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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강에서 만난 사람] 정운찬 전 국무총리

"'함께 가야 멀리 간다'는 당연한 원리 실천 못해 안타까워"

  • 기사입력 2022.08.18 08:30
  • 기자명 선년규 기자
정운찬 교수는 “정부는 내각 구성을 비롯한 인사정책에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다양성 없이는 창의성이 고취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운찬 교수는 “정부는 내각 구성을 비롯한 인사정책에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다양성 없이는 창의성이 고취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경제에 대해 “‘함께 가야 멀리 간다’는 당연한 원리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쓴소리를 했다. 경제와 안보 패권 환경과 관련해선 동반성장 만이 우리나라가 헤쳐나갈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울프강스테이크하우스에 마련된 ‘포춘룸’에 두 번째로 초대된 정 교수는 국무총리‚ 총장(서울대)‚ 위원장(동반성장위원회)‚ 코미셔너(KBO)‚ 이사장(동반성장연구소) 등 여러 이력에도 불구하고 교수라는 호칭으로 불러주길 원했다.

정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을 때 윤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예견했다고 한다. 일반 경제학자가 그 책을 읽었다면 몰라도, 법학을 전공한 분이라면 그 책을 읽고 밀턴 프리드먼 식의 신자유주의에 빠져들까봐 걱정을 했다는 것. 

이후 윤 대통령의 취임사를 들으니 내 걱정이 맞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직 총리로 초청된 취임식장에서 윤 대통령의 취임사를 듣는데 ‘자유’라는 단어는 30여차례 언급되는데, ‘평등’이라는 단어는 들리지 않았다. 

“자유를 강조했는데 본래 자유는 좋은 가치다. 다만 실질적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려면 경제적으로 강자와 약자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줄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바로 동반성장이라는 것이 정 교수의 지론이다. 지난 5월 새정부가 5대 그룹 대표들과 모인 자리에서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강조했지만, 현실적인 내용이 없다고 정 교수는 보고 있다. 외형보다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갖춘 동반성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내각 구성에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다양성 없이는 창의성이 나오기 힘들다. 삼성하고 대우를 들여다봐도 확연하다. 대우는 해체됐고, 삼성은 어떻게 일류기업이 됐을까? 답은 두 그룹의 인적 구성의 차이 때문이다. 대우는 한정된 인력풀에서 인재를 구했지만, 삼성은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넓은 인력풀을 다양하게 구성했다. 이런 점에서 회사의 미래가 결정되듯이, 국가도 인력풀을 다양화해야 새로운 생각, 창의적인 생각을 끌어모을 수 있고, 이를 정책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 현 정부에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하나 있는데, 데이비드 할버스탬의 <더 베스트 앤드 더 브라이티스트(The Best and the Brightest)>이다. 존 F 케네디 시절 인사정책에 대해 쓴 책인데, 우수하고 뛰어난 인재들로만 행정부를 구성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정책적 결과물은 월남전 개입처럼 형편없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정운찬 교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려면 경제적으로 강자와 약자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줄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운찬 교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려면 경제적으로 강자와 약자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줄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청년실업·고령화 문제 심각
지역간·기업간·세대간 동반성장으로 풀어야

Q 기왕 말씀하신 김에 우리나라의 현 경제 상황을 진단한다면?

우리나라는 과거에 누적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고 경제의 대외의존성이 높기 때문에 매우 큰 불확실성 앞에 놓여 있다. 과거 위기 때에는 세계화를 배경으로 수출을 늘려 위기를 탈출하곤 했는데, 지금은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모든 나라가 어렵다. 대외적 요인의 향방과 정부의 대응에 따라서 거시경제의 앞날이 좌우될 것이다. 다만 부동산 등 자산 불평등은 더 심해졌고, 저성장과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며 사회통합도 쉽지 않아 보인다. 세대간 갈등도 문제이고, 저출산 문제도 심각하다. 

Q 최근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부동산, 청년실업, 고령화 문제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면?

1인가구가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주택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공간적으로 수도권 집중이 너무 심해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금융, 세제 등 제도들도 그동안 땜질 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많이 왜곡되어 있다. 제도의 선진화와 함께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실질적 동반성장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소수의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 등이 좋은 일자리이고, 나머지 80% 이상의 일자리가 현실적으로 청년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기형적인 상황이다. 장벽을 낮추고, 장벽 안과 밖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고령화 문제 역시 세대 간 상생, 동반성장의 방식으로 풀면 된다. 예를 들면 은퇴자들의 노후 대비 자금을 청년들의 창업이나 역량강화에 투자하면 청년들의 소득이 늘면서 노인복지 자금을 위한 재원도 풍부해질 것이다. 

Q 지내오신 궤적을 보면 ‘경제민주화’ ‘상생’ ‘균형발전’으로 설명되는데….

