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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 연구소에는 이제 국적이 없다”…한국인 첫 본사 연구소 팀장이 말하는 ‘변화의 속도’

[QUEST PIONEERS] 민승배 3M 디렉터(운송 및 전자 사업부 아시아 R&D 총괄, 부사장급)

  • 기사입력 2023.09.26 11:02
  • 기자명 문상덕 기자

민승배 3M 디렉터(부사장급)는 2019년 미국 세인트폴 본사에서 한국 연구소장으로 왔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자리를 옮겼다. 3M의 변화를 두고 민 디렉터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되물었다.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 민승배 3M 디렉터 1991년 한국3M에 입사, 32년간 재직하고 있다. 3M 중동·아프리카 연구소장, 세인트폴 본사 연구소 클러스터랩 팀장, 한국3M 연구소장을 거쳐 현재 운송 및 전자 사업부 아시아 R&D 총괄을 맡고 있다.


 

7월 중순의 어느 날, 한낮이 밤처럼 어두웠다. 우기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유튜브를 틀면 기후위기가 왔다는 언론 보도와 과학 콘텐츠가 피드 최상단에 줄지어 올랐다.

이즈음 만난 민승배 3M 디렉터(운송 및 전자 사업부 아시아 R&D 총괄, 부사장급)는 여러 수준에서의 생존을 말했다. 한국의 단기 경제 전망부터 인구 위기, 기후 위기를 말했다. 그리고 3M의 생존을 말했다. 그는 “3M이 앞으로도 다우존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자문했다. “지난 121년(3M은 1902년 세워졌다)보다 앞으로 10년이 더 빠르게 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우존스 산업 지수  뉴욕증권시장에 상장된 우량기업 서른 곳의 주가의 평균으로 산출한 지수. 가장 최근인 2020년엔 엑손모빌, 파이자, 레이시온이 빠지고, 세일즈포스, 허니웰, 암젠이 추가됐다.  


그의 고민은 3M의 고민이기도 했다. 3M은 2020년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운영 모델을 선진화하고, 비즈니스를 간소화하며, 과학을 삶에 적용하는 글로벌 트렌드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민 디렉터도 이때 한국3M 연구소장(Senior Laboratory Manager, Country R&D Operation)직을 내려놨다. 2019년 7월 직을 맡은 지 불과 반년 만이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한국 연구소장직 자체가 사라졌다. 민 디렉터는 “(당시 방향이) ‘3M은 이제 글로벌 오퍼레이션으로 간다, 개별 국가의 연구소장직은 이제 없다’는 것이었다”고 돌이켰다. 이후 그는 아시아 R&D 총괄을 맡았다.

민 디렉터는 조직 개편과 함께, 비즈니스 방향의 재설정을 말했다.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스펙에 맞춘 솔루션이 아니라, 고객사의 필요를 예측하고 먼저 준비하는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3M이 기술이 아닌 과학을, 개별 고객사가 아닌 글로벌 트렌드를 말하는 이유다. 그리고 3M이 정한 글로벌 트렌드 세 가지는 모두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들과 결을 같이하고 있었다.

 

민승배 3M 디렉터가 한국3M 고객기술센터에서 포스트-잇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3M]
민승배 3M 디렉터가 한국3M 고객기술센터에서 포스트-잇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3M]

 

Q 이제 3M에는 지역별 연구소만 있는 겁니까? 

사업부마다 다릅니다. (※3M의 사업부는 안전 및 산업용 제품, 운송 및 전자, 헬스케어, 컨슈머 등 네 곳으로 나뉜다.) 다른 사업부에는 저와 같은 지역 단위의 연구소장직이 없습니다. 운송 및 전자 사업부는 매출의 60%가 아시아와 중국에서 나오기 때문인데요. 그러니 우리는 지역 단위의 오퍼레이션을 하겠다는 것이 사업부 부회장의 방침이었습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 상하이 연구소가 제품을 글로벌 차원에서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탄 연구소에서 개발하는 제품은 한국 기업만을 위한 제품이 아니에요. 모든 연구소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센터 오브 엑설런스’이고, ‘온리 3M 유니크 랩’입니다. 

 

Q 동탄 연구소는 어떤 연구를 주도하나요?

