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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흥국생명 사태,  다시 고개 드는 도덕적 해이

  • 기사입력 2022.12.15 07:00
  • 기자명 윤두영 글로벌기업연구소장

춘천 레고랜드 사태는 단순 채무불이행 사태가 아니라 금융시장 신뢰의 문제다. 계속된 금리 인상으로 자금 시장의 피로도가 극도로 높아진 상태에서 터진 일이라 시장이 발작 증세를 보였다. 특히, 한국은 OECD 국가 중 한계기업 비중(18.9%)이 다섯 번째로 높다. 자칫 줄도산으로 이어지면 금융시스템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춘천 레고랜드 채무 불이행 사태로 무너진 자금시장의 신뢰가 흥국·DB생명보험사들의 콜옵션(call option, 조기상환권) 미행사 논란으로 번지면서 자금 시장은 상당기간 불안한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정부는 수습을 위해 지난 11월9일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이 레고랜드·흥국생명 사태 등과 관련한 정부와 금융시장의 대응 노력을 해외 투자자 등에게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무슨 설명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자금시장은 신뢰가 무너지면 끝이다. 강원도는 논란이 커지자 조기 상환하겠다고 나섰고 흥국생명은 지난 9일 콜옵션 미행사 결정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금융당국의 반응이다. “흥국생명의 콜옵션 포기 움직임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지속적으로 소통해왔다며 우발적인 상황이 전혀 아니다”라고 한다. 사전에 알고도 방치했다는 말인지 당황스럽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그리고 일부 금융기관까지 가세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는 모습이다. 모두 90년대 후반기 벌어진 IMF 때 그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도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 빠르게 상승하는 한국 신용위험 프리미엄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며 냉정하다. 외화채권시장에서 흥국생명의 액면가 100달러 신종자본증권 거래 가격은 11월 4일 72.2달러로 미행사 공시 직전인 10월 말보다 30% 가까이 급락했다. 신종자본증권에는 돈 빌리고 5~10년 뒤에 원금을 만기 전 정해진 기간에 갚겠다는 ‘콜옵션’을 붙인다. 부도와 같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거의 100% 가까운 비율로 콜옵션을 행사하는 것이 관행이며 약속이다. 최근 13년간 국내 대기업들 가운데 단 한 곳도 콜옵션을 포기하지 않고 시장에서 지켜 온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모습이다.

단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향후 콜옵션을 행사할 금융기관들과 해외채권을 발행할 계획을 갖고 있는 기관들에겐 불리한 상황이 앞에 놓인 것이다. 2025년 9월 콜옵션 만기인 동양생명 신종자본증권은 10월 말 83.4달러에서 11월 4일 52.4달러까지 떨어졌다. 2023년 8월 만기인 신한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과 2024년 10월 만기인 우리은행 신종자본증권도 10월 말 10~30%씩 큰 폭으로 하락했다.

거래도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KDB생명보험 역시 내년 2억 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만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내년 4월 콜옵션 행사를 앞둔 한화생명은 차환 발행을 위해 지난달 1조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검토했지만, 시장 상황을 감안해 계획을 잠정적으로 미뤘다.

한편, 3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한 금융지주사들의 CDS(credit default swap) 프리미엄도 덩달아 급등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계속된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PF 등에 대한 대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는 배경도 상승에 한 몫 했다.  11월 4일 기준 하나금융지주의 CDS프리미엄이 2021년 말 22bp(100bp=1%)에서 77bp로 올랐고, KB금융도 22bp에서 75bp로, 우리금융은 22bp에서 77bp로 각각 상승했다. 신한금융의 CDS프리미엄은 24bp에서 73bp로 뛰었다. 2017년 말 이후 약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CDS는 채권이나 대출이 부도가 났을 때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약정을 맺은 파생상품이다. 

CDS 프리미엄이 증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기업이나 국가의 신용위험이 커졌음을 뜻한다. 금년 상반기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wiss) 위기설로 은행산업 전반적으로 CDS프리미엄이 상승한 바 있다. 이후 다른 나라는 안정화되는 가운데 한국 물만 계속 올라가는 추세다. 한국의 국가 대외신인도도 악화되는 모습이다.

