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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여제에서 사업가 변신한 박세리 바즈인터내셔널 공동대표
골프여제에서 사업가 변신한 박세리 바즈인터내셔널 공동대표
  • 정동철 기자
  • 승인 2020.09.28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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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년생 자세로 도전 즐기겠다

선수시절의 운동복 차림이 아닌 정장 스타일로 인터뷰에 응한 ‘골프 여제’ 박세리(43)의 달라진 모습에서 그의 변신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한국 선수 최다승(25승)을 거두고 세계 골프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린 그는 2016년 10월 공식 은퇴경기를 통해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골프 교육콘텐츠 회사 바즈인터내셔널을 설립해 공동대표직을 수행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또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 출연과 함께 인기스타로 주목받으면서 현역시절 못지않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스튜디오에서 만나 “골프선수로는 성공했지만 인생은 아닌 것 같다. 사회 초년생의 마음 가짐으로 더 늦기 전에 제2의 인생에 도전해보겠다”는 그의 과거, 현재, 미래를 들어봤다.

-요즘 TV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해 유명 방송인이 된 느낌인데.
방송인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고 시청자들의 인지도가 높은 과거 스포츠 스타들의 출연 기회가 늘면서 나에 대한 섭외도 늘어 난 것은 사실이다.

-골프화가 아닌 하이힐이 낯설다. 지난해 말 사업가로 변신했는데 어떤 회사인가.
생각해 놓은 여러 사업을 두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더 늦기 전에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속돼있던 매니지먼트사와 결별하고 지난해 독립했다. 간단히 말하면 신 개념의 교육 콘텐츠 제작, 각종 대회 주관, 매니지먼트 사업, 박세리 재단을 통한 주니어 육성 및 사회기부 활동 사업 등이다. 장기적으로는 골프외의 다양한 사업도 준비중이다. 골프로 치면 ‘백돌이’ 초보 사업가인 만큼 배워가면서 도전을 즐기려한다.

-기존 국내 골프 아카데미나 매니지먼트 회사와의 차별성은.
단순한 아카데미, 매니지먼트사가 아닌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교육 환경 개선 등 ‘토털 솔루션’을 표방하고 있다. 요즘 시대 추세인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를 통한 비대면 교육이 특징이다. 전문적인 아카데미 시스템을 갖춰 유망주가 프로 선수로 성장하는 하는데 함께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선수들이 미국 등 해외 전문 아카데미로 많이 나갔지만 앞으로는 외국에서 한국을 찾아 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한다. 이는 해외에서 맹활약하는 후배들 덕분이기도하다. 학교교육 사업과 외국유명 아카데미와의 교류 등으로 내실도 꾀할 것이다.

-현재 사업은 계획대로 잘 추진되고 있나.
올해들어 부쩍 바빠졌다. 코로나 때문에 일정이 지연되는 부분도 있지만 미팅, 촬영, 인터뷰 등으로 선수시절 보다 더 바쁜 것 같다. 모 대기업과 제휴를 통해 골프 방송 프로그램 제작도 추진 중이다. 이전에는 2~3일 간격으로 대전과 서울을 오갔지만 최근들어서는 거의 서울에서 머물 정도로 바쁘다. 아직 초보라 두려운 면도 있으나 배워나가면서 단단해질 것으로 본다. 대전에 집이 있는데 서울 생활은 기차역과 가까운 용산에 있는 전세 아파트에서 하고 있다. 
 
-초보이긴 하지만 사업 철학이 있다면.
저의 꿈이 누군가(박세리 키즈)의 꿈이 되었고 후배들의 꿈이 또 다시 나의 꿈이 되는 과정의 연속성에 있다고 본다. 사업가라기 보다는 존경받는 선배,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베풀며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동안 운동 한 가지의 편협 된 생활을 해왔는데 새로운 일을 통해 더 많은 후배들이 도전할 수 있는 계기를 다시 만들어 주고 싶다.
 
-또 한명의 공동 대표는 어떤 사람인가.
미국 프로야구 에이전트로 현재 뉴욕 양키스의 아시아 총괄 스카우트로 활동 중인 이치훈(50) 씨다. lLPGA 투어 데뷔해인 1997년 US여자오픈에 출전할 당시 응원을 왔던 이 대표와의 만남이 첫 인연이다. 은퇴 뒤 사업을 고민하던 중 이 씨의 조언이 도움이 됐고 그의 경험도 큰 자산으로 생각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 이어 도쿄올림픽 여자골프 국가대표 감독을 다시 맡은 소감은.
개인적으로는 2회 연속 올림픽 감독을 맡아 영광이자 책임감을 느낀다. 4년 전에는 박인비가 금메달을 따줘 큰 보람과 감동을 느꼈다. 코로나로 인해 올해 올림픽이 1년 미뤄진 것은 아쉽지만 차근 차근 준비해야 한다.

-올림픽이 1년 미뤄지면서 미칠 영향은.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올림픽은 선수들에게 있어 가장 영광스러운 대회다. 1년 이라는 공백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 또 누군가에게는 기회 상실의 영향이 미칠 수 있다. 1년 동안 올림픽 출전의 기준인 세계랭킹에 변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매 대회 선수들이 받는 올림픽에 대한 스트레스는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코로나로 인한 선수들의 건강도 변수가 될 수 있어 걱정이 된다. 하지만 한국여자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고 선수층도 두텁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  

-평소 자식이라 부를 만큼 애정을 갖고 있는 반려견 애호가로 유명한데.
‘모찌’, ‘찹쌀’, ‘시루’로 이름 지어진 세 마리의 자식이 있다. 분양받거나 유기견을 입양하는 등 사연도, 성격도 갖가지다. 신경써야 할 점이 많지만 말은 못해도 표정만 보면 신기하고 위로를 많이 받는다. 자식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의무와 책임감이 동반돼야한다.  

