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엔터사들의 '팬들 주머니 털기 전략'에 K팝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의 공신력 있는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드'가 올해 K팝 아티스트를 단 한 팀도 후보로 지명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엔터사들의 기형적 마케팅이 촉발한 '앨범 중복 구매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 음반사 대표는 "미국은 우리나라 음반을 두고 '포토카드 판매를 위한 굿즈에 불과하다. 음반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K팝이 점차 외면받는 가장 큰 원인"이라며 "중복 구매 문화에 따른 엄청난 음반 판매량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음반사 관계자는 "안에 든 곡은 똑같은데, 앨범 가짓수는 엄청 늘어났다. 과거에는 많아봐야 두 가지 버전 정도였다"며 "이에 '팬사인회 응모권'이나 '랜덤 포토카드' 마케팅까지 들어가니 빌보드에서도 '이 앨범이 음반으로서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고 말했다.
◆ 엔터사들의 꼼수 마케팅
특히 팬사인회 추첨권은 팬들로 하여금 수십에서 수백 장까지 중복 구매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보통 앨범 하나당 추첨권 한 장을 넣어, 많이 살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구조다.
여기에 팬데믹으로 생겨난 '영상통화 팬사인회'라는 새로운 포맷까지 끌어들여 온·오프라인 팬사인회를 대폭 늘리고 있다. JYP의 여자아이돌 '엔믹스'는 올 한 해에만 팬싸인회를 92회 진행하기도 했다.
랜덤 포토카드 역시 중복 구매를 야기하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랜덤 포토카드는 실물이 쥐어진다는 장점 덕분에 당첨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팬사인회 응모권보다 높은 소구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팬들이 이 같은 뽑기 스타일의 마케팅 때문에 음반을 구매한다는 조사도 있다. 지난 3월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2년 내 발매된 주요 K팝 음반(50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K팝 팬덤 활동 소비자의 52.7%가 굿즈 수집을 목적으로 음반을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기형적 성장 지양해야
올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는 케이팝 부문 4개를 신설한 바 있다. 주요 부문 수상에서 제외하기 위한 가두리 전략이라는 논란도 있었지만, 이 또한 K팝의 고질적인 중복 구매 문화가 다른 외국 아티스트의 성적에 불리하게 반영되는 것에 대한 방지책이라는 시각도 있다. K팝이 벌어들이는 엄청난 수익으로 인해 아예 후보에서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래미 어워드는 일부 매니악한 팬들이 앨범을 대거 구매해서 판매량을 늘렸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간파한 것"이라며 "물론 보수성이나 지나친 자기 프라이드로 인해 그래미 어워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지만, 이들이 왜 K팝을 외면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를 기점으로 'K팝 앨범 1억 장 시대'가 열린 것에 대해서도 '외형적 성장'에 집중했다고 꼬집었다. 김 평론가는 "한 사람이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여 차트에 진입시키는 것은 외형적 성장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세연 기자 mvdirector@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