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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 THEORY]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가 말하는 미래 커뮤니티

  • 기사입력 2023.11.09 09:48
  • 기자명 문상덕 기자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는 머릿속 서랍에서 신중하게 언어를 선택하고, 과감하게 내보였다.  그가 꺼낸 말은 ‘커뮤니티 서비스’였다.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통이 커 낭창한 바지와 조리(샌들의 일종), 그리고 곱슬머리. 평소의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는 편한 차림을 즐긴다. 그는 “일할 때 책상다리를 하다 보니 신발을 훌렁 벗을 수 있는 차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서울 한남동 띠어리 매장을 찾은 윤 대표는 평소와 달랐다. 친분 있던 사진작가와 함께 한 시간 동안 옷을 골랐다. 수트에 가디건을 함께 입는 게 좋겠다는 조언에 자비를 들여 옷을 마련했다. 윤 대표는 “고를 수 없을 땐 즐기고, 고를 수 있을 땐 까칠하게”가 자신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고유한 취향은 갖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사가 불만족스럽고 거슬리는 사람은 되기 싫었어요.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취향을 갈고 닦으려면 어떤 태도가 좋을까 고민했죠.”

그리고 인터뷰 전날 밤 11시경, 윤 대표는 A4용지 세 쪽 분량의 문서파일을 메신저로 보내왔다. 이날 오전에 보낸 사전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사전 질문을 주셨으니 사전 답변을 보내 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기자 생활 동안 처음 있는 일. 

인터뷰 당일, 그에게 “생각을 서랍 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두고, 필요할 때 곧바로 꺼내 주는 느낌”이라고 감상을 전했다. 그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요”라고 답했다.

“흔히 이런 말을 하죠. ‘그게 내가 하려던 말이야!’ 하지만 그건 자기 생각이 아니에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자기 생각이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고 하잖아요. ‘맞아, 나도 꽃이라고 부르고 싶었어’라는 사람은 ‘꽃’이라는 말이 아니라 개념 자체를 떠올리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생각을 언어로 계속 정리하려고 노력해요. 또 저부터 그렇게 해야 회원들에게 독후감 쓰기 같은 제안을 할 수 있겠죠.”

사전 질문에서는 코로나 이후의 트레바리를 물었다. 온라인 플랫폼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서비스를 연결하는 시대에 대면 커뮤니티가 생존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윤 대표는 자신의 생각의 서랍에서 ‘커뮤니티 서비스’라는 말을 꺼냈다. 그는 사전 답변에서 “기존의 공동체가 무너졌거나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이른바 ‘커뮤니티 서비스’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Q 우선 ‘무너지는 공동체’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왜 무너지고 있는 걸까요?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기존의 공동체를 지탱하던 신념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 것이 첫 번째 원인이고, 교육과 소셜미디어 등에 힘입어 사람들의 자의식이 커진 것이 두 번째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존의 국가나 종교처럼 큰 규모의 커뮤니티에 대한 소속감이 약해지는 것 같고요.

그런가 하면 가족에 대한 부담감도 커지는 것 같아요. 경제학자 수디르 벤카테시가 쓴 <플로팅 시티>를 재밌게 읽었는데요. 그 사람이 ‘현대 도시인은 부유하는 존재’라고 하거든요. 세상이 계속 변하고 나도 계속 변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가치관, 취향, 관심사도 변하게 돼요. 그때마다 맞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고요.

취향, 관심사, 가치관 중심의 작은 커뮤니티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대안이 뾰족한 건 아니지만요.

 

Q 소속감을 강조하시네요.

소속감이 없으면 외로움이 생기니까요. 소속감을 제공하던 기존 공동체는 무너지고 있는데, 그걸 대체할 만한 것들은 나오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세계 각지에서 외로움이 문제가 되고 있고요. 

오바마 정부에서 공중보건국장을 지낸 비벡 H. 머시라는 의사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취임 전에는 ‘암이나 심장병 같은 주요 질환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일을 해보니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은 외로움이라는 결론을 얻어요. 이 당시 연구한 내용을 갖고 퇴임 후에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라는 책을 씁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는 아예 외로움 문제를 전담하는 장관급 부처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가 생겼어요. 

 

Q 비즈니스로서의 커뮤니티 서비스를 대안으로 말씀하습니다.

앞으로 관심사, 취향 중심의 작은 커뮤니티들이 만들어질 겁니다. 그런데 이런 커뮤니티를 운영하려면 운영자에게 시간적인 여유와 역량, 그리고 사람들을 모을 만한 구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도시인들은 그렇게 할 만한 여유가 없죠. 그래서 앞으로는 커뮤니티 조직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 일환으로 트레바리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100만명이 소속된 커뮤니티가 아니라, 휴먼 스케일을 가진, 20명짜리 커뮤니티를 100만개 만들어내는 게 외로움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아울러 외로움이 시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라면, 결국 공공 영역과 맞닿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의 초거대 기업은 기본적으로 공공과의 협업을 통해서 탄생한 것이거든요. 반도체가 그랬고 전기차도 그렇죠.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작게 시도하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증명하고, 그 증명들이 쌓이면 훨씬 큰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 대표는 ‘커뮤니티 서비스’라는 표현을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의 책 《고립의 시대》에서 착안했다고 밝혔다.  

허츠는 이 말을 부정적인 뜻으로 썼다. 그는 위워크(WeWork), 커먼그라운즈(CommonGrounds) 같은 공동 작업공간을 상업화된 공동체의 대표 사례로 들었다. 그러면서 “이 새로운 모델은 기존 공동체를 살찌우거나 사람들이 공유하는 열정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창출할 방안을 모색하지 않는다”며 “이 모델은 공동체 그 자체를 상품으로, 그러니까 공동체를 포장해 팔 수 있는 하나의 제품으로 보고 상업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회원들의 의미 있는 참여가 있으려면 친교를 원하는 회원 수가 임계 질량에 이르러야 한다”며 “많은 상업적 공동체의 문제는 이런 참여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데에 있다”고 지적했다.


