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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더들은 알고 당신은 모르는 미래 먹거리 전략①] 50년 만에 찾아온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변화

  • 기사입력 2021.07.28 11:43
  • 최종수정 2021.08.26 09:37
  • 기자명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

 

<이 콘텐츠는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2021년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2021년 지금, 팬데믹의 영향으로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 반도체도 ‘맞춤형 시대’에 돌입했고 자동차업계는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하고자 로봇과 AI를 접목하며 무한경쟁 중이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되려 유례없는 주가 급등을 이끌며 주목받는 해운시장도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며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각 산업별 전문가를 통해 이들 분야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들여다보며 왜 이들 분야가 미래 먹거리로 주목 받는지 알아본다. <편집자주>

 

최근 들어 반도체 산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 50여년 간 이어진 반도체 성능의 눈부신 발전은 항상 인류 기술 산업의 진보의 중심이었다. 언제나 우리 사회의 핵심이었던 반도체가 이제와 새삼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수십년 간 이어진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본질이 송두리째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성장동력 한계점에 이르러

반세기에 걸친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핵심에는 인텔의 공동창업자 고든 무어가 1965년에 발표한 ‘무어의 법칙’이 있었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의 크기는 2년마다 2배씩 작아질 것이라는 경험에 근거한 예측이었다. 더 작은 반도체를 만들어 내는 제조 공정의 눈부신 발전은 그후 무려 50여년에 걸쳐 이 대담한 예측을 실현해냈다.

반도체가 작아지는 것은 단순히 크기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데나드 스케일링과 폴락의 법칙에 따라, 반도체가 작아질수록 소비 전력은 줄어들고 동작 속도는 빨라졌다. 마치 거대한 철문보다 작고 가벼운 문을 더 적은 힘으로 빠르게 여닫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단위 면적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의 개수가 늘어나면서 성능과 효율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에도 비용은 증가하지 않았다. 애플 아이폰 6의 출시 메시지는 무어의 법칙에 기반한 혁신을 잘 드러내준다 – “최초의 20nm 공정 반도체를 사용하여 CPU 성능은 25%, 그래픽 성능은 50% 증가하였으며 배터리 소모는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물론 반도체가 아닌 소재, 부품, 소프트웨어 등 다른 기술 영역에서도 성능과 효율, 비용의 혁신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처럼 수십 년에 걸쳐 월등한 폭의 혁신을, 특히 예측 가능한 주기로 달성한 것은 어떤 산업을 찾아봐도 극히 드문 사례이다.

2년 마다 새로운 반도체 공정이 도입되고 이를 통해 하드웨어 성능과 효율이 진일보한다는 점. 따라서 하드웨어의 교체 수요가 발생하고, 더욱 강력한 소프트웨어가 출시될 수 있다는 점. 이는 반세기 동안 인류 기술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었으며 약 30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시스템 반도체 산업 뿐만 아니라 반도체를 사용하는 모든 기술 산업 분야에 어마어마한 가치를 창출한 마법 공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 공식은 마침내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다. 여전히 반도체의 크기는 작아지고 있지만 성능과 효율의 개선이 예전만 못하고, 무엇보다 이러한 신규 공정에서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한 비용이 극단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일부 고성능 어플리케이션을 제외하면 신공정만으로는 혁신을 지속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한계야 말로 우리가 지금 반도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기존의 성장 동력이 한계에 부딪히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필요로 하는 지금이야 말로, 도전과 함께 커다란 기회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전용 반도체의 시대

무어의 법칙의 마지막 전성기, 새로운 제조 공정이 혁신을 주도하였을 때는 인텔, 퀄컴, 엔비디아와 같은 반도체 공룡들의 범용 반도체 (General-Purpose Semiconductor)가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였다. 컴퓨팅, 모바일, 그래픽, 각각의 영역에서 주도권을 잡은 이들 업체는 막대한 투자를 기반으로 누구보다도 먼저 신규 공정을 기반으로 월등한 성능의 범용 반도체를 출시하였다.

