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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클린 테크 한상기업, 이노사이클

[고영경의 아세안 이노베이터]

  • 기사입력 2023.06.07 17:00
  • 최종수정 2023.07.07 09:36
  • 기자명 포춘코리아

매일 인도네시아의 폐 플라스틱병 천만 개를 재활용, 원자재로 만들어내는 기업이 있다. 토요타, 이케아 등 글로벌기업이 이곳을 찾는다. 이곳의 성공스토리는 1970년대, 한국의 섬유기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재혁 대표(왼쪽 둘째)와 이노사이클 경영진이 자카르타에서 주식 공모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노사이클]
최재혁 대표(왼쪽 둘째)와 이노사이클 경영진이 자카르타에서 주식 공모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노사이클]

2019년 7월10일 인도네시아 증권거래소에 ‘이노사이클 테크놀로지 그룹(PT Inocycle Technology Group Tbk, 이하 이노사이클)’이 상장됐다. 리사이클 폴리에스터를 생산하는 그린테크 기업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기관 참여가 이어지면서 약 126억원의 공모금액이 모였다. 열기는 상장 이후에도 이어졌다. 상장 첫날 주가는 거래 시작과 함께 공모가 대비 50% 치솟았다. 

이노사이클의 상장은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한국계 기업이 인도네시아 자본시장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테크 붐과 ESG 열풍 속 등장한 수많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기업)과는 결을 달리한다. 대표적 한상(韓商) 기업가로 알려진 최정효 회장 일가가 30년 전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씨를 뿌리고 키워온 하이론 그룹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이노사이클을 이해하려면, 하이론(PT Hilon, ※‘PT’는 유한주식회사를 의미)의 현지 정착과 성장의 역사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하이론. 젊은 세대에는 생소하지만, 중장년층은 한 번쯤 접해봤을 이름이다. 1970년대부터 히트했던 침구류 브랜드가 바로 하이론이다. 1970년 이불 솜 생산에서 시작한 대양산업을 모태로 한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근로자들이 플라스틱 병을 분류하고 있다 [사진=이노사이클]

저임금, 동남아 내수시장 겨냥 진출

대양산업은 전문 섬유기업으로, 소비재인 침구류에서 시작해 산업용 폴리에스터 부직포까지 사업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최 회장은 일찍이 폴리에스터 부직포 시장이 클 것이라고 보고 사활을 걸었다. 폴리프로필렌보다 단가는 비쌌지만, 내구성과 내열성이 우수해 자동차 내·외장재 등 산업용부터 일반 소비재 용품까지 폭 넓게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의 예상대로 폴리에스터 부직포 수요는 빠르게 늘었고, 자체 브랜드 ‘하이론’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성장했다.

매출이 늘자, 대양산업은 생산시설과 시장 확대를 노리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89년 인도네시아에 PT 하이론을 설립했고, 이어 인도와 호주에 현지법인을 세웠다. 인도네시아는 임금이 낮아 원가 경쟁력이 컸다. 또 향후 동남아 시장의 부직포 수요도 노려봄 직했다. 이후 10여년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반둥에 모두 4개의 신규 공장 세우고, 추가로 현지 공장도 인수하면서 생산 능력을 키웠다. 주로 산업용 부직포, 침구류, 신발용 부직포 등을 생산했으며 이어 ‘하이론폼(현 유렉셀테크놀로지)’을 추가로 설립해 폴리에스터폼(※3차원 구조의 플라스틱) 생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피해가진 못했다. 일부 생산시설을 매각하고, IT 섹터에도 발을 들였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하이론의 경쟁력은 결국 섬유산업에 있었다.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설계하려면 보다 과감한 전략적 선택이 필요했다. 2002년 하이론코리아㈜를 청산하고 인도네시아 현지 투자를 더 확대하면서 그룹의 무게중심을 옮기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 또다른 회사를 만들었는데 바로 ‘하이론 펠트(PT Hilon Felt)’, 오늘날의 이노사이클이다. 하이론 그룹은 당시 산업용 부직포와 자동차용 고밀도 패딩, 각종 필터, 침구류 등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이론 펠트에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렇게 찾아낸 영역이 바로 재생 폴리에스터 섬유였다. 

최근 ESG 경영이 화두로 부상했지만, 지속 가능성과 친환경 이슈는 1987년 유엔환경계획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에서 ‘브룬트란트 보고서’(※당시 위원장이었던 노르웨이 총리의 이름)를 채택한 이래 꾸준히 글로벌 의제로 등장해 왔다. 특히 2006년 유엔이 ‘사회책임투자 원칙’을 제정하면서 투자자들은 투자 기준을 바꿨고, 이는 기업에 압력으로 작용했다. 

