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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없이 스케일업 한 창업자들

벤처붐이 불었던 지난 2년, 투자 안 받고 회사를 키운 두 창업자가 있다.
이들은 “감당할 수 없는 성장은 독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 기사입력 2023.01.27 12:47
  • 최종수정 2023.07.07 09:44
  • 기자명 문상덕 기자
김동현 코니바이에린 이사(공동창업자, 왼쪽)와 신재명 딜라이트룸 창업자. (사진=강태훈)
김동현 코니바이에린 이사(공동창업자, 왼쪽)와 신재명 딜라이트룸 창업자. (사진=강태훈)

창업자는 언제 투자 받을까. 흔히 “런웨이가 끝나기 전”이라고 말한다. 비행기가 런웨이(활주로)가 끝나기 전 떠야 하듯, 스타트업은 돈이 떨어지기 전 다음 투자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지만, 최종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기업이 많았다. 마케팅에 돈을 쏟아부어 월 사용자 수 같은 수치를 부풀리고, 부풀린 수치를 갖고 다음 런웨이로 향한다. 호황 덕분에 가능했다. 호황이 끝나자 이들은 하나 둘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질문에 다른 답을 말하는 창업자들이 있다. 풀고 싶은 문제가 분명해지고, 단계별 목표가 섰을 때라고 말한다. 이들 창업자가 일군 기업은 매년 두 배 안팎으로 매출이 늘고, 영업이익률도 두 자릿수다. 김동현 코니바이에린 공동창업자와 신재명 딜라이트룸 대표가 그들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외부 투자를 받지 않고 회사에서 번 돈을 재투자 해 사업과 비전의 크기를 넓혀왔다.

스타트업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부트스트래핑*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이메일 마케팅 업체 메일침프(MailChimp)가 대표적인 부트스트래핑 기업이다. 고객 몇 명에게 뉴스레터가 도달했는지 등의 데이터를 관리해주는데, 20여년간 고객 1300만명의 데이터를 축적했다. 지난해 9월 미국의 재무관리 SW업체 인튜이트(Intuit)는 이 업체를 120억 달러에 인수했다. 

*부트스트래핑(Bootstrapping) 부츠 뒷부분에 달린 고리끈(strap)에서 유래한 말. 벤처업계에선 ‘한번 시작하면 다른 도움 없이 스스로 진행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

부트스트래핑 기업은 창업자가 투자자 채근을 받지 않고 회사를 키워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외부 도움을 받지 않는 만큼 성장 속도는 더뎌진다. 수익을 내며 빠르게 회사 덩치를 키워온 두 창업자는 왜 여전히 투자 유치에 신중할까. 지난 10월 서울 논현동의 한 사진 스튜디오에서 만난 두 창업자는 “감당할 수 없는 성장은 독”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생각을 풀어냈다.

 

아기띠가 전에 없던 상품은 아니었죠.

김동현 아내(임이랑 대표)가 제품을 기획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지켜야할 것이 뭘까.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편안함, 심플한 디자인, 이런 것만큼은 갖고 가자. 아내가 목디스크를 앓고 있었거든요. 시중에는 만족할 만한 제품이 없었고, 그럼 직접 만들어보자고 한 거죠. 

구상한 대로 실물이 나왔나요?

김동현 아니었죠(웃음). 난도가 높았어요. 원단은 가벼우면서도 탄성이 좋아야 했어요. 아이 무게가 있으니까요. 물 빠짐도 적어야 하죠. 원단을 찾느라 동대문을 많이 헤맸어요. 구상한 대로 제품이 안 나와서 처음에는 공장도 여러 번 바꿔야 했고요. 

알람 앱은 어땠나요? 

신재명 기존 알람 앱(기능)은 ‘제 시간에 울린다’는 기본을 생각보다 못 지키고 있었어요. 제품 시스템이나 운영체제(OS)와 충돌하면 그렇거든요. 예를 들어서 애플 iOS는 무음 모드에서 알람 앱이 작동 안 돼요. 저희는 방법을 찾았고요. ‘다른 앱은 안 울리는데 이건 되네’ 싶은 거죠. 

‘악마의 알람 앱’이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신재명 원래는 제가 쓰려고 만들었어요. 스마트폰으로 알람을 맞추고 화장실에 두면 다음날 쉽게 깨더라고요. 알람을 끄려면 화장실까지 가야 하니까요. 이걸 자동화하고 싶었어요. 지정한 장소에 가야 꺼지는 알람을 만들어보자. 그 장소 사진을 찍어야 알람이 꺼지도록 만든 게 시작이었죠.

김동현 어떤 사진으로 설정했어요?