고객들은 이런 범용 반도체를 구매하는 것만으로 2년마다 동등한 비용으로 혁신에 가까운 하드웨어 성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이 저물어 가면서, 범용 반도체에 의존한 혁신 역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사실, 다양한Use Case에 대응해야 하는 범용 반도체는 단 하나의 Use Case에 최적화된 전용 반도체보다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맞춤복이 기성복보다 내 몸에 잘 맞을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다만 반도체 전문 기업이 최신 공정에서 출시하는 신규 범용 반도체의 성능이 충분하였기 때문에, 높은 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하며 나만의 전용 반도체를 개발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신의 범용 반도체가 더 이상 차별화된 혁신에 필요한 월등한 성능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의 자동차, 노트북 컴퓨터, 데이터센터를 차별화하는 것은 이미 최신 공정의 범용 반도체가 아니라 Use Case에 최적화된 전용 반도체임을 알 수 있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기능 도입 초기 엔비디아의 범용 반도체를 사용하였지만 곧 자체적으로 독자적인 반도체를 설계하여 자율 주행 경쟁에서 앞서 나갔다.

당시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반도체가 1Watt의 전력으로 1초에 1조번의 정수 연산 성능 (2 TOPS/W)을 보인데 비해, 테슬라의 전용 반도체는 같은 전력으로 1초에 2조번의 정수 연산을 수행할 수 있었다 (1 TOPS/W). 테슬라의 반도체 기술이 엔비디아보다 뛰어난 게 아니다. 자동차 회사들의 다양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구동해야 하는 엔비디아와 달리, 테슬라는 전용 반도체에 스스로 필요한 기능만 담았기 때문에 격차를 만들 수 있었다.

애플 또한 자사의 노트북 컴퓨터에 더이상 인텔의 CPU가 아닌 독자적으로 설계한 CPU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데이터센터 반도체 시장도 막강한 제조 공정 경쟁력에 기반한 인텔의 아성이 무너지면서 변혁이 도래하고 있으며 구글, 아마존과 같은 하이퍼스케일러 데이터센터들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전용 반도체를 도입하고 있다.

이처럼 전용 반도체의 도입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향후 어떤 분야에서든, 혁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Use Case에 최적화된 전용 반도체 개발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보스톤 컨설팅 그룹이 2020년 말 발표한 세계의 가장 혁신적인 10대 기업 목록에서 반도체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은 3개 뿐이다. 이 10개 기업 중에서 독자적인 전용 반도체를 설계하지 않고 있는 기업은 단 한군데도 없다.

새로운 과제

이처럼 무어의 법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용 반도체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혁신 선도 기업을 중심으로 전용 반도체의 적용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전용 반도체 개발이 완전히 활성화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한 해 동안 새롭게 개발되는 고성능 전용 반도체는 전 세계를 통틀어 2백여 건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1년 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등록되는 신규 앱이 백만 개가 넘는 것과는 대조되는 수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반도체 개발에는 모바일 앱 개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비용과 시간, 그리고 리스크가 발생한다. 100억에서 1000 억 원이 넘어가는 개발 비용과 1~ 2년에 달하는 총 개발 기간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전용 반도체 개발에 도전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전 세계 고객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도 거대 기업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높은 비용과 긴 개발 기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 기술과 플랫폼 기반의 생태계가 발전하면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개발 효율성은 눈부시게 개선되었다. 몇 명의 재능있는 학생들이 모여 몇 달 동안 노력하면 창의적인 앱을 세계 무대에 선보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반도체 산업에서는 이렇게 눈부신 개발 효율성의 혁신이 보이지 않은 걸까? 혹자는 반도체 개발이란 소프트웨어 개발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반도체를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빠르게 개발하려는 시도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무어의 법칙 시대에서는 맞는 말이다. 계속해서 더 작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공정이 개발되고, 이러한 신공정에서 막대한 성능 향상이 일어나는 시대 말이다. 이럴 때에는 반도체를 더 작게 만드는 공정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기존의 설계를 재사용하기보다는 신공정에 맞춰 재설계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성공 공식이 된다.

그렇게 개발된 신공정 반도체는 진일보한 성능 덕분에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하고, 이는 높은 판매량으로 이어져 막대한 개발비 또한 정당화된다. 즉, 무어의 법칙 아래 반도체 산업은 큰 투자로 큰 수확을 추구하는 범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하는 규모의 산업으로 진화한 것이다. 좀더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무어의 시대에서 더 싸고 빠른 반도체 개발은 불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불필요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이 무너지고 신공정은 비용에 합당한 성능의 혁신을 더이상 보장하지 않는다. 혁신을 위해 Use Case에 최적화된 다양한 전용 반도체의 개발이 반드시 필요한데, 현재의 설계 방법론과 가치 사슬로 인한 고비용 구조가 전용 반도체 개발 확산에 한계를 드리우는 상황, 바로 이 간극이야 말로 반도체 산업이 맞이한 커다란 위기이자 동시에 전체 산업의 구조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큰 기회이다.

