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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el of Fortune④ 금융] 금융 본질은 권력, ‘혁신 제일주의’ 안 먹힌다

김유경의 저널리즘│

  • 기사입력 2023.08.03 11:00
  • 최종수정 2023.08.04 17:26
  • 기자명 김나윤 기자

WHY?

금융 서비스는 규제와 통제의 집합체다. 국가 시스템이나 다름없는 이 영역에서 IT업계가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급변하는 체제 변화 속에서 IT 기술이 금융 플랫폼에 올라탈 수 있을까.

 

애플페이는 애플 생태계 참여자들의 결제를 지원해 크게 유행하고 있지만 현재 국내 결제 생태계에 자리 잡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애플페이는 애플 생태계 참여자들의 결제를 지원해 크게 유행하고 있지만 현재 국내 결제 생태계에 자리 잡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0년대 초 아마존과 이베이의 등장으로 온라인 공간은 정보의 유통을 넘어, 제품의 유통 통로로 발전했다. 이른바 e커머스의 등장이다. e커머스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며 혁신의 주인공이 됐다.

 이제는 돈의 차례다. 시장통에 사람이 몰려 정보가 쌓이고 제품이 거래됐으니 돈이 오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e커머스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온라인 지급결제 시장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늘면서 핀테크라는 새 국면도 펼쳐지고 있다. 플랫폼은 모든 사용자에게 소통의 창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정보·제품·돈 유통의 종단(終端)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스마트폰이 개인의 자격을 증명하는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IT는 돈의 이동(결제)을 구현하는 데 적합한 기술인 셈이다. 모든 플랫폼 기업들이 공들여 준비하는 핀테크의 거대한 파도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다만 IT 기술일지라도 유독 금융(본문에서는 금융과 결제를 혼용해 사용한다) 분야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영국·일본 등 금융 선진국 모두 마찬가지다.


IT 파괴력만큼 규제 유인도 커

‘돈이 먼저냐’(핀테크), ‘기술이 먼저냐’(테크핀)을 두고 금융계와 IT업계는 항상 신경전을 벌인다. IT 기술이 이종 산업과 결합할 때 늘상 나타나는 양상이다. 우리는 이미 전기차 산업을 둘러싸고 자동차 회사가 중심이냐, IT 회사가 중심이냐를 두고 싸운 모습을 지켜본 바 있다.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기존 산업계가 감당하고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IT 기술의 혁신성과 파괴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규제 혹은 통제의 유인 역시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규제·통제의 필요성은 금융은 권력이며 곧 국가시스템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 명제는 역사가 증명한다. 세계 금융의 중심 영국에서 현대적인 금융 시스템이 태동한 것은 17세기 영국이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만들면서다. 당시 프랑스와 전쟁 중이던 영국은 1690년 비치헤드(Beachy Head) 전투에서 참패하고 해군력 증강을 위해 군비 확충에 나섰다. 이를 위해 영국 윌리엄 3세 왕실은 연 8% 이자율로 120만 파운드의 자금을 모았는데, 왕실의 신용도가 낮아 돈을 빌리지 못했다.

 이때 민간 은행이 정부 자금의 독점 조달을 조건으로 상업대출과 환어음을 발행, 12일 만에 해당 자금을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 왕실은 이 자금을 바탕으로 해군력 증강에 나서며 18~19세기 세계 패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물론 18세기 산업혁명도 융성해진 금융 토양에서 싹을 틔웠다. 영국은 금융이 국가시스템으로 자리잡아 부국강병과 산업화를 이룬 것이다.

 이런 사례는 고대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아테네와 비잔티움·마살리아 등 항구도시에서 모험대차가 생겼고, 대금업과 외환투기업으로 발전했다. 이는 내륙 경제까지 진출해 아테네에 물질적 풍요와 황금기를 선물했다.

아마존과 이베이 등 e커머스의 등장으로 온라인 공간은 정보의 유통을 넘어 제품의 유통 통로로 발전했다.  e커머스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며 혁신의 주인공이 됐다.
아마존과 이베이 등 e커머스의 등장으로 온라인 공간은 정보의 유통을 넘어 제품의 유통 통로로 발전했다.  e커머스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며 혁신의 주인공이 됐다.

