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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가 사랑한, 한국의 비건 디자이너

[고영경의 아세안 이노베이터] 마르헨제이(MARHEN.J)

  • 기사입력 2023.06.24 13:00
  • 최종수정 2023.07.07 09:33
  • 기자명 포춘코리아

소득은 시장의 많은 것을 결정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채식, 인조가죽 등을 소비하는 비건 라이프스타일은 한국보다 동남아에서 먼저 자리 잡았다. 한국의 비건 디자이너, 조대영 알비이엔씨 대표가 성장의 전기를 맞이한 곳도 이곳, 동남아였다.

요즘 조대영 대표에겐 인터뷰 요청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는 “일시적인 관심에 헛바람이 들까 걱정”이라고 손사래 쳤다. [사진=알비이엔씨]
요즘 조대영 대표에겐 인터뷰 요청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는 “일시적인 관심에 헛바람이 들까 걱정”이라고 손사래 쳤다. [사진=알비이엔씨]

가방은 소가죽 명품이 최고라는 인식, 인조가죽은 멋스럽지 않다는 생각은 이제 편견이 됐다. 젊은 세대는 패션에서도 친환경을 강조하고 나섰고, 패션 업계는 과일껍질이나 종이 같은 신소재를 활용해 세련된 색상과 디자인을 구현해내고 있다. 그 첨단에서 트렌드를 만들고 이끄는 기업 중 한 곳으로 한국의 마르헨제이(MARHEN.J)가 꼽힌다. 한류가 가장 강한 지역이지만, 패션에서만큼은 한국 브랜드의 ‘무덤’과 같았던 아세안 지역에서 마르헨제이는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다.

2015년 비건 핸드백 브랜드 ‘마르헨제이’를 론칭한 조대영 현 알비이엔씨 대표는 이전까지 K팝 스타와 아티스트의 음반과 화보, 굿즈 등을 그래픽 디자인하는 스튜디오를 7년간 운영했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B2B 시장을 경험했던 조 대표는 “당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직접 B2C 시장에서 승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고 돌이켰다. 아이템을 고민한 끝에 재고 부담이 적고 사이즈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상품, 핸드백으로 가닥을 잡았다. 

 

인조가죽, 레자 혹은 비건

조 대표는 서울 동대문시장을 수개월간 오가며 핸드백 소재를 찾았다. 하지만 비건(vegan, 식물성 음식만 섭취하는 완전 채식주의자)인 조 대표는 동물 가죽이 내키지 않았다. 인조가죽이 눈에 들었지만, 시장에서 통하겠느냐는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가죽은 가죽”이라며 “인조가죽은 모조품이나 저가품 만들 때나 쓰는 것”이라고 만류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고 조 대표는 말했다. 인조가죽을 뜻하는 일본식 표현인 ‘레자’라는 말부터 그런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해외시장을 조사해 보니 영국의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그 이름을 딴 디자이너 브랜드)’가 인조가죽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었다. 스텔라 매카트니 사례에 힘입은 조 대표는 한국에서의 성공 스토리를 가장 먼저 써보겠다고 결심했다. 합성 피혁과 섬유를 활용, 디자인과 실용성을 함께 갖춘 상품을 콘셉트로 잡았다(※조 대표는 세 가지 콘셉트로 ‘Useful, Colorful, Beautiful’을 꼽았다). 타깃으로 삼은 가격은 30만원대였다.

주변의 만류, 생소한 브랜드, 그리고 높은 가격. 첩첩 산중을 넘는 데 자신감을 준 건 한 유럽 바이어였다. 조 대표는 “‘비건 타이틀, 그리고 브랜드 스토리가 유럽에서 통할 만하다’는 평을 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바이어의 말처럼, 소비자들은 점차 마르헨제이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3년간 백화점에 팝업스토어를 열면 반응이 좋아서 정규매장으로 입점이 되고, 온라인 판매로도 이어졌다. 매출과 직원도 늘었다. 마르헨제이의 성장전략을 다시 고민할 때가 오고 있었다.

패션 섹터에서는 수없이 많은 브랜드가 반짝 떴다가 사라진다. 경쟁이 치열하고, 유행도 빠르게 변한다. 게다가 국내 핸드백 시장의 규모는 한계가 명확했다(※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2022년 국내 가방시장 규모는 2조9363억원으로, 2년 연속 역성장했다). 마르헨제이가 지속 가능한 브랜드가 되자면 비건 콘셉트만으론 부족했다. 계속해서 매력적인 신상품과 트렌드를 이끌어갈 수 있는 디자인, 그리고 해외시장을 겨냥한 성장전략이 필요했다.

조 대표는 문화적,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 그중에서도 소득이 높고 동남아 유행의 중심지인 싱가포르를 해외 진출의 베이스 캠프로 삼았다. 온라인 마케팅을 진행한 상품 가운데 특히 인기가 있었던 제품은 10만원대인 캔버스백(※면직물 중 하나인 캔버스로 만든 가방)이었다. 비가 자주 오고, 더운 날씨 탓에 늘 물통을 들고 다니는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방수가 되고 텀블러가 들어가는 마르헨제이의 캔버스백은 ‘취향 저격’이었다. 

