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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 Theory] 스톤브릿지는 크지만 가볍다

유승운 스톤브릿지벤처스 대표

  • 기사입력 2024.01.24 12:00
  • 기자명 문상덕 기자

동시대 가장 날 선 지식을 우리는 ‘Theory’라고 부른다. Fortune Korea는 의류 브랜드Theory와 함께, 자신만의 이론을 갖고 시장의 판을 바꾸는 혁신가들을 만난다.


큰 것은 대개 무겁다. 무거워서 휘청거린다. 호황기, 유니콘에 거금을 투자했던 VC들이 이런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젊은 VC 스톤브릿지벤처스는 덩치가 커져도 민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다.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유승운 스톤브릿지벤처스 대표 1999년 CJ창업투자(현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에서 벤처투자업에 입문, 이후 소프트뱅크벤처스, 솔마인유한회사를 거쳐 2015년 카카오벤처스 대표직을 맡았다. 2019년 스톤브릿지에 합류했다.


2018년 SK스퀘어는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다. ‘자회사 11번가를 5년 내로 상장하도록 하고, 실패할 경우 투자자가 자기 지분에 더해 SK스퀘어의 11번가 지분까지 함께 매각할 수 있다.’ 후자는 동반매도청구권이라고 부른다. 

동반매도청구권은 대주주 지분 모두를 박탈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조항이지만, SK스퀘어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 투자를 유치하면서 이를 계약에 넣어왔다. 지난 10여 년간 행사된 적 없는 안전장치였기 때문이다. 보통은 상장에 실패할 경우 대주주가 투자사 지분을 되샀다(콜옵션 행사). 투자사 입장에선 수익은 못 내더라도 이 방법으로 엑시트(현금화)가 가능했다. SK스퀘어도 상장에 실패하면 원금에 연이율 3.5% 이자를 더한 가격에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23년 11월 29일, SK스퀘어 이사회는 11번가 콜옵션 행사를 포기하기로 의결한다. 이사회 측은 배임 소지를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가치가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는데, 과거 가격에 지분을 되사는 게 맞느냐’는 논리다. 투자업계에선 분노가 일었다. ‘앞으로 콜옵션 행사를 기대하고 지분 투자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이번 결정이 시장 질서를 헤쳤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건을 보는 유승운 스톤브릿지벤처스 대표의 시각은 달랐다. 유 대표는 “과거에 당연했던 것이 더는 통용되지 않는 시대”라며 “사건만 보면 대주주(SK스퀘어)가 신의를 저버린 케이스 같지만, 사실 시장의 기준 자체가 바뀐 결과”라고 평했다. 11번가 사건은 시장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라는 것이다.

변화의 핵심은 다운사이징이다. 기업 가치가 당연히 오르는 시대는 저물었다. 한때의 유니콘이 골칫덩이로 전락할 수 있다. 2018년 2조7500억원이었던 11번가의 밸류에이션은 현재 5500억원 밑으로 쪼그라들었다. 유 대표는 ‘다운 라운드’를 말했다. 비상장기업이 직전 투자 라운드보다 낮은 가치로 투자받는 걸 말한다. 그는 “온라인 플랫폼, 바이오 업계에선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다운 라운드가 빈번한 지금, VC의 경쟁력은 “가벼움”이라고 말했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분야로 조직의 방향을 민첩하게 틀 수 있어야 한단 것이다. 그래야 우수한 초기 기업을 발굴하고, 후속 투자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또 후속 투자를 잘하려면 재원도 충분해야 한다. 밸류에이션이 과도한 기업을 피하고, 여윳돈을 확보하는 것도 그가 강조하는 가벼움이다. 그는 “현금을 갖고 신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한 VC에 출자자(LP)도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Q 벤처 붐 열기가 가신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시장 상황이 어떻습니까?

투자사들이 비상장기업의 후기 라운드에 지난 3년간 넣은 돈이 상당합니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과 바이오 기업에 집중돼 있습니다. 비싼 값에 지분을 산 투자사들은 (신산업에 투자할 여력이 없으니) 몸이 무겁겠죠. 11번가가 그런 케이스입니다.

2020~2021년 비싸게 투자했던 포트폴리오가 3~4년 뒤엔 본격적으로 문제가 될 거예요. 다행히 저희는 몸을 가볍게 만드는 준비를 조금 먼저 해왔고요. 이런 차이가 향후 3년간 업계 판도에 변화를 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 몇 년간 스톤브릿지는 벤처 붐을 타고 빠르게 덩치를 키웠다. 2019년 유 대표 취임 당시 3900억원이었던 운용자산(AUM) 규모는 올해 말 기준 1조1500억원으로 세 배가량 커졌다.

