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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el of Fortune⑧글로벌 확장] '외주' 시대의 종말과 '내재화'의 뉴노멀

김유경의 저널리즘

  • 기사입력 2023.11.04 09:00
  • 기자명 김나윤 기자

글로벌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주요 국가들이 ‘살아남기 위한’ 체질 개선과 공급망 다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0월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AP/뉴시스]
10월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AP/뉴시스]

 

10월 7일(현지시간) 하마스의 선제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전쟁을 선포했다. 공중 타격을 넘어 지상군 투입까지 초읽기에 들어가며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의 관리 속에 안정됐던 세계의 화약고가 재점화한 것이다. 1973년 4차 중동전쟁 발발 이후 꼭 50년 만의 일이다. 미국과 중국 간에 패권 갈등으로 신냉전체제로 들어선 국제사회는 이번 전쟁이 글로벌 핫워(hot war)로 번지지 않을지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이론적 접근법은 현실주의(Realism)와 이상주의(Idealism)다. 현실주의는 국제사회가 정글이며 국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행동하고 국력이 강한 국가에 의해 주도된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예측 불가능하며 국가 간 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상주의는 공동 이익을 위해 국가 간 협력과 상호 의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협상과 협력, 국제법의 준수를 촉구하며 국제 제도와 주요 국제기구의 역할을 강조한다.

1990~2000년대 국제사회를 설명하는 지배적 이론은 이상주의였다. 세계화 열풍이 일며 사람과 재화의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상호 협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발전을 이뤘다. 1970년대 ‘데탕트’ 시대는 민주·공산 진영의 긴장을 완화시켰고 1990년 독일 통일과 1991년 소련 해체로 냉전체제가 종식된 결과다.

이념 논쟁은 끝났고 세계적 평화의 기운 아래 ‘부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상주의 접근으로는 부의 창출을 위해 세계적 평화를 지켰다고도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앙숙이던 독일과 러시아가 2000년대 초 가스 파이프라인을 짓고 에너지 협력에 나선 것이 대표적 사례다. 2000년대는 세계화의 정점인 시대로 유렵연합(EU)의 출범도 상징적 사건이다.

 

탈이념 전 세계적 발전 위한 상호협력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국제분쟁의 이해》에서 “강대국들은 무력으로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군사적 힘과 실질적 목표 달성과의 고리가 느슨해졌음을 설명했다. 경제적 이익이 평화의 비용을 지불할 만한 상황이던 것이다.

세계적 평화를 지킨 1990~2000년대 경제논리는 비교우위이론에 기반을 둔다. 데이비드 리카도가 제시한 비교우위론은 국가 간 상호 협력과 국제무역의 이익을 강조한다. 각 국가가 적은 생산비용으로 재화를 생산할 수 있는 재화를 무역을 통해 교환함으로써 모든 국가가 혜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국가는 자원과 노동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기 비교우위론에 바탕을 둔 교역 체계의 확산은 많은 국가 간 물품과 서비스의 활성화를 이끌었다.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국제기구가 규칙을 만들고 전방위적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다. EU 내부의 경제 통합이 그 결과물이다. 이는 국가 간 자유로운 교역을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경제적 성장을 이루려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0~2000년대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을 달성한 원동력이었다.

국제 분업화의 정착은 세계적 공급사슬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1960~1980년대 미국과 일본의 분업화가 대표적이다. 민주자유진영의 선두주자 격이던 미국은 일본을 생산 기지 삼아 설계·개발→부품→조립·제조→판매→애프터서비스로 나뉜 글로벌 공급사슬을 형성했다. 미국은 앞단과 말단인 설계·개발·판매·애프터서비스에 집중했고 일본은 중간 단계인 부품·조립·제조를 담당했다.

