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포춘코리아 매거진 최신호를 무료로 읽어보세요.

본문영역

‘우리는 신한과 경쟁한다’

[울프강에서 만난 사람] 김명희 신한금융지주 디지털 부문 부사장|

  • 기사입력 2023.08.03 16:30
  • 기자명 김나윤 기자

WHY?

신한금융그룹의 디지털전환(DT)을 총괄하는 김명희 부사장은 조직의 지속 가능한 디지털 체제를 위한 우선 과제로 공급자주의 타파를 꼽는다.

김명희 신한금융지주 디지털 부문 부사장은 포춘코리아와 인터뷰에서 스스로에 대해 "조직에 적응하지 않는 리더"라고 표현했다. [사진=강태훈]
김명희 신한금융지주 디지털 부문 부사장은 포춘코리아와 인터뷰에서 스스로에 대해 "조직에 적응하지 않는 리더"라고 표현했다. [사진=강태훈]

 포춘룸에 들어 선 김명희 부사장은 양손에 짐이 한가득이었다. 한 손엔 개인용품이 찬 소지품 가방. 다른 한 손엔 노트북과 태블릿PC가 무겁게 든 노트북 가방. 자리에 착석하기도 전에 그는 가방에서 펜 자루가 든 필통과 태블릿PC를 꺼냈다. “언제 어디서든 업무할 수 있도록 준비 갖춰 다니는 게 습관화 돼 있어서요(웃음).” 수행 직원 없이 비 오는 궂은 날씨를 혼자서 뚫고 직접 그룹의 디지털 전략을 차분히 이야기하는 그에게선 여느 ‘대기업 임원다움’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김 부사장이 업계 전문 용어를 사용하며 조직의 디지털 비전을 자신감 있게 설명할 수 있었던 건 오랫동안 ICT 전문가로 현장 근무한 ‘내공’ 덕분이었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사를 마친 후 글로벌 기술기업 IBM과 SK텔레콤에 몸담으며 일련의 정보기술 변화를 최전선에서 경험해 왔다. 이후 공직으로 옮겨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을 맡으며 정부 정보시스템과 국가정보통신망 효율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소위 이과계열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김 부사장이 금융사와 ‘핏’이 과연 맞을까에 대한 의구심은 기우에 불과했다. "저는 조직에 적응하려 하지 않아요. 특히 디지털 부문장으로서 신한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려면 때때로 조직 내에서 불편한 소리를 하거나 또는 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조급함 없이 제 가치를 묵묵히 실현하려면 조직에 녹아들고 임원이라는 자리에 취해있으면 안 되죠."


Q. ‘신한’의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이전 직장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을 텐데요.

"부사장직을 맡기 전, 약 1년간 신한은행 사외이사 업무를 맡고 있었어요. 이전까진 금융회사를 고객사로 만났을 뿐 금융 조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죠. 막상 내부를 들여다보니 회사가 생각보다 훨씬 디지털에 대해 목말라 하고 있더라고요. 대외적으로 디지털 체제를 강조하고 있었지만 실제 내부엔 관련 변화를 이끌 구심점이 약했었고 혁신에 대한 방향성과 전략체계가 다소 미흡한 모습이었죠."

Q. 그런 상황에서 디지털 수장을 맡게 돼 어깨가 많이 무거웠을 것 같습니다.

"업무 시작한 첫 주에 그룹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살폈어요. 그리고 그 주 토요일에 나홀로 회사로 출근했죠. 화이트보드 위에 우리 그룹이 가야할 명확한 디지털 비전과 전략체계를 그림으로 도식화하기 시작했어요. ‘더 쉽고 편안한, 더 새로운 금융’이란 회사 비전을 디지털 버전으로 그려낸 거죠. 이후 약 한달 동안 세부 전략과제까지 세워 그룹사와 수시로 소통하는 자리를 가졌어요."

Q. 부사장님이 구상하신 어젠다의 원칙이 있다면요.

"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고객 중심으로 접근해야 하는 게 핵심이죠. 이를테면 경쟁사에서 신규 앱을 출시할 경우 우리도 덩달아 유사 앱을 개발해 선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조직 내에서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그건 공급자인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지 고객이 우리에게 바라고 요구한 게 아닐 수 있어요. 임원회의에서 제가 “우리의 적은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한 적 있듯이 이제는 금융사가 관점을 180도 바꿔야만 해요. 선택이 아니라 필수죠."

