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포춘코리아 매거진 최신호를 무료로 읽어보세요.

본문영역

소리 소문 없이 ‘억만장자’가 된 벤처 투자자

쿠슈너는 어떻게 33억 달러를 끌어 모았나?

  • 기사입력 2024.01.25 06:00
  • 최종수정 2024.03.20 15:15
  • 기자명 ALYSON SHONTELL 기자 & 조채원 기자
쿠슈너가 스라이브 캐피털의 맨해튼 본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회사가 동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투자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쿠슈너는 유명한 가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성공했다. 그는 인스타그램과 스트라이프, 오픈AI 등에 과감한 베팅을 한 덕분에 이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고, 회사 설립 후 최대 규모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성공한 방식을 집중 취재했다. BY ALYSON SHONTELL


스트라이프의 사장 존 콜리슨은 실리콘밸리 신생기업의 전형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가 2010년 형 패트릭과 함께 설립한 이 핀테크 회사는 결제 처리 및 금융 소프트웨어 분야의 거대 기업이자, 한때 미국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스타트업이었다.

그러나 2022년 가을경 스트라이프는 곤경에 빠졌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매출이 연평균 60%씩 급증함에 따라 지출을 늘렸지만, 인플레이션이 고조됨에 따라 성장이 급격히 둔화했다. 또한 초기 직원 중 많은 사람들은 자사주의 행사 기간이 2024년부터 만료되기 시작할 예정이었다. 창업자들은 이 직원들을 모두 잡아두고 싶었지만, 그들의 주식을 매입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그 금액만 총 35억 달러(약 4조 633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라이프는 빠르게 거액을 조달해야 했다. 하지만 금리 상승으로 기술주들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그 시기가 최악이었다. 회사가 두려워하는 ‘다운 라운드(후속 투자를 유치할 때 이전 투자 때의 가치보다 낮게 평가 받는 것)’ 처지에 몰릴 것이 확실했다. 스트라이프는 2021년 950억 달러(약 125조 7610억원)의 가치를 평가 받고 자금을 유치했다. 이번에는 당시 가치의 절반만 인정 받아도 운이 좋은 상황이었다. 더욱이 일부 투자자들은 회사에 재투자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2022년 9월, 콜리슨은 콜로라도 아스펜에서 열리는 위크엔드(The Weekend) 연례 기술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그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친근한 얼굴을 만났다. 뉴욕시에 기반을 둔 부티크 투자회사 스라이브 캐피털의 설립자 조슈아 쿠슈너였다. 스라이브는 2014년 스트라이프의 시리즈 C 라운드에 투자한 바 있다. 그래서 콜리슨은 자신이 안고 있는 골치 아픈 문제를 쿠슈너에게 설명했다. 쿠슈너는 ‘정중한 관심’ 이상을 갖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쿠슈너(38)는 지난 10년간 스라이브의 사업을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회사는 1년에 몇 번의 대형 거래만 성사시켰다. 쿠슈너는 슬랙과 인스타그램, 인스타카트, 깃허브 등 내로라하는 스타트업의 창업자들을 지원하며 명성을 쌓아왔다. 아울러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적극 관심을 쏟아온 인물로 유명하다. 콜리슨은 "조시는 철저히 자신의 믿음과 감에 따라 투자를 하고 있다"며 "벤처업계와는 정반대의 행보"라고 평가한다.

그는 이번에는 스트라이프에 올인하는 것을 고려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와 9명으로 구성된 스라이브 투자 팀은 면밀하게 장단점을 논의했다.” 쿠슈너와 함께 투자 팀을 이끌고 있는 카림 자키의 회상이다. 쿠슈너는 그 거래를 새로운 형태의 최고 소매결제 ‘처리업체(acquirer)’에 대한 지분을 늘릴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그것도 정말 헐값에 말이다.

쿠슈너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우리는 힘든 결정의 순간이라는 점을 정말 솔직하게 인정했다”며 "하지만 어려운 순간에 진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23년 어느 일요일 초저녁에, 콜리슨은 차안에서 쿠슈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쿠슈너는 스라이브가 10억 달러(약 1조 3230억원)의 투자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와 투자 팀은 이후 2주간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은 자금 조달을 위해 전화에 매달렸고, 부지런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막대한 거래 규모 때문에, 쿠슈너는 ‘특수목적기구(SPV)’를 만들어야 했다. SPV는 스라이브의 펀드출자자(LP) 이외의 외부 투자자들을 유치할 수 있는 일회성 투자펀드다. 그의 팀은 콜리슨 및 잠재적 투자자들과의 아침식사를 위해, 수 차례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쿠슈너는 인도 최고 부호인 무케시 암바니의 투자를 받기 위해, 하루 동안 인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쿠슈너의 팀은 모두 100명 이상의 다양한 투자자들을 모았다. 2023년 3월 투자유치 라운드가 진행됐을 때, 스라이브는 스트라이프의 지분 약 7%를 인수하기 위해 18억 달러(약 2조 3820억원)를 투자했다. 다른 어떤 투자사들보다 10억 달러나 많은 금액이자, 회사 설립 후 최다 투자 규모였다.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쿠슈너는 그렇게 큰 대규모 거래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스라이브는 세쿼이아나 앤드리슨 호로위츠 같은 유명 벤처캐피털(VC) 업체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규모도 작고 VC 사업에 적절하지 않은 동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 업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조언자들은 수 차례 호황과 불황을 경험한 노련한 프로들이다. 반면 스라이브는 계속 성장하는 20대 신참들이 주축이 된 회사다.

이제 쿠슈너의 유명한 가족을 살펴보자. 그가 포부를 펼치는데 디딤돌이자 장애물이 된 존재다. 그의 아버지 찰리는 부동산 제국을 구축하며 저지른 비리로 인해, 수감 생활을 했다. 조시의 형 재러드는 2009년 이방카 트럼프와 결혼했고, 훗날 미국을 분열시킨 장인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보좌관으로 일했다.

