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포춘코리아 매거진 최신호를 무료로 읽어보세요.

본문영역

[Wheel of Fortune⑥ 블록체인] '프로토콜의 합리'와 '인간 욕망'의 모순

김유경의 저널리즘

  • 기사입력 2023.10.23 08:54
  • 최종수정 2023.10.28 10:23
  • 기자명 김나윤 기자

비합리적인 인간의 욕망이 신뢰의 기술에 투영된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국내 최대 검색 플랫폼의 스타 개발자로 이름을 날리던 한재규(가명) 씨. 2021년 한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자리를 옮겼다가 패배감을 맛봤다. 한 씨는 클럽·콘서트장·영화관처럼 연령에 따라 입장이 제한되는 장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분산 신원 인증(DID)’ 시스템 개발의 총책을 맡았다.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상 체계를 구축하면 생태계가 활성화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최고경영자(CEO)는 국내외를 돌며 자사 코인의 펌핑(가격 상승 행위)에만 몰두했고 기획자들은 조금 더 그럴듯하게 백서를 고쳐 쓰는 데만 역량을 집중했다. 개발자들은 온종일 시세창만 바라봤고 제품 개발에는 뒷전이었다. 한 씨는 아무 성과도 올릴 수 없었다. 그는 “암호화폐 프로젝트는 개발이 완료되면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꺼져 가격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서둘러 개발할 필요가 없었다”며 “생태계 구축을 위한 대기업 등과의 파트너십 확보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주변의 여러 블록체인 기업들도 비슷한 상황”이라 회고했다.

 

블록체인 시장이 다시 냉각기에 접어든 지 1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 비트코인 시세는 2021년 상반기 개당 8000만원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과 루나 폭락 사태 등 악재가 연쇄적으로 터지며 가격은 그야말로 고꾸라졌다. 많은 투자자들은 암호화폐가 투기자산이란 점을 알면서도 상승장의 파도를 타기 위해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누군가는 돈을 벌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해를 입었다. 시장에 물은 빠졌다.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은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시장의 현실과 투자자들의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언젠가 다시 오르리라 기대하며 버티는 투자자, 블록체인의 가치를 맹신하는 열성 투자자,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내는 파생상품 투자선수 등만이 남았다. 2024년 비트코인 반감기를 기대하고 투자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반감기 이슈는 투자 재료로 활용하기엔 신선함이 떨어진다. 과연 시장을 다시 뜨겁게 불태울 수 있을까.

 

시장 유동성 파도에 올라탄 암호화폐

암호화폐 시장은 대중적 관심에서 분명히 멀어졌다. 최근 5년의 전 세계 기준 구글 트렌드를 통해 암호화폐(검색어 bitcoin)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현재는 구글 트렌드 관심도 지수 10 안팎으로 최악의 폭락으로 시장이 냉각된 2018~2020년과 대체로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기업의 주가를 움직이는 가장 큰 결정 변수는 ‘실적’과 ‘유동성’이다. 실적은 기업의 내재가치이고 유동성은 외생변수다. 기업 실적이 저조해도 유동성의 힘을 받으면 주가는 오를 수도 있다. 유동성이 받쳐주지 않더라도 실적이 탄탄하면 주가가 뛸 수 있다. 이 잣대로 보면 2020~2021년 전 세계 암호화폐 급등의 배경은 분명 유동성 장세의 영향이었다.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경우 일부 거래소를 제외하곤 수익을 창출한 곳은 전무하다. 이익은 고사하고 그럴듯한 프로젝트를 완성한 곳조차 없다.

구글 트렌드에서 암호화폐를 주식(검색어 stock)과 비교하면 검색 관심도 추세선이 대체로 흡사하다. 암호화폐 가치가 치솟았던 2020~2021년은 주요국이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에 나섰을 때다. 세계적으로 주식·부동산·금 등 자산 중 어느 것 하나 오르지 않은 게 없었다. 암호화폐가 특별해서 상승한 게 아니란 뜻이다. 시장 유동성의 곁불을 쬐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블록체인은 ‘신뢰’의 기술이다. 분산화된 네트워크에 참여자들이 공동으로 작성하고 관리한 분산원장을 바탕으로 높은 투명성과 안정성, 보안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신뢰의 고양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그저 거래비용을 줄여줄 뿐이다. 신뢰가 부족하다면 모든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만큼의 비용이나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부동산 중개수수료·계약금이나 무역거래에서 활용하는 유산스(usance)가 신뢰 비용에 해당한다.

