은 곳 우주까지, 1권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전 세계 10개 지역의 지정학적 현실을 그리고 있다. 결론은 역시 지리이다. 바다와 산맥이 공동체 운명을 결정짓는 요소였다고 말한다.

지리는 지형이나 기후 같은 자연환경을 배우는 데 그치는 학문이 아니다. 농업, 공업, 무역, 교통, 인구, 종교, 언어, 촌락, 도시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시점에서 포착할 수 있는 각종 정보를 수집, 분석해서 그 지역만의 특징을 찾아내는 학문이다.

지리를 통해 토지와 자원을 얻으려는 인간의 행동을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지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대 세계를 들여다보는 망원경이면서 현미경이다. 결국 지리를 알면 그 나라의 사회, 경제 상황을 모두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간 교육 현장이나 출판 분야에서는 지리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고, 대중들은 여전히 지리학을 외워야 하는 따분한 학문 또는 어려운 학문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경제는 지리⟫ 미야지 슈사쿠 지음 / 오세웅 옮김 / 7분의언덕(2018)
⟪경제는 지리⟫ 미야지 슈사쿠 지음 / 오세웅 옮김 / 7분의언덕(2018)

일본의 명문대 입시 전문 학원의 실력파 강사가 쓴 ⟪경제는 지리(원제:경제는 지리로 배워라)⟫는 ‘지리로 포착한 세계경제 40장면’이라는 부제처럼 지리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계경제를 해석하면서 경제와 지리의 밀접한 관계를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경제를 파악하는 지리의 관점을 크게 자연, 스케일, 자원, 거리로 구분하고 입지, 자원, 무역, 인구, 문화의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 경제문제를 접근한다. 무엇보다 일타강사답게 책 내용이 쉽고 재미가 있어 가독성이 높다. 부록을 빼면 260여 쪽에 불과해 분량도 많지 않고 중간중간 이해를 돕는 쉬운 도표나 그래프도 많아 한번 책을 잡으면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영국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영국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선진국에 비해 특별히 먹을 음식이 별로 없다고 불평한다. 그 이유를 저자는 일단 영국의 토양에서 찾는다. 먼 옛날 빙식 지형이었던 영국 땅은 토양 속에 부식층이 적어 척박하다 보니 감자를 제외한 야채들이 거의 자라지 않는다.

반면에 문화적 자긍심은 높다 보니 복장 매너, 음식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독자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해 영국 음식을 맛없게 만들었다. 폭음·폭식을 하지 않는 젠틀맨 문화가 검소한 식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프랑스혁명 후 영국이 프랑스와 대립하면서 프랑스 문화를 배척한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2023년 올해,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으로 부상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인도는 정보기술(IT) 강국으로도 유명하다. 인도 IT 산업은 1991년 경제 개방 이후 미국, 유럽 등 서구 국가들이 저렴하고 영어가 가능한 인도의 노동력을 활용해 IT 관련 서비스를 아웃소싱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인도를 대표하는 명문 공과대학인 인도델리공과대학 졸업생들을 비롯해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수많은 인도계 IT 인재들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인도를 IT 강국으로 이끈 것은 이 같은 것뿐 아니라 인도의 지리적인 위치도 크게 한몫했다는 주장이 있다.

인도는 국토의 중앙부를 동경 80도가 통과해 IT가 발달한 미국 서부 지역과 12시간 정도의 시차가 난다. 이 때문에 미국 현지 연구원들이 퇴근하는 시간이 인도는 아침 출근 시간이어서 인터넷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구가 이어진다.

미국 IT 기업들이 밤에 자신들이 개발하고 있던 소프트웨어를 인도에 보내면, 같은 시간 아침을 맞이한 인도에서 이 소프트웨어를 받아 개발 작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의 이점을 살린 인도판 실리콘밸리인 셈이다.

⟪경제는 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탈퇴를 선언한 이유’, ‘뉴질랜드가 가장 많이 수출하는 품목은 뜻밖에도 낙농제품’, ‘싱가포르의 성공 비결’, ‘기후가 만들어 주는 맛있는 와인’ 등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끌어당기는 내용이 많다. 이 책을 통해 지리적 관점으로 경제를 보는 눈이 생기면, 어렵게 느껴졌던 세계 경제를 읽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2017년에 나온 책이라 일부 통계가 지금과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지리를 공부하면 경제 뉴스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특히 특별부록으로 달린 ‘통계로 읽는 현대 세계’를 2023년 지금의 통계수치와 비교해 가며 읽는다면 흥미로운 독서경험이 될 것이다.

모든 나라의 이야기는 그 '위치'에서 시작한다. 21세기가 지나는 이때까지 세계 역사와 경제의 향방을 결정짓는데 '참견'했던 지리적 특성들은 여전히 인류의 미래에도 상당 부분 개입할 것이다. ⟪지리의 힘⟫과 ⟪경제는 지리⟫의 주장을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지리'라는 것이다.

 

※ 이 글은 <포춘코리아> 7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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