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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두 원장 “한경협, 정치의 실패 지점에서 역할 찾아야”

울프강에서 만난 사람 |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 기사입력 2023.10.30 17:44
  • 최종수정 2023.10.30 17:45
  • 기자명 문상덕 기자

소수파 팬덤에 기댄 포퓰리즘 정치, 구조개혁 없는 경제 양극화, 끝 모르게 내려가는 출산율. 한국은 이탈리아형 선진국의 길로 가고 있다. 그 길목에서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을 만났다. 

진행 문상덕 기자  정리 김나윤 기자 abc123@fortunkorea.co.kr  사진 강태훈

2022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연설에서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라고 말했다. 코로나와 일본 수출규제 등 위기를 극복하면서 “문제해결의 성공방식”을 알게 됐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조귀동 조선일보 기자는 최근 낸 책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서 “2023년 시점에서 더 중요한 건 ‘한국이 어떤 유형의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느냐’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정치적 리더십을 잃고 쇠퇴를 거듭하는 ‘이탈리아형 선진국’의 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기자는 “이탈리아가 초저출산 사회가 된 것은 국가의 역할과 경제, 사회 제도를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즉, 정치의 실패가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기성정당이 부패로 무너진 뒤 포퓰리즘 정당들이 득세했지만, 어느 곳도 가톨릭적 사회제도 개혁에 나서지 못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 역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사회가 되고 있다. 저출산과 직결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일-가정 양립정책은 여전히 현안에 머무른다. 그 새 한국은 소멸의 길(출산율 0.78명)로 들어섰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목에서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을 만났다. 그 역시 정치의 딜레마를 긴 시간 고민해왔다. 시장경제를 강조하지만, 부작용인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판단에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 참여했다. 보수와 진보 진영 인사들과 함께 하는 합동토론회를 여러 차례 열기도 했다. 최근 낸 책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에서 이런 고민과 지난 여정을 담았다.

‘누가 정치 리더십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라는 첫 물음에, 그는 너털웃음과 함께 “답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화에서 그는 재계의 이니셔티브를 한 가지 가능성으로 들었다.

 

 

Q 새로운 정치 리더십이 등장할 수 있겠습니까?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갈수록 우리 정치가 미국의 트럼피즘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잖아요. 정치 팬덤에 기대서 상대 진영을 파트너로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Q 그래도 기대를 갖고 있는 정치인이 있다면.) 글쎄요. 바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Q 정치의 딜레마는 정권을 거듭할수록 커져 왔습니다. 원장님께선 박근혜·문재인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셨지요. 양극화가 심화되던 시기였습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선 경쟁에 따른 양극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한 국가 과제로 여겨집니다. 여기서부터 경제체제를 운영하는 방법이 나눠지는 것이죠. 크게 미국·영국, 프랑스·독일, 북유럽 그리고 이탈리아·그리스 등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이 중 잘 아시다시피 국민이 가장 만족스럽게 사는 나라가 북유럽 국가들로 꼽히잖아요. 그 이유엔 든든한 사회보장서비스가 뒷받침하고 있고요. 정부가 국민에게 세금을 많이 걷는 대신 사회보장서비스에 적극적으로 재투자함으로써 국민 경쟁력을 올려주고 있죠.

 


2017년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김광두 원장은 문 후보의 경제 비전이었던 ‘사람 중심 성장경제’를 설계했다. 사람들에게 현금성 복지를 하기보단, 가능한 한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거나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그는 저서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의 핵심은 사람의 신체적, 인간적, 지적 능력을 증강시키는 데 있다. 일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복지성 보조금은 생계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의 종합적 능력을 길러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평생 보조금에 의존해서 살아야 한다. 노사관계에 있어서 노동자의 협상 능력도 노동자의 직무능력과 높은 생산성에 바탕을 둘 때 더 강해진다.”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 555쪽)

그러나 1년 만에 그는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직을 내려놨다. 그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설계한 정책의 핵심인 교육 등 인적 투자는 뒷전으로 밀리고,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만 부각되면서 본질이 흐려졌다”고 지적했다. 


 

Q 제도권 정치 내부에서의 변화는 어렵겠습니까?

정치 안에선 더 이상 해답을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노동계에 돌파구를 마련해 달라고 하는 것도 힘들어 보여요. 조직화된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10% 수준 아닙니까. 10%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면 지도부가 선거에서 떨어집니다. 아직 힘을 갖고 있는 대기업들이 당장의 이익은 안 되더라도 길게 보고 (리더의) 역할을 나눠서 해준다면 국민들도 기업인을 믿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존중하지 않겠냐는 생각은 듭니다. 

