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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아름다운 낡음’을 카메라에 담다

이동준 작가, 쿠바 수도 아바나의 일상 포착한 사진집 펴내

  • 기사입력 2017.05.25 14:38
  • 최종수정 2018.08.31 17:22
  • 기자명 김윤현 기자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아바나의 구 시가지로 들어가는 초입의 방파제 주변 풍경.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도입부에도 등장했다. 사진=이동준 작가

‘카리브 해(海)의 진주’로 불리는 쿠바(정식 국명은 쿠바공화국)가 2015년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직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지의 나라에 가깝다.
최근 <아바나(La Habana, Cuba)>라는 제목의 에세이 사진집을 펴낸 이동준 사진작가를 만나 쿠바, 그리고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동준 작가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갤러리 류가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이곳에서 사진전 <아바나>를 열었다. 사진=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물질문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항상 새롭고 근사한 것을 욕망하게 만든다. 압축적 경제성장의 과실을 경험해본 한국인들은 더욱 그런 경향을 나타내는 편이다. 중장년층 독자라면 우리가 살아온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사라져버렸는지를 쉽사리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동준 작가는 카메라 뷰파인더(View Finder)를 통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잊혀져 가는 것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해왔다. 사진 작가로서 그의 대(大)주제는 도시다. 그는 특히 개발의 손길이 덜 미친 서울의 달동네나 골목 등에서 발견한 우리 삶의 흔적들을 사진에 담아 왔다. 아무리 낡고 보잘것없는 피사체일지라도 그의 작업을 거치면 훌륭한 ‘오브제(Objet: 예술적 표현의 대상이나 재료)’로 재발견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오래된 것, 옛 것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와 기록으로 규정할 수 있다.
 

아바나에서는 마치 영화 제작 세트장처럼 1950년대 미국산 구식 자동차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진=이동준 작가

이 작가는 말한다. “우리 삶의 터전, 공간, 소품 등 도시 환경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할 수밖에 없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그것들이 가진 가치를 기록하는 것이 저의 작품 철학입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쿠바 아바나의 여러 오브제들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2000년대 초 어느 날, 이 작가는 빔 벤더스 감독이 만든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고 있었다. 쿠바 아바나를 무대로 실력파 뮤지션 5명이 동명의 재즈 그룹을 결성하고 음반을 녹음하는 과정 등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를 아바나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 특히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고색창연한 아바나의 도시 풍경과 소박하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아바나 사람들의 모습은 이 작가의 마음을 일순간 빼앗아버렸다.

그 후 10여년이 흐른 지난 2013년 2월, 이 작가는 마침내 아바나를 방문했다. 비행기를 타고 두 나라를 경유해 무려 40시간 가까이 걸린 여정이었다.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아바나의 땅을 밟은 이 작가는 가슴이 벅찼다. 영화에서 봤던 아바나의 실제 모습은 더욱 낭만적이고 매력적이었다.

그때부터 이 작가는 2015년 하반기까지 모두 네 차례나 쿠바를 방문했다. 총 체류 기간은 7개월이 넘는다. 그 기간 동안 이 작가는 줄곧 카메라를 붙들고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아바나 시가지를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아바나의 거리 풍경과 시민들의 일상을 촬영한 사진은 무려 수만 장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약 130장의 엄선된 작품을 얼마 전 출간한 사진집 <아바나>에 담았다.

사진집 <아바나>에 실린 작품들을 한 장 한 장 응시하다 보면 어느덧 아바나가 지닌 특유의 매력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고풍스럽고 낡은 건물들, 1950년대에 생산된 미국산 구식 자동차들이 아직도 도로를 쌩쌩 달리는 낯선 풍경, 백인·흑인·혼혈인 등 피부 색깔은 다르지만 한결같이 순박하고 낙천적인 표정의 현지인들, 아바나의 역사와 아바나 시민들의 삶의 흔적을 오롯이 담고 있는 각종 피사체 등등. 이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이 작가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처음 봤을 때처럼 독자들도 아바나의 멋과 낭만에 꼼짝없이 사로잡힐 가능성이 높다.

