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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IEF] 피터 틸의 비밀 네트워크

  • 기사입력 2023.12.08 17:00
  • 기자명 문상덕 기자

이 백만장자 투자자는 36년 전 대학 시절 학보를 창간했다. 이 학생 신문은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으로 향하는 확실한 발판 중 하나가 됐다. BY JESSICA MATHEWS

 

지난 2000년 1월, 폴 마틴이라는 젊은 스탠퍼드 대학생이 팰로앨토 유니버시티 애비뉴에 소재한 신생기업 콘피니티(Confinity)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피터 틸로부터 인턴 면접을 보기 위해 그곳을 방문했다. 틸은 아직 유명한 창업자나 투자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틴은 틸이 창간한 보수적 신문인 스탠퍼드 리뷰를 통해 그를 알게 됐다. 당시 마틴은 그 신문의 사업 관리자였다. 

또 다른 리뷰 출신인 에릭 잭슨이 이미 틸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그는 마틴에게 회사를 열심히 홍보했다. “우리 회사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지금 이곳에서 일하게 되면, 특별한 존재의 일원이 될 거야. 하지만 주저하면, 이 기회를 놓칠지 몰라.” 결국 마틴은 스탠퍼드를 중퇴했고, 육상팀도 그만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콘피니티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이 회사는 훗날 페이팔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렇게 잭슨과 마틴은 틸을 따르는 초창기 직원이 됐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실리콘밸리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일자리를 얻게 될 가장 확실한 경로 중 하나가 됐다. 뒤이어 많은 사람들이 그 둘의 전철을 밟았다.  

이 모든 것은 스탠퍼드 리뷰와 함께 시작된다. 틸은 지난 1987년 노먼 북(훗날 초기 페이팔 멤버로 합류한 또 다른 협력자다)과 함께 이 학생 신문을 만들었다. 틸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창간했을 때만 해도 스탠퍼드 리뷰가 수십 년 후에 이처럼 놀라운 실리콘밸리의 기술 네트워크로 발전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틸의 부름에 응한 또 다른 인물은 샘 울프다. 그는 2018~2019년 리뷰 편집장을 지내며 틸을 알게 됐고, 현재는 틸의 헤지펀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틸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분명 그 어떤 면에서도 이념적으로 단일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한 가지 사실 덕분에 우리는 확고한 동료애를 갖게 됐다. 서로 간에 강력한 공동체 의식이 충만했다는 점이다. 그런 유대감은 나와 직원들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도 상호 형성됐다. 페이팔은 분명 많은 변화와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강력한 동료애가 호황과 불황을 헤쳐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보수적인 이 학생 신문은 창간 후 30년 넘게 좌파 성향의 스탠퍼드 대학 공동체와 맞서 싸우며 명성을 구축해 왔다. 그리고 열정적이고 논쟁적인 오피니언 기고문-정치적 올바름과 동성애를 비판하거나, 스탠퍼드 교수를 공개 직격했다-은 이따금씩 미 전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일부 리뷰 기자들을 포함, 스탠퍼드 학생들이 90년대에 대학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큰 관심을 끌었다. 대학 당국은 결국 패소하며, 학내에서 편견이 심한 발언과 연설을 금지하는 자체 규칙을 폐기해야 했다. 

