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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el of Fortune⑨스타트업] 세계 최초 배양육, 싱가포르에서 나온 이유

최화준의 아카데미즘 | 캐리 챈 아방미트 대표 인터뷰

  • 기사입력 2023.12.05 18:00
  • 최종수정 2023.12.14 11:19
  • 기자명 김나윤 기자

자원 빈국 싱가포르가 글로벌 배양육 스타트업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래 산업에 대해 규제가 아닌 지원사격에 전면 나서면서다.

싱가포르의 스타트업 산업단지 'JTC 런치패드@원노스'. [사진=JTC] 
싱가포르의 스타트업 산업단지 'JTC 런치패드@원노스'. [사진=JTC] 

 

신산업의 성장 저해 요인을 논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규제와 정책’이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상품시장규제평가에 의하면 OECD 회원 38개국 중 한국은 6번째로 규제가 강한 나라다. 세부 평가 영역을 살펴보면 ‘정부의 기업활동 개입’이 36위를 차지했고 뒤이어 ‘무역 및 투자장벽’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자유경제시장을 지향하고 있지만 소위 선진국들이 추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비교할 때 한국은 여전히 정부 간섭이 강한 나라다.

이유가 무엇일까. 재계 안팎에선 몇 가지 공통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무엇보다 국내 포지티브(Positive) 규제 시스템의 한계다. 포지티브 규제 방식은 허가 영역 이외의 행위에 대해 규정 위반으로 처벌하는 정책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네거티브(Negative) 규제 방식은 불법으로 규율한 것 이외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대전제를 갖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교통 체계 내 좌회전을 떠올려 보자. 한국은 허용 신호가 있는 지역에서만 좌회전이 가능한 반면, 미국은 금지 지역이 아니라면 어디서든 좌회전이 가능하다. 포지티브·네거티브 규제 방식의 단적인 예다.

포지티브 규제는 혁신 산업 육성에 적합하지 않다. 새로운 혁신기술이나 사업아이디어는 기존 산업으로 분류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는데, 포지티브 규제 하에서는 사업자등록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가상현실(VR)을 이용한 콘텐츠,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모바일 앱 기반의 헬스케어 치료제 등은 산업 간 경계선을 허물며 세상에 새롭게 등장했다. 하지만 전통 산업 체계에 명확히 속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업을 영위하지 못하거나 제도권 밖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신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것 역시 혁신 기술 확산을 저해한다. 특히 금융, 바이오, 헬스케어 등 대표적인 관치 산업 영역에선 신기술이 개발되더라도 관련 인허가를 승인받는 데 지나치게 긴 시간과 자원이 소요된다. 한국에서 해당 스타트업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다.

스타트업 블링크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금융과 헬스케어는 스타트업 수와 투자금 측면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로 꼽힌다. 산업별 글로벌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을 살펴보면 핀테크(21.2%)와 헬스케어(8.0%)의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 이와 달리 국내에서는 의료인공지능 스타트업 ‘루닛’과 모바일 금융 앱 ‘토스’ 정도뿐이다. 뒤늦게 정부가 전방위적 지원을 약속하면서 그나마 격차가 많이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정책 관련 가이드라인이나 규제샌드박스 환경이 선제적으로 제공됐다면 창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의 시간은 훨씬 짧았을 것이다.

규제 및 정책과 같은 통제 불가능한 환경 변수는 빠른 성장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의 존폐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창업 지원 재단 및 관계 기관이 진행한 ‘2022 스타트업 코리아’ 정책 제안 보고서는 해외와 비교해 국내 시장의 규제가 지나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는 글로벌 100대 유니콘 스타트업 중 55곳은 규제로 인해 국내 사업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실제 해외에서 성공한 창업 사업 모델을 국내에서 시도한 일부 스타트업들은 끝내 규제 장벽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규제와 정책 때문에 시장에 도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셈이다.

 

정책으로 만든 푸드테크 선진국

글로벌 창업 생태계에서 규제 및 정책 관련해 가장 모범적으로 평가받는 국가는 단연 싱가포르이다. 싱가포르는 정부의 선제적인 정책 제안 덕분에 국가 차원 수준의 미래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동시에 아시아 창업 생태계를 선도하고 있다.

