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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과 사람] 가정으로 파고든 조선호텔의 파인 다이닝

조선호텔앤리조트가 호텔 밖으로 나왔다. 주방장은 수십 년 된 비전 레시피를 공개했고, 레시피는 프리미엄 가정간편식(HMR)이 됐다.

  • 기사입력 2022.12.30 15:30
  • 기자명 문상덕 기자

3만5000원과 7900원. 전자는 호텔 중식당의 짜장면, 후자는 가정간편식(HMR)으로 파는 유니짜장(고기와 양파 등 재료를 잘게 갈아 넣은 짜장면)의 가격이다. 게다가 유니짜장은 한 봉지에 2인분. 가격도 파는 곳도 겹치는 것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같은 곳에서 개발했다.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5성급 호텔, 웨스틴 조선 서울이다. 이곳 중식당 ‘홍연’에서 팔을 걷어붙여 만들었다.

홍연에서 만든 HMR 제품은 온라인 채널에서 인기다. 2020년 8월 선보인 첫 번째 메뉴 유니짜장과 뒤이어 출시한 삼선짬뽕은 최근까지 누적 60만개가 넘게 팔렸다. 담당자도 예상치 못했던 흥행.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유니짜장의 성공에 힘입어 지금까지 30종의 제품을 개발해 선보였다. 회사 측은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의 판매량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3% 늘었다고 밝혔다. 매출은 89% 늘었다.

가격의 간극만큼 개발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HMR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 참여한 셰프들은 고급 재료를 하나 둘 포기해야 했을 테다. 즉석에서 소량으로 조리하는 음식과 냉동 보관한 재료를 갖고 대량으로 만드는 제품의 조리법이 같을 리도 없다. 원가를 무리하게 낮췄다간 조선호텔과 홍연의 브랜드가 무너질 수도 있다. 조선호텔의 셰프들과 제품을 만들어내야 했던 리테일팀은 어떻게 합의점을 찾아냈을까. 11월 초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 조선호텔앤리조트 식음조리사업을 총괄하는 조형학 전무와 홍연의 정수주 주방장, 그리고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오세창 리테일팀장을 만나 물었다.

Q 사업의 첫 메뉴로 유니짜장을 선택했다.

정수주 이전까지는 시중에 일반 짜장면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짜장면을 좋아하지만, 양파가 크다 보니까 잘 안 먹는다. 그러면 유니짜장이 어떨까 싶었다. 유니짜장은 양파가 30%이고, 나머진 고기다. 또 아이들은 양파보다 고기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가장 먼저 유니짜장을 내놨다. 전체 HMR 가운데서도 처음이다.

Q 주방과 사업팀, 충돌하진 않았나?

오세창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로 호텔업계에 위기 상황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지금처럼 호텔을 찾는 고객이 많았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수 있다.

조형학 예전에도 HMR 사업을 했었다. 2002년이었다. 테이크아웃 전문 브랜드 ‘인 더 키친’을 만들고 백화점과 마트에 지점을 냈다. 그런데 너무 빨랐다. 지금과 다르게 가족이 모여 살았고, 그래서 완성된 식품을 찾지 않았다. 코로나를 계기로 리테일 쪽에서 신사업을 찾는다고 하니, 그러면 HMR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과거 경험 덕분에 뭘 해야 하는지 감을 빨리 잡았다. 오세창 전무님께서 굉장히 유연하게 사고하신다. 셰프는 자기만의 세계와 기준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걸 자키면서도 (현실을) 수용하려고 하셨다. 하고 안 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 조성돼 있었고, 저희가 도원결의를 해서 유니짜장을 시작했다. 크게 어려웠던 점은 없었다.

Q 주방장님은 어땠나?

정수주 처음에는 힘들었다. 내 일도 하면서 제품을 개발해야 하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미팅하고, 다음 메뉴를 뭘로 할지 리스트를 적어서 전무님께 드리고, 공장에서 테스트 제품을 가져오면 맛보고 또 아니라고 돌려보내고. 그런데 우리가 원래 갖고 있는 레시피가 많아서 그걸 바탕으로 개발하고 보완하는 프로세스를 만들면서 크게 어렵지 않게 됐다. 메뉴 선정부터 개발, 유통까지 전체 공정은 다음과 같다. 주방장을 포함한 셰프들과 리테일팀에서 상품 아이템을 정하면 간편식 MD는 시장조사에 나선다. 시중에 파는 간편식의 가격과 상품 구현 방법, 제조업체를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셰프들과 제조업체 관계자가 모여 고급 재료 등을 대체할 방안을 논의한다.

조선호탤앤리조트 측은 “이때 많게는 10차까지도 상품 수정이 이뤄지며, 최종 샘플은 대표까지 한 자리에 모여 테스트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HMR 상품은 SSG닷컴, 이마트 등의 판매채널에서 팔리게 된다.

Q 호텔 레시피를 상품에 적용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조형학 원가 이슈가 크다. 홍연 짜장면이 한 그릇에 3만5000원이다. 고가의 재료를 쓴다고 해서 한 그릇에 3만원에 팔자고 할 순 없다. 유니짜장 제품이 개당 7900원(2인분)이다.