거꾸로 상호 신뢰가 100%라면 제반 비용이나 계약 절차 없이 거래를 할 수 있다. 부부나 부자 간 금전 거래에는 이자가 붙지 않는 것처럼. 소득에 따라 은행 금리에 차이가 생기는 것도 곧 신뢰비용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저서 ‘트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신뢰가 충만한 사회에서는 윤리·도덕·협동심 같은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일어난다. 북유럽 국가들처럼 말이다. 이 경우 온갖 거래비용이 감소해 자유주의 체제의 강한 국가를 만든다고 봤다.

블록체인은 마치 100%의 신뢰 사회를 목표로 한 것처럼 정보의 불평등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보의 불평등은 합의체계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일종의 사회주의 시스템처럼 공동생산과 공동소비를 한다. 하나의 원장을 복사하는 데에도 전체 50%+1개 노드의 합의가 필요하다. 블록체인은 정보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이는 삶을 안전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블록체인은 ‘모든 주체는 투명한 거래를 원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듯하다.

 

사설 금전 거래소 통해 금융 사익화 꾀하기도

모든 사회과학이 그렇듯 경제학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수요·공급·가격 등 여러 경제 환경 변화에 개별 주체들의 반응과 행동 양식을 분석한다. 경제학은 ‘모든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주변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호모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완전무결하고 합리적인 존재다.

이러한 가정은 학문적 설명을 위해 필요하지만 현상을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가정에만 의존하면 인간 본성과 행동 원리를 정태적으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정태적 기대는 현재 상태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항상성을 가정하며 경제학에서는 이를 비합리적 기대로 본다. 경제 현상의 동태성을 배제한 채 원론적 해석에 매몰될 가능성이 있다.

인간은 경제학의 가정보다 훨씬 복잡하고 비합리적 존재다. 투자를 결정할 때 자신의 판단보다 타인의 의견을 우선하거나 종교적 믿음이 소비습관에 반영되기도 한다. 기분 한 번 내려고 오마카세 일식집에 수십 만원을 지출하거나 명품 등 사치재 구매에도 열을 올린다. 현대적 관점에서 인간은 경제 활동에 자신의 ‘욕망’을 반영한다. ‘욕망의 경제학’은 현대 자유 시장경제의 합리적 모형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중이 2017년과 2021년에 욕망을 암호화폐에 투영한 점은 아이러니다.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데도 개인의 장부를 타인에게 공유해야 하는 시스템에 뭉칫돈이 몰렸다. 최초 암호화폐 거래소에 사채·다단계 등 여러 수면 아래 자금들이 세탁 목적으로 암호화폐 거래소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추적이 어렵고 국경의 제한이 없다는 소문이 돌며 검은돈이 몰려들었다. 이런 가운데 여러 거간꾼들이 상거래 암호화폐가 앞으로 모든 상거래의 기본이 될 것이라며 대중의 기대감을 부추겼다.

금융은 권력이다. 금전 거래의 규칙을 정하고 유통을 규정하는 것은 국가의 고유 기능이다. 모든 상거래는 법적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 비효율적이고 속도가 느리며 거래비용이 비싸더라도 나라가 정한 규칙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체계화된 온라인 반석 위에 거래 시스템을 올려 투명하고 선진화된 거래를 지향한다. 물론 정부·기업·가계 등 경제주체들의 불투명 문제 해소하려는 시스템 안에서의 혁신이다.

그러나 부수적으로 발생한 일부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은 일종의 사설 금전 거래 시스템을 구축해 금융의 사익화를 추구했다. 2016~2018년 수많은 암호화폐공개(ICO)가 이어졌지만 실제 자리를 잡은 프로젝트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암호화폐 시장 전체 시가총액은 1조 1800억달러(약 1558조원)으로 불어났다. IT분야의 전문용어와 생소한 거래 구조가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더욱 첨단 기술로 비춰지게 했다. ‘대중은 팩트가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여론 전문가들의 말처럼. 기술의 이해가 부족한 일부 투자자들은 아직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투명성·보관성·용이성 입증 관건

