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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디자인 스타트업이 데스크톱을 혁신하려고 한다

  • 기사입력 2022.11.25 08:00
  • 기자명 Emma Hinchliffe
멜러니 퍼킨스 CEO는 기존 디자인 도구에 대한 실망이 커지자, 캔버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Photograph by Ben Baker] 
멜러니 퍼킨스 CEO는 기존 디자인 도구에 대한 실망이 커지자, 캔버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Photograph by Ben Baker] 

35세의 호주 출신 멜러니 퍼킨스는 모든 역경을 딛고 ‘캔버’라는 기업을 설립했다. 그리고 여성이 창업 및 경영하는 기업들 가운데 가치가 가장 높은 스타트업으로 키워냈다. 약 260억 달러(약 37조원)로 평가받는 이 그래픽 디자인 플랫폼 기업의 다음 임무는 훨씬 더 도전적일지 모른다. 그것은 바로 직장에서 널리 사용하는 어도비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대체하는 일이다.

9월 어느 날 아침, 멜러니 퍼킨스는 시드니 서리 힐스에 위치한 스털링 미용실의 쌍여닫이문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곳은 검은색 망토를 덮은 채, 머리를 염색하는 고객들로 붐볐다. 하지만 10년 전에 그 공간은 퍼킨스와 당시 남자친구였던 클리프 오브레흐트(지금 남편이다)가 거의 모든 깨어 있는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졸업앨범 출판사 퓨전 북스를 창업,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이후 시각 커뮤니케이션 회사 캔버를 창업했다). 오늘날 그들이 두 번째로 창업한 캔버는 약 260억 달러의 기업가치로 평가 받고 있다. 여성이 창업하거나 이끌고 있는 전 세계 스타트업들 중에서 가장 비싼 몸값이다. 결과적으로 이 커플의 총 순자산도 약 78억 달러(약11조 1460억원)로 불어났다.

퍼킨스가 미용실 뒤쪽을 가리켰다. 그녀는 “깃털 목도리를 두른 상반신 마네킹이 캐비닛 위에 놓여 있는 거 보이죠? 우리는 저 캐비닛 위에 여러 대의 컴퓨터를 뒀어요”라며 “퓨전 북스를 이곳으로 이전했을 때, 모든 것이 엉망이었죠. 우리는 사무실 정리를 위해 대청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회상한다.

퍼킨스는 이렇듯 허름한 곳에서 퓨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그녀의 마음 속에는 엄청나게 큰 야망이 숨어 있었다. 그녀의 비전은 항상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를 세우는 것”이었다. 캔버의 전신인 퓨전은 낡은 사무실에서 출발했다. 퍼킨스가 지난 10년간 얼마나 부지런하게 자신의 목표를 추구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IT 전문 지식도 없고, 실리콘밸리와 연줄도 없던 두 사람은 우선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정했다. 즉, 더 큰 그래픽 디자인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호주의 고등학교 졸업앨범 출판이라는 틈새시장을 겨냥하기로 했다. 퍼킨스는 “우리는 바느질하듯 한 땀 한 땀 회사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접근 방식 덕분에 퍼킨스는 급성장하는 스타트업 설립자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과도한 확장과 제품 불량, 적자 대차대조표-를 피할 수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캔버는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선도기업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3200명의 직원과 90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사용이 편한 웹 기반 도구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도구들을 통해, 사용자는 SNS용 그래픽을 디자인하고, 학교나 회사에서 사용하는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비디오 영상을 편집할 수 있다. 게다가 향후 사용자 편의를 위해 더 많은 기능을 추가할 예정이다. 캔버는 아마추어 디자이너 뿐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필수 플랫폼으로 자리잡고 있다.

벤처캐피털 자금이 넘쳐나는 시기에 캔버는 세쿼이아 캐피털과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 그리고 파운더스 펀드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벤처캐피털의 지원을 받는 많은 유망 스타트업들과 달리, 캔버는 2017년 이후 매년 잉여 현금흐름 기준으로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회사 매출은 10억 달러(약 1조 4250억원), 보유 현금은 7억 달러(약 9970억원)에 이른다.

특히 최근 다른 스타트업들이 직원을 해고하고 확장 계획을 축소하는 반면, 캔버는 지난 9월 전문가용 소프트웨어 제품의 화려한 론칭쇼를 개최했다. 드디어 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의 맹주인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퍼킨스가 오랫동안 맘 속에 품어왔던 비전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그녀는 “우리는 지난 2011년 투자 유치를 위한 요약 프레젠테이션(Pitch Deck)에 이런 비전을 제시했다”며 “이 신제품은 우리 사업의 결정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캔버 앞에 놓인 미래는 험난할 가능성이 크다. IT 시장이 동요하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지난 7월 이 기업의 밸류에이션을 낮췄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장기적으로 캔버는 훨씬 더 많은 유료 고객들을 모집해야 한다. 따라서 전문가용 소프트웨어의 추진이 더욱 시급해졌다”고 분석한다. 이는 470억 달러(약 66조 9750억원) 규모의 생산성 관리 소프트웨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기존 IT 공룡들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퍼킨스가 이끌고 있는 이 스타트업이 그들과 경쟁할 실력을 갖췄는지는 불분명하다. 캔버는 기본 서비스는 무료 제공하고, 고급 서비스만 돈을 받는 ‘프리미엄(Freemium)’ 구독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이 정도의 비즈니스 모델이면, 하나의 그래픽 디자인 회사는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차세대 어도비를 꿈꿀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할까? 