가족에 대한 반발심은 막내 쿠슈너로 하여금 “사업에서는 평판이 전부”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또한 VC 경쟁자들 중 일부가 업계 유명인사가 됐음에도, 그는 공개석상에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됐다. 2023년 여름과 가을에 걸쳐, 그를 5차례 인터뷰하는 데는 상당한 설득이 필요했다. 그는 대화할 때 극도로 신중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거나, 부모나 형제자매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는 그 어떤 공식 질문도 피했다.

쿠슈너는 "나는 푸대접을 받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안다"며 "그 때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어떻게든 깊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대신 쿠슈너는 14년간 비교적 드러나지 않고 자신의 사업을 구축해왔다. 그는 그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몇몇 창업자들에게, 자신이 처음에 생각했을지 모를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했다. 그들은 쿠슈너가 ‘무례한 허세꾼’이라고 예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경험한 쿠슈너는 거의 병적일 정도로 예의 바른 동료이자 조언자였다(그들 중 수십 명이 이번 기사를 위해 가진 인터뷰에서 그렇게 증언했다). 쿠슈너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 브랜드를 기억하고, 그들에게 자신이 우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쿠슈너는 그들이 필요할 때마다 자금과 실행계획 지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에게서 자아도취(ego trips)와 거친 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조시 쿠슈너는 원래 상당히 공격적인 기질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 성향은 친절이라는 ‘두터운 외피’ 아래, 거의 철저히 모습을 숨겼다.

그 기질은 또한 그를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한 40세 이하의 기업가 중 한 명으로 이끌었다. 쿠슈너는 2011년 4000만 달러(약 330억원) 규모에서 오늘날 33억 달러(4조 3700억원) 규모의 8위 기관 투자자로 회사를 키워냈다. 챗GPT가 산업 전반에 걸쳐 AI 열풍을 촉발한 후 오픈AI가 2023년 초 현금을 필요로 했을 때, 설립자 샘 올트먼이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한 인물도 쿠슈너였다. 결국 스라이브는 투자 라운드를 주도했다. 회사는 오픈AI의 가치를 290억 달러(38조 3870억원)로 평가, 약 1억 3000만 달러(1720억원)를 투자했다.

쿠슈너는 2023년 초에는 디즈니 CEO 밥 아이거와 KKR 설립자 헨리 크래비스를 포함한 재계 거물들에게 스라이브의 지분 3.3%를 매각했다. 이 거래는 스라이브의 가치를 53억 달러(7조 135억원)로 평가했고, 현재 나머지 96.7%를 소유한 쿠슈너의 억만장자 지위를 공고히 했다. 블룸버그는 그의 순자산을 37억 달러(4조 9000억원)로 추정하고 있다.

그 성공 후, 쿠슈너는 스라이브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갈림길에 서게 됐다. 최근까지 스라이브는 스스로를 “일 중독자”라고 당당하게 밝힌 소수 정예 팀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그의 투자 팀은 창업자들에 대한 24시간 봉사(쿠슈너의 강력한 개인적 신의가 비즈니스 형태로 구현된 결과다)를 더 이상 확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더욱이 이제 스라이브가 회사 설립 후 최대 규모의 펀드를 운용함에 따라, 조만간 처음으로 진짜 시장침체에 직면할지 모른다. 실제로 최근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유니콘(unicorn)’ 스타트업들 대신, 소위 ‘좀비콘(unicorpses〮상장 전 1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 받았지만 IPO 이후 가치가 급락한 벤처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한때 잘 나갔던 기업들이 망하면서, 수십억 달러의 벤처자금도 그들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쿠슈너조차 벤처업계의 앞날이 불투명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그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나는 이 업계가 오랫동안 지속되길 원한다. 또한 그 자체로 최고의 산업이 되길 바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만들 것이다."

 

칼리 클로스와 조시 쿠슈너가 USTA 국립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US 오픈 2018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칼리 클로스와 조시 쿠슈너가 USTA 국립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US 오픈 2018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집은 일을 하는 곳이다

우리가 화창한 오후에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서 한 잔 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을 때, 조시 쿠슈너는 맨 마지막에 주문을 했다. 키 190cm에 마른 체격을 가진 이 투자자는 파란색 카디건 아래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과거 유명 TV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던 ‘로저스 아저씨’의 옷장에서 꺼낸 카디건처럼 보였지만, 쿠슈너가 입으니 어쩐지 멋져 보였다. 이런 쿨한 분위기는 그가 유력 인사들과도 편안하게 어울리는데 도움이 됐다. 쿠슈너는 케이티 페리와 숀 멘데스 같은 유명 연예인이나, 아이거와 크래비스 같은 CEO들과도 스스럼 없이 지내는 사이다.

메뉴를 정할 시간이 되자, 그는 여종업원에게 무알코올 맥주가 있는지 물었다(또 그녀의 이름을 물은 후, 외우듯 재차 불렀다). 그녀가 웃음을 짓자, 그는 차를 마시기로 정했다. 쿠슈너는 그녀가 주문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뜨려 하자,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쿠슈너는 2018년 슈퍼모델 칼리 클로스와의 결혼 축하연에서 하객들에게 데킬라 미니병을 선물할 정도였지만, 요즘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그는 글루텐 알레르기에 적응하고, 일에 훨씬 더 집중하기 위해 20대부터 음주 습관을 끊기 시작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장거리 출퇴근도 하지 않는다. 가족이 소유한 퍽 빌딩의 펜트하우스 층에 집이 있기 때문이다. 잠깐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려오면 바로 사무실이다. 그는 그곳에서 아직 세 살도 안 된 두 아이와 함께 저글링 놀이를 하고, 클로스와는 경쟁적으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한다. 아내 또한 미국 패션잡지 W의 투자자로, 11월 중순에는 영국 패션잡지 i-D를 인수하는 계약을 했다. 부부는 지난 봄 뭄바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당시 그곳에서 쿠슈너는 스라이브의 주주 중 한 명이자, 인도 최고 부호인 무케시 암바니를 만났다. 클로스는 디올 패션쇼에 참가했다.

