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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el of Fortune⑤ 창업] 포스트 대학으로 자리 잡을 창업 보육 생태계

김유경의 저널리즘|
학생은 대학에서 배우고 창업자는 보육 기관에서 학습한다. 선순환 구조의 창업 생태계가 조성되려면 창업가 육성뿐 아니라 이들의 보육할 전문 엑셀러레이터 양성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 기사입력 2023.07.09 10:00
  • 최종수정 2023.08.09 09:09
  • 기자명 김나윤 기자
데모데이(demoday)는 엑셀러레이팅의 꽃으로 불린다. 보육과 가속화 과정을 거친 스타트업은 많은 투자자들 앞에서 제품의 가치를 설명할 기회를 갖는다. [사진=스파크랩]
데모데이(demoday)는 엑셀러레이팅의 꽃으로 불린다. 보육과 가속화 과정을 거친 스타트업은 많은 투자자들 앞에서 제품의 가치를 설명할 기회를 갖는다. [사진=스파크랩]

#국내 유명 외식 스타트업의 A 대표는 창업 초기 세금 폭탄을 맞는 바람에 사업을 포기할뻔 했다. A 대표는 푸드트럭에서 먹거리 장사를 처음 시작했다. ‘맛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며 금새 유명해졌고 단기간내에 뭉칫돈을 손에 쥐었다. 이대로라면 머지 않아 프랜차이즈 매장을 여럿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기대는 1년 뒤 세금명세서를 받는 순간 산산이 부서ㅍ졌다. 연 매출에 맞먹는 세금이 부과된 탓이다. 회계 미숙이 화근이었다. 폭주하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지인을 통해 단기 아르바이트생을 여럿 고용했는데 이들 급여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별도 회계처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적지 않은 매출을 올려놓고도 매입이 없으니 큰 금액의 세금이 부과됐다. 국내외 유명 공과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A 대표지만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사소한 지식때문에 낭패를 본 셈이다. A 대표는 “학교에서는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배울 수 없다. 초기 창업자가 안정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주식투자 격언 중에 ‘매수는 기술, 매도는 예술’이란 말이 있다. 재무제표·차트·업황·이슈 등 특정 기업을 둘러싼 모든 정보를 취합해 주가가 언제 얼마큼 오를 것인가, 떨어질 것인가를 가늠하는 일은 분석적·기술적 영역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정밀한 분석을 했다 한들 주식시장은 절대 가설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의 어떤 이슈가 언제 증시에 영향을 줄지 모른다. 동태적 시장 환경 변화에 주가는 요동친다. 온갖 난무하는 정보 속에 진실과 거짓, 가치의 경중도 잘 헤아려지지 않는다. 심리적 압박은 덤이다. 투자자는 주식을 산 시점부터 매도 고민의 늪에 빠진다. 매도는 예술이다.

 창업도 비슷하다. 아이디어 발굴과 비즈니스 설계, 가설검증은 기술적 영역이다. 축구감독처럼 승리를 위한 전략·전술을 설계하고 상상력을 동원해 모의 실험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에서 무조건 승리하는 무적의 방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수들도 감독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창업에서도 중요한 것은 운영(경영)이다. 팀 구성, 관계 조율, 사무실 확보, 행정업무, 인력채용, 과제설정, 비전관리, 정부사업, 제품 개발, 판로 개척, 마케팅, 투자유치, 영업, 미디어 활동, 경쟁대응, 기업공개(IPO), 상장 등. 창업자는 끊임없는 도전 속에 회사의 가치와 철학을 지키고 외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길러야 한다. 공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예술의 영역이다. 창업은 종합 예술이다. 교과서에 없는 경험·노하우·지식의 체계를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여 적재적소에 실력을 발휘해야만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창업 아이디어는 기술, 운영은 예술

창업의 보편화는 결정된 미래다. 20세기 들어 등장하기 시작한 대기업은 자본·인재·브랜드 등 사회의 많은 가치를 독식하며 계층 간 사다리를 넘기 힘들 정도로 벌리고 있다. 그렇지만 정보기술(IT) 분야는 일발 역전이 가능하다. 인공지능(AI)·블록체인처럼 산업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기술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고 있어서다. 디지털 시대의 기술 발전에 따른 창업 문화 성숙화,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MZ 세대의 등장, 정부의 정책 지원, 전통 산업 분야의 일자리 감소 등의 영향으로 창업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의 문은 좁아진 데 비해 창업의 문이 넓어진 셈이다. 실제 혁신 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스마트폰 혁명 이후 대거 등장하고 있다.

