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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공공재인 듯 민간재인 듯”…정부·은행, ‘헤어질 결심’ 해야   

  • 기사입력 2023.12.28 06:00
  • 최종수정 2023.12.28 08:41
  • 기자명 조채원 기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7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금융위원장·금감원장·은행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7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금융위원장·금감원장·은행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저희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한 시중은행 관계자와 미팅할 때였다. 자조적이면서도 자포자기한 태도. 은행권 인사를 만날 때마다 받는 인상이다. 업계 돌아가는 상황을 이야기할 때에도 대화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정부 정책 얘기로 흐른다. 은행권을 논할 때 정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 은행 수장은 정권이 바뀌면 같이 바뀌는 자리로 인식됐었다. 이른바 ‘돈줄’을 쥐고 있는 데다 정부의 입김을 많이 받는 자리라 정권 창출에 힘쓴 인사에게 돌아가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인사가 날 때마다 새 금융지주 회장의 지연과 학맥으로 시선이 집중됐던 이유는 이런 점에서 기인한다.

이런 분위기는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지난주 새마을금고중앙회 회장이 사상 처음으로 직선제로 선출되자 업계 반응은 기쁨 반, 우려 반이었다. 가뜩이나 전 회장의 금품수수 비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로 시끄러운데 중앙회를 외풍에서 지키고 조직을 안돈할 ‘힘 있는’ 인사가 와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어서다. 

지난달 지주회장 인선이 확정된 KB금융지주도 마찬가지였다. 영남 출신에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대통령과 동향이자 학맥이 있는 허인 KB금융 부회장이 유력한 회장 후보란 추측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럼에도 많은 이의 예상을 뒤집고 지주회장은 양종희 부회장에게 돌아갔다. KB금융이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지주회장을 선임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러자 이번 인선을 둘러싼 괴담이 돌았다. 정권에서 점찍은 인사가 낙마하자 내년 8조원대 손실이 예상되는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이슈가 갑자기 대두됐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은 내년 만기가 돌아오는 원금 비보장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해 불완전 판매한 행위가 인정될 경우 막대한 손해배상을 이행해야 한다. 괴담이 돌았던 이유이다.

괴담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괴담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은행을 보면 그저 근거 없는 뜬소문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2021년 서민금융지원법을 도입하며 은행과 보험사 등 민간 금융사에 의무적으로 출연금을 내게 해 사실상 준조세란 지적이 많았다. 올해에도 정부는 연일 은행권을 향해 거친 말을 쏟아내며 상생지원금 2조원을 강요하고 있으며 은행권은 그럴 때마다 상생 지원책을 내놓으며 정부의 요구를 따르고 있다. 

은행이 라이선스(인가) 산업으로 과점 체제의 수혜를 누리는 규제 산업이고 부실화한 은행에 막대한 공적자금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은행에 규제를 늘리고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투자 대상’으로서 은행을 간과하는 듯하다. 한국의 은행은 주주가 주인이고 외국인이 과반수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민간 기업이다. 대통령이나 금융감독원장이 강경 발언을 할 때마다 은행주의 주가는 곤두박질 치는 경향을 보인다. 외국인 투자자의 눈에 한국 정부의 금융산업 규제는 리스크로 보이는 것이다. 

홍콩 H지수 ELS발 사태 역시 은행의 탐욕, 투자자 기만행위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불완전판매가 문제가 되는 환경에 주목해야 한다. 국내 라이선스 산업에 안주한 은행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자 장사’가 아닌 새로운 투자처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정부는 은행 스스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다변화된 투자처를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과거 금융산업으로 세계를 주름잡았던 홍콩은 중국 정부의 규제로 과거의 영광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의 금융산업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려면 규제가 아닌 투자처 발굴 또는 투자 상품 개발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 지금 황금알을 낳는다고 거위 배를 가른다면 금융산업의 미래는 없다. 멀리 내다보는 정부를 기대해본다. 

/ 포춘코리아 조채원 기자 cwlight22@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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