그는 "어릴 때 엄마는 항상 내게 ‘인생의 목표는 행복하게 출근하고, 행복하게 퇴근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회상한다. 그는 이런 교훈들을 뉴저지주 리빙스턴(맨해튼에서 22마일 떨어진 나무가 울창한 교외지역)에 있는 약 205평 규모의 대저택에서 자라며 배웠다. 이 집은 할아버지 조셉 쿠슈너가 그의 장남 찰리를 위해 지었다. 집 진입로에는 농구대가 있었다. 아버지 찰리와 어머니 세릴의 네 아이 중 막내로 태어난 조시 쿠슈너는 이곳에서 농구를 하며, 스포츠를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2019년 NBA 팀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소수 지분까지 인수했다(한 친구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조시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가 광팬으로 변신하는 농구 경기를 지켜보라”고 말한다).

조시의 조부모인 조셉과 레이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그들은 벨라루스에서 만났다. 나치의 습격을 피해 숨어 살던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부부는 1949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조셉은 성공한 목수가 됐다. 아버지 찰리는 1980년대 초에 부동산 가족기업 쿠슈너 컴퍼니에 합류했다. 오늘날 여전히 찰리가 경영하는 이 회사는 수만 곳의 아파트를 운영하고 있고, 동부 지역 곳곳에 소매점 및 사무실 공간으로 수백만 평방 피트를 소유하고 있다.

찰리 쿠슈너는 1년에 3일만 쉬고 일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래서 그와 세릴은 과거에 매주 일요일마다 니콜과 재러드, 다라, 조시를 사무실에 데리고 왔다. 아이들은 가족이 운영하는 부동산 프로젝트 현장을 방문했고, 특히 흥미로운 거래가 성사되려 할 때는 (계약을 지켜보기 위해) 종종 학교를 조퇴해야 했다. 

조시와 그의 형제자매들은 어린 나이에 힘 있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특히 조시는 훨씬 나이가 많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소중한 기술을 배웠다. 한동안 대통령과 국회의원, 세계 지도자들이 쿠슈너 컴퍼니를 들락거렸다. 빌 클린턴이 1990년대 말에 마을을 방문했을 때, 찰리는 당시 12살에 불과했던 조시에게 대통령에게 회사 전체에 대해 소개하라고 지시했다. 조시는 연설을 준비했고, 그것을 완벽하게 해냈다.

그 권력자들은 나중에 이 가족의 비극에서 조역 역할을 했다. 정치인들은 계속 등장했다. 찰리가 그들에게, 혹은 그들의 선거 캠페인에 돈을 댔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는 동기간이었던 공동 소유주들 몰래 거액의 회사 자금을 빼돌렸다. 결국 찰리 쿠슈너는 2004년 탈세와 불법 선거자금 기부, 그리고 목격자 매수(매춘부를 고용해 증언을 조작했다)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조시는 당시 하버드대 신입생이었다. 그는 충격 속에서, 아버지의 비리가 타블로이드 신문의 당혹스러운 기사를 통해 낱낱이 까발려지는 걸 지켜봐야 했다. 어머니는 종종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 때 24살이었던 형 재러드는 쿠슈너 컴퍼니 CEO로 취임한 후, 혼란을 수습하려고 애썼다. 찰리는 결국 14개월간 감옥생활을 했고, 조시는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앨라배마주의 한 교도소로 면회를 갔다.

이 정도 스캔들이라면 대부분 가정은 무너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항상 신의를 강조해온 쿠슈너 가문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또한 양심보다 야망을 더욱 중시하는 태도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의 위험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2020년 9월 재러드 쿠슈너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이스라엘, UAE, 바레인 간 아브라함 협정 서명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0년 9월 재러드 쿠슈너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이스라엘, UAE, 바레인 간 아브라함 협정 서명식에 참석하고 있다.

 

틈새시장을 뚫다

앤디 골든은 조시를 만난 날을 기억한다. 당시 조시가 말이 없었기 때문에 특히 더 그렇다. 프린스턴대 기부금의 베테랑 관리책임자였던 그는 종종 많은 벤처 및 사모펀드 관계자들의 요구에 대응해야 했다. 이들은 대학이 펀드출자자가 돼 기부금을 투자해주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2010년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VC들을 대상으로 열린 친목 파티(happy hour)에서, 골든은 "그들과 멀리 떨어져 신발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조시였다"고 회상한다.

흥미를 느낀 골든은 조시와 친분을 쌓았다. 그는 쿠슈너가 특권층의 자제로 커왔음에도(자칫 아이들이 게을러 질 수도 있다), 사려 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당시 쿠슈너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스라이브를 설립했다. 또 뉴욕에서 에인절 투자를 하고 있었다. 성장세를 탄 소셜 게임 스타트업 보스투도 공동 설립했다(훗날 보스투는 대형 인수 제안을 거절한 후, 결국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쿠슈너는 4000만 달러(약 530억원)를 목표로 첫 기관 투자를 유치하고 있었다. 골든은 1000만 달러(132억원)의 투자금이 뉴욕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접근할 수 있는 ‘적정가’라고 결정했다. 아울러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조시의 멘토가 되는 비용이라고 생각했다. 쿠슈너는 "지금 돌이켜보면, 여러 면에서 앤디는 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나의 잠재력을 본 것 같다”고 말한다.