 대개 창업자는 기술력과 아이디어, 정교한 가설을 바탕으로 시장에 파괴적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의 규칙은 복잡하고 고려해야 할 점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에 경영 노하우나 시장 정보의 비대칭을 줄이고 스타트업의 초기 안착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팅(보육)과 엑셀러레이팅(가속화) 역시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며 창업 생태계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은 초기 스타트업이 사업의 싹을 틔워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창업 초기 육성을 뜻한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거나 자금 조달의 기회를 제공한다. 경험 있는 전문가들의 멘토링과 컨설팅을 통해 대학에서 배우는 이론에서 벗어나 기업 운영과 비즈니스 전략, 마케팅, 금융 등에 대한 조언과 지도도 한다. 스타트업 간의 연결과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서로의 아이디어와 경험을 공유하고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타트업에 필요한 사무 공간 등의 인프라도 제공한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면 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 효과를 끌어내기 때문에 정부나 지방정부, 대학 등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발전한다.

 투자는 인큐베이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가설과 팀뿐인 초기 스타트업이 비즈니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모험 자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체 초기 투자금의 규모를 바탕으로 창업 생태계의 활성화 정도나 건강성을 측정하기도 한다. 한국은 모태펀드와 같은 정부 투자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데 이를 지렛대 삼아 지난 10년 새 민간 자금이 대거 유입됐다. 정부 자금을 바탕으로 손실 가능성을 낮추고 수익률을 높일 수 있어서다. 특히 지난 5년 스타트업 열풍이 일며 ‘스마트 머니’가 대거 유입되는 질적 성장도 진행됐다. 정부의 안정된 제도와 시스템, 스마트머니의 유입은 창업 욕구를 자극하는 역할도 발휘하며 창업 생태계를 넓히는 역할도 한다.

 엑셀러레이터도 창업을 활성화하고 생태계 안정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인큐베이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라면 인큐베이팅은 팀 빌딩이 완료된 수준의 스타트업에 제공되는 프로그램이고, 엑셀러레이팅은 이미 기업화되어 상업적으로 작동을 시작한 스타트업에게 주로 제공된다는 점이다. 엑셀러레이팅은 2000년대 인터넷 버블 붕괴로 투자 잠재력이 붕괴되자 스타트업의 자본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했다. 이 때문에 초기 성장에 역량이 집중된다.

 엑셀러레이팅은 인큐베이팅보다 짧은 3개월~1년 기간 집중 관리해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하고 시장 확장을 돕는다. 인큐베이팅 과정에서 싹을 틔운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본 글은 보육을 인큐베이팅과 엑셀러레이팅을 포함하는 넓은 범주로 사용하며, 용어는 엑셀러레이터로 통일한다.)

지난 4월 스파크랩이 20기 데모데이(demoday)를 개최했다. [사진=스파크랩]
지난 4월 스파크랩이 20기 데모데이(demoday)를 개최했다. [사진=스파크랩]

수익성 향상 노력이 창업 성공 지원

과거 보육 단계에 유입되는 투자금은 ‘스프레이 앤드 프레이(spray and pray)’의 형태였다. 투자사들이 많은 스타트업에 돈을 뿌린 후 회수되기만을 기다렸다는 뜻이다. 도박에 가까운 성장에 투자하기 때문에 일부의 성공 사례로 수익을 창출하는 소극적 방식이었다. 이에 비해 최근에는 멘토링 등을 통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수익률을 높이는 노력을 기하고 있다.

 보육 단계에서의 적극적인 수익성 향상 노력은 창업 시스템의 체계화와 교육의 고도화·다양화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기업들도 기업형벤처캐피탈(CVC) 형태로 스타트업 보육에 나서고 있으며 성공 사례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창업자의 구주매각 길을 열어줌으로써 지속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압축성장’과 ‘사업적 유인 제공’이 특징이다.

 엑셀러레이터가 스타트업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 및 관리하면서 보육도 유형화되고 있다. 창업 국가로 불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에서는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다국적 IT기업 출신들이 엑셀러레이터로 나서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이들은 크게 장소제공, 교육중심, 투자유치목적, 기술지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성격에 따라 엑셀러레이터마다 전문 투자 분야가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IT·소프트웨어·헬스케어처럼 기술 기반으로 기업가치를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는 산업에 투자한다.