하지만 이 기간 스톤브릿지는 온라인 플랫폼, 바이오 같은 당시 인기 업종보다는 신산업에 주목했다. 지난 3년간 4개 펀드를 청산하고 AI, 반도체 등 딥 테크 기업으로 투자의 무게중심을 옮겼다. 2023년 11월 이 분야 초기 기업에 투자할 600억원 규모의 신규 펀드(‘아이비케이-스톤브릿지 라이징 제2호 투자조합’)를 결성하기도 했다. 성장에 돌입한 딥 테크 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펀드(‘스톤브릿지신성장4.0투자조합’) 결성도 막바지다. 규모는 200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익을 실현한 케이스도 있다. 스톤브릿지가 2018년부터 4회에 걸쳐 115억원을 투자한 AI 반도체 기업 ‘오픈엣지테크놀로지’ 지분 전량을 매각해 540억원을 회수했다. 이 업체는 지난 2022년 9월 코스닥 상장했다.


 

Q 투자를 하지 않기로 한 사례가 있다면.

온라인 명품 플랫폼, 메타버스, 여행 플랫폼에 투자 안 했습니다. 특히 명품과 메타버스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고, 내부적으로 신랄하게 토론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하지 말자’. 가격이 비싼 것도 있었지만, 한 명품 플랫폼 회사가 연예인을 써서 텔레비전 광고를 하더라고요. 2000년 벤처 붐 때도 벤처기업들이 투자받은 돈으로 그런 광고를 했습니다. 그때가 끝물이었어요. 

메타버스의 경우엔 스톤브릿지에 게임산업 담당 심사역들이 있어요. 게임과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의문이 있었죠. 게임회사에서 메타버스를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어요. 그래서 또 고민 끝에 건들지 말자고 결론 내렸어요. 비싸기도 했고요.

만약 ETF처럼 하려고 했으면 명품 플랫폼 네 군데 중에 하나 넣고, 메타버스도 제일 잘나가는 업체 중에 하나 넣어두자고 했겠죠. 실제로 많은 VC가 그랬고요. 저희는 내부적으로 360도 보면서 각자 자기 의견을 적극 개진한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Q 기존에 인터뷰하셨던 것 중에 ‘온라인 플랫폼 하면 스톤브릿지’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꽤 다양한 분야의 포트폴리오가 있습니다. 달라진 계기가 무엇입니까?

현장 판단을 중시하는 것도 있고요. 또 펀드 사이즈가 커지니까 원래 포트폴리오라는 단어의 뜻처럼 재원을 분산하는 일이 필요했고요. 그리고 2020년 정도부터는 온라인 플랫폼, 커머스를 경계했어요.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았습니다. 그보다는 AI에 투자를 많이 하자. 큰 배는 조금만 방향을 바꿔도 진로가 크게 달라지잖아요. 우리가 AI와 함께 디지털치료제, 헬스케어 투자를 늘렸어요. 

대표적인 케이스로 리브스메드라고 하는 업체가 있어요. 복강경 수술 도구를 보면, 한쪽에 손으로 조종할 수 있는 레버가 있고 다른 쪽 끝에 집게가 달려 있어요. 그동안은 외국 제품을 수입해서 썼는데, 집게가 돌아갈 수 있는 한계가 90도였거든요. 이걸 360도로 키우고 도구의 두께도 7~8mm에서 5mm로 줄였습니다. 그만큼 회복이 빨라지는 거예요. 이 제품이 이미 전 세계에 팔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방향을 튼 게 3년 정도 됐습니다. 

 

Q 에너에버배터리솔루션 투자를 주도했던 최동열 파트너도 “치열한 토론”을 말했습니다. (※2023년 11월호 참조) 포트폴리오 기업이 분리막 코팅에서 생산으로 사업을 확장하려고 할 때 내부 찬반이 비등했다고요. 수직적인 의사결정이 익숙한 한국에선 생소한 풍경입니다. 