초창기에 쿠슈너를 믿어준 또 다른 인물은 미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에이전시 CAA의 설립자 마이클 오비츠였다. 그는 재러드 쿠슈너를 통해 조시를 만났다. 그리고 골든과 마찬가지로, 쿠슈너의 멘토가 되고 싶다는 부성애를 느꼈다. 오비츠는 조시가 실리콘밸리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을 돕기 위해, 마크 앤드리슨 같은 거물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세릴과 찰리 쿠슈너도 스라이브가 기관 투자를 받기 전 조성한 500만 달러의 펀드에 100만 달러를 투자했다(회사는 그들이 그 이후에는 투자하지 않았고, 현재 스라이브의 투자자도 아니라고 밝혔다).

다른 LP들은 좀 더 설득이 필요했다. 2014년 어느 여름 아침, 쿠슈너는 코네티컷행 기차를 예약했다. 널리 존경 받는 예일대 최고투자책임자 데이비드 스웬슨과의 미팅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가 기차에 탑승하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미팅을 취소한다는 스웬슨 사무실의 전화였다. 쿠슈너는 그 결정이 아버지와 관련이 있는지 물었다. 사실이었다. 스웬슨은 찰리 쿠슈너의 아들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쿠슈너에게는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당하다고 느낀 상처였다. 찰리가 감옥에 간 지 거의 10년이나 됐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조시는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했다.

골든은 쿠슈너에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고 조언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쿠슈너는 모욕을 당하고 몇 시간 후, 책상에 앉아 이메일을 보냈다. 그 메일을 본 많은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나는 아버지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썼다.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하고,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내게 아버지는 한 명뿐이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 내가 19살 때 벌어진 아무 상관 없는 사건들이 여전히 내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투자하지 않기로 한 당신의 결정을 존중한다."

스웬슨은 재빨리 조시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는 조시를 만나기 위해 차를 타고 뉴욕시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일대는 스라이브에 투자했다. 스웬슨은 2021년 사망했지만, 예일대는 여전히 스라이브의 LP 중 한 곳으로 남아 있다. 따지고 보면, 2010년대 초반은 쿠슈너에게 베팅해 볼만 한 좋은 시기였다. 하지만 쿠슈너가 회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스라이브에 합류하려는 베테랑 벤처투자자는 전무했다. 실적이 없었던 탓에 회사 홍보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장 똑똑한 친구들을 고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버드대 동창인 크리스 페이크와 윌 게이브릭을 초기 파트너로 영입한 것이다. 그 팀은 빠르게 일부 성과를 거뒀다. 문자 메시지 앱 그룹미는 스라이브가 자금 지원을 한 후 1년 만에 스카이프에 인수됐다. 큰 인기를 끈 온라인 안경판매업체 와비 파커는 훗날 70억 달러(약 9조 2730억원)에 가까운 가치를 인정 받고 IPO에 성공했다. 게임 스트리밍 스타트업 트위치도 종국에는 거의 10억 달러(1조 3250억원)를 받고 아마존에 매각됐다.

물론 2010년대 스라이브의 모든 투자가 성공한 건 아니었다. 당시 회사는 전자상거래 소매업체 팹과 캡슐 커피머신 큐리그를 모방했다가 비웃음을 산 주스 추출기 스타트업 주서로에 투자했다. 큰 낭패를 본 대표적 사례다. 회사는 2014년 트레이딩 앱 로빈후드에 현명하게 초기 투자를 했지만, 모든 수익을 LP들에게 돌려주는 대신 상장 이후에도 회사 주식 일부를 계속 보유했다. 하지만 로빈후드의 가치는 계속 크게 떨어졌다. 또 다른 유명 투자자인 유니온 스퀘어 벤처스의 프레드 윌슨은 “이처럼 지나칠 정도로 장기간 주식을 보유한 결정은 LP가 VC를 해고해야 하는 이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스라이브의 대변인은 포춘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회사들을 잘 알고 있고, 각각의 요소들을 따져보고 결정을 내렸다. 물론 우리가 항상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건 아니다”라며 "우리는 프레드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일반화해서 말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모든 스라이브 펀드에 LP로 참가한 골든은 일부 실패에도, 수익률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현재 스라이브는 가장 성과가 좋은 프린스턴대의 상위 10대 투자펀드 중 하나로,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스라이브는 깃허브와 스트라이프, 생명공학 데이터 플랫폼 벤치링, 킴 카다시안이 운영하는 속옷 브랜드 스킴스 등 현재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다수 회사에서 10%에 가까운 지분을 축적해왔다. 부유한 뉴욕 가문 출신의 또 다른 벤처투자자 데이비드 티시는 “쿠슈너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성공이 단지 하버드대의 학연과 가족의 인맥 덕분이라는 의심을 불식시켰다”고 말한다. "조시는 자본과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완벽한 성공을 거뒀다.” 

쿠슈너와 초기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초기 단계의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는 좋은 타이밍도 한몫 했다. 그들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모바일 기기가 모든 산업을 바꾸고 있을 때, 긴 강세장의 바닥 단계부터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라이브는 쿠슈너가 가진 겸손한 카리스마의 덕을 보기도 했다. 나이 든 거물들은 기꺼이 그에게 조언을 제공하고, 이끌어 주려 했다. 젊은 창업자들은 그와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고 싶어했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는 스라이브가 몇 년 후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인맥의 씨’를 뿌렸다. 그 중에는 가장 중요한 초기 거래를 성사시킨 네트워크도 있었다.

 

조시 쿠슈너(오른쪽)가 2013년 재러드 쿠슈너, 이방카 트럼프 부부와함께 자리를 한 모습. 형제는 정치적 견해는 다르지만 매우 사이좋게 지낸다.
조시 쿠슈너(오른쪽)가 2013년 재러드 쿠슈너, 이방카 트럼프 부부와함께 자리를 한 모습. 형제는 정치적 견해는 다르지만 매우 사이좋게 지낸다.

