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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감세 vs. 실패한 감세

  • 기사입력 2022.12.19 07:00
  • 기자명 윤두영 글로벌기업연구소장

물가와 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각국 정부가 펼칠 수 있는 경제 정책적 수단에 한계가 보인다. 영국 정부는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감세 정책을 발표했지만 바로 역풍을 맞았다. 총리가 취임 44일 만에 퇴임하는 최악의 결과다. 과거 외국에서 행해졌던 감세 정책을 살펴보면 감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폭넓게 파악할 수 있다. 

◇ 실패한 영국 감세 정책, 성장을 위한 무리수

영국 정부가 감세 정책을 발표하자마자 곧바로 시장은 발작 증세를 보였다. 파운드화는 폭락해 지난 9월27일에는 GBP/USD 1.03까지 떨어졌다. 역사상 최저 수준이다. 주가도 영국 정부가 늘어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통화 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번지면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11월 3일 영국 중앙은행은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며 기준금리를 1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였다. 1년도 안된 사이에 0.1%에서 3%로 빠르게 뛰었다. 10년 만기 국채는 4%대 가까이 치솟았다. 

영국 정부가 감세라는 무리수를 둔 이유는 향후 1~2년간 경기가 급속히 냉각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의 침체는 올해 4분기에 시작해 적어도 내년 하반기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 2분기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 4.4%에서 1%대로 낮아질 것이라 한다. 실업률은 최근 3.5%에서 2024년 초에는 과거 팬데믹 기간에 기록한 정점과 비슷한 5%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최근 영국의 물가 상승률은 10%가 넘는다. 그러나, 시장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은 경기를 부양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금리 상승의 주범인 물가를 먼저 안정시킨 후 감세 등을 포함한 경기 부양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봤다. 감세안에 대한 예상보다 강한 저항은 바로 직전에 도입된 1500억 파운드(약 220조원)에 달하는 에너지 보조금 정책(에너지가격 상한제)과 함께 작용했다.

고물가 시대에 재정 확대(국채 발행)로 정부 부채를 늘려버리면 인플레이션 심리를 더욱 자극해서 금리 상승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시장 일각에선 내년 1분기 영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소매물가지수가 각각 18%, 21%로 급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영국은 과거에도 파운드화 폭락으로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영국 금융가선 1992년 9월 16일 수요일을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이라 부른다.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 및 다른 헤지펀드가 영국 파운드화를 투매해 영국 정부가 유럽 환율 메커니즘(European Exchange Rate Mechanism ERM)을 탈퇴한 사건이다.

유럽 환율 메커니즘은 유럽의 환율 변동을 조정해서 통화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당시 유럽내 환율 체계였다. 1980년 초 2차 오일 쇼크와 이 사건으로 받은 충격 때문에 1970년까지 줄곧 2.0~2.5를 유지해 오던 달러 대비 영국의 파운드화 환율(GBP/USD)은 1.5~1.7 아래로 내려 앉았다. 최근(11월9일 기준)에는 1.1 수준까지 내려와 있다. 

◇ 다양한 감세 효과, 일본(실패) vs. 아일랜드(성공)

90년대 일본 경제는 수출 물량 감소와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크게 휘청거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30년’의 세월이 시작된 것이다. 1989년 12월 4만 포인트를 육박하던 일본 종합주가지수는 90년대를 지나면서 2002년 3월 최저점인 8500포인트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를 설명하려면 1985년 9월 22일 이루어진 플라자 합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본의 대규모 대미 무역 흑자가 불만이었던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달러 강세를 해소하자고 노력했다. 그 결과 1985년 말 달러당 238.1엔이었던 엔화 환율은 1988년 말 128.2엔으로 3년 동안 무려 46.2%가 절상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일본보다 10년 앞서 감세 정책을 시행했다. 1980년대 초부터 레이건 행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레이거노믹스’라는 이름으로 줄기차게 감세 정책을 펴 오고 있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총 수출 물량은 급격히 줄기 시작했고 GDP 성장률은 1%대 아래로 크게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인하와 부동산 규제 완화 카드를 사용해 경기 부양에 나섰다. 당시 막대한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돈과 함께 낮은 금리로 차입이 가능해지자 1980년대 중·후반기 일본 부동산 회사들과 기업들은 가격 불문하고 국내외에서 고가의 빌딩과 부동산을 사들였다. 이때 생겨난 부동산 버블이 90년대 터지면서 일본의 경제 위기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와 같은 경제 배경을 뒤로하고 일본 정부는 1994년 감세에 나섰다. 1998년과 1999년에도 잇따라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 세율 인하를 골자로 하는 감세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미 깊어진 경기 불황을 감세로 돌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산 가격이 폭락하고 경기 성장 둔화로 실업률도 높아졌다.