지난 4월 신한금융그룹의 ‘2023년 1분기 실적발표회’에서 디지털 실적을 설명하고 있는 김명희 부사장. [사진=신한금융지주]
지난 4월 신한금융그룹의 ‘2023년 1분기 실적발표회’에서 디지털 실적을 설명하고 있는 김명희 부사장. [사진=신한금융지주]

Q. 대부분의 금융사가 디지털 혁신을 강조하다 보니 신한만의 ‘킬러 전략’을 체감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단순히 오프라인 지점 감축 외에 어떤 성과들이 있을까요. 

"빠른 시간 내에 조직의 체질 개선을 많이 이뤘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하반기엔 MAU(앱 월간활성이용자수)만으로 경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거든요. 양적인 성과를 위한 일시적인 수치 증가는 말 그대로 일회성이잖아요. 질적인 성장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해요. 그래서 가치 있는 고객의 체류시간과 그들의 DAU(앱 일간활성화이용자수) 등 질적 지표를 신설해 균형 있게 추구하고 있고요. 더불어 이 지표들과 디지털 과제들을 전 계열사가 수시로 체크할 수 있도록 디지털 대시보드 플랫폼도 새롭게 마련했죠."

Q. 시스템 엔지니어 출신답게 사내 디지털 인재 육성에도 힘쓰시는 걸로 압니다.

"신사업 추진, 비금융 플랫폼 개발 등 대외적인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조직 내 디지털 역량을 키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외부 개발자들에게만 의존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우리 부문 내에서 이른바 코딩의 ‘코’ 자도 모르는 직원들 중심으로 ‘No Code Tool’을 활용해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업무 발휘로 이어질 수 있게 지원하고 있어요. ‘컴피턴시 프레임워크’ 프로그램도 구성해 직원들의 ICT 역량을 진단하고 관련 교육을 집중 강화하고 있기도 하고요."

Q. 디지털 드라이브를 강하게 거는 과정에서 조직 내 이견이 발생했을 법한데요.

"직급을 막론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가야 하는 걸 좋아하는 직원은 당연히 없죠.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변하고 고객이 변하는데 기업만 가만히 있을 순 없어요. 결국 직원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관건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 전체 재무성과측정을 디지털과 비디지털 영역으로 나눠 임직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적 있어요. ‘현실이 이러하니 우리도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였죠. 저를 두고 뒤에서 싫은 소리를 했었을 순 있겠지만 그걸 겁내지는 않아요(웃음). 쓴소리꾼 역할을 맡는 게 제가 이 조직에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11월 신한금융그룹이 개최한 ‘신한 디지털데이’ 모습. 김명희 부사장이 그룹 내 디지털 전략에 대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신한금융지주]

Q. 왜 신한‘도’ 디지털 변화를 이뤄야하는 건가요. 디지털 체제를 갖추지 않더라도 전통 금융기업으로써 입지가 흔들리는 건 아닐 텐데요.

"신한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니까요.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고객의 눈높이는 계속 높아지고 있어요. 우리가 고객 가치를 계속 강조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죠. 나날이 변해가는 고객의 기대치를 우리가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면 신한은 더 이상 시장에서 고객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지난해 챗GPT가 등장했잖아요. 그에 발맞춰 우리도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서비스를 준비해 고객의 기대치에 부응해야만 해요."

