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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IN SIGHT] 델타는 잠들지 않는다

[RUNWAY IN SIGHT] 델타항공의 24시간

  • 기사입력 2023.08.04 11:00
  • 기자명 문상덕 기자

애틀랜타 국제공항의 불빛은 24시간 꺼지지 않았다. 불빛을 채운 건 델타의 항공기들이었다. 델타의 불빛은 100년의 역사 속에서 꺼지지 않았다. 그 불빛을 채운 건 델타의 사람들이었다. 애틀랜타=사진·글 최근우 작가 studio@offbeat.kr 

※‘STORY IN SIGHT’는 사진작가가 사진을 통해 현장의 사실과 뉘앙스, 그리고 감상을 독자에게 전하는 꼭지입니다. [편집자 주]

숙소에 들어서자 활주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델타항공의 본사가 있는 곳답게, 또 델타항공의 허브공항답게 애틀랜타 국제공항의 활주로에서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항공기가 오르내렸다. 이착륙의 굉음은 숙소의 두터운 이중창을 쉴 새 없이 흔들어 댔다. 길었던 팬데믹이 걷히면서 이제는 참 많은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뇌리를 스친 말.

‘시계의 멈추지 않는 태엽처럼, 델타는 잠들지 않는다.’

한 장의 사진으로는 부족했다. 캐리어에서 삼각대를 꺼내 카메라를 고정했다. 밤 9시 28분부터 10시 22분까지의 시간이 카메라에 담겼다. 프레임에 궤적을 남긴 항공기는 몇 대나 될까. 지난 한 해 동안 이곳에서 이착륙한 항공기 대수는 72만4145대였다(ACI 집계). 시간당 82.7대꼴. 매년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으로 랭크될 만했다.

 

역사 속에서도, 델타는 잠들지 않는다

미국 항공기 제조사 더글라스의 DC-3. 델타항공에서는 1941년부터 1958년까지 운용했다.
미국 항공기 제조사 더글라스의 DC-3. 델타항공에서는 1941년부터 1958년까지 운용했다.

델타항공 본사엔 박물관이 있다. 1940년대 격납고로 썼던 건물 두 채를 박물관으로 꾸몄다. 큐레이터는 “델타항공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직선 도로는 원래 공항 활주로로 쓰던 길”이라고 소개했다. 본사 한가운데 격납고가 있는 건 그런 사정 때문. 박물관에는 델타항공이 농약 살포업으로 시작할 당시 썼던 복엽기부터 2016년 은퇴한 보잉 747-400기까지, 100년의 역사가 넘실거렸다.

델타항공은 1929년 여객운송 서비스를 개시했다. 우측 상단의 로고는 그 당시 고안한 것. 여행과 상업의 신, 머큐리를 삼각형의 한가운데 뒀다. 

아래 열에는 델타를 만들어간 사람들의 물건을 전시했다. 지도와 시력에 의지해 대륙을 횡단했던 파일럿의 장비들, 파일럿이 되고 싶었던 최초의 여성 승무원(간호사 자격증을 소지해 위급 시 대처가 가능했다)의 옷. 해지고 색 바랜 물건에서도 열정은 생동했다.

 

델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B-767 The Spirit of Delta 기체. 
B-767 The Spirit of Delta 기체. 
델타 박물관 외부에 전시된 B747-400기의 조종석 모습. 
델타 박물관 외부에 전시된 B747-400기의 조종석 모습. 

박물관에서 특히 눈에 띈 건 동체에 ‘델타의 정신(The Spirit of Delta, 일명 ‘스피릿’)이라는 글자를 도장한 보잉 767기. 항공기 한 대가 항공사의 정신을 상징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1982년 델타항공은 35년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2차 석유 파동이 닥쳤고, 규제 완화로 항공사간 가격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였다. 경쟁 항공사가 인력을 줄일 때, 델타는 일자리를 지켰다. 직원들은 회사를 위한 모금으로 화답했다. 일명 ‘프로젝트 767’. 1만8000명 이상의 임직원이 3000만 달러를 모금, 당시 최신 기종이었던 보잉 767를 구입해 회사에 기부했다. 

당시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항공기는 델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기하게 한다. 바로 델타의 사람들.” 23년간 하늘을 난 베테랑은, 2006년 이곳에서 안식을 얻었다.

 

활주로에서의 배턴 터치

떠날 날이 머지않아 아쉬움이 커지던 때, 익숙한 모습의 푸르고 선명한 기체가 구름을 뚫고 내려왔다. 이윽고 지상을 밟은 기체는 활주로를 맹렬히 가로질렀다. 대한항공의 보잉 747-8i였다. 747이 속도를 줄이고 진정하던 순간, 이번엔 뒤편에서 델타의 항공기가 지면을 박차고 올랐다. 두 기체가 바통 터치하듯 한 프레임에 담겼다. 비행기도 말을 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무언가 말을 건넸을 것만 같은 장면이었다. 아마도, 반가움과 응원의 말이었을 것이다.

마침 두 회사는 관계는 각별하다. 대한항공은 북미에서 델타에, 델타는 아시아에서 대한항공에 의지한다. 인천-애틀랜타 노선을 기준으로 오전엔 대한항공이, 오후엔 델타항공이 항공기를 띄운다. 

결정적인 장면은 이렇게 우연을 가장한 필연, 혹은 필연을 가장한 우연으로 찾아온다.

 

날자. 날자. 날자.

애틀랜타 공항의 어느 게이트를 지나고 있었다. 탑승을 기다리는 승객들, 그리고 다시 하늘로 날아오를 채비를 갖춘 항공기의 모습을 한 프레임에 담았다. 

델타 본사에서 만난 김주영 디렉터의 말이 떠올랐다. 김 디렉터는 아시아와 유럽 노선의 네트워크 플래닝 업무를 총괄한다. 김 디렉터는 “항공 수요가 팬데믹 직전인 2019년 수준을 대부분 회복했고, 유럽 노선의 수요는 2019년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산업 현황과 예측의 까다로움을 소개하는 그에게서 항공기로 전 세계를 연결한다는 설렘이 풍겨 났다.

저 항공기는 다시 분주하게 날아다니기까지, 속으로 수백 번 이 말을 되뇌었을지 모른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주인공은 되뇐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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