 

Q 기업의 리더십이 제도권 정치에 자극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그렇죠. 그런 역할을 해주면 국민들이 정치인보다 기업인을 더 신뢰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때는 기업인들이 리더십을 갖게 될 것 아닙니까? 정치인들이 기업인들의 말을 안 들을 수 없겠죠. 그런 노력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기왕 한국경제인협회가 만들어졌으니까요. 당장 해야 할 것은 (정치의 한계로 해결 못 하고 있는 의제인) 보육 인프라 구축이라고 봅니다. 

 


김광두 원장은 지난 8월 국가미래연구원 웹사이트에 게재한 글 ‘전경련 리모델링의 성공조건’에서 이렇게 썼다.

“다수 국민의 전경련에 대한 불신의 근본 뿌리는 ‘불공정한 과정을 통해서 부를 축적한 대기업들의 이익단체’라는 인식에 있다. 전경련은 이런 인식을 완화하고 해소하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 노력의 핵심은 계층 간 양극화 심화를 완화하는 일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초점은 빈자에 대한 무상 지원보다는 빈자들에게 소득과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넓게 열어주는 방법의 모색에 있다.

나는 그 첫 단계로 질적 수준이 확보된 ‘보육 시설’의 전국적 보편화 프로젝트에 리모델링된 한경협이 주도적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2018년 6월 ‘경제 패러다임 대전환: 사람중심경제’를 주제로 열린 국제콘퍼런스에서 김광두(앞줄 왼쪽 네 번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과 폴 크루그먼(앞줄 왼쪽 세 번째) 뉴욕시립대 석좌교수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8년 6월 ‘경제 패러다임 대전환: 사람중심경제’를 주제로 열린 국제콘퍼런스에서 김광두(앞줄 왼쪽 네 번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과 폴 크루그먼(앞줄 왼쪽 세 번째) 뉴욕시립대 석좌교수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왕 한국경제인협회가 만들어졌으니까요. 당장 해야 할 것은 (정치권에서 해결 못 하고 있는 의제인) 보육 인프라 구축이라고 봅니다 .

 

Q 사회공헌 활동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근무 환경이 좋은 대기업은 사내 보육시설이 대부분 갖춰져 있죠. 하지만 대기업 종사자 수는 우리 사회 전체 근로자 수와 비교하면 극히 소수잖아요. 그런 가운데 사회 양극화는 점점 심화되고 있고 기업에 대한 인식은 소득 하위계층일수록 부정적인 게 현실이죠. 

그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한경협이나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아 보육 시설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 주면 어떨까 합니다. 장기적으로 여성의 경제 활동을 더욱 이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정부는 그러한 기업에 대해 세제 혜택 등을 주면 되는 것이고요.

 

Q 당사자인 재계의 의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5대 그룹과 대화체를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 5대 그룹 CEO들과 여러 차례 회동을 가졌다.) 임원들과 이야기해 보면, 이 중 두 곳(의 총수)은 우리 사회를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서 기업이 할 일이 있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요 그룹이 함께 말입니다. 

 

Q 이런 리더십을 보여줬던 해외 사례로 발렌베리 가문이 자주 거론되곤 합니다.

그렇죠. 그뿐 아니라 유럽에는 비즈니스 파운데이션이란 조직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계가 자체적으로 비영리 재단을 만들어 사회를 위한 행동을 합니다. 국민 입장에서도 실질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게 되면서 기업과 공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커지기도 했고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엔 기본적으로 기업을 굉장히 적대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하잖아요.

 

Q 양극화 해소 모델로 스웨덴의 대타협을 언급하셨습니다. 자유로운 경영은 대폭 보장하되 자산에 대한 과세는 더욱 늘려 복지시스템에 재투자해야 한다는 거죠.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재산세율은 너무 낮다고 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본인 집값의 1%씩 재산세를 부과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재산세율이 대체적으로 1%가 채 되지 않아요. 벌금이나 과태료도 마찬가지이죠. 우리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구분 없이 속도위반 과태료를 똑같은 금액으로 부과하지만 북유럽은 운전자의 재산 정도에 비례해 부과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정부가 재산세를 더욱 낮춘 건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 결정이라고 봐요.

 

Q 현실적으로 스웨덴 식의 대타협이 한국에서 가능하겠습니까?

정치권에서 노력하면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봐요. 스웨덴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면 기업 경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법인세를 더욱 과세하는 게 아니라 환경세 등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섹터에서 세금을 거둬들이고 있거든요. 기업의 경쟁력은 유지하면서 부정적 외부효과를 일으키는 범위에 대해 과세를 가중하는 셈이죠. 그 세금이 교육 복지 정책 분야 재원으로 쓰이는 것이고요.

관건은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가진 리더가 나서서 끌고 가야 할 정책 문제인데, 아직 우리에겐 이렇다 할 국가 비전을 가진 정치인이 없는 상황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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