전자파 간섭(EMI), 적합성(EMC) 솔루션을 맡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에 안테나가 몇 개 들어갈까요? 3G, LTE, 5G, 와이파이, GPS, NFC 각각 안테나가 몇 개씩 필요합니다. 각 안테나에서 방사하는 전파를 차폐해서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하는 기술과 제품을 한국에서 개발하는데요. 최첨단 IT기기가 모두 한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씁니다. 일본은 공장자동화, 건축용 내외장재 필름을 주도하고요.

 

Q 2020년 당시 3M 실적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조직 개편을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회사라도 사업 포트폴리오에 변화를 주면 인력 조정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인력이 남는 부서에서 필요한 부서로 재배치를 하는 게 기존의 방식이었어요.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 인력이 새로운 사업에 맞는 역량, 핵심가치를 갖고 있지 않으면 밖에서 전문가를 데려옵니다. 

3M도 마찬가지입니다. 121년간 잘 성장했는데, 앞으로 10년 20년, 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그럴 수 있겠냐는 고민 때문이에요. 우리가 앞으로도 다우존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앞으로 집중해야 할 분야와 일하는 방식은 지금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죠.

 

3M은 자사 보유 특허(13만1651건, 2022년 말 기준)를 51종의 기술 플랫폼으로 정리했다. [사진=한국3M]
3M은 자사 보유 특허(13만1651건, 2022년 말 기준)를 51종의 기술 플랫폼으로 정리했다. [사진=한국3M]

 

Q 디렉터께선 본사 연구소 팀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2017~2019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담당하셨습니까?

저는 나노·마이크로 미세복제 기술, 정밀몰딩 기술, 그리고 3M Printing 공정기술 연구소의 책임자로 미주 본사 중앙연구소에 근무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세복제 연구팀에서 화학적기계연마(CMP) 패드에 들어가는 연마재를 개발했습니다. CMP 패드는 반도체 웨이퍼를 평탄하게 만드는 자재인데요. 반도체 공정이 갈수록 정밀해지면서(※삼성전자는 현재 3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갔다) 연마재의 절삭력은 옹스트롬(※1나노미터의 10분의 1) 단위로 정밀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성능이 나오게끔 연마 소재를 똑같이 복제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 있을 때 개발한 반도체 공정용 연마재를 국내 고객사에서 도입했죠. 그리고 3M 동탄연구소에서도 고객사와 협업하기 위해 반도체 랩에 10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공정이 정밀해질수록 필요한 제품이라, 앞으로 5년, 10년에 걸쳐 고객사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본사에서 왜 민 디렉터를 연구 책임자로 선임했을까요?

사실 아시아에서 온 사람이 보스라니, 쉽지 않을 것이란 반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고객사와 시장을 잘 안다. 비즈니스 오리엔티드로 이곳 연구소를 변화시켜 달라. 고객사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직으로 만들어 달라. 그의 말처럼, 아시아의 장점은 스피드입니다. 고객사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고객사와 가장 가까이 있기도 하죠. ‘우리가 개발하면 고객사가 알아서 쓰겠지’라는 마인드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봤습니다.

 

Q 다우지수에 속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IBM 같은 회사는 보통 빅테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3M은 스스로 ‘사이언스 컴퍼니’라고 불러요. 왜 테크가 아닌 사이언스를 강조하는 겁니까?

고객사 혹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기술 솔루션이 있는데 아직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사이언스를 갖고 있으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를 테크놀로지로 만들려면 지속 반복적으로 동일한 퀄리티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고, 스케일 업 할 수 있어야 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 트렌드를 먼저 예측하고, 필요한 사이언스를 한발 앞서 연구하는 겁니다. 


3M은 지난 7월 지구 환경을 결정짓는 트렌드를 선정하고, 회사의 솔루션이 해당 과제를 해결하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 보여주는 글로벌 캠페인인 ‘3M 포워드’를 발표했다. 회사는 불가항력 트렌드로 ▶기후 변화와 자원 부족 ▶인구 구조 및 사회 변화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의 융합을 선정했다. 


 

Q 운송 및 전자 사업부에서 집중하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자동차 전장과 반도체, 5G를 포함한 통신 인프라, 혼합현실(XR), 그리고 지금 아시아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공장 자동화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제조업 강국 자리를 지키려면 자동화밖에 답이 없습니다. 