 금융시스템은 현대 사회 들어 더욱 공고해졌다. 미국의 글로벌 달러화 결제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3%를 차지할 정도의 초강대국으로 성장했고, 유럽 우방국의 전후 복구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마셜플랜을 가동했다. 달러화는 우방국의 채무 상환과 물자 구입에 사용됨으로써 국제통화가 됐다. 더불어 1944년 출범된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금 1온스를 35달러에 고정시킨 금태환 정책으로 달러 가치를 보장했다.

 1970년대에는 두 차례 석유 파동을 겪은 후 국제원유 결제에 달러만을 사용하도록 하면서 지위를 굳혔다. 심지어 달러는 미 국채 발행을 통해 다른 나라의 저축을 사올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달러 결제시스템의 역할은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하이퍼파워로 거듭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영향을 끼쳤다. 세상의 모든 질서는 금융권력의 그림대로 구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며 실제 중요한 통치 수단으로 작동해 왔다. 이 시스템에는 이미 무수한 이해관계자들이 강하게 결속돼 온갖 산업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IT 기업 금융 진출 통제 불가피

IT 기업의 금융영토 진격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용자들의 플랫폼 체류 시간 및 지출 증가로 고객 경험 강화와 신규 수입 창출을 위한 결제시스템의 내재화가 가능하다. 여기에 애스크로 서비스, 나아가 자금 위탁과 운용까지 넘볼 수 있다. 그러나 다소 과장해 얘기하면 이는 금융시스템에 대한 도전이다. 구글 혹은 애플 생태계에 많은 수의 사용자가 활동하고 하고 있어도, 이는 어디까지나 민간기업의 영역이다. 따라서 금융의 공공성을 부여하기 어렵고 정부 통제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암호화폐가 다수 늘어나는 상황은 국가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혼란을 키울 수 있다. 중앙은행은 발권력을 동원해 은행에 자금을 대여(본원통화)하고 은행은 신용을 바탕으로 융자 활동을 벌이며 통화승수를 일으킨다. 중앙은행은 발권 운용을 통해 시장의 자금 유통량을 조절하고 경기 변화에 대응한다. 그런데 암호화폐의 경우 분산화된 합의 메커니즘을 통해 발행과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발행한 암호화폐는 통화량에 잡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통화가 시중에 유통되지 않아 경기 부양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발행자의 잇속을 챙기는 데에만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일부 중앙화된 통제기관이나 조직이 발행과 거래를 감독하거나 조절할 수 있다. 홍콩 달러가 미 달러에 페깅(고정)돼 있듯 스테이블코인을 외부 자산과 연동시켜 발행량을 조절해 가치의 안정성 확보를 지향한다. 그러나 루나-테라 사태에서 봤듯 이런 방식 역시 공공성을 갖거나 도덕적이기 어렵다.

미국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브라보스 강철은행의 모습이다. 극중에는 전쟁자금을 빌리기 위해 은행에 비굴한 모습을 비치는 영주의 모습이 등장한다. [자료=영상 캡처]
미국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브라보스 강철은행의 모습이다. 극중에는 전쟁자금을 빌리기 위해 은행에 비굴한 모습을 비치는 영주의 모습이 등장한다. [자료=영상 캡처]

암호화폐 사태 나쁜 선례 남겨

이에 비해 현재 은행 및 카드사는 금융당국의 통제 아래 은행법과 여신전문금융업법의 지배를 받으며 국가시스템의 한 축으로 작동한다. 금융회사가 아닌 금융기관으로 불리는 이유다. 금융은 국가 경제와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를 IT 관점의 요구대로 바꿀 수는 없다. 금융당국은 IT 기술 접목을 통한 산업 발전에서 외부로부터가 아닌 금융기관 내부 혁신을 지향한다. 신라방에 들어선 아랍 상인들이 자신들만의 화폐로만 거래를 수행할 것이니 당나라는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당나라 입장에서는 이를 끌어안아 통제하든가, 배제하는 수밖에 없다.

 화폐와 결제, 금융의 전자화 지금보다 더욱 더 고도화할 것임은 분명하다. 전자화폐는 신용카드 없이도 온라인 결제, 모바일 결제 및 전자 지갑과 같은 형태로 사용할 수 있고 물리적 지불 수단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특히 중앙은행이 발행과 사용을 추적하기 용이하고 위변조가 어렵다. 보안성도 뛰어나다. 이런 변화에 뒤처지면 국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주요국들도 알고 있다.