퍼킨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퍼스 출신의 그녀는 결단력과 독창성을 갖췄다. 그리고 매우 흥미롭게 카이트서핑(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대형 연이 끄는 수상 보드 스포츠)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퍼킨스는 첫 번째로 창업한 퓨전을 캔버로 키웠고, 캔버를 다시 유니콘의 20배 이상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과연 그녀가 향후 10년간 이 스타트업을 이끌 적임자일까? 궁극적으로는 기업공개를 통해, 여성 창업자 겸 CEO가 이끄는 기업들 가운데 최고가 될 수 있을까?

[Courtesy of CANVA]

디즈니 CEO 출신으로 현재 캔버 투자자인 밥 아이거는 “그녀는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한 기업을 운영할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CEO 중 한 명으로부터 ‘찬성표’를 받았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분명 플러스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퍼킨스 자신은 적어도 ‘누군가의 찬성표’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우리는 항상 터무니없이 원대한 목표를 상상했고, 그런 목표를 현실로 구현해냈다. 그 경험들이 축적되며, 우리는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었다”며 “더 큰 꿈을 꾸는 것을 멈추는 순간, 회사는 시대에 뒤떨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캔버는 창업 초기에 어느 정도 속도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퍼킨스는 지난 2007년 여가 시간에 동료 대학생들에게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이용 가능한 디자인 소프트웨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디자인은 초기 SNS에서부터 업무 프레젠테이션에 이르기까지, 현대 의사소통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도비 인디자인(Adobe InDesign)처럼, 일반 사용자들이 디자인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제품들은 정교하지 못했고 가격도 비쌌다. 따라서 더 향상되고, 더 저렴한 대체품이 필요했다.

오늘날 퍼킨스는 “당시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은 ‘과연 우리가 훌륭한 대체품을 만들 수 있을까?’였다”고 말한다.

퍼킨스와 오브레흐트는 2005년 서호주의 퍼스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19세, 그녀는 17세였다. 그리고 그녀는 멜이라는 약칭으로 불렸다(오늘날 캔버의 모든 직원들도 그녀를 멜이라고 부른다). 그날은 국경일인 ‘호주의 날’이었고, 둘은 도시의 명소인 종탑 아래에서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여행에 대한 공통 관심사 덕분에 유대감을 느끼며 잘 어울렸다. 그리고 퍼킨스는 그의 썰렁한 농담을 웃으며 잘 받아줬다. 오브레흐트는 퀸즐랜드 해안에서 떨어진 휘트선데이 섬에서 정원사로 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퍼킨스를 만난 후, 그는 “그 계획을 취소했다”고 기억한다.
오브레흐트의 이런 결단력은 퍼킨스가 원대한 꿈들을 실행하는데 영감을 줬다. 즉, 그녀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이뤄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다. 일례로 퍼킨스는 10대 때 인도 여행을 하는 공상에 잠기곤 했다. 5년, 아마도 10년 후에는 갈 수 있을 것으로 상상했다. 하지만 그녀가 오브레흐트를 만난 지 9개월 만에, 두 사람은 배낭을 메고 인도 전역을 여행하고 있었다.

퍼킨스가 디자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때, 오브레흐트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그녀에게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줬다. 이런 도전정신은 또한 그녀가 기대 이상의 결과를 도출하는 근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됐다. 퍼킨스는 호주인 어머니와 말레이시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둘째로 성장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피겨 스케이팅부터 호주의 인기 퀴즈 대회인 ‘두뇌 대결(tournament of the minds)’에 출전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학생이었다. 한번은 선생님이 그녀에게 “숙제 양을 줄이라”고 충고할 정도였다. 더욱 최근에는 CEO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와중에도 매월 100km 걷기 목표에 미치지 못하자, 자정까지 뛰고 걷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그녀는 실리콘밸리에서 9000마일 떨어진 ‘지리적 이점’의 수혜자일지 모른다. 경쟁이 덜 심한 호주에서 자란 그녀에게는 어떤 일도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퍼킨스 커플은 실용적인 접근방식을 택했다. 전체 디자인 시장을 겨냥하는 대신, 졸업앨범이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둘은 IT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퓨전 북스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회사는 웹 기반의 졸업앨범 편집 도구를 호주 중등학교들에 제공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400여 개의 고교 졸업앨범을 출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퍼킨스와 오브레흐트는 졸업앨범 사업으로는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잘 알았다. 

소규모 출판사에서 디자인 스타트업으로 본격 전환하기 위해 시드머니가 필요했다. 2012년 퍼킨스는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무작정 오빠 집으로 쳐들어갔다. 그녀는 거기에 머물면서,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캐피털을 훑기 시작했다.

