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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마스터, 정태영②] “애플처럼 화끈하게 살아보자”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대표이사 부회장

  • 기사입력 2023.10.04 07:05
  • 최종수정 2023.10.04 12:09
  • 기자명 유부혁 기자

2010년 무렵, 정태영 부회장은 테크 기업으로의 전환을 결심했다. 지금까지 AI에 투자한 돈은 1조원 이상. 그는 “베팅”이라고 돌이켰다. 결과적으로 AI는 일상에 성큼 파고들었고, 현대카드는 잘 설계된 데이터 모음을 파는, 테크 기업으로 거듭났다.

유부혁 기자 chris@fortunekorea.co.kr 사진 김용호

이해진 네이버 의장에게 전화했죠. “실력과 비즈니스 감각을 겸비한 엔지니어를 찾는다”고 했더니 “나도 죽기 전에 봤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더군요.

 

Q 잘나가던 현대카드가 ‘테크’를 등에 업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10년 정도일 텐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영업이익이 3000억~4000억원 정도였어요. ‘마케팅과 브랜딩으로 지속가능할까?’ 게다가 가맹점 수수료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고요. 여기에 구글, 네이버와 같은 테크기업들이 금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앞날을 생각하니 답답하더라고요. 임원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결론은 ‘1년에 2000억 정도만 벌고 나머진 모두 AI에 쏟아붓자. HP나 델처럼 재미없는 회사 말고 애플처럼 화끈하게 살아보자’고 했죠. 그런데 금융 종사자들이 테크놀로지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우리가 가진 데이터는 구글이 가진 개와 고양이 사진보다 훨씬 상업성이 있는 것들인데 말이죠.

 

Q 결정 이후 무엇부터 하셨어요?

사람 만났죠. 구글부터 시작해 테크기업 100여 곳은 넘게 만났어요. 그런데 다들 Fed(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영향력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더군요.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다들 어떻게든 금융 데이터를 빼 가고 싶어 했지만 금융위나 금감원의 간섭은 받고 싶지 않은 거죠. 마이데이터 사업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비슷한 이유 아닐까 싶어요. 

내부적으론 TV광고를 다 내렸습니다. 슈퍼콘서트와 단발성 이벤트를 제외하곤 말이죠. 당장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더군요. ‘현대카드 맛이 갔다’는 말도 들렸어요. 직원들이 동요하길래 그럴 필요 없다고 했어요. 어차피 우리가 갈 길은 정했으니. 

진짜 문제는 엔지니어였어요. 이해진 네이버 의장에게 전화했죠. “실력과 비즈니스 감각을 겸비한 엔지니어를 찾는다”고 했더니 “나도 죽기 전에 봤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5명이었고 10명이 되고 이제 수백 명이에요. 엔지니어들과 이야기하면서 정말 많이 싸웠어요. 

 

Q 실행 과정에서 방향 수정은 없었나요?

처음 알고리즘 개발에 2000억원 정도 썼어요. 하다 보니 이건 투자할 게 아니라 더 좋은 기술을 업데이트하고 가져다 쓰면 되겠다고 판단했죠. 오히려 알고리즘을 선택하는 게 더 어렵더군요. 그런데 누구도 데이터 아키텍처는 안 해주더라고요. 내 옷방 정리는 누구도 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다들 데이터가 많은데 정리가 안 된다고들 하죠? 사실 쓸만한 데이터가 없어요. 단어가 100만 개가 있다고 하면 그게 사전은 아니죠. 단어집일 뿐. 결국 그래머가 필요해요. 데이터 속성을 파악하고 규정지으며 연결하는 문법. 그걸 작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마케팅 예산을 여기에 다 썼죠(웃음). 현대카드는 데이터 분석보다 데이터 설계가 훨씬 강한 회사예요. 자신하는데 세계 금융사 중 우리가 이 부문에선 최고입니다. 지난주엔 이스라엘 중앙은행에서도 다녀갔어요. 

 

Q 현대카드란 이름에서 카드 대신 다른 말을 써도 될 것 같습니다. 

카드 데이터를 주로 다루니 현대카드가 맞죠. 다른 수식어는 필요없어요. ‘금융 회사 중 데이터를 가장 잘 다루는 회사’면 만족합니다.

 

Q 베팅은 성공하셨네요.

한때 경영지표가 위험한 상황까지 간 적도 있어요. 그만큼 우리에겐 큰 베팅이었죠. 성공할 걸 알았다면 베팅이 아니고요. 2019년 이후 PLCC를 시작으로 AI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점유율도 올라가고 영업이익도 개선되고 있어요. 

 

현대카드는 지난 8월 30일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에서 이마트, 현대차, 대한항공, 야놀자 등 PLCC 파트너사 18곳과 함께 데이터 사이언스 기술 및 향후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대카드는 지난 8월 30일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에서 이마트, 현대차, 대한항공, 야놀자 등 PLCC 파트너사 18곳과 함께 데이터 사이언스 기술 및 향후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대카드 올해 상반기 실적 [현대카드 뉴스룸]
현대카드 올해 상반기 실적 [현대카드 뉴스룸]

 

Q PLCC 파트너사들에게는 ‘초개인화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70여 년 동안 마케팅 업계에선 성별, 나이, 소득, 직업 심지어 P&G처럼 지역별로 고객을 세분화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 세분화 작업을 하지 않아요.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30대 남자라도 인형을 좋아할 수 있고 20대 여성이 밀리터리 매니아일 수 있죠. 여기에 저마다의 호기심 정도를 반영했어요. 가령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호기심이 많으면 카메라 이야기도 할 수 있는거죠. 그게 아니라면 와인 상품 이야기만 하는 거고요.