반도체를 둘러 싼 산업 현황을 살펴 보면 이러한 기회와 한계의 공존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혁신적인 반도체 개발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은 급증했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적지 않은 비용을 조달하며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전문성을 확보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전 세계의 모든 자동차 업체들이 자체 반도체 개발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지만, 차별화에 필요한 반도체 전문성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이퍼스케일러 데이터센터는 다양한 기능을 고성능으로 제공하기 위해 전용 반도체 개발이 필요하지만, 기존의 개발 기간으로는 고객사의 일정에 맞출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앞으로 반도체 산업에 주어진 과제는 보다 효율적으로 전용 반도체를 설계, 개발할 수 있는 기술 및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새로운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신공정에서 만들어내는 범용 반도체가 아니라, 최소의 비용으로 Use Case에 최적화할 수 있는 전용 반도체가 주도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반도체 산업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기술 산업 분야에서 혁신이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원동력을 만들어 낼 것이다.

반도체 주권의 대두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지난 50여년 간 규모를 중심으로 진화한 반도체 산업은 이제 그 진화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과 맞물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대립이 첨예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의 진화 방향성이 바뀌고 있는 지금, 미래 반도체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과 대립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데이터센터, 모바일, 인공지능 등 혁신 기술 산업에서 미국이 갖고 있는 절대적인 주도권에는 이러한 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인텔, 퀄컴, 엔비디아와 같은 미국 반도체 설계 기업의 영향이 크다. 반도체를 둘러싼 지정학적 요인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은 슈퍼컴퓨터인데, 핵무기 개발을 포함한 국가 수준의 과학기술 연구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2013년 중국은 천 개 이상의 인텔 Knights Corner CPU를 활용하여 슈퍼컴퓨터 Tianhe-2를 개발하였는데 2015년 인텔의 차세대 제품인 Knights Landing을 써서 그 성능을 2배 끌어올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우려한 미국은 Knights Landing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였고, 이로 인해 중국의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일반적인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CPU,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모바일 AP, 그래픽 및 인공지능 추론 연산에 폭넓게 활용되는 GPU와 같은 핵심 반도체 제품을 미국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혁신을 위해 필요한 반도체를 미국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것은 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이 기술, 경제 및 안보의 일부 영역까지도 미국에 의존성을 갖게 되는 요인이 된다.

그런데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이 전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바뀐다는 것은 인텔, 퀄컴, 엔비디아 등이 갖고 있는 기존의 주도권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인텔은 고성능 신공정 반도체를 주기적으로 출시하며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9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차지해 왔지만,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다다르며 신제품 출시에 심각한 지연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양한 업체가 인텔 제품 대체를 노리며 다양한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는데, 이는 바이두와 알리바바를 비롯한 중국 업체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중국이 독자적인 데이터센터용 반도체를 확보하게 된다면, 미국은 중국의 데이터센터들이 어떤 규모로 어떻게 구축되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중국은 어마어마한 재원을 동원하여 ‘반도체 굴기’로 일컬어 지는, 중국 자체적인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Knights Landing을 활용한 Tianhe-2 업그레이드 계획이 좌절되자 인텔에 의존하지 않은 독자적인 슈퍼컴퓨터 전용 반도체를 설계하였는데, 이를 기반으로 개발된 TaihuLight라는 신예 슈퍼컴퓨터는2016년 부터 2018년까지 전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 자리를 지켰다. 이 사건을 미국 국방위원회는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 들였고, 고성능 반도체 영역에서 미국의 주도권 강화를 요구하는 보고서를 발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렇게 전용 반도체로 인해 반도체의 설계가 다변화 되면 다양한 반도체를 생산하는 제조 플랫폼, 즉 파운드리의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 이러한 반도체 제조 플랫폼 기술은 대만의 TSMC사와 대한민국의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인텔은 오랫동안 압도적인 공정 기술을 자랑했으나, 자사 제품 제조에 집중해 왔기 때문에 다양한 고객의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로서의 경쟁력은 부족한 상태이다. 또한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아부다비 국부펀드에 매각된 글로벌 파운드리사는 10nm 이하 첨단 공정 개발을 포기하였다. 즉, 반도체 제조 플랫폼은 미국이 아닌 대만과 대한민국이 주도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미국 기업들이 반도체 설계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있었을 때는, 제조 플랫폼이 미국 밖에 있더라도 미국은 자국의 주도적인 반도체 설계 기업을 통해 첨단 기술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각 나라에서 경제와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반도체들을 직접 설계하게 되면 상황은 바뀌게 된다.

