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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신, 그리스 로마 신화…‘국민 작품’ 배 가른 저작권 소송들

  • 기사입력 2023.12.21 11:15
  • 최종수정 2023.12.21 12:11
  • 기자명 이세연 기자

*과거부터 지속된 작가와 출판사 간 갈등이 황금알을 낳는 '국민 작품'의 배를 갈랐다. 최근엔 검정 고무신 소송이 2심으로 넘어간 것이 알려지며 다시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포춘코리아가 2004년부터 불거진 작가와 출판사 간 갈등을 재조명해봤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검정고무신의 한 장면. [사진=카툰버스 유튜브 캡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검정고무신의 한 장면. [사진=카툰버스 유튜브 캡처]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3부는 1심에서 '검정고무신' 사업권 계약 효력이 더는 존재하지 않지만, 유효했던 기간에 저작권 침해 행위가 있었다고 보고 이 작가 측이 74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에 출판사와 유족 모두 쌍방 항소에 나서며 2심이 확정됐다.

1990년대 국내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은 이영일 작가가 글을, 고(故) 이우영 작가와 동생 이우진 작가가 그림을 맡았다. 출판사 형설앤과 검정고무신 원작자들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다섯 차례 사업권 설정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에는 "원작물 및 그에 파생된 모든 이차적 사업권을 포괄한다", "일체 작품 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권에 대한 권리를 장 씨에게 양도하고 위반 시 3배의 위약금을 낸다" 등의 내용이 기재됐다. 범위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담아 구체적인 사업 기간이나 목적, 내용을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은 '뒤늦게' 문제로 지적됐다.

이우영 작가는 2019년 검정고무신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책을 그렸다가 '출판사의 동의 없이 관련 창작 활동을 했다'며 형설앤에게 저작권 소송을 당했다. 결국 이우영 작가는 길어지는 소송에 고통을 호소하다 지난 3월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우영 작가가 15년간 지급받은 돈은 1200만원"이라며 "형설앤은 그동안 무기한 사업권을 갖고 총 77개 사업을 진행시켰다"고 밝히며 사건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다. 현재는 이우영 작가 유족과 형설앤의 '쌍방 항소에 의한' 2심이 확정된 가운데, 대책위가 2기 활동에 나선 상황이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 사진. [사진=중고나라 캡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 사진. [사진=중고나라 캡처]

'국민 작품'을 둘러싼 저작권 소송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 시초는 2004년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이하 그리스 로마 신화)' 저작권 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은영 작가가 그림을 맡은 그리스 로마 신화는 출판 4년 만에 1000만 부 이상을 판매한 '레전드 토종 만화'로 꼽힌다.

홍 작가는 2000년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고, 이듬해 출판사 대표와 '2차 저작물의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계약에 대한 해석은 서로 달랐다. 홍 작가는 저작재산권 양도가 캐릭터 사업에만 국한된다고 이해한 반면, 출판사는 2차 저작물 및 상품화(캐릭터 라이선싱) 권리 포함 (출판계약서에 명시된 출판권 외) 모든 저작권을 출판사에 양도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갈등은 출판사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판매 부수를 속이고 인세를 편취하면서 시작됐다. 출판사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367만 부가 팔렸다며 인세로 약 21억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홍 작가는 언론 보도를 통해 작품이 1000만 부 이상 판매된 사실을 알고 2004년 1월 소송을 제기, 3년간의 소송 끝에 약 37억원의 미지급 인세 및 이자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출판사의 별도 소송이 이어지며 갈등이 재점화했다. 출판사는 2005년 홍 작가를 '영화 개봉 방해' 이유로 6억여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출판사는 해당 작품을 바탕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에 착수했으나, 홍 작가가 배급사에 '영화가 원작 만화의 본질적인 부분을 훼손해, 배급하면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내용증명을 발송해 계약이 해지됐다는 설명이다.

1심에서 재판부는 홍 작가의 내용증명이 저작인격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출판사 측에 1억 7000여만원을 물어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끝내 항소심에서는 홍 작가에게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홍 작가는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작품을 연재하며 작가 생활을 이어갔으나, 2011년 7권 발간을 끝으로 공식적인 작품 활동을 멈춘 상태다.


연극 '구름빵' 포스터(왼쪽)와 소설 '아몬드' 표지 [사진=문화아이콘/창비]
연극 '구름빵' 포스터(왼쪽)와 소설 '아몬드' 표지 [사진=문화아이콘/창비]

책 '구름빵'과 '아몬드'도 비슷한 분쟁 역사를 거쳤다.

2003년 발간된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은 40만 권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 인기 그림책이다.

당시 백 작가가 출판사 한솔교육과 맺은 출간 계약서에는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저작재산권 등 일체의 권리를 한솔교육에 양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구름빵은 20여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백 작가가 받은 인세는 1850만원에 불과했다. 결국 백 작가는 출판사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냈지만 2020년 최종 패소 판결을 받아 구름빵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손원평 작가의 장편 소설 '아몬드'는 2017년 발간 이래 국내에서 10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2020년에는 '제17회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국내외적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해당 소설을 무대로 옮긴 연극 '아몬드' 4차 공연이 손 작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제작돼 논란이 됐다. 손 작가는 이 사실을 연극 상연 4일 전에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손 작가는 출판사인 창비 인스타그램를 통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저작권자의 동의는 가장 후순위로 미뤄졌다"며 "출판사 편집부와 저작권부, 연극 연출자가 '저작권'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허약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후 손 작가는 지난 1월 출간 계약 종료 의사를 밝혔고, 아몬드는 한동안 서점가에서 품절 사태를 빚었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은 "사실상 자식과도 같은 작품과 캐릭터를 작가가 쓸 수 없는 상황 자체가 애석하다"며 "관련 일로 응당 IP 권리를 인정받아야 할 작가님이 가슴아픈 선택을 하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세연 기자 mvdirector@fortunekorea.co.kr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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