그러나 비록 신문의 네트워크가 확대됐다고 해도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일부 예외 사례를 제외하면 스탠퍼드의 엘리트 커뮤니티 밖에서는 대부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리뷰 출신 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틸은 1989년 스탠퍼드를 졸업한 후에도 한참 동안 이 신문의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실제로 그는 지금까지 30년 넘게 리뷰 기자들을 위해 자택이나 팰로앨토의 선댄스 스테이크 하우스 같은 곳에서 저녁 모임을 주최해 왔다. 그리고 세계적인 사건들과 정치 철학에 대해 토론하고, 학생들에게 대학 생활과 캠퍼스 주변에 떠도는 아이디어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2017년에는 리뷰 동문들을 위한 30주년 파티가 열렸다. 현재 스탠퍼드 리뷰 편집장을 맡고 있는 워커 스튜어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년간 틸이 리뷰 기자들을 위해 주최한 만찬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리뷰의 1면 기사 필진을 돌아보면 이 전설적인 투자자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촘촘한지 알 수 있다. 페이팔의 공동 설립자나 초기 경영진 일부-틸을 포함, 크래프트 벤처스의 데이비드 색스와 주 스웨덴 미국 대사를 역임한 켄 하워리를 꼽을 수 있다-도 이 신문 출신이다. 팰런티어의 창업자 세 명도 마찬가지다. 방위기술 기업 팰런티어의 시가총액은 지난 9월 중순 기준으로 거의 320억 달러(약 43조2160억원)에 달했다.  

링크트인과 스퀘어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파운더스 펀드의 투자자 키스 라보이스와 파운더스 펀드의 대표 존 루티그도 빼놓을 수 없다. 리뷰 편집장을 거쳐 틸을 위해 일하다가, 현재는 벤처 캐피털 회사 8VC를 운영 중인 조 론스데일은 알렉스 무어 등 이 보수 성향의 학생 신문 기자들을 다수 고용했다(무어는 론스데일과 가장 오랫동안 투자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 온 인물 중 한 명이다). 작년에는 가장 최근 스탠퍼드를 졸업한 맥스웰 마이어를 영입했다(론스데일은 또 다른 리뷰 기자 출신 테일러 콕스와 결혼했고, 그의 동생도 이 신문 출신이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수위원회에서 일했던 틸의 개인 자산은 약 93억 달러(약 12조5600억원)로 추정된다. 벤처 캐피털 펀드와 기술 회사들 곳곳에 포진해 있는 리뷰 출신 인사들이 관리하는 전체 자산은 그 몇 배에 달한다. 파운더스 펀드가 가장 마지막으로 발표한 운용 자산 규모는 총 110억 달러(약 14조8550억원)에 이른다. 론스데일의 8VC는 60억 달러(약 8조1030억원) 이상의 위탁 자본금을 관리한다.

리뷰 출신들은 업계 곳곳의 테크 기업들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리뷰의 사업 관리자 출신인 기디언 유는 2년간 페이스북(현 메타) CFO를 역임했다. 밥 맥그루는 현재 오픈AI의 연구 부사장을 맡고 있다. 스탠퍼드 출신의 앤드루 그라나토는 6년 전 학생 잡지 스탠퍼드 폴리틱스에 리뷰의 광대한 네트워크를 분석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거의 1년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틸이나 론스데일을 위해 일했거나 그들로부터 투자받았던 거의 300명의 리뷰 동문들을 빠짐없이 찾아냈다.   

2018년 이후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포춘은 팰런티어와 틸 캐피털, 파운더스 펀드, 틸 재단 혹은 론스데일의 벤처 캐피털 펀드 8VC에서 인턴을 하거나 근무한 인물들을 적어도 6명 더 파악했다. 아울러 인력관리 플랫폼 리플링 같은 관계사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도 찾아냈다. 리플링은 파운더스 펀드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  

포춘은 틸을 포함, 10명의 전현직 리뷰 기자 및 직원들을 인터뷰했다. 아울러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비영리기구의 서류와 회사 웹사이트, 링크트인 페이지, 보관된 신문기사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검토했다. 일개 학생 신문이 어떻게 실리콘밸리 기술 생태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물론 논란의 여지도 있다) 발판이 됐는지 이해하고, 리뷰 출신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이들 중 두 명은 익명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특히 한 명은 이 신문의 일부 논쟁적 기사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철저한 비밀 유지를 부탁했다).

