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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트립] “여행은 자신감의 원천, 다보스도 그랬죠”

다보스포럼에 간 첫 한국 스타트업, 신상훈 그린랩스 CEO

  • 기사입력 2023.04.05 16:44
  • 최종수정 2023.07.07 09:43
  • 기자명 문상덕 기자

“이륙하는 비행기는 변화의 상징이다. 우리는 비행기의 힘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삶에서 이와 유사한 결정적인 변화를 상상한다. 우리를 짓누르는 억압들 위로 솟구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우리는 낯선 환경, 새로운 인연에서 영감을 얻는다. 기업인들도 그렇다. 스무 살 언저리의 스티브 잡스는 인도 갠지스 강을 걸으며, 수행자들과 함께 명상하며 일곱 달을 보냈다. 이본 쉬나드는 남아메리카 파타고니아 지역을 트레킹하면서 친환경 의류 브랜드를 떠올렸다.

Trip, Travel, Tour, Explore, Adventure…. 여행의 종류는 다양하다. 각자의 여행에서 기업인들은 어떤 영감을 길어 올리고 있을까. 3월호부터 트립웨어 브랜드 ‘로우로우(RAWROW)’를 운영하는 이의현 대표가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나 ‘날것(RAW)’의 여행기와 영감을 묻는다. 

신상훈(가운데) 그린랩스 CEO가 세계경제포럼(WEF) 식량혁신 분과 피칭을 지켜보고 있다. 왼쪽은 ‘미국판 컬리’ 인스타카트(Instacart)의 대니 듀덱(Dani Dudeck) 최고기업업무책임자(CCAO), 오른쪽은 곤충을 식품 원료로 쓰는 옌섹트(Ÿnsect)의 앙투안 휴버트(Antoine Hubert) 창업자 겸 CEO다. 두 업체 모두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유니콘’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그린랩스]
신상훈(가운데) 그린랩스 CEO가 세계경제포럼(WEF) 식량혁신 분과 피칭을 지켜보고 있다. 왼쪽은 ‘미국판 컬리’ 인스타카트(Instacart)의 대니 듀덱(Dani Dudeck) 최고기업업무책임자(CCAO), 오른쪽은 곤충을 식품 원료로 쓰는 옌섹트(Ÿnsect)의 앙투안 휴버트(Antoine Hubert) 창업자 겸 CEO다. 두 업체 모두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유니콘’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그린랩스]

인구 1만명 도시 다보스는 매년 1월 딴판이 된다. 닷새간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때문이다. 전 세계 정·재계 및 학계 인사 3000여명이 몰린다. 각국 정상급 인사와 글로벌기업 CEO들이 간다. 포럼 파트너 자격이 되려면 연매출이 적어도 10억 달러는 넘어야 한다는 게 공공연한 이야기다.

신상훈 그린랩스 CEO도 초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이노베이터’ 자격이었다. 한국 스타트업 중에선 처음이었다.

포럼 측이 신 CEO를 초청한 이유는 식량위기 때문이다. 쟁쟁한 글로벌기업이 새로운 종자와 농약 같은 기술을 뽐냈지만, 그린랩스의 접근법은 달랐다. 온라인 플랫폼을 바탕으로 영세농을 연결해서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농민들의 당근마켓’인 셈이다. 작물별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농민 90만명이 이 회사 앱 ‘팜모닝’을 쓴다.

포럼 측은 신 CEO를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높은 이해가 필요한 프로젝트들을 수행해온 IT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그는 과거 콘텐츠 플랫폼 ‘리디’, 소개팅 앱 ‘아만다’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초청은 한 해로 끝날 수 있다. 신 CEO는 하루 두세 시간 쪽잠으로 닷새를 버텼다고 말했다. 낮에는 15분 간격으로 피칭하고, 밤엔 행사에 참석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면 한국 업무를 처리했다. 그는 닷새간 강행군을 버틴 힘으로 현장에서 얻은 자신감을 이야기했다.

제주 한라봉은 썬키스트가 될 수 있을까

Q 그린랩스로서도 중요한 마일스톤이었을 텐데.

플랫폼 서비스는 자신 있었어요. 한국에서 잘하고 있었으니까요. 같은 콘셉트를 해외에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특히 관심이 많았어요.

Q 3000여명이 참석했는데, 시간이 부족하진 않았나요?

저는 20여개국 장관을 만났어요. 자리가 없으면 커피, 빵 들고 서서 15분씩 이야기했어요. 헤어진 뒤 실무진끼리 의견을 나누고요. 흥미를 보이면 다음날 다시 15분간 논의해요. 평소에 만나기 힘든 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지역 장관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특히 좋았어요.