오세창 3만5000원과 7900원의 갭을 줄여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맛과 품질은 최대한 지켜야 한다. 대체 재료를 쓰면서 맛과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예를 들어 호텔에서는 왕새우를 쓰는데 제품에서는 중새우를 쓰자. 또 유통과 패키지 비용을 줄여가면서 (주방과 사업팀이) 합의점을 찾아간다. 10번, 15번 시험용 제품을 만들어서 평가한다. 그런 과정이 치열하게 이뤄진다.

정수주 주방 직원끼리 고민이 많았다. 수십 년 역사가 축적된 레시피인데, 밖으로 나간다는 게 용납이 안 되는 거다. 그러면 어디까지 줘야 하느냐. 100%는 안 줬다. 먼저 70% 주고, 맛을 봐서 퀄리티가 안 나오면 10% 더 주고. 튀김도 냉동 재료를 갖고 대량으로 만들어야 하다 보니 생산 공장과도 협상을 오랫동안 했다. 그러면 찹쌀가루를 조금 빼고 전분을 더 넣을 수는 없느냐.

Q 또 기억에 나는 메뉴가 있나?

정수주 짬뽕에 들어가는 새우를 예로 들면 이렇다. 새우는 너무 부드러우면 맛이 없다. 탄력이 있어야 씹을 때 아삭아삭한 맛이 난다. 오징어도 갑오징어를 쓰면 좋은데, 단가와 수급량 때문에 어려우니 물오징어를 쓰는 대신 살이 두툼한 걸 써야 한다. 그런 요구를 많이 했다.

Q 이렇게 합의점을 찾아가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다.

조형학 제품 하나당 8개월에서 10개월. 서로 합의가 안 되면 개발을 중단하기도 한다.

Q 그리고 유니짜장의 성적표가 나왔다.

오세창 2020년 8월에 유니짜장을 선보였고, 3개월 만에 매출이 6억원 정도 일어났다. 유니짜장의 히트에 이어 선보인 삼선짬뽕을 합해 누적 약 60만개 이상 팔렸다. 굉장히 고무됐었다. 사실 프리미엄 HMR을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데이터가 없었다 보니 긴장을 많이 했었다. 호텔 레시피까지 공개해서 만든 HMR이었는데. 유니짜장의 성공 덕분에 기존 호텔업계가 가져가지 못하던 영역을 만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Q 레스토랑 손님의 평가와 온라인 쇼핑몰 후기 평점은 사뭇 다를 것 같다.

오세창 온라인 채널에서 올라오는 상품평은 굉장히 냉정하다. 거기서 조선호텔에서 먹었던 맛이 난다, 조선호텔답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기분이 좋다. 반면 평점이 4.8점에서 4.7점으로 내려가면 왜 내려갔을까. 상품을 중간중간 먹어보면서 품질을 확인한다. 레시피가 바뀌거나 재료에 문제가 생겨서 그럴 수 있다. 그럴 때 상품평이 저희에게 굉장히 좋은 정보가 된다.

 

이때 유니짜장을 비롯, 탕수육, 크림새우, 칠리새우 등 조선호텔 HMR을 조리한 음식이 나왔다. 정수주 주방장이 손수 젓가락을 들고 면을 소스와 비빈 뒤 배석자에게 나눠줬다.

Q 주방장님도 상품평을 보나?

정수주 물론이다. 저도 시켜 먹으니까.

Q 집에서는 어떻게 해 드시나?

정수주 집에서는 안사람이 해준다(웃음).

Q 이중에서 가장 맛있는 메뉴를 꼽자면.

정수주 홍연은 탕수육만큼 칠리새우도 유명하다. 그래서 개발했는데, 주방에서 막 튀긴 것과 맛을 맞출 수는 없더라도 소스는 호텔 것과 맞출 수 있으니까, 맛을 봐도 90% 정도 따라온다. 그리고 칠리새우는 어머니도 아이들도 좋아하니까, 제가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조형학 오랜 시간을 거쳐서 만든 거라, 거의 퍼펙트하다고 보면 된다.

Q HMR이 오프라인 업장의 매출을 넘어서면 기분이 묘할 것 같다.

조형학 HMR을 하든 외식사업을 하든 호텔 영업을 하든 목표는 하나다. 뭐든 잘 되는 게 좋다.

Q 공동의 목표가 뭔가?

조형학 판매량이나 메뉴의 가짓수가 아니다. 우리의 브랜드 가치를 소비자가 신뢰하는 거다. 신뢰를 어떻게 키우고 유지하느냐가 매출 결과를 만들어낸다. 신뢰가 밑바닥에 깔리고 녹아 들어가야지 매출로 연결이 된다. 따로 놀 수가 없다. 그래서 이미 출시한 제품이라도 끊임없이 퀄리티를 체크하는 거다. 또 이왕 HMR 비즈니스를 하기로 했으면 주방이 앞장서자고 구성원들이 생각한다.

/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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