리뷰 기자 출신으로 초기에 페이팔에서 근무했던 잭슨은 “돌이켜보면, 리뷰는 나의 커리어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리뷰 공동 설립자 노먼 북, 페이팔에 대한 책을 쓴 한 저자와 함께 기독교인들을 겨냥한 보수 성향의 출판사를 설립했다. 잭슨은 리뷰 동문들을 규합하고, 투자를 권유하고, 자신이 수년에 걸쳐 설립한 기술 신생기업들의 고문과 이사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전직 리뷰 직원들은 이 신문이 자유 사고를 신봉하고, 기존 질서에 반기를 든 대학생들을 끌어 모았다고 말했다. 일부는 이들을 “이단아”라고 묘사했다. 이들은 대부분 보수주의자이거나 자유지상주의자임에도, 기존 정치에 동의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는 수년간 신문에 게재된 기사들의 전제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수십 년간 축적된 리뷰 기사들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의 세계관과 서구 가치체계가 스탠퍼드 학내와 미 전역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 결과, 이 학생들은 이념적 반대 파들과 반복적으로 논쟁을 벌이게 됐다. 리뷰 지면에서 시작된 그 논쟁은 일부 경우, 사회 생활 내내 이어졌다. 

 

초창기 시절 

틸은 특히 정치적 표현에 대해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믿는다고 말한다.
틸은 특히 정치적 표현에 대해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믿는다고 말한다.

 

스탠퍼드 리뷰가 이처럼 놀라운 실리콘밸리의 기술 네트워크로 발전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_피터 틸 창간자 겸 투자자

 

스탠퍼드 리뷰는 80년대 미 전역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일련의 보수적인 학교 신문들 중 하나였다. 원조격인 다트머스 리뷰는 그레고리 포세달, 로라 잉그러햄, 디네시 디수자, 조셉 라고 같은 보수 평론가들과 작가, 유명 방송인들을 양성했다.

1987년 실린 첫 에디터 노트에 따르면 스탠퍼드 리뷰가 초기에 표방한 사명의 핵심적인 부분은 대안적인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진보적 성향이 강한 학내의 대다수에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 아울러 “절실하게 필요한 토론”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당시 학생들이 사용한 방법들은 심층 분석과 보도에서부터 도발적이고, 매우 공격적인 오피니언 기고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2004년 한 기사는 ‘동성애자들은 결혼 제도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색스가 1993년 ‘영광의 구멍(동성애자들의 은어)’에 대해 쓴 노골적인 칼럼은 뉴욕타임스에까지 등장했다. 리뷰 역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기사는 라이언 바운즈가 과거에 쓴 일련의 내용들이다. 그는 당시 다문화주의 노력을 나치의 베를린 도서관 분서(焚書) 사건에 비유했다. 이런 사실은 그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연방항소법원 판사에 지명된 직후 표면화됐다. 결국 백악관은 거센 반발 속에 그의 지명을 철회했다. 

논란이 된 기사를 쓴 일부 기자들은 수십 년 후 사과를 해야 했다. 색스는 뉴욕타임스 기사가 나오자 “20여 년 전에 대학 시절 쓴 글들 중 일부에 나도 당황스러웠다. 내가 쓴 글들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신이 오래 전 동성애에 가졌던 견해에 대해서는 “끔찍하다”고 말했다(색스와 바운즈는 코멘트 요청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틸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특히 정치적 가치가 있는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믿는다”며 바운즈가 쓴 기사들에 대해 “합리적인 담론의 영역 내에 있는 것들”이라고 옹호했다.

그는 논란이 된 리뷰 기사들에 대해서도 “나라면 쓰지 않았을 구체적인 내용들이 있더라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것들”이라고 변호했다. 그 기사들 중 상당수는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작성됐다.  

