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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로 찾고 3D로 풀어낸 1:1.618의 오리진

강이연 작가│예거 르쿨트르와 글로벌 협업

  • 기사입력 2023.08.01 13:33
  • 기자명 김나윤 기자

 

강이연 작가는 10년 만에 서울 이태원 인근에 정식 서울 작업실을 마련했다. 2013년 영국으로 떠나기 직전 사용하던 작업실도 이 동네에 위치했다. [사진=강태훈]
강이연 작가는 10년 만에 서울 이태원 인근에 정식 서울 작업실을 마련했다. 2013년 영국으로 떠나기 직전 사용하던 작업실도 이 동네에 위치했다. [사진=강태훈]

 뉴미디어 아트의 선두 주자인 강이연 작가가 1년간의 작업 과정 끝에 브랜드 협업 프로젝트 ‘오리진’을 선보였다. 10년간의 영국 활동에 마침표를 찍은 후 선보이는 첫 국내 복귀작이다. 오랜만에 한국 생활을 시작하는 설렘 때문일까. 대전 연구실과 서울 작업실에서 만난 그의 눈빛엔 반짝임이 가득했다. 


 뉴미디어 아티스트 강이연 작가가 영국 런던으로 떠난 지 1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6월 관객들에게 공개한 그의 화려한 국내 활동 복귀작은 하이엔드 명품 시계브랜드 ‘예거 르쿨트르’와 협업한 아트쇼다. 예거 르쿨트르는 지난해부터 아티스트,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메이드 오브 메이커스(Made of Makers)’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시계 제작의 창의성, 전문성, 정밀성 가치를 시계와 예술의 접점을 통해 관객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예거 르쿨트르가 아시아 작가와 손잡고 협업한 건 강 작가가 처음이다. 강 작가는 이번 브랜드 협업에서 황금비율(Golden Ratio)을 메인 주제로 한 3D 형태의 비디오 아트 ‘오리진(Origin)’을 선보였다.

 강 작가는 미국 UCLA와 영국 Royal College of Art(RCA)에서 각각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뉴미디어 아트의 지평선을 넓히고 있는 아티스트 중 한명이다. 165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영국의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V&A)은 2016년 강 작가를 한국인 최초로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하며 강 작가의 작품 작업을 지원하였다. 현재 V&A는 강 작가의 작품을 구입해 미술관 내 영구 소장하고 있다.

 이어 그는 BTS와 글로벌 협업 프로젝트,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프로젝션 매핑, 삼성동 코엑스 초대형 LED 미디어 아트 등 굵직한 설치 작품들들을 선보이며 ‘아시아 여성 출신의 아티스트’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주체가 되는 현대 미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학과 조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지난 6월 예거 르쿨트르의 아트 쇼 ‘더 골든 레이시오 아트 쇼(THE GOLDEN RATIO ART SHOW)’에서 3D 비디오 스컬프처 작품 '오리진(ORIGIN)'을 공개한 강이연 작가 [사진=예거 르쿨트르]
지난 6월 예거 르쿨트르의 아트 쇼 ‘더 골든 레이시오 아트 쇼(THE GOLDEN RATIO ART SHOW)’에서 3D 비디오 스컬프처 작품 '오리진(ORIGIN)'을 공개한 강이연 작가 [사진=예거 르쿨트르]

Q. 한국으로 복귀 후 ‘황금비율’이란 주제의 브랜드 협업 작품을 공개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황금비율은.

"많은 사람들이 황금비율을 연상할 때 파르테논 신전이나 모나리자 그림 등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 같은 문화적 업적엔 황금비율이 없다는 게 과학적 팩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황금비율에 의미를 부여할까 궁금했다. 1:1.618이란 비율이 다른 비율에 비해 인간의 시각에 가장 친숙해지며 황금비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더라. 그렇다면 다음 질문. 황금비율에 수렴하는 온전한 대상물이 과연 존재할까. 이 해답을 인간의 창작물이 아닌 솔방울, 해바라기 씨앗 등 자연 환경에서 찾았다. 결국 황금비율은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이 생각을 이번 프로젝트로 풀어 냈다."

Q. ‘오리진’ 영상물 속엔 아이러니하게 시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아트 컬래버레이션의 핵심은 협업 파트너의 정체성을 작업 전시에 되도록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공공 전시 형태가 필수적이었다. 전시물 스케일도 너무 크면 감상이 어려워지니 콤팩트하게 구성해 관객과 작품 간의 물리적 거리를 좁혔다. 주말에 가서 보니 꼬마 아이들이 스크린이 설치된 잔디밭 위에서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더라. "

1 코엑스 영상물 | 서울 삼성동 코엑스 K-POP SQUARE에 설치된 초대형 LED 영상 작품. 2 DDP 매핑 | 프랑스 소프트웨어 기업   Dassault Systemes와 협업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외관에 설치한 3D 프로젝션 매핑 영상. [사진=강이연]
1 코엑스 영상물 | 서울 삼성동 코엑스 K-POP SQUARE에 설치된 초대형 LED 영상 작품. 2 DDP 매핑 | 프랑스 소프트웨어 기업 Dassault Systemes와 협업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외관에 설치한 3D 프로젝션 매핑 영상. [사진=강이연]

 강 작가의 본래 꿈은 화가(painter)였다. 어릴 적부터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아서 대학 전공도 서울대 서양화과를 택했다. 하지만 대학 진학 후 그는 재능에 대한 한계와 캔버스라는 공간적 제약을 느끼며 자연스레 진로 고민에 빠졌다.