자원 빈국인 싱가포르는 특히 애그리테크(agritech)와 푸드테크(foodtech)를 적극 지원하는 모습이다. 미래 식량의 핵심기술로 각광받는 배양육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관련 가이드라인을 재빨리 마련해 2020년 전 세계 최초로 미국 스타트업 ‘이트 저스트(Eat Just)’에게 배양육 치킨 판매를 허용했다. 올해 9월 미국이 배양육 판매를 승인하기 전까지 싱가포르는 전 세계 유일의 배양육 판매 국가였다.

싱가포르는 전 세계 배양육 스타트업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이다.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에 허가부터 시범 판매까지 제도화가 잘되어 있다. 독도 새우 배양육으로 잘 알려진 국내 스타트업 ‘셀미트(Cellmeat)’는 지난해 시식회를 싱가포르에서 열었고, 바이오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하는 또 다른 국내 스타트업 ‘팡세(Pensées)’는 싱가포르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한국은 올해 5월 한시적으로 배양육을 기준 및 규격 인정 대상에 포함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여전히 미흡한 탓에 국내 배양육 스타트업들의 싱가포르 진출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수산 배양육 스타트업 ‘아방미트(Avant Meats)’의 활동이 가장 눈길을 끈다. 수년간 창업 준비 단계를 거쳐 2018년 홍콩에서 설립한 아방미트는 아시아 최초의 배양육 스타트업이다. 2021년에는 기업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겼다. 이전에는 싱가포르 당국의 배양육 시장 육성 정책과 선제적인 가이드라인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캐리 챈(Carrie Chan) 아방미트 대표는 “싱가포르의 배양육 지원 시스템을 발판 삼아 수산 배양육을 완전한 대체육으로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음식, 스킨케어 등 다양한 목적에 따른 맞춤형 단백질 배양까지 이뤄낼 것”고 말했다.

 

“싱가포르로 가지 않을 이유 있나?”

캐리 챈(Carrie Chan) 아방미트 대표.2018년 생명공학 박사 마리오 친(Mario Chin)과 아방미트 공동 창업. 어류에서 소량의 세포를 채취해 배양하여 수산 대체육 상품 개발. 이 외에도 스킨케어 등 식품 과학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활발히 활동. [사진=아방미트]
캐리 챈(Carrie Chan) 아방미트 대표.2018년 생명공학 박사 마리오 친(Mario Chin)과 아방미트 공동 창업. 어류에서 소량의 세포를 채취해 배양하여 수산 대체육 상품 개발. 이 외에도 스킨케어 등 식품 과학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활발히 활동. [사진=아방미트]

 

Q 사업을 구상하고 설계하는 데 꽤 긴 시간이 투입된 걸로 알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개인적으로 식물성 대체육이 과연 소비자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이 깊었다. 2년 넘게 채식과 대체육 관련 행사를 진행하면서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환경 보호 측면에서 대체육의 장점에 공감하는 모습이었지만 맛과 가격 등 대체식품으로서는 매력도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식물성 대체육이 아닌 세포 배양육을 택했다.

정책적으로 미흡한 부분도 많았다. 배양육 창업은 연구비, 실험실 등 R&D 관련 여러 허가가 절대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관련 기관들의 반응은 무척이나 미온적이었다. 배양육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더라.

2019년 대체육 스타트업 ‘비욘드 미트(Beyond Meat)’가 나스닥에 상장하며 시장 반응이 반전됐다. 당시 비욘드 미트가 4조원이 넘는 기업 가치를 평가받으며 큰 화제가 될 정도였으니까. 이후 유관 기관들이 배양육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다행히 우리도 홍콩 사이언스 파크에 연구실을 얻으며 창업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Q 어렵게 홍콩에서 사업을 시작하다가 돌연 싱가포르로 회사를 옮긴 계기는.

딥테크(deeptech) 등과 같은 파괴적 혁신 기술이 빠르게 실현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 줄 아나. 바로 규제 때문이다. 배양육만 놓고 보더라도 많은 국가들이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장 상황은 스타트업에게 큰 위험이다. 다행히도 싱가포르는 배양육 생산 허가는 물론이고 시범판매 가이드라인까지 시장에 내놓고 있었다.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을 규정할 수 있고 이를 사업으로 실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대단히 큰 이점이다.