 실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365일 즉시결제가 가능한 페드나우(FedNow) 서비스 개시를 준비 중이다. 연준은 페드나우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가 아니라는 입장인데, 시장에서는 사실상 CBDC로 보고 있다. 연준이 앞서 발행한 디지털 통화와 관련한 토의보고서에 따르면 CBDC 도입이 미국 달러의 ‘국제적 역할을 유지(Support the Dollar’s International Role)’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하는 등 물밑에서 금융 경쟁력 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최고의 사용자 가치 제공’을 제품의 제1 목표로 뛰었던 IT 기업들은 금융 분야에서만큼은 다른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제품 경쟁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전에 자연스러운 생태계 편입이 필요하다. 기존 금융 생태계에 발을 걸치고 기술 발전에 맞춰 리더십을 발휘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IT 플랫폼이 금융 플랫폼에 올라타려면 기술적 안정성과 보안 문제, 규제와 법적인 쟁점, 금융 포용성과 디지털 격차 등의 문제를 해소하며 접근해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기존 금융기관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금융은 신뢰와 안정성에 기반을 둔 원론적 시스템이다. 체제 전복 등 급진성을 주장하는 블록체인의 사이버펑크 철학은 금융 산업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6월 13일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최고경영자(CEO) 창펑자오가 바이낸스US의 달러의 구매 중단을 발표한 바 있다.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대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소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벌어진 조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바이낸스가 미국 금융체제에 반격을 가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창펑자오의 실제 의도는 알기 어려우나, 대립하는 듯한 모습이 반복되면 SEC와는 손잡기 어렵다.

 또 금융기관들이 IT 플랫폼보다 강자라는 점을 인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2021년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가 금융서비스를 출범하며 국내 보험사들을 상대로 ‘입점’ 뒤 수익을 ‘셰어’하자고 제안했고, 보험사들은 단칼에 거절한 바 있다. e커머스와 동일한 방식의 운영을 염두에 둔 듯 보이는데, 보험사는 소상공인이 아니다. 수백조의 자산을 굴리며 금융당국의 보호를 받는 기업들이며 긴 역사와 탄탄한 고객 기반, 다양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핀테크 업체들이 경쟁적 환경에서 새로운 사업을 론칭하거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려면 동반성장 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안정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기존 금융기관과의 협업을 모색해야 한다.

마케팅 유입 제거 후 성장 전략 고민해야

금융 분야에서 가장 규제가 적고 e커머스 플랫폼들이 접근이 용이한 결제 분야를 연결고리 삼아 접근하는 것도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페이 같은 페이서비스는 자체 결제망을 가진 전자결제대행사(PG)인데, 이는 은행과 신용카드사 업무를 일부 나눠가진 것이다. PG 서비스 역시 기존 신용카드 생태계를 완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의 한 영역일 뿐이다.

 금융당국은 IT 기업의 영역을 결제까지로 규정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기회는 잡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BNPL(BUY NOW PAY LATER)과 같이 소비 습관 변화로 새로 자리 잡고 있는 신규 서비스로 영역을 넓혀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최근 페이서비스에 대한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며 마케팅 경쟁이 활발한데, 마케팅 경쟁 없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기관의 수익성 악화를 항상 염려하기 때문에 과도한 마케팅에 제동을 건다. 마케팅 경쟁을 멈추고 일회성 고객의 유입이 중단됐을 때의 상황을 상정한 전략 수립도 뒷받침돼야 한다.

 금융당국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규제를 통해 소비자 보호와 시장의 정상적인 운영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IT 기업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과 규제 요구사항을 충족하는지에 대한 의심과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점과 공정 경쟁, 금융기관과의 이해차 등을 고려해 접근해야 한다. 시스템의 안정성을 실현하고 기술적 난제를 풀어가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래야 권력인 금융시스템 안에서 핀테크 기업의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커진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화폐. 기존 법정화폐와 동일한 화폐단위를 가지며 현금과 같은 실물화폐를 대체하는 화폐.

BNPL(BUY NOW PAY LATER)

선구매 후결제 서비스. 소비자가 가맹점으로부터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면 결제업체가 먼저 대금을 가맹점에 전액 지불하고 추후 소비자가 결제업체에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 신용카드와 달리 신용등급과 관계없이 이용 가능하며 분할납부 거래수수료가 없는 점이 기존 신용카드 서비스와의 차별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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