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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 에너지 바람 타고 ESS업계 강자들이 비상한다

LG화학·삼성SDI, 글로벌 시장 확장 ‘청신호’ KT· LG CNS 등도 기술력 앞세워 야심찬 도전

  • 기사입력 2017.10.11 02:51
  • 최종수정 2018.09.06 17:46
  • 기자명 김병주 기자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포함한 신재생 에너지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생산량 변화가 심한 신재생 에너지의 경우, 이를 저장할 수 있는 장치인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수다. 오래전부터 ESS에 관심을 기울여 온 국내 주요 기업들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발판으로 시장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 청정바람을 타고 활짝 웃고 있는 국내 주요 ESS 기업들과 시장 상황을 들여다보자.

 

이미지=셔터스톡

최근 미국 내 한 에너지 전문매체가 흥미로운 보고서 하나를 내놓았다. ‘기업 재생 가능 에너지 조달 보고서’라는 이름의 이 문서에는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신재생 에너지를 가장 많이 구매한 기업의 리스트가 담겨있었다.

이 보고서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순위권에 오른 기업 대부분이 글로벌 혁신을 이끌고 있는 IT업체였다는 점이었다. 1등은 세계 최대의 유통 업체 ‘아마존’이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아마존은 지난 한 해 동안 태양광 발전 233MW(메가와트), 풍력 발전 417MW의 전력을 구매했다.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아마존의 관심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아마존은 올해 말까지 미국 동부와 서부에 위치한 15개 물류센터에 최대 41MW 발전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설치할 예정이다.

아마존에 이어 2위와 3위는 각각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지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지난해 총 257MW(태양광 20MW, 풍력 237MW)의 신재생 에너지를 구입했고, 구글은 올해까지 미국 내 모든 사무실·연구소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신재생 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그렇다면 이처럼 글로벌 IT기업들이 신재생 에너지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지훈 하나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말한다. “글로벌 IT기업들은 신재생 에너지를 ‘시장’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신재생 에너지를 또 하나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거죠. 실제로 구글과 애플은 앞서 언급한 신재생 에너지 구매 외에도 자체 설비를 통해 전력 기업 수준의 태양광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어요. 글로벌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IT기업들의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꽤 주목해 볼만 합니다. 3차 산업혁명부터 IT기업들이 사실상 모든 변화와 혁신을 주도했으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최근 전문가들은 테슬라의 신재생 에너지 전략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기차에 저장된 전기를 되파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사업 계획을 내놓았거든요. 이는 기존 사업 영역과 신재생 에너지를 결합한 참신한 시도로 호평을 받고 있어요. 테슬라의 이러한 전략은 국내 기업들에게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재생 에너지 육성 기조에 발맞춰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미지=셔터스톡

쑥쑥 크는 ESS 글로벌 시장

이처럼 신재생 에너지 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이 관심을 등에 업고 잠재력 높은 블루오션으로 성장하고 있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신재생 에너지 확대’를 정책 기조로 내세우며, 탈(脫)원전 가속화와 태양광, 풍력(육지+해상) 발전 비중 확대 같은 친환경 에너지정책 강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단순 수치 상으로 봐도 시장 규모는 어마어마해질 듯하다. 정부는 지난 연말 기준으로 전체 전력 시장의 3.6%에 불과했던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오는 2030년까지 2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조사·연구기관들은 현재 정책 기조가 유지될 경우, 2030년 국내 신재생 에너지 시장 규모는 80조~12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 기관 모두는 ‘파생 가능한 부가가치를 감안하면 실제 시장 규모는 그 예상치를 웃돌 것’이라는 공통된 의견도 내놓고 있다.