싱가포르 당국으로부터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해외 행사에서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와 배양육에 대한 안정성과 산업 육성을 위한 필요 지원 사항 등을 교환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야기 나눈 많은 내용들이 현재 싱가포르 정부 지침에 많이 반영된 것을 보며 '배양육 산업을 무척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구나' 싶었다. 미래 산업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싱가포르의 자세만으로 신뢰를 얻기에 충분했다.

 

Q 기업 본사를 옮기는 데 해외 정부와의 인연이 결정타였다는 게 이례적인 것 같다.

그렇다. 싱가포르 정부 기관과 미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지냈다. 그러면서 우리 기업도 싱가포르 배양육 시장의 전망과 산업 정책에 대해 최신 정보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다.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가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애로사항을 충분히 반영한 정책을 제공하려고 노력하는데, 우리가 해당 국가로 가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Q 배양육 중에서도 축산이 아닌 수산에 주목하는 이유는.

세포 배양육은 육류, 생선 등 모든 종류의 동물성 고기를 생산할 수 있다. 다른 배양육 스타트업의 경우 소고기나 닭고기에 집중하는 데 반해 아방은 전략적으로 수산육을 택했다. 수산 배양육을 선도해 입지를 구축할 자신이 있었고 연구 노하우 등도 많이 축적돼 있다고 자부한다. 그 덕분에 수산물 소비가 높은 아시아 시장에서 가격뿐만 아니라 맛에 있어서도 높은 경쟁력을 우선 확보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동시에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며 산업을 이끌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아시다시피 해양 수산물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폐기물이 생기는 바다 양식은 적절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이에 반해 세포 배양 수산육은 바다 환경을 보존하는 데 적합하다. 환경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관련 정책들이 강화되는 가운데서 수산 배양육이 적절한 대안책으로 급부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방미트가 개발한 수산 배양육 ‘필레’. [사진=아방미트]
아방미트가 개발한 수산 배양육 ‘필레’. [사진=아방미트]

 

Q 식물성 대체육과 세포 배양육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두 가지 모두  '지속가능한 일상'이란 미션을 지향한다. 다만 식물성 대체육은 음식 산업에 유사 고기라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세포 배양 대체육은 소비자들을 위해 추가적인 선택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맛에서도 차이가 있다. 버섯, 콩 등 식물성 재료와 분리 단백질(protein isolate)을 결합해 만든 식물성 대체육의 식감은 아무리 육류 식감을 살렸어도 식물성 원재료의 맛이 남아있고, 이는 식물성 대체육이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이에 반해 세포 배양육은 실제 고기와 동일한 식감과 맛을 기대할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친환경의 방향성 내에서  더욱 다양한 음식 선택지를 가질 수 있게 되는 셈이다. 

 

Q 배양육 성장에 있어서 기술 발전과 시장 수요 중 무엇이 우선적으로 작용한다고 보나.

좋은 질문이자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시장의 수요가 형성되면서 부족한 영역을 기술이 채워가는 것 아닐까. 현재 배양육 제품은 1세대다. 시장의 요구를 완전하게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단 뜻이다. 보다 개선된 2세대 배양육을 기대하기 위해선 기술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이 필수다. 한 가지 요인이 특별하게 중요하다고 볼 수는 없고 복합적으로 맞물려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Q 언제쯤 배양육의 대중화 시대가 올까.

"무척 조심스럽지만 개인적 입장에선 첫제품(first product), 시제품(viable product), 상업화(commercialization), 스케일업을 거친 대중화(communization) 단계로 고려했을 때 현재 배양육은 상업화 이전의 단계라 본다. 아방의 타임라인에서 현재 생산량을 증산할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2~3년 뒤에는 지금보다 훨씬 대중에게 친숙한 식품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Q 한국 푸드테크 스타트업계와도 인연이 있다고.

'APEC cellular agriculture society'라는 모임을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푸드테크 스타트업들을 잘 알고 있다. 관련 스타트업의 성장이 매우 빠르고 한국 정부도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국 시장에서도 아방의 수산 배양육과 스킨케어 원료 등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배양육 관련 제도와 시스템이 빨리 정립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업계의 한국 시장 진출은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현재 글로벌 배양육 스타트업들은 판매 가이드라인이 제시되는 국가로 우선 진출할 계획을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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