감세에 따른 가처분 소득 증대로 인한 소득효과, 자본비용 하락으로 인한 대체 효과가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 구축에 실패했다. 투자와 소비심리는 크게 위축되어 있어 소비보다는 저축으로 연결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세수 감소로 국가부채는 더욱 늘어났다. 결국 90년대 10년에 걸쳐 행해진 일본의 감세 정책은 실패로 끝이 났다.

반면, 아일랜드는 가장 대표적인 감세 성공 국가로 꼽힌다. 이 나라는 2차 석유파동의 후유증을 가장 심하게 앓은 국가 중 하나다. 성장과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외국자본의 유치가 절실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1987년부터 법인세율을 지속적으로 인하했다. 50%였던 세율이 2003년에는 OECD 최저 수준인 12.5%로 하락했다.

큰 폭의 세율 인하는 1990년 중반 이후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에는 경제성장률이 4.4%였으나 경기가 회복되면서 1995~2003년 중에는 OECD 최고 수준인 8.2%로 상승했다. 투자증가율도 같은 기간 2.6%에서 10.6%로 높아졌다. 해외 자본 유입은 평균 11억 달러에서 평균 134억 달러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아일랜드는 일본과 다르게 정부 조직의 축소·폐지 등을 통해 재정지출을 억제했다. 기업 관련 규제도 철폐하고 사회연대협약 체결로 노사안정을 도모하는 등 기업 경영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성과를 냈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이후 성장률이 높아지면서 세수가 증대됨에 따라 재정수지가 흑자로 전환됐다. 크게 늘어난 해외 자본 유입 덕분에 기업의 투자는 확대되고 이익은 빠르게 개선됐다.

세율 인하에도 불구하고 법인 세수의 GDP대비 비중은 오히려 상승했다. 일본은 수출 증가세가 낮아지자 내수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을 확대하면서 금리도 낮추었다. 이는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의 버블화를 초래했고 경기 둔화로 버블이 터지면서 감세 정책 효과의 선순환 구조를 이끌어 내는데 실패했다. 

◇ 미국의 대표 감세 정책, ‘레이거노믹스’ vs. ‘감세 2.0’

미국의 40대 대통령인 로널드 윌슨 레이건은 재임 기간(1981~1989) 중 ‘작지만 강한 정부’, ‘힘에 의한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표방하면서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레이거노믹스의 핵심 내용은 정부 지출의 축소, 노동과 자본에 대한 소득세 한계세율을 낮추고 정부 규제 축소와 함께, 당시 만연해 있던 인플레이션을 줄이기 위해 화폐 공급을 줄여 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감세가 레이거노믹스의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 소득세 제도가 도입된 이후 소득세율을 한번도 내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레이건 정부의 감세 정책은 기존 조세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었다. 

세율은 대폭 낮아졌다. 개인 최고 세율을 70%에서 28%로, 법인세율도 48%에서 34%로 크게 낮췄다. 그러나, 지속적인 감세 정책으로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국방비마저 크게 증가하면서 재정적자 폭은 더욱 커져 임기 말로 갈수록 여론이 악화됐다. 레이건 행정부의 감세 정책은 당시는 실패로 보여졌지만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최장 고도 성장기를 이룰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가 시장과 학계의 중론이다. 감세와 더불어 시행된 과감한 규제개혁, 그리고 급속한 세계화(Globalization) 진전이 성공의 배경이 되었다.