-반려견 자식도 좋지만 가정을 이뤄 2세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또 결혼 얘기. 하고 싶지만 혼자 하는 게 아닌데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좀 해달라고 버릇처럼 말하지만 아직까지 없다. 남들보다 눈이 높은 것도 아닌데 친구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않았다. 내가 많이 알려져 남자들이 용기를 내지 못하거나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결혼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일을 벌여놔서 더 늦어질 것 같다.  

-이제 골프선수 시절 이야기 좀 해보자. 골프는 언제, 어떤 계기로 입문하게 됐나.
본격적으로 골프 연습을 한 것은 대전 갈마중학교 2학년 당시 아버지 친구분의 골프시합장에 따라 가면서부터다. 초등학교 때부터 투포환, 넓이뛰기, 100m 달리기 등 육상 선수생활을 했다. 모든 운동을 좋아했고 잘했던 것 같다. 육상 선수하면서 다듬어진 기초체력 등이 골프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어린시절 공동묘지 훈련으로 담력을 쌓았다는 이야기의 진실은.
그 이야기는 와전된 것이다. 대전 유성CC에서 하루 종일 연습하다 집에 가려면 깜깜한 산속 샛길을 걸어야 했고, 그때 무덤을 지나친 적이 있었을 뿐이다. 하체를 단련하려고 아파트 15층을 매일 다섯차례 이상 오르락 내리락한 것은 사실이다.

-골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지 1년 만에 두각을 나타냈는데 타고난 소질인가.
중 3때인 1992년 한국중고연맹 회장배에서 첫 우승을 거둔 뒤 아마추어 신분으로 프로대회인 라일앤드스코트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그해 총 5승을 거뒀다. 이듬해 공주 금성여고 1학년 때도 4개의 프로대회 우승과 함께 총 7승을 거뒀다. 당시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체력훈련과 하루 1,000회 정도의 연습샷을 했다. 그리고 저녁 8시경 집에 와서 밥 먹고 10시까지 퍼팅연습을 했다. 아마추어시절에만 총 30승을 거둔 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6년 국내 프로무대에 진출해 5승을 올렸다.

-1996년 삼성과 스폰서 계약을 한 뒤 미국무대로 진출한 사연은.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께서 “골프산업은 향후 10년 내에 한국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산업이다. 넘버원 브랜드의 골프 꿈나무를 발굴 육성하라”고 홍보팀에 지시해서 나와 연결 된 것으로 안다. 그리고 이듬해 10년 육성 프로젝트 속에 미국 무대에 진출하면서 그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박세리에게 있어 아버지란.
남들은 안 믿겠지만 아빠이자 친구, 애인 같은 좋은 사람이다. 이미지 강해보이지만 다정다감하며 가정적이다. 세상에 이런 분이 계실까 싶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아버지로부터 스파르타식 골프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최고의 자리에 가기위해 스스로 최선을 다하도록 뒤에서 헌신적으로 지원해줬다.

-많은 사람들이 선수 생활하면서 번 돈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 한다.
미국진출 이후 대회 상금으로만 120억원 정도되고 다른 부수입까지 하면 금액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수입이라는 게 고스란히 남는 건 아니다. 세금, 생활비 등등 지출 비용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 중에는 그동안 나를 위해 뒷바라지 해주느라 투자를 아끼지 않은 가족에 대한 지원 등도 포함된다. 남은 재산보다는 박세리라는 이름 석자가 중요하다

-선수시절 슬픔의 눈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성적이 나지 않을 때 주위의 비난이 참기 힘들었다. 박세리는 항상 우승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잘 나가던 박세리 이제 주말골퍼 수준”이라거나 “거만해져 성적이 나지 않는다”는 등 온갖 추측성 비난을 직간접적으로 들어며 혼자 눈물을 흘려야 했다. “나 열심히 하고 있고, 항상 잘 할 수만 있냐”고 누구한테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그저 눈물만이 유일한 친구였다.

-그 과정을 어떻게 극복했나.
답은 쉬운데 있더라. 손목을 다쳐 아예 골프를 쉬었던 게 전화위복이 됐다. 골프장을 떠나 친구들과 수다 떨며 차츰 나를 돌아보게 됐다. 골프만 바라보고 달려온 나 자신이 미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활에 여유를 찾으면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당시 어떤 팬이 “웃으니까 좋다”는 말을 했다. 나는 늘 웃고 있는 줄 알았지만 가식의 웃음이 많았던 것이다.

-후배들에게 조언해 줄게 있다면.
자신에게 너무 인색해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힘들면 힘들다고 하는 등 방전되면 충전하는 식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일정부분 자신에게 투자하는 사생활도 필요하다. 골프에 있어 연습량이 절대적인 건 아닌 것 같더라. 집중력 있게 시간활용을 잘 해야한다. 연습으로 지치지 말고 즐기면서 하면 오래가고 재미있다. 운동뿐만 아닌 다른 사회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글 정동철 골프 대기자 ball@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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