이 중에서 현재 가장 크게 보는 시장은 전장입니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매해 30~40%씩 성장하고 있어요. 이미 5억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고요. 

예를 들어 차량용 디스플레이가 예전에는 내비게이션 하나만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클러스터(주행속도 등을 표시하는 디스플레이)에도 들어가고, 뒷좌석에도 들어갑니다. 그리고 디스플레이의 크기도 처음에는 7인치였고, 요즘은 12인치인데, 앞으로는 44인치, 50인치까지도 들어갑니다. 그러면 갈수록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될 겁니다. 에너지를 적게 써도 같은 밝기를 내야 하는 겁니다.

또 자동차 업계에서 지금 ‘풀 윈드실드 헤드업 디스플레이(FHUD)’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앞 유리 전체를 디스플레이로 쓰고 싶은 게 우리의 욕심이에요. 지금 기술로는 프로젝터부터 유리까지의 거리가 20m 확보되어야 하는데, 저희가 광학 필름 기술을 통해서 거리를 줄여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도 다우존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앞으로 집중해야 할 분야와 일하는 방식은 지금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죠.

 

Q 전기차와도 접점이 많을 듯합니다. 

전기차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안전과 전비(킬로와트당 주행 가능한 킬로미터)인데요. 

전비와 관련해서는 가볍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3M이 개발한 ‘글라스 버블’이라는 소재가 있습니다. 마이크로미터 사이즈의 유리 구슬들로 이뤄진 충전재예요. 구슬 안에 일부로 공기를 넣어서 만드는데, 이걸 7~8년 전 한 자동차 업체와 협력해서 자동차 플라스틱 부품을 몰딩할 때 썼어요. 그랬더니 강도는 유지하면서 파트 무게는 10%까지 줄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적용 범위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또 차량 하부를 보면 실리콘 소재 실런트(부품간 틈을 메우기 위해 도포하는 재료)를 많이 씁니다. 도어와 유리창 사이 공간을 실리콘으로 채운 것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차량 한 대당 실런트를 많게는 12kg씩 씁니다. 이 무게를 10%만 줄여도 1kg 이상의 저감 효과가 있는 겁니다. 자동차 업체는 보통 1kg 줄이는 데 대당 20달러는 지불할 의사를 갖고 있거든요. 

안전에서 배터리 팽창이 가장 문제인데, 그러면 우선 온도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또 설령 폭주하더라도 운전자와 동승자가 대피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엔진룸에서 불이 나면 대피하기 쉬운데, 엉덩이 밑에서 나면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3M에서는 ‘서멀 런어웨이 배리어’라고 해서 폭주 현장을 지연시킬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Q 재료과학 기업인 3M이 공장 자동화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습니까?

사물인터넷(IoT), 모든 자동화 라인의 센서 네트워킹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공장을 효율적으로 집적해서 자동화를 수월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카메라 네트워크를 통해서 불량률을 낮추고 전체 자동화 공정을 관리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이 분야에서 1000억원 이상 매출을 내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제조공정에서 자동화를 시급하게 요구하고 있어요. 저희가 그 공급망 전체를 보고 누가 현재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고, 3M이 제공할 수 있는 솔루션은 무엇이고, 타깃 고객사는 어디인지 글로벌 차원에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Q 한국의 주력 산업과 겹치는 비즈니스가 많습니다.

맞습니다. 일례로 2000년대 프로젝션 TV와 LCD가 경쟁할 때 3M에서 LCD용 광학 필름(Brightness Enhancement Film)을 개발하면서 LCD 쪽으로 시장 흐름이 기울었습니다. LCD 백라이트의 밝기를 높여주는 필름인데요. 이 제품을 한국3M이 빨리 가져와서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에 우선적으로 납품한 덕분에 이 업체들이 주도권을 쥘 수 있었습니다. 한국 업체들이 TV 시장을 확보하는 데 3M도 일조한 겁니다.

 

Q 32년간 재직하면서 한국 기업과 협업을 많이 해오셨습니다. 변화에 더 빠르게 적응하려면 어떤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금은 우리가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더 잘하는 기업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서 먼저 협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례로 채용의 주도권을 사업부 담당자가 가져가야 해요. 우리 같은 경우는 (HR부서가 아닌) 채용부서의 책임자가 글로벌 조직에서 채용 인력 교육 적임자를 찾고, 최고의 교육 과정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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