이런 압력은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기회이기도 했다. 외면 받던 순환경제 관련 사업이 성장의 변곡점을 맞은 것이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비중이 높은 데다,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 세계 2위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어 친환경 전환이 어느 나라보다 절실한 상황이었다. 하이론은 이런 글로벌 흐름을 따라잡으면서 인도네시아 현지의 클린 테크를 개척했다. 

자카르타 중심가에 위치한 쇼핑몰 '그랜드 인도네시아 몰'에 설치돼 있는 플라스틱 페이의 폐플라스틱병 수집기계 [사진=이노사이클]
자카르타 중심가에 위치한 쇼핑몰 '그랜드 인도네시아 몰'에 설치돼 있는 플라스틱 페이의 폐플라스틱병 수집기계 [사진=이노사이클]

토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 고객사로

하이론은 2011년 자바섬 중부의 카랑가냐르와 북부 스마랑에 공장을 짓고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모조케르토와 팔렘방까지 진출하면서 생산 능력을 증진시켰다. 

관건은 재생할 폐플라스틱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버려진 플라스틱을 충분히 수거해 조달하기란 쉽지 않다. 하이론은 스타트업 방식으로 솔루션을 찾았다. 

하이론은 2019년 ‘플라스틱페이 테크놀로지 다우루랑(PT Plasticpay Teknology Daurulang, 이하 플라스틱페이)’이라는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점에 드롭박스를 설치하고, 사용자가 드롭박스에 플라스틱 병을 넣으면 ‘고페이’나 ‘오보’ 등 현지 전자지갑 결제 시스템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한다. 현재 441개의 수거 포인트를 운영하고 있다. 또 현지 슈퍼마켓 체인 ‘알파마트’와 음료 프랜차이즈 업체 ‘챗타임’ 등 기업들과 파트너쉽을 맺었다. 

플라스틱페이가 도입되면서 폐플라스틱 수거부터, 분류, 가공을 거쳐 폴리에스터 단섬유(PSF, 솜처럼 섬유 길이가 짧은 제품) 생산, 그리고 이를 활용한 소비자용 상품까지 하이론-이노사이클은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했고, 그 결과 국제재생표준인증(GRS,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글로벌 인증기관 ‘컨트롤 유니온’에서 만든 인증. 재생원료를 20% 이상 포함하고, 사용이력을 추적할 수 있는 등 조건을 갖춰야 함)을 받는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마침내 인도네시아 자본시장에 한국계 기업 최초로 상장하는 길을 열었다. 

2019년 7월 10일 인도네시아 증권거래소 상장 첫날 이노사이클과 거래소 관계자들이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이노사이클]
2019년 7월 10일 인도네시아 증권거래소 상장 첫날 이노사이클과 거래소 관계자들이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이노사이클]

친환경 소재 비율을 높이려는 글로벌기업들의 수요가 늘면서, 이노사이클 매출도 함께 커지고 있다. 2018년 이래 매년 16%씩 성장하고 있으며, 2022년엔 6920억 루피아(한화 약 610억원)를 기록했다. 이 회사 생산 물량의 70%를 리사이클 PSF가 차지하고 있으며, 물량의 90%를 현지에서 소화하고 있다. 토요타와 혼다, 미쓰비시, 닛산, 이토츄 등 완성차 업체와 글로벌 가구기업 이케아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모기업 하이론이 인도네시아에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지 못했다면 지금 이노사이클 상장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재혁 이노사이클 대표는 (고영경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하이론이 30년 동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1989년 인도네시아에 처음 진출한 이래 매년 이익을 현지에 재투자하는 등 현지화에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이론은 인도네시아 전역에 20여곳의 생산기지와 유통망을 구축했으며, 전체 3500명 임직원 중 대부분은 현지인이다. 

하이론과 이노사이클의 비전을 묻는 질문에 최대표는 “1등 ESG 환경기업으로 성장해 경제와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는 2억8000만명 인구와 자원을 바탕으로 나날이 성장하고 있지만, 폐자재의 재활용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노사이클이 구축한 순환경제 시스템은 그 역할이 분명해 보인다. 

글로벌 기후위기는 어느 한 국가나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노사이클은 매일 1000만개 이상 폐플라스틱병을 수거해 리사이클 공정에 투입하고 있다. 이머징 마켓에서 비즈니스 모델과 순환경제 에코시스템을 함께 구축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이노사이클이 인도네시아를 넘어 글로벌 그린 혁신의 아이콘으로 우뚝 서길 응원하는 이유다. 

/ 글 고영경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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