“대학 졸업 후 그림을 계속 그릴까 말까에 대한 갈등을 겪던 중 우연히 비디오를 활용한 디지털 아트를 접하게 됐다. 프로젝터를 벽면에 쏘는 순간, 캔버스 위에 갇혀 있던 2차원의 그림이 단번에 벽면을 가득 채우며 3D로 형식으로 움직이니 너무 재미있었다. 그때 이 분야를 제대로 공부하겠다 결심이 섰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선 미디어 아트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사실상 없었다. 그래서 해외 유학길에 올랐다.”

Q. 순수 미술을 하다가 뉴미디어 아트로 전향하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미국 UCLA로 석사 진학을 했을 땐 영어를 일절 하지 못했다. 게다가 할 줄도 모르는 컴퓨터로 코딩을 짜고 센서를 만져야 하니까 그야말로 총체적 난관이었다. 석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학위 따자마자 도망치듯 2009년쯤 한국에 돌아왔다. 근데 정작 한국에서 조금씩 일감을 얻고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으로 넓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서구권에서 아트 전시 경험이 없는 게 계속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박사를 따기 위해 영국으로 또다시 떠났다."

Q. 왜 유럽권 활동 대신 박사 학위에 초점을 맞춘 것인가.

"유럽에서 제대로 활동하려면 비자 문제 해결이 급선무였다. 안정적으로 일하며 박사 학위도 딸 겸 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박사 취득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인지 몰랐다(웃음). 특히 내가 입학한 RCA는 세계 최고의 명문 예술학교란 명성답게 수업 난도와 논문 과정이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박사 학위를 욕심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런던에서 박사 과정을 지내고 있었기에 현지에서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던 점도 분명 있었다."

Q. 특히 프로젝션 매 핑 작업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 이 작업의 매력은.

"평면 회화에서 할 수 없는 작업을 프로젝션 매핑에선 다 할 수 있다. 물론 빛이라는 제약이 있긴 하지만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고 공간적 제약이 없이 모든 물체를 내 그림으로 감쌀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흥미로운가. 박사 논문 마지막 케이스 스터디로도 쓸 정도였다. 개념적으로도 굉장히 많이 배웠다. 컴퓨터로 그린 그림이 물감으로 그린 그림과 결코 다르지 않더라. 그림을 좋아하던 내가, 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융복합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작업의 영역을 넓히는 매개체로도 크게 역할했다."

Q. 현재 런던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1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KAIST가 결정적이었다. 미대가 아닌 공대 중심의 대학에서 예술가인 내게 값진 기회를 줬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했다. 나는 기술을 활용하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테크에 관심이 많다. KAIST가 한국 테크의 본진 아닌가. 게다가 나도 학생들을 지도 교육하는 과정에서 많이 성장한다.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아트 트렌드나 새로운 디지털 기술 등을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할테니까. 한국으로 오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BTS와 컬래버 | 글로벌 프로젝트 ‘CONNECT, BTS’ 서울 전시에서 소개된 강이연 작가의 ‘BEYOND THE SCENE’ [사진=강이연]
BTS와 컬래버 | 글로벌 프로젝트 ‘CONNECT, BTS’ 서울 전시에서 소개된 강이연 작가의 ‘BEYOND THE SCENE’ [사진=강이연]

 강 작가는 XR(확장현실), VR(가상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아트 프로젝트를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품고 있다. 기술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에 아트의 형태와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들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곧 뉴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장이 될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강 작가는 “오래전부터 도전하고 싶었던 영역이지만 잘 모르는 분야라 섣불리 덤비지 못했다. KAIST에 몸담게 됐으니 학교 분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차근차근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에 찬 표정을 보였다.

Q. AI와 챗GPT 등이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꼽히는 예술 분야에도 적용되고 있다. AI 그림이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AI 기술때문에 인간의 일자리를 잃게 되는 영역이 많아질 것이고 예술 영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똑같이 그림을 베껴 그리는 단순 작업들은 더는 예술가의 몫이 되지 않을 거다. 그래서인지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신진 작가들 사이에선 AI 기술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반대로 높은 레벨에 있는 아티스트에겐 더 강력한 작업 툴로 활용될 것 같다. 쉽게 말해 시니어 아티스트에겐 하나의 무기가 더 생기는 셈이다. 결국 아티스트 간의 양극화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Q. 작가 입장에선 AI 기술의 침범이 두렵지 않은가.

"두렵다(웃음). ‘아무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는 단계는 분명히 아니다. 특히 AI 기술과 알고리즘 시스템이 개개인을 중성화하는 점이 가장 두렵다. 각자의 취향과 취미, 가치관을 희석시키고 평균화하는 게 몸소 느껴진다. 이럴 때일수록 예술가들은 ‘기술들이 내 그림을 대신 그려줄 거야’란 우려보단 선제적으로 아티스트가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는 시도에 더욱 도전하며 의식의 날을 세우는 게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김나윤 기자 abc123@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kangtaehoon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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