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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위대한 소액주주 (Feat. 한미약품)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이 형제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소액주주들이 캐스팅보트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기사입력 2024.03.28 19:34
  • 최종수정 2024.03.29 07:46
  • 기자명 김타영 기자
임종윤 전 한미사이언스 사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임종윤 전 한미사이언스 사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이 마침내 마무리됐다. 모녀(송영숙-母·임주현-장녀) 대 형제(임종윤-장남·임종훈-차남)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이번 경영권 분쟁은 28일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이 형제의 손을 들어주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경영권 분쟁은 지난 1월 OCI홀딩스와 한미사이언스 지주사 통합 뉴스를 통해 처음 세간에 알려졌다. 초기엔 지분관계가 전혀 없고 영위 업종까지 다른 '이종기업 간 결합'으로 주목받았으나, 이후 임종윤·임종훈 형제가 '통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관심의 초점이 바뀌었다.

암투(暗鬪) 위주로 조용히 진행되던 경영권 분쟁은 3월 주총을 앞두고 이전투구 양상으로 변했다. 25일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이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두 아들을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 사장직에서 해임하고, 이튿날 입장문을 통해 그 정당성을 설명했다. 두 아들은 한미그룹을 지키는 일보다 프리미엄을 받고 자기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신과 임주현만이 선대 회장의 '제약강국 꿈' 뜻을 지키고자 한다는 설명이다.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은 27일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우호지분 계산도 수시로 바뀌었다. 이전까지 OCI홀딩스와 한미사이언스 통합에 찬성하는 송영숙·임주현 모녀 측 우호지분은 35.33%, 통합에 반대하는 임종윤·임종훈 형제 측 우호지분은 28.42%로 송 회장 측이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2일 송영숙 회장(12.56%)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보유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2.15%)이 형제 측을 지지하면서 판이 바뀌었다. 신 회장 덕분에 임종윤·임종훈 형제 측 우호지분은 40.57%로 늘어나 송영숙 회장 측의 35.33%를 앞질렀다. 신동국 회장은 故 임성기 한미그룹 창업주와 고향 선후배 사이로, 과거 임 창업주의 투자 권유를 받아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대거 사들였다.

나흘 후인 26일에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7.09%를 쥔 국민연금이 송영숙 회장 측을 지지하면서 다시 판이 뒤집혔다. 이제 모녀 측 우호지분이 42.42%로 형제 측 40.57% 대비 1.85%p 더 많아졌다.

우호지분 차이가 크지 않다 보니 양측은 나머지 16% 지분을 가진 소액주주 표심에 읍소하기 시작했다. 송 회장 측은 자사주 매입 후 소각 등 보다 공격적인 주주친화 정책을 약속했고, 임종윤·임종훈 형제 측은 5년 내 순이익 1조원 달성과 시가총액 50조원(장기 목표는 200조원) 공약(公約)을 내걸었다.

결과는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형제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재밌는 것은 소액주주들이 단기 이익보다는 장기 이익을 택했다는 점이다.

보통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기업의 주가는 '좀 더 많은' 지분을 취하려는 이해당사자들 덕분에 평소 대비 오르는 경우가 많다. 소액주주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해당사자들과 같이 매수에 달려 들어 해당 기업 주가가 단기 과열 양상을 띄기도 한다.

기업 내재가치보다는 단기 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주식을 사들인다는 점에서 이들 소액주주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하다. 일각에서는 불나방이라는 표현도 쓴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수익을 추구한다는 점이 다를 뿐인데도 시장에서는 경시하는 풍조가 있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번 한미사미언스 주주총회 결과를 보면 소액주주들의 선택이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단기 차익 실현 관점에서 보면 송 회장 측이 제시한 자사주 매입 후 소각 등의 주주친화 정책 약속이 더 구미가 당긴다. 형제 측이 제시한 5년 이내 순이익 1조원 달성과 시가총액 50조원 목표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불확실성도 훨씬 더하다.

그럼에도 소액주주들은 형제 편을 들었다. 우리 자본시장 역사상 '캐스팅보트로서' 소액주주들의 중요성이 이렇게까지 부각된 적은 없었다. 이번 한미사이언스 주총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이벤트였다.

임종윤·임종훈 형제는 주총 직후 모녀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모녀는 주주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결과에 승복했다. 내일이면 또다시 상황이 반전될지 몰라도 일단은 훈훈한 마무리다.

양 측의 언행이 진심인지 혹은 가식인지 알 방법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향후 한미약품그룹 일가에 날아들 '약속 청구서'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한미약품그룹 일가가 얼마나 대단한 경영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임성기 창업주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다른 구성원의 경영 성과는 알지 못한다. 구성원 개개인에게 '오너 일가가 아니었어도 지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지' 묻는다면 그들은 자신있게 답할 수 있을까?

어쨌든 그들은 주주들에게 약속했다. 5년 이내 순이익 1조원 달성과 시가총액 5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목표를 내세웠다. 장기 목표는 무려 시총 200조원이다. 28일 현재 한미사이언스 시총이 3조원대 초반임을 고려하면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왕관만큼이나 무거운 이 약속의 무게를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르쇠로 일관할 수도 있지만, 이번 주총에서 확인했듯 소액주주들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다. 그들은 언제든 돌변해 새로운 경영권 분쟁 불확실성으로 떠오를 수 있다.

/ 포춘코리아 김타영 기자 young@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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