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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인사이트] 월급루팡의 탄생...이들은 어떻게 ‘월루’가 되었나

  • 기사입력 2023.10.31 18:00
  • 기자명 김나윤 기자

조직 내 월급루팡은 개인의 나태함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잡플래닛 리뷰에 따르면 회사 내 월급루팡의 씨앗은 ‘일하고 싶지 않은’ 조직 문화에서 발아하고 있었다. 

 

아마도 대표님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을 찾자면, 월급루팡 아닐까 싶다. 월급루팡이란 프랑스 소설가 모리스 르블랑의 소설 속 전설적인 도둑인 ‘아르센 뤼팽’의 이름과 ‘월급’을 합친 말로 회사에서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직원을 뜻한다. 줄여서 ‘월루’라고도 쓰이며 비슷한 말로 월급도둑 등이 있다.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2011년부터 언급되기 시작했으니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담긴 신조어다.

월급루팡의 유형은 다양하다. 업무 중 몰래 딴짓을 하는 ‘딴짓형’부터 수시로 자리를 비우고 사라지는 ‘투명인간형’, 자기 일을 남에게 미루는 ‘토스형’까지 조직에서 일 안 하는 방법이 가지각색인 셈이다. 이쯤 되면 대표님 이하 경영진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매달 월급은 꼬박꼬박 지급하는데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업무 중 자리 비움에 딴짓이나 한다니. 이러니 월급을 올려줄 수가 있겠나.

 

하지만 월급루팡은 동료 직장인들도 같이 일하기 싫어하는 유형이다. <컴퍼니타임스>가 월급루팡의 대표주자 격인 ‘업무 중 자리 비움’에 대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생각보다 업무 중 자리 비움에 대해 직장인들은 깐깐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인 용무로 자리 비움, 얼마나 용인되나’라고 묻는 질문에 30분 이하라는 응답이 53.7%, 15분까지 괜찮다는 이들이 34.5%였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은 30분 정도는 괜찮지만 이를 넘어가면 곤란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화장실 간다며 오랫동안 자리 비우는 것은 ‘안 된다’(87.8%)고 생각했고 점심시간 후 복귀가 15분쯤 늦는 것도 ‘안 된다’(47%)는 이들이 절반 가까이 됐다. 잡담하느라 자리를 비우거나 개인적인 용무로 긴 시간 자주 전화 통화를 하는 것 역시 문제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은행(64.4%)이나 병원(72.6%) 등 평일 근무 시간이 아니면 처리하기 힘든 개인적 업무로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 정도는 괜찮다는 의견이 많았다.

잡플래닛 리뷰에서도 월급루팡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회사에 월급루팡이 많아서 회삿돈이 허투루 쓰이고 있다”고 걱정하는 직장인도 있었고 “월급루팡을 정리해야 회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조언을 남기는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리뷰가 나오는 회사의 만족도는 별점 1~2점대에 머무른 반면 만족도 높은 회사에는 “월급루팡 불가능” “월급루팡은 오지 말라”는 내용의 리뷰가 덧붙었다.

의외이지 않은가. 요즘 직장인들의 경우 적당히 월급루팡하며 다니는 회사를 더 좋아할 것 같은데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잡플래닛 리뷰에선 ‘월급루팡은 회사가 만든다’는 목소리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세상에 어떤 회사도 월급루팡을 만들고 싶지는 않을 텐데 직장인들은 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걸까. 잡플래닛 리뷰로 월급루팡 많은 회사들의 특징을 살펴봤다. 월급루팡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열정 가득 안고 입사! 그런데 입사하고 보니

#월급루팡이 많아 일하는 사람만 고생(★2.4)

#월급루팡들 사이에서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호구 됨(★1.6)

#업무량이 너무나도 많은데 옆 직원은 칼퇴근하는 아이러니한 업무부담(★2.4)

첫 입사 날 누구나 열정이 불타오른다. 힘들게 입사한 회사에서 능력을 펼쳐 ‘일잘러(일 잘하는 사람)’가 되겠단 생각은 모두가 마음 속에 품는 포부다. 특히 MZ세대를 비롯해 주니어급 위치의 직장인은 무엇보다 성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일을 열심히 할수록 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일을 지시하는 상사는 수시로 자리를 비우고 여유가 있는 것 같고 옆자리 동료는 칼퇴근하는데 왠지 모르게 나만 일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업무 적응이 안 돼서 그런가, 더 열심히 해야 겠다’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해 본다.

 

“열심히 했으니 알아주겠지!” 그런데 평가를 받고 보니

#비합리적인 인사평가 제도. 기준이 없어서 월급루팡 가능(★2.1) #평가시스템이나 중간·분기 목표 및 수당 등 아무것도 없다. 월급루팡들이 왜 총애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2.6)

#불합리한 연봉 체계. 윗사람 비위만 맞추면 연봉이 오르고 일 안 해도 월급 올려 줌(★2.6)

열심히 일한 만큼 회사도 인정해 주리라 생각했지만 이 마음은 인사 평가와 연봉협상을 거치며 산산이 부서진다. “열심히 일 한 사람이나 일 안 한 사람이나 연봉은 똑같”은 수준이고 “성별, 결혼여부, 나이에 따라 승진이 좌우”된다. 성과 평가를 하기는 하는데 “평가 기준이 없어 결국 윗사람들이 정한 점수대로” 결과가 정해진다.