업계는 그 중에서도 특히 신재생 에너지 바람을 타고 급성장 중인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이하 ESS)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ESS의 성능이 높아질수록 신재생 에너지의 효율이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ESS가 중요한 이유는 신재생 에너지의 특성 때문이다. 태양광, 풍력 같은 신재생 에너지는 공급의 변동성이 심하다. 쉽게 말해 비가 오는 날, 바람 한점 없는 날에는 발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에너지는 날씨에 상관없이 필요하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이라고 전기 없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재생 에너지를 효율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ESS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용할 만큼의 전기를 생산하고 남은 양을 ESS에 저장해놓으면, 언제든 다시 꺼내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업계에선 신재생 에너지 효율성을 좌우하는 핵심 설비로 ESS를 꼽고 있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전력의 40%를 신재생 에너지로 공급받고 있는 호주 남부의 전력 불안정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그곳에 100MW급 ESS를 설치하겠다고 호주 정부에 공식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테슬라의 ESS로 호주의 전력 불안정을 해결하겠다. 시간은 단 100일 이면 충분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ESS 시장은 신재생 에너지의 성장세와 궤를 함께 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ESS시장 규모는 약 29억 달러(한화 3조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지금 같은 성장세가 이어질 경우 오는 2025년에는 350억 달러(약 40조 원) 규모로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국내 ESS시장 규모는 3,000억 원 수준을 기록했다. 글로벌 전체 시장의 10%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유재영 산업통상자원부 신재생 에너지 담당 사무관은 “우리나라는 글로벌 ESS 시장에서 보기 드물게 매년 두 배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국가”라며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ESS설치가 의무화되고 있고 민간 사업장에도 ESS보급을 지원하는 등 정부 차원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ESS시장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화학, 전자 등 ESS와 연계된 전통적인 사업군 외에도, 최근에는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에 강점을 갖고 있는 주요 IT서비스 기업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왼) LG화학 익산공장에 설치된 ESS 설비.(오) 삼성SDI가 선보인 가정용 ESS ‘올인원(All-in-One)’ 8.0kWh 제품. 사진=LG화학, 삼성SDI

LG화학·삼성SDI가 사실상의 세계 ‘빅2’

국내, 나아가 글로벌 ESS시장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기업은 LG화학이다. 이미 수많은 해외 에너지 컨설팅 그룹에선 LG화학을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 시장의 핵심 기술로 ESS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리딩 기업’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네비건트 리서치는 지난 2015년 6월 발표한 ESS분야 글로벌 경쟁력 기업평가보고서에서 LG화학을 이 분야 업계 1위 기업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LG화학은 지난 6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글로벌 태양광 전시회 ‘인터솔라 2017’에서 주택용 ESS 제품 ‘스탠드얼론 배터리모듈’로 2년 연속 본상을 수상하며 ESS 리딩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규모 가구업체 ‘이케아(IKEA)’를 통해 유럽 ESS시장 공략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케아의 가정용 ESS 제품 ‘솔라 파워 포털’에 리튬이온 배터리를 납품한 된 것이다. 이케아는 우선 영국에 ESS 제품을 선보인 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판매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은 이케아의 ‘브랜드 파급력’을 발판삼아 보다 수월하게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지난해 기준 591메가와트시(MWh)의 ESS를 전세계에 공급하며 글로벌 ESS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만큼 LG화학의 성장세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화학업계 관계자 A 씨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ESS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늘어나면서 LG화학의 ESS 사업도 덩달아 호황을 맡고 있다”며 “이러한 흐름이 연말까지 유지된다면 올해 매출 목표 5,000억 원은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LG화학 못지않게 ESS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업체는 삼성SDI다. 삼성SDI는 LG화학과 함께 사실상 글로벌 ESS 시장 ‘빅2’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SDI는 544MWh 규모의 ESS를 글로벌 시장에 공급해 간발의 차로 2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ESS시장 리딩기업을 노리는 삼성SDI는 국가별 특성을 분석한 맞춤형 솔루션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 2월 글로벌 ESS 시스템 기업들과 손잡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세계 최대 규모(240MWh)의 ESS 시설용 배터리를 공급한 데 이어, 최근 독일에서 열린 ‘에너지스토리지유럽2017’에선 고용량 ESS 신제품 ‘E2’ 모델과 고출력 ESS ‘P3’ 모델을 공개해 기술력을 뽐내기도 했다.