신재명 다 화장실 사진이었어요(웃음).

신재명 딜라이트룸 창업자. 2012년 과기부에서 주관하는 고급 개발자 양성과정인 ‘SW마에스트로’에 참여하던 중 알람 앱 ‘알라미’를 개발했다. 현재 전 세계 알람 앱 중 가장 많은 다운로드 수(약 6000만건)를 기록하고 있다. 2019년엔 월 5900원 프리미엄 서비스도 선보였다. 사진=강태훈
신재명 딜라이트룸 창업자. 2012년 과기부에서 주관하는 고급 개발자 양성과정인 ‘SW마에스트로’에 참여하던 중 알람 앱 ‘알라미’를 개발했다. 현재 전 세계 알람 앱 중 가장 많은 다운로드 수(약 6000만건)를 기록하고 있다. 2019년엔 월 5900원 프리미엄 서비스도 선보였다. 사진=강태훈

두 분 모두 처음부터 사업을 생각하진 않았네요.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김동현 저는 절박했어요. 9개월 정도 육아만 하면서 퇴직금을 쓰고 있었거든요. ‘내 커리어가 여기서 끝나나’ 고민도 들었고요. 기본적으로 아내에 대한 믿음도 있었어요. 티몬에서 PB상품 기획도 했던 사람이거든요. ‘이 사람이 만족할 정도만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신재명 2012년 킥스타터(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서비스)에 ‘라모스 알람 시계’라는 상품이 올라왔어요. 알라미와 거의 비슷한 아이디어였는데, 제품 가격이 40만원이었어요. 그런데도 2억원을 모금하더라고요. 그때 이런 수요가 다른 사람에게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더구나 앱은 무료였고요.

그리고 사업 첫 해부터 수익이 났죠.

신재명 저는 개발자라 가능했어요. 혼자서 만들 수 있잖아요. 홍보도 무작정 기자 분들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운 좋게 라모스 알람 기사를 썼던 미국 매체에서 다뤄 주면서 해외에서 반응이 왔어요. 이후 애플 앱 스토어에 출시했는데 일주일만에 전 세계에서 3000만원어치를 팔았어요.

김동현 저희도 비슷한 스토리인 것 같습니다. 저와 아내가 처음부터 끌고 가니까 비용 없이 매출이 일어나는 시점까지 갔어요. 아내 생각은 분명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해져야 한다. 대부분의 젊은 엄마는 인스타그램을 한다는 거죠. 아기를 안는 방법에 대한 콘텐츠, 멋지게 아기띠를 맨 사진을 포스팅하고, 아기 엄마들 계정에 들어가서 ‘좋아요’를 누르고. 

김동현 코니바이에린 이사(공동창업자). 2010년 티켓몬스터를 공동 창업했고, 2016년 티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다. 이듬해배우자 임이랑 대표와 함께 육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코니바이에린’을 창업했다. 대표 상품인 코니아기띠는 전 세계 70개국에 100만개 이상 팔렸다. 사진=강태훈
김동현 코니바이에린 이사(공동창업자). 2010년 티켓몬스터를 공동 창업했고, 2016년 티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다. 이듬해배우자 임이랑 대표와 함께 육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코니바이에린’을 창업했다. 대표 상품인 코니아기띠는 전 세계 70개국에 100만개 이상 팔렸다. 사진=강태훈

사업이 궤도에 올랐고, 이제 투자 제안이 왔을 것 같습니다. 받지 않았고요. 

김동현 투자 유치가 마냥 좋지는 않다는 걸 알았어요. 티몬이라는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어떤 경험이었나요?

김동현 “이번 달에 매출 얼마를 만들어야 해.” 그러면 답이 정해져 있어요. 상품권 가져와야 하고, 유명 브랜드 갖고 와서 반값에 팔아야 하고요. 단기적인 시각에서의 활동인 거죠. 그런데 시장 크기보다 더 성장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시장은 이정도 속도로 커지는데, 돈을 집어넣고 리소스를 갈아 넣어서 더 큰 성장을 만들었다? 결국 시장 사이즈로 돌아갑니다. 그걸 티몬 하면서 봤어요.

당시 경쟁업체가 쿠팡이었죠.

김동현 티몬에서 트래픽과 매출에 집중할 때, 쿠팡은 로켓배송 인프라를 깔고 있었어요. 투자금을 어떻게 쓰느냐에서 달랐던 겁니다. 그 당시 (티몬의) 매니지먼트 스킬과 인적 구성, 비전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웠던 압력을 받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성장이 감당할 수 있는 성장인가, 그런 고민을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우리의 역량과 속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죠.