이때 미국의 입장에서는 반도체 제조 플랫폼에 대한 통제와 영향력 확보가 필요해지는데, 실제로 미국은 대만 TSMC사가 중
국 기업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견제하면서 인텔을 중심으로 자국 내 반도체 제조 플랫폼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려고 하고 있다.

동시에 네덜란드 ASML사가 중국에 반도체 제조 핵심 장비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며 중국이 자체적으로 반도체 제조 플랫폼을 발전시키려는 시도 또한 저지하려 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에 관련된 각 국의 움직임들은 단순히 수급 악화에 대한 경제적 관점의 대처가 아닌, 반도체 산업의 판도가 변화하는 가운데 과학기술에 대한 근본적인 영향력 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인프라를 보유한 대한민국은 이로 인해 커다란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이하게 될 것이다. 차별화된 기술 및 인프라 확보를 통한 산업 관점의 경쟁력 극대화는 물론, 각 나라의 자국을 중심으로 하는 안보 논리를 극복하고 모두가 신뢰하는 반도체 글로벌 허브가 되기 위한 정치외교적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도체 산업 전쟁의 향방

앞으로 반도체 산업이 더 많은 전용 반도체가 개발될 수 있도록 개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임을 살펴 보았다. 아울러 이러한 변혁의 흐름 속에 미국과 중국, 그리고 대만과 대한민국 간의 지정학적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도 짚어보았다. 

반도체의 개발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설계 영역이 독자적인 플랫폼으로 발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이 진화할수록 제품 혹은 서비스의 다변화 수준이 높아지고 이러한 다변화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산업에서 응용과 플랫폼의 분화가 일어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소프트웨어 산업도 애플과 구글의 개발 플랫폼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앱 생태계의 분화를 확인할 수 있고, 화장품 산업 역시 기획과 마케팅 중심의 브랜드와 위탁 생산 플랫폼의 분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게임 제작사와 게임 엔진 업체, 신약 개발 업체와 CDMO등, 응용과 플랫폼의 분화는 효율성의 혁신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산업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사실 반도체 영역에서도 이와 같은 플랫폼의 분화가 이미 일어난 적이 있다. 바로 1980년대 TSMC사가 주도한 반도체 공정 개발 및 제조의 플랫폼화이다. 그 이전에는 모든 반도체 회사가 저마다 자신만의 공정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반도체를 제조하는 Fab을 건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공정 기술 개발 및 Fab 건설에 필요한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반도체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더 다양한 제품이 필요하게 되었다. 기회를 발견한 대만의 모리스 창은 세계 최초로 반도체 공정과 제조 플랫폼을 확립하였고, 현재 600조가 넘는 기업 가치를 지닌 TSMC라는 기업이 탄생하게 되었다.

반도체 설계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다양한 전용 반도체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현 상황은 TSMC가 처음 나타났을 때의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40년 만에 반도체 산업에 제조에 이어 설계 영역의 플랫폼화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필자가 설립한 세미파이브는 2010년 미국 UC 버클리 대학에서 연구가 시작된 오픈소스 기술인 CHISEL과 FIRRTL을 바탕으로, 반도체 설계와 검증의 대부분을 자동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용 반도체를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2020년에 들어서는 세미파이브 뿐만 아니라 마벨이나 베리실리콘처럼 다양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효율적인 전용 반도체 설계를 강조하기 시작하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설계 플랫폼 기업의 대두는 기존의 팹리스-파운드리라는 이원화된 가치 사슬을 아이디어-설계 플랫폼-제조 풀랫폼으로 이어지는 3단계 가치 사슬로 재정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계 플랫폼에서 두각을 보이는 업체는 새로운 글로벌 반도체 허브 기업으로서 큰 가치를 실현하게 될 것이다. 설계 플랫폼의 출현, 글로벌 기술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국가 간의 경쟁은 앞으로 더욱 숨가쁘게 진행될 것이다. 대만과 대한민국은 과거 유전국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국제 정세에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얻을 수도, 반대로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현재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위기를 맞게 될 수도 있다.

이에 기술 수준이 높고 신뢰할 수 있는 반도체 제조와 설계 플랫폼 양쪽을 모두 육성하고, 이를 통해 전세계의 전용 반도체 기반 혁신에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국가적 성장의 커다란 모멘텀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사진=포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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