Q. 일부 금융권에선 금융혁신의 애로사항으로 보수적인 규제를 꼽습니다. 혁신과 규제가 마치 양자택일인 문제인 것 같아요.

"저 역시 정부 기관장을 맡아봤기에 보수적인 시스템에 대해선 충분히 겪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금융 분야를 둘러싼 대내외 의사결정 방식은 한층 더 보수적이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당연히 납득되긴 하고요. 여러 경험을 거치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규제를 적으로 봐선 안 된다, 같이 껴안고 가야 한다’예요. 규제를 걸림돌이 아닌 동력으로 활용하고 지름길로 못 가면 우회로를 찾으려고 해요. 규제 탓만 하면서 손 놓고 있을 순 없으니까요. 제가 회사에서 CDO뿐 아니라 CIO, CISO를 혼자 다 맡고 있다 보니 제도 탓에 사업 진행에 장애가 생기면 플랜B로 빠르게 의사결정 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Q. 디지털 시스템으로 급변하는 과정에 예상치 못한 금융 리스크가 발생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속도론'이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렇죠. 엔지니어인 동시에 금융권 종사자라는 점을 떠나, 객관적인 위치에서 바라봤을 때 정보보호는 정말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금융 사고가 한번 발생하면 단 1~2분 사이에 수백만 명의 피해가 발생할 정도로 파급력이 크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정보보호에 있어서만큼은 완화와 강화가 몇 대 몇으로 타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애당초 ‘정보 보안은 디폴트(기본값)’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봐요.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금융자산뿐 아니라 고객의 개인정보를 잘 관리하는 것까지 포함돼야 하니까요."

김명희  부사장은 "디지털 혁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강태훈]
김명희  부사장은 "디지털 혁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강태훈]

디지털 그리고 사람

김 부사장이 첫 만남과 본인터뷰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두 가지 키워드다. ‘기승전-디지털’로 불리는 시대가 가속화될수록 되레 사람의 가치가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김 부사장의 확고한 가치관이다. 디지털 변화를 이끄는 주체도, 그 결과물을 영위하는 주체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김 부사장이 조직의 리더로서 스스로 고수하는 업무 원칙도 직원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다.

 "첫 직장이었던 IBM에서 약 23년간 근무하며 가장 좋았던 건 조직이 나를 신뢰하고 있단 것을 굉장히 받았다는 거예요. 신뢰는 곧 직원에 대한 존중을 뜻하잖아요. '우리는 너를 믿어, 너는 해낼 수 있어' 라는 선배, 동료들의 격려는 조금 느리고 서툴더라도 결국 좋은 성과를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더라고요. 특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지금의 팀에선 제가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려 하는 조직 가치이죠."

Q. 조직은 성과로 말하는 곳 아닌가요. 《지금 시대의 자기 경영》이란 책을 쓰실 정도로 조직 문화와 정체성을 강조하시는 이유는요.

"조직 일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혼자만 해서 잘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리더가 목표와 방향성을 제시하고 여기에 직원들이 살을 채우며 단합해 가야만 하나의 질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 리더가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각자 위치에서 내린 의사결정을 존중해 줘야 해요. 업무 역량이 다소 떨어지는 직원이 있으면 리더가 끌어 올려 주거나 그에 맞는 업무를 다시 찾아줘야 하고요. 리더가 직원에게 업무를 강제로 압박하면 ‘반짝’ 성과는 낼 순 있겠지만 지속 가능한 성과로 이어질 순 없을 거 잖아요."

Q. 일하는 게 굉장히 즐겁고 자신감 있어 보입니다. 왜일까요.

"우리 직원들도 제게 그런 말을 자주 하곤 해요(웃음). 겉으로 내색은 안하지만 저 역시 속으론 불안함을 느낄 때가 당연히 있죠. 특히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있을 땐 엄청 두렵고 때때로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요. 하지만 디지털 혁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같아요. ‘우리는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렸고 그 의사결정이 옳았다’는 걸 실행으로 보여주면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외면을 받는다면 빠르고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어야 하고요."

Q. 부사장님의 지지치 않는 열정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디지털 분야가 제 적성에 정말 잘 맞아요. 그러니 대학 전공부터 지금까지 디지털 업무를 해온 것이고요. 디지털의 매력은 계속 발전한다는 점이거든요. 그래서 일을 하려면 귀찮고 싫더라도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어요. 저도 어느덧 경험치가 쌓이다보니 후배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점점 많아지면서 일의 보람을 더욱 느끼는 것 같아요."

 

김나윤 기자 abc123@fortunekorea.co.kr·사진 강태훈 kangtaehoon30@gmail.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15 (엘림넷 빌딩) 1층
  • 대표전화 : 02-6261-6149
  • 팩스 : 02-6261-615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노경
  • 법인명 : (주)에이치엠지퍼블리싱
  • 제호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 등록번호 : 서울중 라00672
  • 등록일 : 2009-01-06
  • 발행일 : 2017-11-13
  • 발행인 : 김형섭
  • 편집국장 : 유부혁
  • 대표 : 김형섭
  • 사업자등록번호 : 201-86-19372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1-서울종로-1734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kpark@fortunekorea.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