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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물가 안정화'라 쓰고 '가격 통제'라고 읽기

  • 기사입력 2023.12.07 17:26
  • 기자명 김나윤 기자
지난 11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의 이마트용산점을 방문해 물가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1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의 이마트용산점을 방문해 물가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식료품 가격 100원, 200원 올린다고 할 때마다 정부 압박을 이렇게 받아야하는 게 말이 됩니까.”

최근 식품 유통기업 관계자가 식사 자리에서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대외적으론 식품 업계가 정부의 물가 안정화 정책에 적극 협조한다는 원론적 입장이지만 속내는 정반대의 모습인 것이다.

물가 안정화는 경제 유관부처의 핵심 업무 중 하나다. 안그래도 힘든 서민 생활이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더욱 고통받으니 정부 차원에서 '밥상 물가'를 다잡기 위해 움직이는 건 당연지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말 빙그레 생산공장을 비롯해 씨제이(CJ)프레시웨이 본사, 하림 본사 등을 잇따라 방문하며 가격 안정을 당부했다. 지난 6월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라면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라면값 인하의 중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물가 안정화'라고 쓰고 '가격 통제'라고 읽는 눈치다. 지난달 오뚜기기가 가격 인상 발표 반나절 만에 '백지화' 결정을 내린 게 대표적이다. 애초 오뚜기는 이달 1일부터 분말 카레와 분말 짜장 제품(100g)의 가격을 2500원→2800원으로 12.0% 올리는 등 24종의 편의점 소비자 가격을 올릴 방침이었다. 하지만 오뚜기 측은 인상 결정 하루가 채 되지 않아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 속에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민생 안정에 동참하고자 내린 결정"이라며 인상 결정을 전격 철회했다.

풀무원 역시 이달부터 요거트 3종의 가격을 2200원에서 2300원으로 100원씩 올릴 예정이었으나 '전면 무효화' 결정을 내렸다.

식품 업계의 명분 없는 가격 인상은 소비자 외면을 받는 게 마땅하다. 정부 역시 최근 기업들의 슈링크플레이션(제품값은 유지하고 용량을 줄이는 것)을 '소비자 기만 행위'로 규정하며 관련 품목들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엄포까지 놨을 정도다.

하지만 업계도 내심 할 말은 많은 분위기다. 과잉 포장이나 용량 축소 등 기업의 갖가지 꼼수에 대한 단속은 당연히 필요하다면서도 시장 가격(price) 자체를 누르는 것은 시장 경제체제와 어긋난다는 점에서다. 한 식품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의 불법 행태를 단속을 해야지 가격 인상 자체를 단속하는 건 기존 시장 질서와 맞지 않다"며 "가격 올린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정부 관계자들의 '으름장'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 방법론이 식품 업계의 팔을 비트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 제품 가격 인상에 대한 캡이 두텁게 씌워질수록 기업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타개책이 결국 인력 감축 카드 아니겠는가.

일각에선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부와 정치권의 기업 압박이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생산 기업의 원가와 생산비용 인상의 부담을 덜어줄 대책을 찾아야한다. '오늘은 어느 기업을 찾아갈까'라고 고민할 때가 아니라.

 

김나윤 기자 abc123@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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