11월3일 한국 정부 신용으로 발행되는 외국환평형기금채 5년물의 CDS프리미엄이 75.61bp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말 21bp와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650bp 수준까지 오른 것에 비하면 낮은 수준으로서 신용위기를 언급할 단계는 아니지만 국내의 각종 신용 경색 관련 지표들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점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기업도산 건수와 금액은 금리가 낮아져도 경기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향후 1~2년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한계기업 중심 기업 도산 증가할 것

대표 기업들 프리미엄도 상승세가 가파르다. 10월말 기준 삼성전자의 5년물 CDS 프리미엄은 67.83bp로 지난 1월 3일 21.50bp와 비교해 3배 이상 급등해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대자동차와 KT의 CDS 프리미엄 역시 각각74.94bp, 71.42bp로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국내 채권 시장의 크레디트 스프레드(국채와 회사채간 금리 차이)도 큰 폭으로 확대됐다. 10월 회사채 AA 스프레드는 140bp로 전월보다 31bp 확대됐고, 회사채 3년물 BBB 스프레드는 724bp로 전월보다 29bp 확대됐다. 이는 회사채 발행 가능한 기업들의 명목 조달금리 수준이 5~12%대 사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예로, 스프레드가 724bp라면 명목 조달금리 수준은 국고채 3년물 4.185%에 스프레드 7.24%(724bp)를 더한 11.425%에 달한다.

금융투자협회 ‘2022년 10월 장외채권시장동향’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국고채 1년 물은 3.783%, 2년물은 4.228%, 그리고 3년물은 4.185%를 기록했다. 상장기업 중에서도 신용 등급이 BBB-에 못 미치는 기업이 상당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들의 차입금 이자 부담이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해 볼 수 있다.

10월 회사채 발행은 (표)에서 보듯 전월보다 1조6000억원 감소한 3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AA 등급은 전월보다 6000억원 증가했지만, A등급과 BBB등급은 각각 7000억원과 2000억원 감소했다. 사실상, 일부 초우량 기업을 제외하고는 기업들 회사채 발행이 거의 불가능 함을 뜻한다. 2022년 2/4분기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7.13%이며 평균 차입금 이자율은 1/4분기 2.99%에서 3.42%로 올랐다.

3/4분기는 더욱 올랐을 것이다. ROE(자기자본 수익률)수준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전체 기업 수에서 비중이 18%가 넘는 한계 기업들이다. 기업도산 건수와 금액은 금리가 낮아져도 경기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향후 1~2년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에 위치한 남대문과 고층 빌딩이 많은 밤 풍경.
서울에 위치한 남대문과 고층 빌딩이 많은 밤 풍경.

◇ 글로벌 금융시장의 ‘소프트 스팟’이 될 순 없다.

최근 세계 금융자본시장에서 오랜 경험이 축적된 전문가들은 소위 말하는 ‘소프트 스팟(soft spot)’ 가능성이 높은 나라나 산업에 대해 매우 궁금해한다. 일부에선 ‘스윗 스팟(sweet spot)’이라고도 한다. 이들이 말하는 소프트 스팟이란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에 유난히 취약한 부분을 의미한다. 쉽게 설명하면 90년대 말 동남아 경제 위기 당시는 ‘소프트 스팟’은 한국이었다.

한국은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고 한계기업 비중이 커서 글로벌 금융위기만 도래하면 항상 ‘소프트 스팟’ 가능 대상국으로 꼽혀 왔다. 특히, 팬데믹 이후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세계 유동자금의 움직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세계 유동자금 중 일부가 외환시장을 통해 ‘소프트 스팟’에 대한 집중 공격에 나선다면 왠만한 나라의 통화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시장의 레이다 망에 포착되지 않는 것이 가장 최선의 예방책이다.

무책임한 레고랜드의 채무불이행 선언, 일부 보험사들의 무지한 달러채의 콜옵션 미행사와 같은 사건은 먹잇감을 찾는 이들에겐 아주 훌륭한 기회로 보인다. 진행 중인 세계 경제 위기는 회복과 악화를 거듭하면서 향후 수년간 ‘L자형’ 모습을 보이면서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으로선 불확실성 정도가 줄어들 때까지 경계심을 조금도 늦추면 안된다. 

※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 포춘코리아 윤두영 글로벌기업연구소장 michel@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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