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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규제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면

플로랑스 베르제랑(Florence Verzelen) 다쏘시스템 수석 부사장 

  • 기사입력 2024.01.24 17:00
  • 기자명 문상덕 기자

다쏘시스템은 EU집행위원회와 함께 규제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규제별로 대응하기 어려운 한국 제조업에는 단비다.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플로랑스 베르제랑 (Florence Verzelen) 수석 부사장 다쏘시스템의 인더스트리, 마케팅 및 지속가능성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통상총국과 경쟁국, 프랑스 에너지기업 엔지의 최고운영책임자 등을 거쳐 2018년 다쏘시스템에 합류했다.

▶다쏘시스템 프랑스 다쏘(Dassault) 그룹 산하의 제품수명관리 소프트웨어 개발사. 1981년 설립됐다. 현재 국내선 삼성전자, 현대차, 한국항공우주산업 등 2만 2000여 곳 기업을 고객사로 갖고 있다. 2021년 환경문제 대응 기업연합인 ‘유럽 그린 디지털 연합(EGDC)’에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2년 뒤부턴 배터리도 유럽에 가려면 여권이 필요하다. 여권이 없으면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는다. 유럽연합(EU)에서 만드는 ‘배터리 여권’ 양식에는 제품의 생산·사용·폐기·재사용·재활용 등 전 생애주기 정보가 담긴다. 이를 바탕으로 탄소 배출량을 파악하고 탄소세도 매긴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여권 발급 대상을 전자기기, 섬유제품 등으로 점차 늘리는 안을 밝힌 바 있다. 

EU의 환경규제는 폭넓고 복잡하다. 반도체, 배터리 등에 폭넓게 쓰이는 코팅재(PFAS) 사용을 제한하는가 하면, 모든 포장재를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설계하도록 강제하기도 한다. 개별 기업이 일일이 파악하고 대응하긴 어려운 수준이다. 실제로 EU가 PFAS 규제를 예고하면서 폴란드 등 유럽 진출을 노리던 국내 배터리 소재기업들은 대체 소재를 찾는 데 난관을 겪고 있다.

출제기관의 의도는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규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산업용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다쏘시스템은 EU집행위원회와 협력하고 있다. 자사 시뮬레이션 플랫폼인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이하 ‘3DX 플랫폼’)에 규제 대상인 제품을 적용하면, 플랫폼에서 ‘제품 설계가 규정을 충족한다’는 판단을 내려준다. 그리고 위원회도 이 판단에 따라 제품을 승인한다. 

EU집행위원회 출신인 플로랑스 베르제랑 다쏘시스템 수석 부사장은 현재 위원회 측과 이런 승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르제랑 부사장은 “다쏘시스템은 관련한 환경 규제 요건들을 3DX 플랫폼에서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만약 우리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EU 규제에 대응하는 일은) 솔직히 너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가 설명하는 3DX 플랫폼 기반 솔루션은, 시험에 나올 법한 문제만 짚어주는 ‘꼼수’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단 모의고사(시뮬레이션)를 자주 보면서 놓친 개념(규제)을 빠짐없이 챙겨주는 정공법에 가깝다. 베르제랑 부사장은 이런 접근법을 ‘버추얼 트윈’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 디자인, 설계부터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 제조, 운영 등 모든 공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 ‘시뮬리아’ ‘솔리드웍스’ 등 플랫폼 내 솔루션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버추얼 트윈 개체와 개체를 둘러싼 전체 환경을 시각화,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해 정교한 경험을 제공하는 기술 개념. 외부 환경에 따른 변화, 제품의 수명 주기 전반에 걸친 변화를 예측, 대응할 수 있다.

 

 

Q 보통 공장의 가상화를 ‘디지털트윈’이라고 합니다. 버추얼 트윈은 이것과 다릅니까?

다쏘시스템은 ‘버추얼 트윈 익스피리언스 컴퍼니’라고 스스로를 정의합니다. 실제로 다쏘시스템의 비즈니스는 모두 버추얼 트윈에 관한 것입니다. 디지털트윈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디지털트윈이 하나의 사물을 가상세계에 구현한다면, 버추얼 트윈은 사물을 둘러싼 환경 전체를 구현합니다. 어떤 기업이 태블릿PC를 만든다고 해보죠. 디지털트윈은 태블릿 기기에 대한 데이터만 다룹니다. 하지만 버추얼 트윈에선 원자세계에서 가시세계에 이르기까지, 기기를 둘러싼 환경 전체를 시뮬레이션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버추얼 트윈으로 구현된 가상의 기기를 벽에 던진다면, 그것이 얼마나 많이 파괴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는 태블릿PC뿐만 아니라 자동차, 항공기, 기차 등을 갖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걸 구현할 수 있으면, 우리는 모든 제품을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최적화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예측적 유지보수를 할 수 있습니다. 외부 환경에 따라 제품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있으니까요. 또 제품의 어떤 부품을 재활용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죠.

 

Q 이미 원자 단위의 세계까지 재현할 수 있군요.

네, 가능합니다. 비용과 노력의 문제입니다. 두 가지 경우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보잉사와 진행하고 있는 차세대 항공기 개발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가상세계에서 항공기 설계와 엔지니어링을 진행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그래서 프로토타입이 나오기 전 시점에 이미 항공기에 관한 모든 정보를 원자 단위에서 데이터로 확보하고 3DX 플랫폼에서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건 보다 지속 가능한 항공기를 만들기 위해서죠.

물론 유즈 케이스에 따라 원자 단위의 정보가 필요 없을 수 있습니다. 정밀도가 높을수록 비용이 더 많이 드니까요. 예를 들어 프랑스의 제약기업 사노피(Sanofi)는 A 백신을 생산하는 시설을 B 백신 생산용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 그들의 말로는 ‘진화된 공장’을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는 시설의 버추얼 트윈을 구축하고, 새로운 공정에 맞게 설비를 재조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때 설비의 원자 정보는 필요 없죠. 설비의 종류와 작동방식만 알면 충분했습니다.