Q 그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요?

엘리베이터 피칭하듯이 1분 안에 회사 소개를 해요. 사전에 자료를 미리 보내거든요. 상대방도 다 알아보고 만나는 거죠. 제안할 내용을 생각해와서 핵심만 주고받다 보면 시간이 끝나요.

신상훈 (오른쪽) CEO는 농업인 커뮤니티에서, 이의현 대표는 패키지 디자인의 혁신에서 농업은 여전히 부가가치를 키울 수 있는 산업이라고 봤다. [사진=포춘코리아]
신상훈 (오른쪽) CEO는 농업인 커뮤니티에서, 이의현 대표는 패키지 디자인의 혁신에서 농업은 여전히 부가가치를 키울 수 있는 산업이라고 봤다. [사진=포춘코리아]

Q 어떤 점에서 답답해하던가요?

플랫폼에서 농민들이 더 나은 생산법을 나눌 수 있고, 정부도 농민 개개인에게 접근할 수 있어요. 가장 큰 장점은 저희가 작물을 수매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한 분 한 분은 경쟁력이 약하지만, 수매를 해서 규모를 이루면 수출할 때 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거든요.

Q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를 꼽자면.

헝가리 외교부 장관과 만났어요. 엄청난 세일즈 맨이었는데, 토지와 세제를 포함한 다양한 혜택들을 깔끔하게 제시해줬어요. 헝가리라는 나라도 매력적이었어요. 농업 비중이 크거든요(2020년 전체 수출액에서 농업 및 식료품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8%). 그리고 지난 몇 년간 헝가리에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가 한국이었어요. 2차전지 생산공장이 헝가리에 많습니다.

Q 다른 에그테크 기업은 스마트팜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저희도 시작은 스마트팜이었어요. 식량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라고 봐요. 하나는 좋은 시설을 만들어서 생산을 늘리는 거죠. 그게 스마트팜이고요. 저희는 농민들의 생산성을 일괄적으로 조금씩 올리는 방식을 택했어요. 지금 있는 플레이어와 함께 가는 방식이거든요. 그게 임팩트가 더 크다고 봤어요. 그리고 스마트팜에서 저희가 한국에서 3년만에 업계 1등을 했는데, 2000곳밖에 못했어요. 한국 농가 수가 100만 가구거든요. 답이 아니라고 봤어요.

Q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만다도 본질은 사람을 연결하는 거죠.

농업에서 플랫폼 서비스를 하는게 특이하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다른 산업에 다 있는 서비스가 농업에만 없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Q 저도 그래서 응원해요. 왜 천안 호두과자는 도쿄 바나나(바나나 모양의 과자)가 되지 못할까. 제주 한라봉은 왜 썬키스트가 되지 못할까.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같은 말들이 나오는데, 저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고여 있는 산업만 끌어올려도 될 것 같거든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못할 건 없죠. 썬키스트는 품종, 생산과정을 균일화한 게 핵심인데요. 팜모닝도 농민 커뮤니티잖아요. 커뮤니티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빌드 업 하는 것도 가능하죠. 지금도 작물별로 커뮤니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설향(딸기 품종) 커뮤니티에서 ‘서울 딸기’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앞으로 가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Q 저는 패키지 디자인을 바꿔보면 어떨까 했어요. 해외에선 패키지에 붙는 용어나 폰트까지도 관리하더라고요. 스위스산은 ‘메이드 인 스위스’가 아니라 ‘스위스 메이드’고요, ‘메이드 인 이태리’는 꼭 이탤릭체로 써요. 또 어떤 사과농장을 가서 박스 디자인을 어떻게 했는지 물은 적이 있었어요. 포토샵 쓸 줄 아는 누군가가 만들었겠거니, 짐작만 하더라고요. 이런 부분은 아쉽죠.

농가 하나하나가 지역별로 흩어져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데, 예를 들어 전국에 흩어져 있는 딸기 농가 100곳이 모이면 얘기가 다르거든요. 다보스에서 저희 초청한 이유가 이런 것이기도 했어요.

신상훈 그린랩스 CEO [사진=포춘코리아]
신상훈 그린랩스 CEO [사진=포춘코리아]

“여행은 일, 일은 호기심”

Q 다보스까지 가는 길은 어땠나요?