 

Q 말씀하신 커뮤니티는 개개인의 취향과 관심사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들 커뮤니티가 기존의 공동체를 대체했을 때, 사회나 국가, 글로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모더니즘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생각해요.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머스가 말한 전통적 의미에서의 공론장은 이런 역할을 해요. 국가나 전 세계를 아우르는 어젠다가 있고,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어젠다에 관심을 갖고, 그래서 인간과 사회와 문명을 위한 최선의 해답을 도출하고, 그럼으로써 사회가 소수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게 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이런 공론장 모델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덕적 의미에서 과연 그래야 하느냐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과연 가능하냐는 거죠. 세상이 굉장히 파편화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모든 사람이 인권이 됐건 기후변화가 됐던 그런 굵직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Q 그러면 기후변화 같은 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정치의 영역이라 조심스럽지만, 저는 모든 사람의 관심을 회복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기에 힘입어 권력만 얻으면, 어떻게 행사하든 권력 유지에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게 문제이죠. 권력을 획득하는 게임과 행사하는 게임 두 가지가 분절된 겁니다. 리더십을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시스템을 고쳐야지, 관심의 정도는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정리하자면 지금 필요한 공동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장기적이고 정기적으로 특정한 가치관을 중심으로 모여서 특정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커뮤니티. 모두가 이런 커뮤니티 하나쯤에는 소속돼 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면 나와 맞지 않는 이 커뮤니티를 떠나 나와 맞는 저 커뮤니티로 이동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외로움 레벨이 낮아지고, 개인의 존엄성이 지켜지며,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안정적으로 번영을 추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Q 트레바리 이야기를 해볼까요.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시작한 지 8년이 지났습니다. 앞선 전망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됐나요?

8년 중 (코로나로 인한) 3년은 버티는 시간이었고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4년반 정도의 시간 동안은 우리가 정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지금 커뮤니티가 재건되고 있고 저희가 다시 도약하고 있는 상황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 대표는 최근 트레바리가 월 기준 흑자 전환했다고 밝혔다.)

 

Q 고정비가 많이 들지 않습니까? 클럽이 늘어나는 만큼 공간과 관리자가 더 필요하니까요. 플랫폼 스타트업이 각광받았던 게 한계비용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장점 때문이었잖아요.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부동산 관련해서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들에 대해 다양한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질 좋은 트래픽을 확보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운영비는 결국 휴먼 터치 때문에 많이 발생하는 건데, 시간이 지나면 점점 기술이 들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 여러 커뮤니티를 포괄하는 공통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커뮤니티의 수가 10배 증가해도 고정비는 두세 배밖에 늘지 않아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거죠.

 

Q 트레바리 커뮤니티의 지표는 어떻습니까?

현시점에 트레바리에서 매달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회원의 숫자는 5000명 정도입니다. 

 

Q 전망은 어떤가요?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이 지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뜬다는 것은 일촌식의 네트워크가 ‘인플루언서 허브’와 ‘팔로워’ 간의 네트워크로 바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커뮤니티의 성장은 얼마나 코어 커뮤니티를 잘 유치할 수 있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이 점에서 트레바리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 플랫폼보다 트레바리에서 클럽장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북클럽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첫 번째 아이템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내년에는 저희가 순차적으로 한두 개 정도의 비즈니스를 선보일 것 같습니다. 

그다음 저는 트레바리가 서울에서 부산보다 서울에서 도쿄, 싱가포르처럼 다른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해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가 만들고 있는 커뮤니티는 메트로폴리스 친화적이거든요. 알토스나 소프트뱅크벤처스처럼 한국에서 손꼽히는 하우스들이 저희 팀에 투자해 온 이유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공동체의 복원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역사적, 시대적, 문명적인 문제를 푸는 것에 대해서 늘 관심이 있고 그중에서 외로움이 굉장히 유의미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최선을 다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만약에 끝끝내 실패했을 때 너무 절망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 문제를 다시 풀어볼 수도 있는 거고요. 혹은 다른 새로운 문제를 골라서 풀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INSIDE TREVARI

외로움은 질병이 됐다. 트레바리는 외로움을 치료하는 약이 되길 원한다. 트레바리의 주요 성분은 다음과 같다. 

 

나 홀로 볼링
Bowling Alone, 2000
로버트 D. 퍼트넘 지음 | 정승현 옮김 | 페이퍼로드

 “사회적 자본의 적자는 학업 성적, 안전한 동네, 공평한 세금 납부, 민주주의 정부의 업무 수행 능력, 우리의 건강과 행복까지도 위협한다.”

 

고립의 시대
The Lonely Century, 2021
노리나 허츠 지음 | 홍정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최근 몇 년간 포퓰리스트 지도자에게 표를 줬는지를 설명해주는 가장 주요하면서도 간과되는 동인은 바로 외로움이다.”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Together, 2021
비벡 H. 머시 지음 | 이주영 옮김 | 한국경제신문

 “수년 동안 환자들을 돌보면서 목격했던 가장 흔한 질병은 심장병이나 당뇨가 아니라 외로움이었다.”

 

프렌즈
Friends, 2021
로빈 던바 지음 | 안진이 옮김 | 어크로스

 “디지털 세계의 어떤 것도 친구 관계가 그냥 아는 사람과의 관계로 조용히 변해가는 현상을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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