 

인스타로 터트린 ‘대박’

2011년 어느 날 아침, 케빈 시스트롬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성공한 투자자 중 한 명인 론 콘웨이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콘웨이는 시스트롬을 한 브라질 기업가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당시 시스트롬은 역시 브라질 출신의 공동 창업자 마이크 크리거와 함께 인스타그램이라는 스타트업을 키우기 위해 분투 중이었다. 따라서 같은 나라 출신의 기업가에게 소개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크리거는 모임에 참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스트롬은 샌프란시스코의 예르바 부에나 가든스에 소재한 사모바르 레스토랑에서 차담을 나누기 위해 그 창업자를 만났다. 메뉴를 주문한 후, 시스트롬은 콘웨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건너편에 있는 앉아 있는 사람은 브라질 출신이 아니었다. 그는 숱이 많은 덥수룩한 갈색머리에 깡마른 체격을 지닌 25살의 경영대학원 학생이었다. 바로 쿠슈너였다(쿠슈너가 설립한 게임업체 보스투는 브라질에서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브라질 사람이라고 혼동한 것이다). 시스트롬은 웃으며 "매우 분명하게 기억한다. 그가 ‘잠시만요, 나는 뉴저지 출신입니다!’라고 말했다”며 "그가 브라질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 모임에 참석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럼에도 그 만남은 쿠슈너가 앞으로 쌓아갈 우정의 시작이었다. 그는 상품 아이디어와 연휴 위스키 선물, 즉석 저녁식사(그는 이 모임을 위해 뉴욕에서 대륙을 횡단하는 당일 표를 예약하곤 했다)를 제공하기 위해 자주 비행기를 탔다. 시스트롬은 쿠슈너의 조언을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그가 1년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인기 있는 회사를 운영하며 누구를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을 때, 그 조언은 더욱 중요해졌다.

시스트롬은 "당시 나는 28살이었다. 실리콘밸리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모든 거물 벤처투자자들은 내 회사의 지분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혈안이었다”며 "내가 질문을 하거나 일을 해야 할 때, 혹은 그저 친구로서, 항상 내 곁에 있던 유일한 사람은 조시였다”고 회상한다. 시스트롬이 5000만 달러(약 663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결정했을 때, 그는 VC 4곳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그 중 3곳이 최고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이었다. 바로 벤치마크와 세쿼이아, 그레이록이다. 4번째가 스라이브였다(아이러니하게도, 쿠슈너는 스타트업 콘퍼런스에 참석 중인 브라질에서 시스트롬에게 그 소식을 들었다).

쿠슈너는 인스타그램으로부터 1150만 달러(약 152억원)의 투자를 제안 받았다. 당시 그의 펀드에서 약 30%를 차지했던 이 금액은 한 회사에 투자하기에는 위험한 거액이었다. 그래서 그는 먼저 350만 달러(46억원)를 스라이브에서 투자한 다음, 재빨리 SPV를 설립해 나머지 800만 달러(106억원)를 조달했다. 펀딩은 성공적이었고, 행운도 따랐다. 쿠슈너가 투자한 지 불과 며칠 만에,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10억 달러(1조 3250억원)에 팔린 것이다. 그 매각 계약은 쿠슈너의 투자금을 두 배 이상 불려줬다. 아울러 자신의 투자 감각과 인내심이 옳았음을 입증해준 실적(a calling card)도 쌓게 됐다. 

시스트롬은 "그와 스라이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100% 알지 못했다"며 "단지 그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회사를 매각한 것이 아니다. 그가 분명 항상 그곳에 있었고 우리와 함께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회상한다.

 

2015년 7월 30일 스코틀랜드 에어셔 턴베리에서 열린 리코 여성대회 첫날 기자회견에 미국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딸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자리를 함께했다.
2015년 7월 30일 스코틀랜드 에어셔 턴베리에서 열린 리코 여성대회 첫날 기자회견에 미국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딸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자리를 함께했다.

 

친절함으로 업계를 정복하다

쿠슈너는 오래 전부터 “스타트업에 투자만 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해왔다. 대신 그는 스타트업을 키우고 싶어한다. 스라이브는 현재까지 12개 이상의 신생기업을 만들거나, 공동으로 설립했다(앞으로 더 탄생할 예정이다). 벤처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회사는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그것을 운영할 기업가를 모집하거나, 이미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자와 협업한다.

그런 최초의 기업이 쿠슈너가 구상한 보험 스타트업 오스카 헬스였다. 그는 보스투의 공동 설립자이자 경영대학원 동창인 마리오 슐로저를 CEO로 영입했다. 조시와 재러드 쿠슈너 형제가 꿈꿨던 부동산 플랫폼 캐드리도 있다. 페이스북 출신의 조시 밀러가 설립한 브라우저 컴퍼니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신생기업을 제대로 키우려면, 쿠슈너가 훨씬 많이 나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그의 친절함과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것처럼 보인다. 이번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많은 지인들은 필자에게 “처음에는 쿠슈너의 과도한 정중함이 당혹스럽거나 심지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몇 년간 그의 행동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했다”고 평했다. 

한 창업자는 "그는 매우 침착한 사람"이라며, 쿠슈너를 해리포터에 나오는 보가트에 비유했다. 형체를 바꿀 수 있는 투명의 생명체 보가트는 신비로운 캐릭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조시가 불안해 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도 그걸 본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창업자는 서로를 알고 지낸 지 10년이 지났지만, 쿠슈너는 여전히 그의 우정에 감사함을 표하며 전화를 끊는다고 전했다. 동료들은 쿠슈너가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아마도 쿠슈너의 성공 뒤에 있는 최대 비결 중 하나는 그의 깨달음에 있을 것이다. 그는 “거래의 지속성이 창업자의 평판에 달려 있는 벤처 캐피털 업계에서, 악당이 되는 것보다 길게 내다보고 사업을 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브라우저 컴퍼니의 창업자 조시 밀러는 쿠슈너가 스라이브에서 분사한 스타트업의 대규모 지분을 그에게 돌려줬을 때, 상당히 놀랐다. 쿠슈너가 그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당장은 스라이브에 큰 비용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 결정은 앞으로 수년간 좋은 평판으로 보답할 것이다.