지금 회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이익률도 높습니다.

김동현 지금까지는 내년 사업 정도를 고민하는 단계였죠. 이제는 5년 뒤 모습을 생각해보자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부모의 삶을 쉽고 멋지게’라는 비전 아래 여러 경로가 있을 텐데요. 경로에 따라서 투자를 받아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보다 신 대표님은 투자를 받으면 개발자를 뽑는 것도 쉽고, 인지도도 쉽게 높아질 텐데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신재명 생각보다 제안이 많지는 않았어요(웃음). 단순한 유틸리티 앱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더구나 국내 홍보를 안하기도 했고요. 물론 투자 받아서 개발자를 뽑고, 빨리 성장하는 다른 기업을 보면서 저도 고민을 했죠. 그런데 회사를 두 배, 세 배 키울 방정식을 못 찾았는데, 지금 근육도 잘 쓰는 법을 모르는데 투자 받는다고 근육이 더 생길까 의문이 들었어요. 

확실한 강점이 있으니 다른 서비스로 확장해볼만 했을 것 같은데.

신재명 지금은 ‘모닝 웰니스 솔루션’이라는 비전이 있고, ‘성공적인 아침을 만든다’는 슬로건도 갖고 있어요. 그런데 당장 3, 4년 전만 해도 내부에서 의견이 갈렸어요. ‘웰니스, 멋있긴 한데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야. 유틸리티 앱으로 잘하고 있잖아’라는 이야기였죠. 결국 제가 설득하지 못해서 그분들은 회사를 떠났죠. 왜 못했을까, 그동안 비전을 더 뾰족하게 다듬어왔습니다. 

김동현 모든 회사의 처음 모습을 스크린샷으로 찍는다면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삼성조차도 그랬을 것 같아요. 

성장 속도를 조절하고 비전을 다듬는다. 조직 분위기가 이완되진 않을까요?

신재명 맞아요. 실제로 그런 적이 있고요. 그래서 저는 비전과 미션이 중요하다고 봐요. 10년 뒤 모습을 그리고, 지금 필요한 걸 공유하는 거죠. 알람은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성공적인 아침을 만드는 서비스야, 이렇게 알람의 본질을 바꾸려면 뭘 해야 할까. 자기 전에 쉽게 쓰고, 아침에 일어나서 생산적인 일을 하도록 책임 범위를 넓혀야 해. 이런 식으로요.

책임 범위라는 말이 재밌네요. 이사님이 생각하는 코니바이에린의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김동현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의 검색 키워드가 그 이전과 극명하게 달라져요. 나를 위한 쇼핑에서 아이를 위한 쇼핑으로. 즐거웠던 쇼핑 경험이 의무적인 경험으로 바뀌는 거죠. 이게 우리가 풀어야할 문제라고 보고 있어요. 부모의 삶을 쉽고 멋지게 만들자. 그걸 브랜드 미션으로 처음 잡아봤습니다. 새 제품군을 찾고 있고요. 예를 들어 가족으로서 반려동물이 될 수도 있겠죠. 

뚜렷한 비전이 퇴사율을 낮춰줄까요?

김동현 퇴사율이 크게 중요하진 않다고 봐요. 우리와 맞는 분들의 리텐션을 높이는 게 중요하죠. 

신재명 저희는 인재 밀도라는 말을 많이 써요.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사람으로 팀을 꾸리는 것이 저희의 꿈이에요. 그래서 수습을 채용할 때 결격사유가 없으면 합격이 아니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합격시켜요. 지금은 합격율이 80%까지 올라왔는데, 정말 낮을 때도 있었어요.

김동현 어떻게 해야 사람을 잘 뽑을 수 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해야 문제를 피할 수 있는지는 알 것 같아요. 충분히 시간을 갖는 것. 급하게 뽑을 때 문제가 생길 확률이 커요.

예비 창업자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을까요?

신재명 창업도 수단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풀고 싶은 문제가 명확하게 있고,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창업을 하는 것이라고 봐요. 그래야 좀더 오래 버틸 수 있고, 일을 재미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자꾸 외부의 ‘좋은’ 기회들에 휘둘릴 수 있어요.

김동현 투자는 목적이 될 수 없다. 투자가 목적인 게 용납이 됐던 시기가 있었죠. 지금은 아닌 것 같고요.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 투자가 맞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러시아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썼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19세기 러시아 사회를 담은 말이지만, 오늘날 기업에 쓰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단단하게 성장하는 기업, 그리고 창업자들은 서로 닮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대담을 끝낸 두 창업자는 못다한 말을 나누러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 포춘코리아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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