이들 개념은 모두 동반성장이라는 틀에 집약된다. 장단기 이해가 상충하고, 상호 신뢰가 부족하고, 우리 사회 전반의 사회적 자본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동반성장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제가 ‘동반성장 전도사’를 자임하는 것도 정부 정책이나 일부 기업의 노력만으로 동반성장을 뿌리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와 시장, 시민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지난 10여년간 우리나라는 동반성장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 제가 소개했던 ‘초과이익공유(협력이익배분제)’와 같은 선진적 제도도 처음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비난을 들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최근 기업들이 앞다퉈 추진하는 ESG도 동반성장과 사촌지간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만족하면 안된다. 경제가 크려면 앞으로 동반성장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 

Q 국내 경제가 활력을 잃어간다는 평가가 있다.

활력을 잃어가는 모습은 여러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 생태계의 역동성이 떨어진 것이다. 기득권자는 진입장벽을 높이고, 후발주자는 장벽을 넘지 못한다. 결국 강자와 약자가 대등한 거래를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부동산 투기와 위험한 코인 투기 등으로 내몰린 젊은이들도 많다. 시장에 돈이 많아도 중소기업은 투자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원 배분의 비효율이 크다. 저출산 고령화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다. 대안은 약자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누구나 성장할 수 있는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동반성장 정책이다. 

정운찬 교수는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곤혹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가치와 국익을 모두 고려한 섬세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변국과 창의적 협력관계 추진해야
한반도는 ‘허브국가’로 역할 주도

Q 새정부 들어 한반도를 둘러싼 3개국, 즉 미국 일본 중국에 대한 외교정책 방향이 많이 바뀌고 있다. 국내 경제를 고려할 때 외교정책을 어떻게 추진하는 게 좋을지?

미국과는 첨단기술 중심의 협력을, 일본과도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중국과는 제조업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황에 맞는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공급망 재편, 탈탄소 대응 등 여러 측면에서 주요국들과 협력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일종의 허브국가로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Q 최근 미국과 러시아, 중국 간 힘겨루기가 점차 심화하고 있다. ‘안보와 경제’를 하나로 묶는 권역별 협정이 강화되고 있는데,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세계화라는 것도 기술패권, 정치패권이 안정적일 때 가능하다.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 세계화가 후퇴하고 지역주의가 득세하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지금이 그런 때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곤혹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가치와 국익을 모두 고려한 섬세한 대응이 필요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 중심의 경제블록, 프렌드쇼어링이라는 것을 무시해서 안되고, 중국 시장도 무시할 수 없다.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창의적 대응을 해야할 것이다. 

Q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유시장주의와 정부간섭주의가 충돌하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자유시장주의일 것이고, 1950~60년대는 정부간섭시장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특히 코로나 이후 최근에도 정부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자유시장과 정부간섭이 왔다갔다 했던 것인데, 이 과정에서 경제정책이 단순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정부 역할 중시 기조는 코로나 피해 지원 수준을 넘어 디지털 전환, 탈탄소화 등과 관련된 신산업정책, 공급능력 확충을 위한 교육, 연구개발, 인프라 투자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자유시장을 존중하면서도 정부가 꼭 해야하는 공적 책무들을 제대로 하는 균형적 기조를 찾아가는 것이 좋다. 

Q 국내에만 특수하게 존재하는 재벌과 반대급부라 할 수 있는 노동경직성에 대한 의견은?

이 부분은 한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비롯된 특수한 문제라 고치기 쉽지 않다. 다만 제도의 선진화는 꾸준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업 지배구조의 선진화 없이 기업가치를 높이기 어려운 시대다. 또 노동시장이 경직된 것은 사회안전망 부족과도 관련이 깊다. 따라서 노동경직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과 재교육 인프라 등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지나온 국내 경제정책을 보면서 가장 잘했다는 정책과 가장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꼽는다면?

가장 잘했다고 볼 수 있는 정책으로는 1950년대의 농지개혁을 꼽을 수 있다. 지주 소작 체제를 끝내고 근대적인 자본주의로 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소작농들이 자영농이 되면서 자녀 교육에 투자할 수 있었고, 시장도 커져서 고도성장의 기초가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역사상 매우 중요한 동반성장 정책이었다.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정책은 부동산 정책이다. 하나로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고 전반적으로 빚내서 집 사라는 기조가 장기간 지속됐고, 그 부작용을 고치려다 땜질처방이 많이 나왔다. 가계부채가 경제에 부담이 될 정도로 늘었고 높은 집값 때문에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Q 스승이신 조순 전 부총리께서 얼마전 돌아가셨는데….

‘준도행기 봉천수명(遵道行己 奉天受命, 도를 따라서 몸을 행하고, 하늘을 받들어 명을 받는다)’을 실천한 진정한 ‘르네상스 맨’이시다. 상아탑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를 늘 생각하셨다. 

/ 포춘코리아 대담 선년규 기자, 정리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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