최근엔 ‘10시에 스타벅스, 12시에 중국집 간 사람이 오후엔 어디 들를까?’와 같은 행동과 소비 패턴을 예측하고 있어요. 우리 고객 중 이번 주 금요일에 이마트 갈 사람과 다음 주에 갈 사람을 예측하는데 정확도가 75%까지 올라왔어요. 이런 솔루션을 통해 마케팅 반응률이 3%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보통 1%도 괜찮은 수치인데 말이죠. 

 

Q 소비자 입장에선 공포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정보 노출에 대한 불안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요. 시스템 안에서 자동화되기 때문이죠. 과거처럼 특정 유형의 고객들을 선별해 이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겠다는 의사결정이 내려지면 자료를 다운받고 이를 어디론가 전송하고 또 거기서 분석하는 방식이 아니에요. computing goes to data. 우리 시스템을 상대 회사 서버나 클라우드로 보내 거기서 작동하게 만들어요. 일이 끝나면 거기서 프로그램은 자동 소멸합니다. 기록에 남거나 개인정보가 노출될 일이 없어요. PLCC 파트너사 중 개인정보가 오가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Q AI를 활용한 데이터 실험 중 한계도 느낄 것 같습니다.  

6개월 후의 신용등급을 알아맞히는 실험 중인데 아직 정확도가 10% 수준이에요. 다만 기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 하는 건 AI가 이미 하고 있습니다. 가령 연체된 고객에게 전화를 걸지 기다릴지, 수개월내 골프를 시작할 고객은 누구일지 예상해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등이요. 이런 건 굳이 영수증을 분석하지 않고 AI가 선별합니다.  

 

Q 금융사들이 금융위에 신용평가, 데이터 상호주의를 내세워 영수증 내역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요청이 받아들여진다면 데이터가 방대해지는 만큼 분석도 정교해지겠네요. 

저희는 스몰 데이터주의입니다. 스몰 데이터도 제대로 못 다루면서 ‘데이터가 부족하다’며 불평하면 안되니까요. 요리 잘하는 사람은 냉장고 안 재료만으로 음식을 만들죠. 물론 금융위가 가진 이른바 스큐(skewed·비대칭) 데이터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죠. 하지만 고객이 이마트를 언제 갔고 가기 전 어디를 들렀나만 봐도 거기서 배움은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핀테크 기업들이) 초창기에 다양한 기술로 신용을 평가하고 금리를 낮추겠다고 했지만 그게 현실화됐나요?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도 나오고.

 

Q 원론적인 질문이긴 한데, ‘이렇게 잘하는’ 현대카드가 왜 1등을 못하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우리가 1등이죠. 10년 정도 전부터. 다른 카드사들이 한지붕 아래 둔 사업부를 우린 다 분사했습니다.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이요. 불만은 없습니다. 감수할 일이고 지금 저희에게 순위가 매우 중요한 의미도 아니예요. 

 

Q 토스나 카카오뱅크처럼 이른바 기술을 앞세워 금융을 혁신하겠다는 기업도 여러 곳입니다. 신경이 쓰이실 것 같습니다.

예전엔 신경이 꽤 쓰였어요. 지금은 하나도. 금융이 테크에 비해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도 본질은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그 부분을 간과했단 생각이 들어요. 농업을 알고 기술을 적용해야 농업이 혁신되고 기술이 쓸모 있을 텐데 그게 아니라면 어렵죠. 단적인 예로 초창기에 다양한 기술로 신용을 평가하고 금리를 낮추겠다고 했지만 그게 현실화됐나요?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도 나오고. 쉽게 생각하고 시작한 일들이 어려워 보여요. 

금융은 생각보다 견고하고 복잡한 인프라를 쌓아야 합니다. 같아 보이지만 기업마다 특장점이 모두 다르고요. 차별화된 기술도 좋지만 금융이 얼마나 까다로울 수 있는지 못 본 것 같아 안타까워요. 

 

Q 지난해에 이어 프리즈가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전 세계에서 K팝, K푸드, K컬처에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리즈의 성공 역시 연장선에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일부는 K의 실체가 뭐냐고 의문을 달기도 하더군요. 현대카드의 ‘컬처 프로젝트’를 기획하셨으니 이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프리즈가 서울에 온 건 매우 중요한 결정이고 의미가 있죠. 제가 알기론 아시아권에서 예술품 거래는 중화권이 80%예요. 기타가 10%. 한국과 일본이 10%죠. 그런데 일본은 대부분 판매예요. 그럼에도 서울로 왔다는 건 규정할 수 없는 한국만의 다이내믹스가 분명 있다고 봐야죠. 아메리칸 컬처를 규정할 수는 없지만 뭔가 있다는 걸 모두 알듯. 한국의 팝, 문화 심지어 극단적 소문에 휩쓸리는 모습들까지도 한국의 다이내믹스라고 생각해요. 싫든 좋든 모호하지만 K를 부정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프리즈의 분위기에 대한 의견은 있어요. 지난해에 비해 출품은 약한데 사교 파티는 더 호화로워진 느낌이예요. 셀럽들이 총출동한. 예술과 파티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년엔 시간을 비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외 친구들이 프리즈 기간에 정말 많이 서울에 왔더라고요. 

 

Q 20년 전 현대카드 전용 서체 ‘유앤아이’를 현대카드의 핵심 아이덴티티로 규정했습니다. 이후 다른 기업들 역시 브랜딩 전략으로 서체를 활용하기도 했고요. 

많은 기업들이 전용 서체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브랜드 전략은 없었던 것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면 굳이 폰트는 안 만들어도 되지 않나 싶고요. 활용하지 않잖아요. 아름답고 훌륭한 기존의 폰트가 얼마나 많은데요. 

 

 

포춘코리아 10월호 표지. 
포춘코리아 10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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