틸은 “이 기사들이 학내에서 일주일 정도만 읽힐 것이라고 생각했던 당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그 글들이 앞으로 수십 년간 인터넷에서 사라지지 않고 회자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성애에 관한 과거 리뷰 기사들을 다시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이러니를 쉽게 발견할 것이다. 틸과 일부 다른 전직 기자들이나 필진이 게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한 전직 기자는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멋쩍은 듯 웃었다. 제프 지제아는 “다른 전직 리뷰 기자들의 3분의 1과 마찬가지로 나도 동성애자”라고 밝혔다. 그는 90년대 말에 틸의 헤지펀드 설립을 도왔고, 이후 B2B 미디어 회사인 피어스마켓을 설립했다.

 

페이팔과 그 너머로 영역을 확대하다

리뷰 기자들은 자신들의 글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인터넷”에서 앞으로 수십 년간 회자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_피터 틸 스탠퍼드 리뷰 창간자

 

포춘은 지난 2007년 한 기사에서 ‘페이팔 마피아’라는 불멸의 용어를 만들어냈다. 당시 우리는 틸과 일론 머스크, 리드 호프먼 등 그렇게 많은 기술업계의 명망가들이 어떻게 이 결제회사에서 시작했는지 자세히 다뤘다. 하지만 회사의 초기 직원들 중 많은 사람들은 스탠퍼드 리뷰가 없었다면, 애초에 페이팔과 인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마틴은 잭슨, 라보이스, 색스, 아만 베르지, 내이선 린, 밥 맥그루와 마찬가지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2002년 리뷰 기자로 활동했던 헨리 토스너는 “틸을 위해 일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문호가 열려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한편, 마틴은 그 관계에 대해 “공식화된 것은 물론이고, 명백히 의도적인 것도 없었다”며 “그저 우연하게 그렇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었다. 여러 전직 기자들이 인정했듯, 리뷰가 처음 몇 년간 발행된 이후 많은 여성 필자와 기자들이 있었지만 결국 틸과 기술업계에서 계속 인연을 이어간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테일러 론스데일과 어셈블의 공동 설립자 리사 월리스만 예외였다. 리뷰 기자 출신인 둘은 이후 팰런티어에서 근무했다. 

리뷰 출신들이 설립했거나 근무하게 된 회사나 조직 중 일부는 어떤 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일례로 팰런티어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과의 관계 때문에 문제가 된 바 있다(한 전직 리뷰 기자는 그 논란이 오히려 팰런티어를 더욱 들어가고 싶은 회사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한편, 조 론스데일은 자칭 ‘금단의 강좌(forbidden courses)’를 표방한 새로운 대학을 세웠다.  

한 전직 기자는 리뷰 그룹을 명확하게 연결하는 ‘공통 분모’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자유주의적 정통성과 정치적 올바름 같은 정체성 정치(개인의 주요 관심과 협력 관계가 인종·민족·종교에 기초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에 대한 경멸이다.” 하지만 포춘과 인터뷰했던 대부분의 전직 기자들은 리뷰 네트워크가 지적으로 다양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리뷰 출신들은 지지하는 정치 후보와 정부의 재정정책,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극명하게 의견이 갈렸다.

그럼에도 조슬린 맨건이 지적한 바와 같이 끼리끼리 문화에 빠져 있는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네트워크는 결국 기업에 위험이 되는 ‘편협한 사고(insular thinking)’와 잘못된 관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녀는 기업과 스타트업 이사회의 다양성 증진에 주력하는 사회단체 ‘힘 포 허(Him for Her)’의 설립자다.

틸은 “결국 스탠퍼드 리뷰가 학내의 지형을 바꾸는 데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학생들이 좀 더 독립적으로 사고를 하는 데 리뷰가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물론 생각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다고 인정한다). 틸은 독립적 사고가 실리콘밸리에서 사람들이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중요한 자질이라고 주장한다. 

1989년 4월 당시 젊은 틸은 마지막 에디터 노트에서 “나는 편집자로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사람들에게 그 교훈을 설득할 방법은 여전히 모르겠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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