싱가포르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조 대표는 동남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셀럽 마케팅을 꺼내 들었다. 과거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할 때 주요 엔터테인먼트사들과 일한 경험이 요긴하게 쓰였다. 셀럽을 내세운 마르헨제이 상품에 대한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조 대표는 “당시 용산의 플래그십 스토어에 한 인도네시아인 고객이 트렁크를 가지고 와서 제품을 쓸어갔다”며 ”파트너사에 물으니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입소문이 퍼진 것’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현재 마르헨제이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말레이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시아를 넘어 미국 뉴욕과 LA 쇼룸을 오픈했으며, 올해 유럽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 판매량보다도 팬덤이 형성됐다는 것이 중요하다. 브랜드는 스스로가 아닌, 팬들이 가치를 부여할 때 비로소 위대해진다는 점을 비춰보면 그렇다. 마르헨제이의 팬들은 무엇에 열광하는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쇼핑몰에서 마르헨제이가 팝업스토어 행사 ‘마르헨제이 한류 페스타’를 열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쇼핑몰에서 마르헨제이가 팝업스토어 행사 ‘마르헨제이 한류 페스타’를 열고 있다. 

 

동남아의 비건 라이프스타일

마르헨제이의 핵심 가치는 ‘지속 가능한 소재’에 디자인과 실용성을 멋들어지게 결합한 능력에 있다. 조 대표 자신이 디자이너이면서 비건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단순히 유행에 따라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가방이었다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무모하지만 과감한 선택은 소재뿐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있었다. 조 대표에 따르면, 서울 강남 거리에서 시장조사한 결과 99%가 검정색 핸드백을 들고 있었다. 그래서 정반대로 다양한 색상의 핸드백을 선보였다. 생생하고 명랑한 색상에 주 고객층인 젊은 여성들이 반응했다. 또 로고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품격처럼 받아들여지던 시장에서 조 대표는 마르헨제이 로고를 크게 넣었다. 

마르헨제이의 경쟁력은 참신하고 혁신적인 소재를 꾸준히 적용한다는 점에도 있다. 선인장부터 한지, 오렌지, 파인애플 가죽 등 친환경 소재를 모색했고, 장안의 화제인 ‘애플레더(Apple leather)’를 만났다. 세계적인 식음료 제조사에서 주스와 잼 등을 만들고 남은 껍질과 씨 등 부산물을 공급받아 업사이클링해 재탄생시킨 것이 애플레더다. 마르헨제이는 국내 글로벌 기업을 제치고, 애플레더를 생산하는 이탈리아 업체와 2024년까지 가죽을 독점 공급받는 파트너십을 맺었다.

독점 공급이 가능했던 이유로 조 대표는 브랜드 방향성을 꼽았다. 그는 가죽뿐 아니라 염료도 에코잉크만 쓸 만큼 ‘그린 워싱’과 거리를 뒀다. 조 대표는 또 “명품 브랜드는 신상품을 내놓는 데 2년씩 걸리는데, 우리는 시제품만 나와도 이탈리아에 보내 함께 개선점을 논의했다”고 덧붙였다.

마르헨제이 세 번째 경쟁력은 영리한 시장 진입 및 성장전략이다. 반짝 인기를 얻는다고 해서 무모하게 해외시장에 물량공세를 퍼붓지 않았다. 팝업스토어부터 시작하며 현지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고, 기존에 잘 팔리는 제품과 신제품을 적절히 배합해 매출을 높였다. 인지도를 높여야 할 때에 셀럽을 초대했고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입힌 온라인 마케팅에 집중했다. 섣부른 공격적 마케팅은 막대한 비용이 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비건은 갈수록 강력한 트렌드가 되고 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비건이 아니라도 취향의 일종으로 비건 식당이나 식물 기반 식품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런 트렌드는 특히 동남아에서 강력한 흐름을 이룬다. 동남아에는 이슬람과 불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데, 이들 신도가 비건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 젊은 세대는 감당할 만한 가격을 가진 비건 브랜드를 선택하고 있다. 이들은 브랜드를 키우는 실질적인 소비자이며 스스로 소셜미디어의 인플루언서 역할도 수행한다. 마르헨제이라는 브랜드를 가장 먼저 찾은 이들도 젊은 세대다. 이들은 앞으로도 전 세계 곳곳에서 마르헨제이의 브랜드 파워를 키워줄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설화수)을 비롯해 삼성, 마이크로소프트, 스와로브스키 등 내노라 하는 기업들이 마르헨제이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방문한 김건희 여사가 마르헨제이의 애플레더 가방을 들면서, 언론지상에 마르헨제이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조 대표에게도 인터뷰 요청이 이어졌지만, 모두 사양했다. “일시적인 관심에 헛바람이 들 것 같았다”는 것. 그는 지속 가능한 소재만큼이나 지속 가능한 사업의 길을 여전히 모색하고 있었다. 

/ 글 고영경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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