따옴표 안의 내용은 실제 월급루팡 키워드가 많은 회사의 리뷰에 나온 말들이다. 이 회사들에서 공통으로 많이 나온 키워드는 가족회사, 지인천국, 낙하산, 사내정치, 고인물 등이다. 리뷰를 남긴 이들은 업무 성과보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낙하산으로 입사해 하는 일 없이 노는 것 같은 사람이 더 많은 연봉을 받았으며 사내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 승진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결국 기준 없는 비합리적인 인사 평가 때문에 제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한다. 열심히 일해도 성과급이나 연봉 상승 등 보상은 없고 그러니 열심히 일해봐야 오히려 손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일 열심히 할수록 회의감, 이렇게 있으면 미래가 깜깜…나가자!” 일잘러는 퇴사 중

#오래된 월급루팡 직원들이 있는데 그냥 내버려 둔다(★1.5)

#인원 감축을 진행해도 진정한 월급루팡은 정리가 안됨.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일하던 사람들은 떠남. 월급루팡들은 회사 나오는 게 편하니 그만둘 이유가 없음(★3.0)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은 회의감 느껴 퇴사. 월루들에겐 유토피아(★2.7)

이쯤 되면 입사 초기 열정은 점점 식어간다.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월급루팡”을 보며 “급여가 적어도 열심히 일하는 직원 입장에선 굉장히 사기가 저하”된다. “돈 벌어오면 새는 구멍은 따로 있다는 생각에 불만이 쌓”여 간다.

문제는 회사가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방치한다는 것이다. “회사에 월급루팡이 많다는 걸 대표도 인지하고 있지만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이해가 안 되고 “나중에 나도 저렇게 무능력한 월루가 될까” 우려까지 들기 시작한다.

그러니 일 잘하고 싶었던 이들은 결국 ‘퇴사’를 선택한다. 월급루팡들의 일까지 맡아서 하던 “유능한 직원들은 번아웃되다 떠나”가고 “일하려는 의지가 있는 주니어들은 다 퇴사”한다. “허리연차급 인력들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고 있”지만 회사에서는 “요즘 애들이 문제라 치부”하고 만다. 직원은 또 뽑으면 되니까 말이다.

 

“일 하나 안 하나 똑같다면 나도…” 월급루팡의 탄생

#월급루팡하기 좋은 역피라미드 구조의 회사. 관리직만 남아있음. 주요 에이스 인력은 경쟁사로 이직함(★1.9)

#역피라미드 구조로 정작 일하는 직원은 얼마 없음. 월급루팡에게 추천(★2.0)

#일 잘하고 열심히 하던 사람도 전염돼 덩달아 나태해진다(★2.9)

실무를 담당하던 이들은 퇴사하고 월급루팡들만 회사에 남아있으니 회사 구조는 점점 ‘역피라미드’ 구조로 변하게 된다. 월급루팡이 많다는 회사에서 많이 나오는 키워드 중 하나는 역피라미드다. 관리자는 많은데 실무를 할 사람은 없고 실무자는 연일 퇴사하니 역피라미드의 가장 윗면만 점점 넓어진다. 일 잘한다고 평가받던 동료들의 퇴사를 보며 남은 이들은 의욕이 떨어진다. 경력이 부족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에 남아있는 이들은 “매너리즘”에 빠지고 주변에 남은 동료들을 보며 “이직을 못 해서 어쩔 수 없이 다니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잘해보려던 선배와 동료들은 퇴사하고 없으니 업무를 배우기도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욕 없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동화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의 성장이나 이직을 포기하면 월급루팡으로 스트레스 적은 생활이 가능할 것”같고 “생각 없이 월급 받는 기계로 살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커리어를 위해서는 추천할 수 없”지만 말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잘 숨어서 일하면 월급루팡 하기 좋”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공공연하게 “윗급은 원래 일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팀장을 지켜보며 “팀장급에겐 꿀인 회사이니 그 전까지 적당히 시간 때우며 일하는 척만 하며 버티”다가 팀장이 되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되는 회사니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느슨해서 땡땡이치기 좋은” 회사에서 “같이 나태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월급루팡의 탄생이다.

월급루팡이 언급된 회사들은 공통적으로 ‘사내문화’와 ‘경영진’ 만족도가 유독 낮았다. 함께 일하는 사람과 회사의 일하는 문화는 직원들을 핵심 인재로 성장하게 하거나 반대로 월급루팡으로도 만들 수 있다. 연달아 퇴사하는 직원들과 의욕 없는 동료들을 보며 요즘 세대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우리 회사의 모습을 돌아봐야 할 때일 수 있다. 일 잘하던 직원들이 회사를 나간 이유는 어쩌면 회사 안에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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