 세계에서 가장 명성 있는 엑셀러레이터는 미국의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다. 1801개 기업에 초기 투자해 522억 달러(약 67조원)의 투자 유치를 끌어냈으며 현재까지 95억 달러(약 12조원)를 회수했다. 이 밖에도 테크스타즈, 500스타트업, 디알키미스트엑셀러레이터 등이 명성 높다. 미주·유럽, 이스라엘 엑셀러레이터들은 고유의 철학과 경험을 바탕으로 ‘브랜딩’에 성공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와이콤비네이터의 창업자인 폴 그레이엄은 프로그래머이자 투자가로 창업자 간 교류와 사업 모델, 수익성 극대화, 팀 조직 등에 대한 컨설팅에 강점이 있다. 에어비앤비와 래딧과 같은 역사적 스타트업의 투자에 성공했다.

사모펀드처럼 브랜드로 정착할 수도

창업자와 엑셀러레이터의 관계는 대학생-대학교의 관계와 흡사하다. 훌륭한 보육 성과를 낸 엑셀러레이터에는 뛰어난 창업자들이 몰려 좋은 결과물을 내고 명성이 누적되며 브랜드로 자리 잡는다. 피터 린치처럼 성공적 투자 철학과 기법을 만든 펀드매니저가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것처럼 엑셀러레이터도 보육 방식과 철학이 평판 가치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보육 기능의 경제적 가치나 성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긴 어렵지만 유럽 시드DB의 설립자 제드 크리스찬슨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보육의 가치를 엿볼 수 있다. 51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80% 이상의 기업이 중요한 3개 가치를 ‘멘토링’ ‘코칭’ ‘피드백’으로 꼽았다. 30% 기업들은 엑셀러레이터의 초기 투자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만약 엑셀러레이터가 시드 투자를 하지 않는 경우 지분을 얼마큼 양도할 수 있느냐’는 질문엔 55%의 스타트업이 1~6%의 지분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응답했다.

 국내 보육 생태계의 특징은 ‘정부지원’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예비창업자와 스타트업을 선발, 보육하는 과정은 정부지원금을 마중물로 작동하고 있으며 지난 10년 전부터 이를 뒷받침할 민간 엑셀러레이터가 다수 등장하고 있다. 이전에는 정부 지원금이 바탕이기 때문에 모태펀드 자금이 풀리는 특정 산업 분야에 엑셀러레이터들이 몰리는 경향이 있어서 각 회사의 특·장점을 살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4~5년 새 스타트업 분야에 투자금이 풍부해지고 창업 생태계가 안정되며 고유의 특징이 드러나고 있다. 퓨처플레이,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같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엑셀러레이터나 스파크랩스처럼 주로 의식주 기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엑셀러레이터가 등장했다. 민간 영역이 커지며 거꾸로 모태펀드의 지원금은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CVC(모기업의 노하우와 사업 역량을 스타트업에 지원하는 한편 혁신 아이디어를 스타트업으로부터 구하려는 동기를 가진 투자방식)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으며 빠르게 커지고 있다. 2021년 지주회사의 CVC 보유가 허용되면서 2022년 말 기준 동원·GS·F&Fv평화·효성·에코프로·빗썸·포스코·CJ 등 9개 기업집단이 지주회사 내 CVC를 설립했다.

 이들은 1511억원의 자금을 조성해 이중 1360억원(90%)을 CVC 자본금과 계열사로부터 조달했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한편 사무실 제공과 멘토링, 해외진출 등 보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 국내 창업 보육 시스템에서 모태펀드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전문 엑셀러레이터와 CVC가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역할 감소, 전문 엑셀러레이터 양성 길 열어야

다만 국내 엑셀러레이터의 자본금 규모가 50억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영세하다는 점과 일부 엑셀러레이터가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투자를 독식하고 있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엑셀러레이터가 지속성 있게 활동하려면 투자금이 꾸준히 유입돼 신규 투자를 벌여야 하는데 이 선순환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VC와 달리 법적 지위가 없다는 점도 한계다. 현재 법으로는 자금운용과 모집에 따른 규정만 있을 뿐 투자사의 비운용 활동에 대한 별도 성격 규정이 없는 상태다. 일부 엑셀러레이터가 인수·합병(M&A) 등 곁가지 시장으로 내몰리는 이유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창업의 증가는 구조적 변화다. 이 변화의 안착과 경쟁력 있는 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선 튼튼한 보육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학생은 대학에서 배우고 창업자는 보육기관에서 학습한다. 세상의 새 규칙에 걸맞는 창업 생태계의 완성 그리고 엑셀러레이터들의 활동과 그에 대한 지원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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