일본은 글로벌 공급사슬에서 부품·조립·제조 분야를 독식하며 미국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당시 글로벌 가치사슬은 ‘역스마일커브’ 형태였다. 하지만 1980~1990년대 들어서 민주자유진영의 확대와 한국과 대만 등의 부상으로 일본의 부품·조립·제조 단계의 수익성이 하락했다. 철저한 분업주의 바람이 일며 신흥공업국에 역스마일커브의 이익구조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최종 소비자 단계를 확보했다. 핵심 기술과 판매망 같은 플랫폼을 장악한 나라가 돈을 더 잘 벌기 시작하며 글로벌 분업 체계는 ‘스마일커브’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반도체와하여 관련 3만 개 넘는 특허를 보유한 일본이 통신·설계 등 340여 개의 핵심 특허를 가진 인텔에 밀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효율·생산비에 기반 둔 글로벌 공급사슬 구축

 

개혁 개방에 나선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2000년대 글로벌 생산거점으로 부상하며 부품·조립·제조 단계를 독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당시 세계적인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 중국의 수요 증가 등으로 한국·대만 등 신흥공업국도 발전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을 누렸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자 비교우위론과 글로벌 공급사슬에 대한 믿음이 깨지기 시작했다. 후방효과가 큰 제조업이 몰락한 유럽은 실직자가 속출하고 사회보장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원자재 판매에 몰두하던 국가들은 금융업으로 영토 침범에 나섰고 관광업에 의존하던 나라들은 성장의 사다리를 잡기 위해 제조업으로 뛰어들었다. 미국의 상황은 그나마 낫다. 정보기술(IT) 혁신으로 아마존·구글 등 거대 플랫폼 기업과 엔비디아 같은 막강한 테크 기업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이런 산업 공급사슬의 변화는 주요국 정치 지형의 변화를 불러왔다. 미 자동차 산업이 일본의 공세에 밀려 디트로이트 같은 도시가 몰락했듯이 일자리 감소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치적 불만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실제 2016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선되자 미국의 석탄 공장과 오래된 공장지대를 돌며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더불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국경세(Border tax)를 부여하는 등 고립주의적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

특히 리쇼어링 정책이 도드라졌다. 리쇼어링이란 값싼 노동력, 원자재, 세금을 찾아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전한 기업들이 다시 본국으로 회귀하는 현상을 뜻한다. 미국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생산 기반을 중국으로 대거 이전하고 공산품 수입 의존도가 커지자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리쇼어링 촉진법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되돌아오는 기업에 세금 감면이나 인센티브 지급의 혜택을 주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인한 국경 폐쇄 조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리쇼어링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기업의 공급사슬은 생산성·효율성 등 자본의 논리로 체결되기 때문에 국가 간 긴장이 발생하거나 관계가 틀어졌다고 해서 무작정 끊어지지 않는다. 본국과 우호관계에 있는 국가 중 오프쇼어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옮겨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도 한다. 미국의 다른 성향의 대통령인 트럼프와 조 바이든조차 중국을 압박하고 자기편을 늘리는 외교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과 같은 우방의 반도체·배터리·자동차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세울 것을 유도하는 등 우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기업·인재 유치 위한 경제 생태계 구축이 관건

 

지난해 《신자유주의 질서의 성장과 몰락》으로 화제를 모은 게리 거슬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로널드 레이건에서 시작되고 빌 클린턴이 완성한 신자유주의 질서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와 미국이 주도한 국제 정치·경제 시스템의 변화는 피할 수 없다는 게 거슬 교수의 진단이다. 결국 공급사슬의 변화 조짐은 국가 간 기업 유치 경쟁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에 우방국보다 안정된 정치·외교 환경 속에 물류와 IT인프라를 갖추고 세제, 정책자금 등 지원책이 많은 국가로 기업들은 몰릴 것이다. 글로벌 규칙을 설계하는 선진국들은 공통되게 저출산·고령화와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에 이러한 제도 개선을 통해 기업을 유치하려고 한다. 특히 혁신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해 해외의 혁신기업을 자국으로 유치하는 제도적 지원은 이미 보편화됐다. 분업화 시대가 필요한 물건이나 용역을 다른 나라에 맡기는 ‘외주’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스스로 모든 역량을 갖추는 ‘내재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중간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이 내재화의 준비와 네트워크 구축, 조달 능력 확보가 됐는지 스스로 자문해야 할 때다. 중국 일변도의 무역 파트너를 다변화해 리스크를 분산할 필요가 있고 국내 경제 생태계의 다양화, 우방국과의 협력 강화를 꾀해야 한다. 더불어 에너지 효율을 증진시켜 원유 등 원자재 가격 파동에 대비해야 하며 지속적인 혁신 가치 창출을 위한 기업과 인재 유치에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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