<아바나>에는 이 작가가 쓴 에세이 19편도 실려 있다. 쿠바의 역사, 전통, 문화 등에 대한 소개를 비롯해 아바나의 일상적 풍경에 대한 작가의 감상을 담은 내용이다. 사진집에 실린 작품의 흐름을 따라 세심하게 배치된 에세이들은 쿠바에 대한 이해를 돕는 친절한 길잡이 구실도 한다.
 

아바나 시내의 어느 식료품 배급소 벽면. 쿠바 혁명의 두 주인공인 피델 카스트로(아래 오른쪽)와 체 게바라(아래 왼쪽)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담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사진=이동준 작가

이 작가가 말한다. “내가 본 아바나의 모습, 내가 만난 아바나 사람들의 표정과 느낌을 사실적으로 담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쿠바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오랫동안 경제발전이 정체된 까닭에 아바나라는 도시를 구석구석 뜯어보면 남루하고 지저분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아바나는 카리브 해의 최고 휴양 도시이자 문화예술의 도시였습니다. 미국의 부호나 할리우드 유명 배우,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곳이 바로 아바나죠. 그 때문에 먼발치서 관조하듯 아바나를 바라보면 빛과 낭만 등의 화려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작가는 아바나에 7개월여간 체류하며 사진 촬영 작업을 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지인들은 카메라를 들고 이곳 저곳을 배회하는 낯선 동양인 남성에게 상당한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작가와 친숙해진 주민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경우도 많았다.

그의 눈에 비친 쿠바인들은 낙천적이고 순박한 심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특히 직업의 귀천이나 신분의 차별이 거의 없는 사회주의 나라인 까닭에 ‘의사든 청소원이든 똑같이 대우받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사진 작업을 하는 동안 남루하게 옷을 차려 입고 다녔는데도 마음이 편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입고 다니니까 남의 시선에 신경 쓸 일이 없는 거죠. 한국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 아닐까 싶었어요. 생각해보면 쿠바인들이 순박한 것은 자본주의를 경험해보지 않은 덕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2016년 11월 쿠바 사회주의 혁명의 주인공이자 무려 49년간 최고 지도자로서 쿠바를 통치한 피델 카스트로가 세상을 떠났다. 피델 카스트로는 지난 2008년 쿠바의 최고통치기구인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 물려준 바 있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취임 후 사유재산 허용 등 자본주의 요소를 일부 도입하는 경제개혁 조치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아바나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즐비하다. 사진=이동준 작가

이 작가는 쿠바에 체류하면서 직접 경험한 변화의 물결을 이렇게 전한다. “쿠바에서는 라울 카스트로 의장이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 카페, 식당, 숙박업 등 서비스업을 하는 민간인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자본주의 물결이 점차 거세질지도 모르겠어요.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이후 아바나에 가보니 민간인이 운영하는 서비스업이 더욱 번창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언젠가 쿠바도 중국처럼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할지 모를 일이다. 혹은 과거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아예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세상일을 누가 알겠는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쿠바 아바나도 여느 자본주의 국가의 대도시처럼 화려하고 세련된 옷으로 갈아입지 않을까. 그런 때가 온다면 이동준 작가의 <아바나>는 ‘낡았지만 아름다운 아바나’를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물이 될 것이다.

이동준 작가는···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홍보실과 포춘코리아에서 사진기자로 일했고, 보도·다큐멘터리·패션·커머셜 등 다양한 분야의 사진 작업을 해왔다.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으로 <미래를 여는 곳>(경기도, 2002), <서울 제조업 장인들>(서울연구원, 2013)을 기획하고 제작했으며, 도시를 기록하는 작업으로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사진집>(한국일보, 1994), <서울의 도시 형태와 경관>(서울시, 2000), <서울 주거 변화 100년>(대림미술관, 2009) 등에 참여했다. 사진 전시회로는 네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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