스라이브가 투자에 성공한 또 다른 기업 깃허브의 창업자 크리스 완스트라스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친절한 사람들을 나약하다고 무시한다"며 "모든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고, 벽시계를 떼내 바닥에 박살내는 냉혹한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냉혈한보다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쉽게 되면 미덕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쿠슈너가 열심히 노력해 갖춘 기질이다. 아울러 그의 접근방식이 아버지 찰리나 형 재러드와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둘은 서로 마주쳤을 때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사이으로 알려졌다). 물론 쿠슈너가 좌절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그의 창업자 고객들은 예외다)을 정말 걱정하는 감정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 날카로운 태도(cutting deliveries)를 보일 때도 있다. 그가 스웬슨에게 보낸 이메일에서처럼, 가끔 감정이 크게 개입된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불신이나 실망감을 표현하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와 오스카헬스를 공동 설립한 슐로저는 쿠슈너가 스타트업을 지원한 투자자들과 나눈 통화 모습에 너무 충격을 받아, 조용히 친구의 행동을 동영상으로 찍었다고 회상한다. 당시 쿠슈너는 “투자자들이 값비싼 실수를 저질렀다”고 팔을 흔들어대며, 온 방을 돌아다녔다. 슐로저는 “그가 투자자들에게 ‘당신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라고 일장연설을 했다”며, 그의 팔 동작이 “마치 지휘자 같았다”고 묘사했다. 그럼에도 쿠슈너는 전문가다운 적절한 절제심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 기사를 위해 35차례 이상 인터뷰를 가졌지만, 조시와 적대적인 말을 주고 받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쿠슈너가 수년 간 구축해 온 인간관계는 2016년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형의 장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때였다. 좌파 성향의 많은 기술 창업자들과 근로자들의 사고방식을 고려하면, 그 사건은 오히려 그의 평판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창업자들과 친구들은 백악관에 입성하게 될 재러드를 ‘손절(dump)’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시가 설립한 스타트업 오스카헬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위험에 빠뜨린 전국민 건강보험법(ACA)에 크게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었다.

조시는 비공개 모임에서, 팀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나는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재러드는 예상되는 이해상충을 피하기 위해, LP로서 스라이브의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회사는 오스카헬스에서 매주 직원이 모두 참석하는 회의를 열었다. 쿠슈너는 그곳에서 그의 가족과 워싱턴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각종 질문에 답했다. 슐로저는 "그는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또한 트럼프 정부와는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며 "사람들이 조시를 불신하는 문제는 전혀 없었다”고 회상한다. 

조시의 아내 클로스는 많은 방법을 통해 “두 형제의 정치적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대중에게 확실히 알리는 일을 도왔다. 그녀는 2017년 열린 ‘여성들의 행진’ 행사에 자신과 조시가 함께 참석한 사진을 올렸다. 몇 년 후에는 “1월 6일 의회 난입 폭동을 멈추기 위해 재러드와 이방카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조시는 정치적 좌절감을 느꼈을 때, 비공식 채널을 통해 형 재러드와 소통했다. 트럼프가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을 때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또 아랍-이스라엘 관계를 강화하는 에이브러햄 협정 같은 다른 프로그램들을 지지했다. 그는 재러드가 백악관에서 근무한 수년간 내내, 형과 정기적으로 대화를 가졌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가족에 대한 조시의 강한 보호 본능은 인터뷰 내내 기저에 깔려 있었다. 그는 필자가 이번 기사를 위해 부모와 아내를 접촉하도록 도와줬다. 하지만 재러드와의 인터뷰는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취재하는 동안 재러드에게 숱하게 전화를 걸고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수 차례 보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응답하지 않았다). 스라이브 사무실 근처에서 4마일을 걸으며, 필자는 조시에게 ▲가족에 대한 감정 ▲(특히 의회 폭동 사건 및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캠페인과 관련된) 재러드와의 정치적 견해차에 대해 물었다. 그는 길게 대답했지만, 오직 기사화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였다.  

 

2019년 파리에서 열린 ‘파리 패션위크 패션쇼’에 참석한 칼리 클로스가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하고 있다.
2019년 파리에서 열린 ‘파리 패션위크 패션쇼’에 참석한 칼리 클로스가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하고 있다.

 

스라이브의 문화 변화

오늘날 직원 65명이 근무하는 뉴욕 스라이브 캐피털 사무실에는, 기술업계의 최신 동향 분석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세련된 밀레니얼 세대들이 가득하다. 많은 직원들은 입사를 위해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친 인터뷰 과정을 거쳐야 했다. 행실이 나쁜 직원이나 심지어 평범한 수준의 직원의 고용을 피하기 위해, 쿠슈너는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 실제로 일을 매우 잘 하는 한 여성 인턴은 사무 보조원들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입사가 취소됐다. 스라이브의 사회적 투자 포트폴리오를 총괄하는 나빌 맬릭은 경영대학원 시절부터 쿠슈너와 알고 지냈지만, 면접을 통과하는데 8개월이 걸렸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30분간의 면접에서는 누군가를 속일 수 있지만, 20시간에 걸친 면접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입사 면접은 회사 문화와 맞는 대화, 사례 연구 질문, 저녁식사, 아침식사, 커피 미팅으로 구성된다. 스라이브의 파트너 카림 자키는 “회사는 4년 미만의 투자경험과 높은 목표의식을 가진 창의적 인재를 원한다. 그들에게는 전략적 사고 방식보다, 벤처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더 쉽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스라이브는 매주 두 번씩 거래 진행상황을 점검하는 미팅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 파트너들은 스타트업 투자 기회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하고, 투자액의 삭감 여부를 저울질한다. 다수가 찬성하지 않으면 거래는 이뤄지지 않는다. 쿠슈너의 의견조차 기각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투자를 검토할 때마다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올바른 논의는 할 수 있다"며 "그 방법은 권한에 따른 책임감을 느끼는 올바른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데이터는 스라이브의 의사 결정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년 전, 회사는 블랙스톤에서 분석 전문가 아누지 멘디라타를 영입했다. 그 후 멘디라타와 6명으로 구성된 팀은 회사의 "운영 체제"라고 불리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덕분에 모든 직원들은 현재 투자사들과 잠재적인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실적 지표를 매우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도 다수 포함된다. 이런 통찰을 통해, 스라이브는 오픈AI 같은 일부 벤처기업들에 적극 투자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쿠슈너는 자신의 모니터에서, 이 스타트업의 사용량과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전망이 불투명한 다른 기업에 대한 투자는 피할 수 있게 됐다.