최근 삼성SDI의 시선은 유럽·북미 가정용 ESS시장을 향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선 정부 차원의 보조금 지원, 세액 감면 같은 혜택을 기반으로 신재생 에너지 보급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지난 2분기 실적 컨퍼런스에 참여한 삼성SDI 관계자도 “가정용을 중심으로 원형 ESS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와 연계해 가정용 ESS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업계에선 LG화학과 삼성SDI의 진검승부 전장이 북미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미 지역은 글로벌 최대 규모의 ESS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 신재생 에너지 컨설팅 그룹 GMT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북미 ESS 시장 규모는 약 4억 5,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21년에는 그 규모가 3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도 노후화된 송전망 교체 시점에 맞춰 신재생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정용, 산업용, 전력용 등 규모에 따른 ESS 솔루션 니즈가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화학업계의 한 관계자는 “LG화학이 이케아와 손잡은 것, 그리고 삼성SDI가 대규모의 시설용 배터리를 미국에 공급한 것 모두가 북미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투자라고 볼 수 있다”며 “미국 내 니즈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내년 이후부터 양사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 KT관계자가 KT-MEG을 활용한 ESS 원격관제를 시연하고 있다. (아래) 김영섭 LG CNS 사장(왼쪽)이 괌 ESS시스템 구축 현장을 사전 점검하고 있다. 사진=KT, LG CNS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KT와 LG CNS

최근에는 ESS 관련 분야 외의 이종 산업군도 ESS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이 적용된 친환경 건물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일찌감치 이 분야에 뛰어든 통신·IT서비스 기업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에너지대전’ 전시장에서 주목을 받은 기업 중 한 곳이 바로 KT다. 삼성, LG 등 전통적인 ESS 강자들 틈에서 KT가 나름의 존재감을 뽐냈다. 당시 KT가 선보인 솔루션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자체 개발한 융합형 ESS였다.

KT 융합형 ESS의 최대 강점은 KT가 자체 개발한 에너지 최적운영관리 시스템 ‘EMS( Energy Management system)’이다. KT EMS는 피크 제어, 신재생 에너지 안정화, 주파수 조정 같은 기능을 표준화해 가입자의 용도에 맞게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 개의 EMS 시스템에 태양광, 풍력, 디젤발전기 등 여러 개의 발전원과 기기들을 동시 연결·운영할 수 있어 가입자 맞춤형 ESS 컨설팅과 종합 솔루션 제공이 가능하다.

특히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KT의 스마트에너지 관제센터(KTMEG)를 통해 융합형 ESS의 실시간 전력 사용 현황은 물론, 배터리 충·방전 현황, 효율성, 성과분석 등을 24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미 KT는 이러한 ESS 역량을 활용해 지난 5월부터 국내 최대 아연괴 생산 업체 ‘영풍 석포제련소’에 33MWh 규모의 ESS를 구축·운용하고 있다. 김영명 KT 스마트에너지사업단장은 이에 대해 “KT가 자체 보유하고 있는 혁신적인 ESS 기술과 관제 역량을 기반으로 에너지 절감은 물론 에너지신산업 육성에도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IT서비스 전문 기업인 LG CNS는 그동안 쌓아온 IT시스템 역량과 ESS를 연계한 ‘에너지 효율화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ESS는 전력을 저장한다. 전력요금이 저렴할 때 가능한 많은 양을 저장하고, 전력 요금이 비싼 시간대에 이를 활용하면 비용절감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를 꾀할 수 있다. LG CNS가 주력하고 있는 ESS 사업 역시 일종의 ‘부하 관리’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LG CNS의 기술력은 이미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 5월 LG CNS는 약 4,300만 달러(한화 약 487억 원) 규모의 미국령 괌 ESS 시스템 구축 사업을 수주하고, 괌 전력청(GPA)과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

괌 전역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ESS 시스템을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이번 사업에서 LG CNS는 ESS 시스템 구축 외에도 25년 간 운영과 유지보수를 진행한다. LG CNS 관계자는 “독자 개발한 에너지관리시스템(EMS) 기술을 인정받아 유수의 글로벌 ESS 기업들을 제치고 수주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이번 사업이 괌 전력청의 1단계 프로젝트인 만큼 추가 사업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산업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국내기업들이 나름의 기술력을 앞세워 ESS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ESS 하드웨어 자체에만 집중하는 국내 시장의 기술 트렌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ESS 내 배터리, 전력변환장치(PCS) 같은 분야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정작 ESS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A씨는 “솔직히 배터리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없었다면 국내 기업들의 ESS 시장 공략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소프트웨어 솔루션의 경쟁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점차 커지고 있는 중국 배터리제조사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국내 ESS 기업들은 신재생 에너지 바람을 타고 앞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서의 입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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