2017년 12월 2일 미 상원을 통과한 트럼프의 감세 법안(‘감세 2.0’)도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법인세 대폭 감세를 포함해 1조 5000억 달러 규모의 세금 감면을 골자로 하는 세계개혁 법안이다. 기업들로 하여금 미국 내 투자를 늘리기 위한 조세 지원 방안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인하하고 개인소득세 최고세율도 2025년까지 39.6%에서 37%로 인하하는 등 매우 강도 높은 감세정책이다.

기업이 각종 세금 감면에도 반드시 내야 하는 최저한세율(20%)도 폐지했다. 기업이 해외에 예치한 현금을 미국 내로 들여올 때 내야 했던 송금세 역시 대폭 인하(35%→12~14.5%)했다. 

실시 이후 처음 3년간은 레이건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감세로 인한 재정적자는 크게 확대됐고 국가부채도 크게 늘었다. 2016년 5850억 달러였던 재정적자 규모가 2019년 말에는 2배 가까이 늘어 9800억 달러에 달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해인 2020년에는 재정적자가 2019년보다 세 배 늘어난 3조1000억달러(약 3550조원)를 기록했다. 연방정부 부채는 GDP 대비 100%를 넘어섰다.

그러나, 감세 약발은 레이건 행정부 때보다 빨리 나타났다. 이유는 감세가 경기 호황 국면에서 행해졌기 때문이다. 중국과 무역전쟁이라는 부정적 변수가 있었지만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셈이었다. 당시 미국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6월 바닥을 찍은 뒤 역사상 가장 긴 경기 확장 국면을 이어갔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역사상 최장기 호황 기록인 120개월이 깨진다. 미 경제는 2018년과 2019년에 잠재성장률(1.7~1.8% 추정)을 넘는 2.9%와 2.3% 성장률을 기록하며 호황을 이어갔다. 실업률도 2019년 3.5%로 낮아지면서 빈곤율이 60년 만의 최저 수준(10.5%)으로 떨어지고 가계소득은 반세기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 런던 스레드니가에 위치한 잉글랜드 중앙은행 전경. 한국에서는 영국은행(英國銀行) 또는 영란은행(英蘭銀行)이라고도 불린다.
영국 런던 스레드니가에 위치한 잉글랜드 중앙은행 전경. 한국에서는 영국은행(英國銀行) 또는 영란은행(英蘭銀行)이라고도 불린다.

◇ 성공적인 감세를 위한 확실한 조건은 없다

감세 정책의 실패와 성공을 명확히 설명하는 조건이란 있을 수 없다. 단지, 해외 사례를 통해 공통점 몇 가지를 추려 보고자 한다. 우선,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영국의 실패는 인플레이션이 만연해 있는 상황 속에서 감세와 재정확대를 동시에 시행하려 했기 때문에 시장이 심한 발작 증세를 보였다. 영국은 이미 GDP 대비 정부 부채 수준이 2020년 기준 100%를 넘어섰고 파운드화의 급속한 절하로 경제 위기감이 높아진 상태였다. 두 번째는 기초 체력이다. 감세 정책은 효과가 늦게 나타난다.

미국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재정적 부담이 생기더라도 감세 효과가 선순환 구조로 들어설 때까지 정책 기조를 강하게 유지할 말한 힘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 과거 두 번에 걸쳐 감세 정책이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기축통화국이라는 배경과 함께 강한 경제력이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마지막으로 우리만의 고유한 조세 환경이다. 아무리 좋은 조세 제도도 사회·경제적 환경이나 여건이 맞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미 저성장 구조로 접어 들었으며 인구구조도 고령화되고 있다. 소득 불평등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마지막으로 통일도 고려해야만 한다. 

※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 포춘코리아 윤두영 글로벌기업연구소장 michel@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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