VC의 본류인 미국은 주식회사가 아니라 LLC 형태가 많아요. 파트너십 개념입니다. 경험 많고 뛰어난 파트너 두세 명이 뭉쳐서 회사를 만들고 투자를 받는 겁니다. 이들의 철학과 네트워크가 주된 경쟁력이겠죠.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아요. 스톤브릿지는 상장까지 한 주식회사입니다. 한두 사람한테 기대는 구조가 아닙니다. 조직으로 대응하는 게 우리 상황에 맞다고 봤습니다. 또 다루는 분야도 우리처럼 IT와 바이오 전 분야를 본다고 한다면 두세 사람으로 대응할 수 없겠죠. 조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다양성이 살아있는 조직을 유지하는 게 한국 상황에 맞습니다.

 

Q 다양성은 비용 아닐까요? 동질적일수록 의사결정에 드는 비용이 주니까요. 

저희 운용자산 규모가 세 배 늘어난다고 해서 직원 수가 그만큼 늘지는 않습니다. VC의 재무제표는 단순합니다. 비용의 대부분은 인건비예요. 일을 가장 잘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조직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비용이 그렇게 문제가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비용 효율성보다 중요한 건 실수를 줄이고 우리의 철학을 뾰족하게 만드는 겁니다. 효율성을 원한다면 ETF처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투자하고 알아서 해, 하면 되겠죠. 그게 아니라 당신들의 역량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가장 좋은 회사를 골라 투자하라는 거잖아요. 그리고 투자한 이후에도 잘 관리해야 하고요. 이게 효율성의 싸움은 아니죠. 

 

비용 효율성보다 중요한 건 실수를 줄이고 우리의 철학을 뾰족하게 만드는 겁니다. 효율성을 원한다면 ETF처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투자하고 알아서 해, 하면 되겠죠.

 

Q 운용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큰 딜에 투자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지 않습니까?

펀드는 초기에 집중하는 작은 펀드와 이후를 담당하는 큰 펀드,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물론 VC마다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초기에만 전념해서 투자할 수 있는 인력과 재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좋은 기업은 초기부터 접근하지 않으면 그 다음번에 들어가기가 어려워요. VC가 덩치가 계속 커지면서도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좋은 딜을 발굴하고 접근하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딜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도록 하려고 그렇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Q 후속 투자를 염두에 둔 초기 펀딩이네요.

실제로 스톤브릿지는 후속 투자를 열심히 하는 회사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한번 투자하고 말 것이 아니고, 후속 투자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같이 갈 수 있는 회사와 사람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지난 3년간 후속 투자한 건수가 연 평균 20건이에요. 업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노력으로 업계에 나름의 믿음을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투자를 받는 대표 분들도 이제 VC를 고릅니다. 후속 투자에 열의가 있는 곳을 선호합니다. ‘회사가 마일스톤을 잘 지킨다면 후속 투자를 계속 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 대표들이 있어요. 

 

Q 이해관계의 일치보단 파트너를 찾는 느낌입니다.

기업에 두 가지 제안이 간다고 해봅시다. 한 VC는 원하는 가치에 맞춰주겠다고 했어요. 다른 VC는 ‘당신들이 원하는 가치는 비싸다, 하지만 우리는 재원이 충분하니까 합이 잘 맞으면 두 번, 세 번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전자는 보통 신생 VC예요. 그러니까 맞춰준다고 하죠. 회사 입장에서는 원하는 가치는 가능하겠지만 재원이 많지 않아 후속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후자에겐 대신 이렇게 물어봐요. ‘다음번 라운드를 리드해 줄 수 있을까요?’ 그러면 기업이 투자 유치에 들여야 할 노력이 많이 경감되잖아요. (Q ‘신뢰’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협상력이고 수익성이 되네요.) 맞습니다. 

 

Q 후속 투자를 잘하면 여러 모로 이득이 많아 보이는데요. 후속 투자를 잘하는 VC가 되기 힘든 이유가 있습니까?

철학적인 문제도 있고, 또 VC의 규모가 받쳐줘야 하죠. 후속 투자를 하고 싶어도 재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VC도 점차 몸집을 키워야 하고, 그 과정에서 후속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고요. 이게 서로 맞물려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Q 사전 인터뷰에서 VC 업계로 뛰어든 이유를 ‘호기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펀딩 방법이 은행 대출밖에 없던 시절에 VC라는 업이 흥미롭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 호기심은 지금도 있습니까?

저는 유지가 되고 있어요. 항상 새로운 걸 추구하는 사람들, 특히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겠다,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분들이 저희에게 투자를 받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이렇게 좁은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와 기술과 열정이 나오는지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 걱정이라고 하지만, 저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길을 찾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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