직항은 없고, 보통 항공편으로 뮌헨이나 밀라노를 경유해서 취리히로 가요. 저는 헬싱키에서 경유했어요. 그게 제일 저렴해요(웃음). 공항에서 기차로 두시간 반을 더 가야 다보스에 도착합니다.

Q 한국 행사도 크게 열렸다고 들었습니다.

코리아 나이트. 다보스포럼에서도 큰 행사 중 하나였어요. 다보스에 온 정상 중에 메인이 독일과 한국이었어요. 경제사절단이 아랍에미리트 갔다가 바로 넘어왔잖아요. 대통령, 장관, 기업 총수도 모두 있고요.

Q 다보스 말고도 출장 자주 다니세요?

30~40개국은 가본 것 같네요. 동남아는 미얀마 빼고 다 가봤어요.

Q 기억에 남는 곳이 있나요?

실리콘밸리는 에그테크 스타트업이 많았어요. 뉴욕에선 버티컬 팜이 굉장히 많고요. 바이오나 케미컬 쪽 기업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어요. 비료나 농약, 씨앗을 연구하는데, 사실 농업 기술의 응집체죠. 다보스포럼에서도 이 분야를 다루는 바이오나 케미컬 업체들이 많이 참여했어요. 환경오염이 가능한 한 덜 되면서도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해충이 다 죽는다는 식이죠. 그런 걸 보면서 저희는 생각해요. 플랫폼에 빨리 사람을 모아서 이런 기술들을 퍼뜨려야겠다.

Q 대표님에게 여행은 시장조사네요.

관광에는 크게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과 연결점을 찾아내는 게 재밌어요. 여행이 전원 플러그를 빼는 건 아니고, 일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일 때문이라기 보단 개인적인 호기심이 더 커요. 호기심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Q 발권부터 해버리면 가게 되더라고요.

저는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이 시차예요. 그러면 갈 수 있는 나라가 좀 정해져 있어요. 도쿄는 1박2일로도 다녀오잖아요. 원격근무를 하기도 좋고요. 뉴욕이나 파리 이런 데는 일주일 정도는 시간을 내야 하니까요.

Q 여행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을 떠올린다면.

제가 원래 커피를 잘 안 마셨어요. 그런데 10여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알프스로 가는 고속도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거든요. 어떻게 이런 맛이 있지 싶게 맛있었어요.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커피를 하루에 세네 잔씩 마셨죠. 그때 커피에 입문했어요. 그런데 한국에선 그 맛이 안 나더라고요. 이번에 다보스를 가니 또 그 맛을 찾았어요. 물맛인 것 같아요. 참 신기했어요.

Q 못 가본 나라 중에 가보고 싶은 곳은?

더 여행하고 싶은 데는 동유럽. 헝가리, 폴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그리고 전쟁 끝나면 우크라이나도 가보고 싶고요. 중앙아시아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은데 사실 농업으로 유명하거든요.

Q 저는 여행은 ‘노 플랜 이즈 베스트 플랜’이라고 생각해요. 대표님은 어떤 여행을 즐기세요?

저는 여행 갈 때 주제 하나만 정하면 됩니다. 최근에는 베트남 메콩강 삼각주를 다녀왔어요. 1년에 3모작하는 지역이거든요. ‘메콩강 일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구경하러 간다’고 주제를 정해요. 그러면 가이드해줄 분을 구해요. 앱 서비스를 통해서라도 구해요. 그러면 가이드가 현지 분들과 접점을 만들어줘요.

Q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과 교류할 때 인사이트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게 여행의 장점이죠.

여행을 다녀오면 자신감이 채워져요. 이런 데 가서도 잘 살 수 있구나, 새로운 사람들과 잘 이야기할 수 있구나, 더 잘할 수 있겠다. 다보스에서도 그랬습니다.


신 CEO와 그린랩스는 올 초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농산물 도매 유통 비즈니스를 빠르게 키우다가 경기가 나빠지면서 자금난에 빠졌다. 지난 3월 두 창업자가 사퇴하고, 지분을 대부분 포기하는 조건으로 기존 투자사들로부터 500억원을 수혈받았다. 신 CEO는 급여를 자진 삭감했다.

고강도 구조조정도 함께 진행했다. 500명 안팎이던 임직원 규모는 150명 수준으로 줄었다. 한때 유력 IT기업들이 서울 문정동 그린랩스 사무실 근처에 부스를 차리고 퇴사 인력을 스카우트했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만큼, 임직원과 회사 모두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어야 했다.

위기를 추스르기도 바쁜 때지만, 신 CEO는 해외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었다. 


/진행 이의현 로우로우 대표, 정리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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