암호화폐가 기존 화폐 시스템을 대체한다면 그 시기는 미 달러를 중심으로 한 기축 통화 시스템 등 기존 통화질서가 흔들릴 때일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9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풀린 대규모 양적완화는 미국의 달러화 시스템의 한계와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나카모토 사토시도 비트코인 백서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거래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무리한 발권력 동원과 정치적 갈등 심화로 매년 부채한도 합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피치가 이달 미국의 신용등급을 종전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올 3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결제 통화로 위안화를 추가했는데 국제관계의 역학적 변화가 만든 달러화의 권위 상실은 블록체인 또는 암호화폐에게 기회일 수 있다. 가치혼란의 시기에 암호화폐가 미국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에 비해 투명성과 가치 보관성, 거래의 용이성이 우월하다는 점이 입증된다면 일부 경제 생태계 내에서 통용할 수 있다. 게임·전자상거래 등 온라인 분야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다만 미국의 무제한 양적완화는 되레 미 달러화 패권을 더욱 공고히 했다.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채권들 대거 사들였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인플레이션은 제한적이었으며 이론적으론 미국의 발권력은 무한하기 때문에 부채를 일순간에 갚을 수도 있다. 1971년 “달러는 우리(미국)의 통화지만 당신들의 문제다(The dollar is our currency, but your problem).”라고 말한 존 코널리 전 미 재무장관의 말은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여기에 한국을 비롯해 미국·중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둔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CBDC는 중앙은행의 시노리지(주조이익)을 늘리고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도입 유인이 크다. 일부 미래학자들은 암호화폐는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으며 2030년에는 국가 통화의 25% 이상을 대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거래 용이성을 위해 CBDC와 교환가능한 한국은행·금융위원회 인증을 받은 민간 암호화폐를 내놓는 형태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암호화폐의 법적 규정이 내려지고 CBDC가 자리잡으면 발권력에 대한 규정도 새로 정해지기 때문에 자유롭게 코인을 배분하고 지급하던 민간 암호화폐 영역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B2B, 블록체인 활용 영역으로 제격

그렇다고 이미 막대한 규모의 투자금이 유입된 암호화폐 투자 시장이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이미 새로운 투자 리그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과 같은 일부 메이저 암호화폐는 국가 간 거래를 중개하는 중립 화폐로서 역할을 할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욕망을 실현의 창구로서 블록체인의 성격과 형태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바뀌어도 기회는 있다.

온라인 보안 분야에서는 ‘세상에 완벽한 보안은 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견고한 방패를 세워도 이를 우회해 뚫어낼 방법은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고급 보안 기술일수록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때로는 지켜야 할 데이터의 가치보다도 비쌀 경우도 있다. 보안 기술은 중요하지만 시장화되기 어려운 이유다. 기능과 가격이 어느 정도 절충을 이루는 선에서 고객과 보안업체 간에 합의가 이뤄진다. 블록체인 기술이 이와 비슷하게 완벽을 추구하려면 모든 사용자의 노드가 활성화돼 있어야 한다. 거래를 위해선 초고속 통신망도 필요하다. 특히 암호화폐 지갑 등 통신 말단의 기기 속도나 호환성 등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모든 분야에 블록체인이 필요한 건 아니다.

제대로 작동하는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선 규격을 통일할 수 있고 거래 비용 절감이 이윤 창출로 이어지는 B2B 영역이 알맞아 보인다. 물류 등 분야가 대표적이다. 다만 이 역시 기존 생태계 이해관계자의 고객 여정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컨대 대형 통신사와 계약을 맺고 분리망을 사용하는 신용카드사는 블록체인의 도입 유인이 떨어진다. 많은 프로젝트들은 B2B 허들을 넘지 못하고 기업-개인 간 거래(B2C) 영역의 토큰이코노미에 승부를 걸었지만 생태계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 혁신적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지 못해서다.

더불어 블록체인 기술이 흥하려면 앞으로 성능과 확장성이 보장돼야 한다. 사업이 결실을 맺기 시작하면 영구히 보관되는 개인정보의 이슈라든가 금융 관련 규제책 등의 과제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현재 상황만 놓고 봤을 때 코로나19와 같은 미증유의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 블록체인 생태계 구축은 참으로 어렵고 먼 일로 보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15 (엘림넷 빌딩) 1층
  • 대표전화 : 02-6261-6149
  • 팩스 : 02-6261-615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노경
  • 법인명 : (주)에이치엠지퍼블리싱
  • 제호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 등록번호 : 서울중 라00672
  • 등록일 : 2009-01-06
  • 발행일 : 2017-11-13
  • 발행인 : 김형섭
  • 편집국장 : 유부혁
  • 대표 : 김형섭
  • 사업자등록번호 : 201-86-19372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1-서울종로-1734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kpark@fortunekorea.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