24시간 일하는 것은 여전히 스라이브의 일상이다. 쿠슈너는 필자에게 한번 이상 "일은 삶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 칼리 클로스는 연애 초기 어느 날 밤 11시에 사무실에 들이닥쳤던 일을 기억한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그 시간까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쿠슈너는 그 곳에서 팀원들과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스라이브 팀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기회는 금요일 밤에서 토요일로 넘어 가는 시간이다. 쿠슈너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컴퓨터를 끄기 때문이다. 

맬릭은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난 직후, 6주간이나 뉴저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출퇴근했다. 깃허브가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임원 3명을 해고하는 바람에, 맬릭이 그 공백을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아내가 화가 많이 났다"고 인정한다. 파트너인 자키는 서부 지역 창업자들과 함께 진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년간 캘리포니아를 28번이나 다녀왔다.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당신이 나를 만나고 싶으면 항상 근처에 있을게요’라는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들이 시간이 된다고 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고 말한다.

자키와 맬릭은 스라이브의 최고위급 임원이지만, 이들이 마흔 살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38세인 쿠슈너는 그가 이끄는 9명의 투자팀에서 최연장자다. 스라이브에서는 뒤늦은 깨달음(hindsight)이 별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필자는 회사가 매달 주최하는 점심 학습 프로그램(lunch-and-learns)에 참여했다. 당시 그 모임은 그런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주도했다. 바로 하버드 경영대학원 학장을 지낸 60대의 니틴 노리아였다. 클로스는 그를 쿠슈너의 "요다(영화 스타워스에 등장하는 지혜가 뛰어난 인물)"라고 부른다.

이 모임에는 40명 이상의 직원들이 참석했다. 그 중 절반 정도가 여성이었고, 거의 모든 직원들이 청바지와 운동화 같은 캐주얼 복장이었다. 또 다시 ‘로저스 아저씨 스웨터’를 입고 나타난 쿠슈너는 뒤쪽에 앉았다. 노리아가 칠판 앞에서 강의를 하는 동안, 우리는 과거 폭발적인 성장을 했던 한 스타트업이 이제는 ‘혼란스러운 과도기’를 헤쳐나가는 사례를 검토했다.

오늘날 그 단계는 스라이브에도 해당될 수 있다. 자키는 2022년 한 외부 모임에서 시급한 문제를 제기했다. 회사가 현재 속도로 계속 성장하면, 투자 포트폴리오 회사의 모든 창업자들을 적절하게 지원할 수 있는 내부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스라이브는 지난 1년간 충원에 노력했다. 2021년 이후로는 총 24명을 영입했다.

그러나 회사는 또한 더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즉, 거품 낀 벤처 시장이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지속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2020년 뉴욕 링컨 프로젝트의 타임스퀘어 광고판에 백악관 고문 재러드 쿠슈너의 모습이 보인다.
2020년 뉴욕 링컨 프로젝트의 타임스퀘어 광고판에 백악관 고문 재러드 쿠슈너의 모습이 보인다.

 

벤처 거품?

로엘로프 보타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서 깊은 벤처 회사인 세쿼이아의 수석 파트너다. 그도 쿠슈너처럼 명문가의 후손이다. 가문의 엄청난 명성은 그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됐다. 스라이브와 세쿼이아는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전에서 경쟁자이자 협력자였다. 보타는 저녁식사를 위해 쿠슈너를 집으로 초대했다. 또한 그는 쿠슈너가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세쿼이아의 파트너로 활동했다.

보타는 벤처 투자자들이 조달하는 돈이 실제로 존재하는 훌륭한 스타트업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우려한다. 그는 “앞으로 수백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들이 매년 수백 개 이상 탄생한다”며 “많은 회사들이 실패하는 벤처 산업에서, 투자금 부족의 결과는 멸종 수준의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부연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지난 10년간 스타트업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됐던 교본은 앞으로 10년간은 별 쓸모가 없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과연 벤처 회사가 적절한 구조를 갖고 있고, 충분한 어소시에트 직원과 파트너를 보유하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스라이브가 씨름하고 있는 종류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쿠슈너는 이미 최근 AI 기업이 아니면 기술 투자를 꺼려하는 시장 때문에, 스트레스와 씨름하고 있다. 스라이브는 2021년 자사 규정을 변경, 벤처 기업들이 전통적으로 가까이 하지 않는 분야(이 회사들의 보통주를 보유하는 것도 포함된다)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가을 공개된 서류에 따르면, LP인 텍사스대학 연금 펀드는 스라이브에 투자한 자산 가치가 31%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스라이브의 최신 펀드가 가장 많이 보유 중인 중고차 온라인업체 카바나와 금융거래 플랫폼 로빈후드의 주가 급락을 반영한 결과다. 