 

Q 그래도 원자 단위의 세상까지 구현할 수 있는 건 놀랍습니다. 인간은 신을 모사하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까요. 관련해서 메타버스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메타버스 열풍이 끝난 건 ‘실제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경험’을 구현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해요. 부사장께선 어떻게 보십니까?

다쏘시스템은 ‘메타버스’라는 말이 있기 전부터 메타버스를 만들어 왔습니다. 20여 년 전부터죠. 항공기나 선박, 조선소 혹은 도시의 버추얼 트윈을 구현하는 것은 다쏘시스템이 해오던 일입니다. 다쏘시스템은 특히 산업 메타버스에 특화했죠. 예를 들어 자동차산업, 조선업, 의료용 메타버스를 구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뇌의 버추얼 트윈을 만들어 의사가 사전에 모의수술을 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Q 산업 메타버스는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산업 메타버스와 ‘메타버스’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유즈 케이스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용자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사례가 다양하게 나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 분야의 선두 기업에서 메타버스를 마케팅과 교육에 활용하려고 시도했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가서 학습하고 홍보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었던 겁니다. 

메타버스든 버추얼 트윈이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을 때만 유용합니다. 

 

메타버스든 버추얼 트윈이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을 때만 유용합니다.

 

Q 다쏘시스템의 솔루션이 유럽 수출을 고민하는 기업에 도움이 될까요?

물론이죠. 두 가지 주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버추얼 트윈을 활용해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3DX 플랫폼에서 이 작업을 할 때 해당 제품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탄소의 양과 소재, 전력 소모량 등을 알려줍니다. 흥미로운 점은 탄소 감축의 80%가 설계 단계에서 결정된다는 겁니다. 이 플랫폼에서 제품을 설계해서 미리 탄소 배출량과 감축 정도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제조공정에서도 버추얼 트윈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강산업은 세계 탄소 배출량의 6%를 차지하는데, 이는 철강 생산공정이 지속 가능성에 맞게 최적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생산라인을 가상화하고,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테스트한다면 탄소 배출이 적은 ‘그린 철강’을 더 빨리 상용화할 수 있을 겁니다. 

또 탄소는 공장에서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공급망 전반에 걸쳐 나오죠. 지금까진 공급망을 비용 최적화 했지만,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3DX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솔루션 중 하나인) ‘델미아(DELMIA)’를 활용하면 자재 공급업체부터 제조, 물류, 서비스 사업자까지, 공급망 전체를 버추얼 트윈으로 구현해 비용과 탄소 배출량을 동시에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Q EU의 환경 규제가 가장 큰 고민이겠죠.

EU가 유명하죠(웃음). 일반 개인정보 보호규정(GDPR)이 나왔을 때도 전 세계가 휘청거렸습니다. 환경 규제도 그럴 겁니다. 

이런 규제들을 개별 회사 입장에선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쏘시스템은 관련한 환경 규제 요건들을 3DX 플랫폼에서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협업해서, 우리의 플랫폼에서 발급한 여권을 위원회가 승인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배터리, 휴대전화를 설계할 때 플랫폼에서 ‘이런 설계는 규정을 충족합니다. 다만 국경에서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습니다’라고 안내해 줍니다.

 

Q 배터리는 전자제품이면서 화학제품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엄격한 환경과 안전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데요. 예를 들어 배터리 부품 코팅용으로 활용되는 과불화화합물(PFAS)에 대해서 유럽연합은 발암율을 높인다는 이유로 사용 제한을 예고했고요. 또 배터리 성능과 안전(발열)은 아직까지 상충 관계에 있는 듯합니다. 참 다루기 어려운 제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다쏘시스템은 3년 전부터 배터리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기존 소재를 갖고 더 나은 배터리를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전 세계 배터리 기업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DX 플랫폼을 바탕으로 새로운 합성물질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Q 조선업은 어떻습니까? 노동 집약적 한계 때문에 한국 조선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조선업은 매우 흥미로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군함이나 해상풍력 설치선박 등 갈수록 특수하고 복잡한 배들이 건조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넷제로를 위해 자율운항 기술이 접목되기도 합니다. 

다쏘시스템이 전 세계 고객사와 함께 보고 있는 건 선박의 버추얼 트윈을 활용해 설계와 제조에 드는 시간을 단축하고, 실제 선박을 운용할 때는 예측적인 운용보수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하면 기존 방식보다 인력을 더 적게 써도 되죠. 참고로 프랑스 조선업도 인력난을 겪고 있습니다. 선박의 버추얼 트윈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버추얼 트윈을 통해 배를 설계하는 겁니다. 선주가 배를 발주할 때 조선소는 버추얼 트윈을 활용해 선주에게 어떤 선박을 건조할 것인지, 어떤 소재를 쓸 것인지, 탄소 배출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아예 버추얼 트윈을 활용해 선주가 가상의 선박 안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습니다. 조선소는 낙찰 확률을 높일 수 있겠죠. 

버추얼 트윈을 활용하면 인력과 시간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건조 중인 선박의 버추얼 트윈을 자재, 부품 공급업체와 공유하면서 필요한 자재와 부품을 적시에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다쏘시스템과 협력하는 한 조선소는 건조 시간을 최대 30%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인력도 그렇고요.

우리의 비전은 조선소가 선주에게 선박을 인도할 때, 선박의 버추얼 트윈을 함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주가 예측적 유지보수를 하고, 지속 가능성을 위해 선박을 계속 최적화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선주에게 더 많은 가치를 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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