쿠슈너는 또한 단지 인재를 육성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최근 몇 년 간 스라이브는 크리스 페이크, 윌 게이브릭, 재러드 와인스타인(셋은 회사가 이곳 저곳을 전전하던 초창기 시절부터 동고동락해 온 멤버다)과 마일스 그림쇼 같은 파트너들을 떠나 보냈다. 물론 20~30대들은 자주 회사를 옮기는(career-hop) 경향이 있다. 하지만 쿠슈너가 그 동안 파트너들이 계속 남아있도록 장려하는 방식으로 회사 구조를 만들어오지 않은 것도 한 몫 했다.

벤처 캐피털 업계에서 파트너들은 일반적으로 ‘캐리’(보통은 투자 이익의 20%)라는 형태로 수수료를 받는다. 어소시에이트에서 파트너에 이르기까지, 스라이브의 정규직 직원들은 각자 캐리를 받고 회사 이익을 공유한다(LP가 지급하는 관리비도 VC가 받을 수 있는 보상 중 하나다).

쿠슈너는 스라이브가 소유한 투자운용사의 단독 내부 오너인데, VC 회사에서는 흔치 않은 구조다. 물론 이 구조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등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민주적으로 회사를 운영한다고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회사의 다른 모든 파트너들은 조시의 부하 직원에 불과하다. 특히 10년 이상 근무한 야심 찬 직원들은 더 많은 권한과 자율성을 찾아 회사를 떠나고 있다. 

쿠슈너가 수 세대 동안 지속 가능한 회사를 구축할 생각이라면, 그는 주변에 더 많은 공식 자리를 만들어야 할지 모른다. 필자는 그에게 만약 내일 버스 교통사고를 당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물었다. 그는 “그것이 명확한 답이 없는 좋은 질문”이라고 인정했다.  

 

2019년 농구 경기장을 찾은 조시 쿠슈너와 칼리 클로스 부부가셀카를 찍고 있다. 경쟁자들과 비교하면, 쿠슈너는 언론을 기피하는 편이다.
2019년 농구 경기장을 찾은 조시 쿠슈너와 칼리 클로스 부부가셀카를 찍고 있다. 경쟁자들과 비교하면, 쿠슈너는 언론을 기피하는 편이다.

 

혈통이라는 자산

찰리와 세릴 쿠슈너는 뉴욕시 767 5번가에 소재한 건물 50층에서 필자를 맞았다. 자연광이 들이치고, 가족사진으로 도배된 고급 사무실이었다. 요즘은 이곳에 초대된 기자들이 많지 않은데, 부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세릴은 인터뷰가 시작되기도 전에, 마치 슬퍼하기라도 하듯 검은색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쿠슈너 부부는 막내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물론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그들은 “조시는 꼼꼼하고, 인내심이 많고, 친절한 아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많았던 찰리의 과거를 고려하면, 조시에 대한 그의 평가는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조시가 이룬 성과가 매우 자랑스럽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조시와 그 아이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훨씬 더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필자는 “조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느냐”고 물었다. 부부는 조시가 너무 겸손한 나머지 차마 스스로 하지 못한 이야기를 했다. 다른 사람들도 필자에게 같은 말을 했다. “조시는 세계 최고의 벤처 투자자가 될 것이다.” 필자는 그 야망 찬 목표보다, 오늘날 VC로서 성공하는 의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며 부부의 사무실을 나왔다.

쿠슈너의 노력과 그가 가진 호감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이 결국 기술투자에 대한 독특한 접근 방식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남들이 갖지 못한 인맥과 접근성, 자본의 덕분인지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가 인터뷰한 많은 지인들은 쿠슈너가 반드시 그들이 만난 최고의 벤처 투자자는 아니며, 그가 이론의 여지 없이 가장 똑똑한 사람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가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안목이 있고, 무엇이 훌륭한 팀과 제품을 만드는지 포착하는 감이 좋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벤처 캐피털 업계에서는 두 가지 모두 특별한 자질은 아니다.

쿠슈너 자신은 회사가 성공한 이유를 겸손과 추진력, 직관을 거부하는 사고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급진적으로 행동하기 보다, 계속 발전하는 규범과 트렌드를 파악한 것이 ‘차세대 대박기술’을 좀 더 쉽게 포착하는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쿠슈너는 이어 “군중들과 그들이 내는 소음을 무시하는 것이 스라이브의 핵심 가치”라며 "우리는 눈을 가리고 외부 소음을 차단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쿠슈너가 혈통 덕분에 물려받은 독특한 자산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가정사가 때때로 부담이 됐다. 따라서 그에게는 더 이상 불명예스러운 실수를 범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 20대 젊은이들은 아무리 똑똑하거나 카리스마가 넘치더라도, 유력인사들과 환담을 나누고 그들에게 돈을 맡겨달라고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한다. 

결국 한 투자자가 가진 자산과 이점은 결과를 얻는 데 도움이 될 때만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쿠슈너는 성과를 거둬왔다. 그와 함께 뉴욕에서 활동하는 벤처투자자 데이비드 티시는 "돈을 물려 받으면 접근할 수 있는 기회와 돈이 약간 생긴다”며 “하지만 당신 손으로 직접 돈을 벌었다면 그 기회와 돈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 글 ALYSON SHONTELL 기자 & 조채원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15 (엘림넷 빌딩) 1층
  • 대표전화 : 02-6261-6149
  • 팩스 : 02-6261-615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노경
  • 법인명 : (주)에이치엠지퍼블리싱
  • 제호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 등록번호 : 서울중 라00672
  • 등록일 : 2009-01-06
  • 발행일 : 2017-11-13
  • 발행인 : 김형섭
  • 편집국장 : 유부혁
  • 대표 : 김형섭
  • 사업자등록번호 : 201-86-19372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1-서울종로-1734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kpark@fortunekorea.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