그러나 퍼킨스는 정말 갖가지 이유로 100번 이상의 문전박대를 당했다. 거절의 이유는 다양했다. 어떤 벤처캐피털은 공동창업자들의 연인 관계를 문제 삼기도 했다. 또 어떤 곳은 미국 이외의 기업에 투자를 주저했다. 호주라는 나라에 스타트업 생태계가 없다는 이유로 투자를 거절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투자자들은 이 커플이 IT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주저했다. 두 사람은 서호주대학에서 각각 미술과 무역을 전공했다. 벤처캐피털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스탠퍼드 혈통이 결코 아니었다.

창업자 커플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했다. 바로 익스트림 수상 스포츠였다. 그들은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여러 벤처캐피털 회사들과 창업자들이 회동을 갖는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것은 카이트서핑 마니아들을 위한 모임이었다. 둘은 어쩔 수 없이 몇 달간 카이트서핑을 연습했다. 아울러 항공편과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 회사 계좌에 있던 현금을 거의 절반이나 썼다. 

(카이트서핑을 연습하느라) 몇 차례 긁히고 넘어진 끝에, 그들은 운명을 바꿀 기회를 잡게 됐다. 그 모임에서 시드니에 본사를 둔 블랙버드 벤처스라는 벤처캐피털의 창업자 릭 베이커를 만난 것이다. 둘은 역시 호주 출신인 그에게 ‘캔버스 셰프’라는 플랫폼에 대해 설명했다(요리사가 피자 위에 토핑을 얹는 것처럼, 디자이너들이 빈 템플릿에 그래픽 요소를 원하는 대로 얹을 수 있는 플랫폼이었다). 베이커는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피자를 활용한 은유적 표현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이 도메인에서 ‘the’를 삭제한 것처럼, canvas.com이라는 도메인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그들도 ‘s’를 빼고 canva.com으로 바꿨다.

베이커는 “퍼킨스는 사람을 설득하는 훌륭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며 “그녀는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이디어가 특별했고, 정말 ‘대박’을 터트릴 수 있겠다고 믿었다”고 회상한다.

베이커의 블랙버드는 캔버에 투자한 첫 대형 벤처캐피털이었다. 투자금 130만 달러(약 18억원)-아울러 호주 정부의 ‘매칭 펀드’를 통해 같은 금액을 추가로 받았다-에 힘입어, 캔버는 힘차게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한가지 조건을 달았다. IT 전문가를 공동창업자로 영입하라는 요구였다. 이에 따라 시드니에서 활동하는 구글 출신의 캐머런 애덤스가 합류하는데 동의했다. 세 명의 정확한 역할분담이 어느 정도 주효했다. 애덤스는 제품 개발을, 오브레흐트는 회사 운영을, 퍼킨스는 제품 아이디어와 회사 비전을 담당했다. 처음에 퍼킨스와 오브레흐트 둘 모두 캔버에서 ‘이사’ 직함을 갖고 있었다(오브레흐트는 당시 CEO라는 직책을 “매우 미국적인” 개념처럼 느꼈다고 설명한다). 한 베테랑 투자자가 그들에게 단 한 명의 리더를 뽑으라고 권고했다. 현재 최고운영책임자를 맡고 있는 오브레흐트는 퍼킨스를 가리켰다. 오늘날 그는 “그녀가 나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중요한 결정이 남아있었다. 창업자들은 IT 및 스타트업 인재를 더 쉽게 구할 수 있도록, 본사를 광산 도시인 퍼스에서 시드니로 이전하기로 했다.

2012년 이 스타트업에 투자한 사람들은 곧 바로 신제품 출시를 원했다. 하지만 퍼킨스는 2013년까지 미루고 기다렸다. 스스로 정한 기준에 맞는 품질의 초기 디자인 도구를 출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사람들은 ‘벤처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서는 10억 달러(약 1조 4250억원) 가치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며 “그래서 나는 그 충고를 그대로 따랐다”고 회고한다.

퍼킨스는 1년에 한 번씩 자신의 팀과 모임을 갖는다. 거기서 그녀는 ‘비전 목록’ 가운데 어떤 것을 먼저 달성할지 결정한다. 몇 년 간은 매우 야심차고 혁신적인 연간 의제를 선택했다. 또 다른 몇 년 간은 힘들고 지루한 의제를 정했다.

예를 들어, 2016년 그녀의 최우선 의제는 회사의 국제화였다. 이에 맞춰, 캔버 플랫폼을 영어 외에 6개 언어로 출시했다(지금은 100개 언어로 늘어났다). 2017년에는 내부적으로 E2 또는 에디터 2로 알려진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캔버의 암호 체계를 재정비하고, 플랫폼에서 영상 같은 더 복잡한 기술적 기능의 원활한 구동을 지원하는 작업이었다. 직원들이 캔버의 인프라 재정비에 집중하는 동안, 회사 플랫폼은 2년간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기능을 제공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직원들은 신제품 출시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퍼킨스는 경쟁을 통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종종 그녀는 각 팀에 고무 오리인형을 나눠주고, 테이블 위에서 레이스를 펼치도록 함으로써 업무 진척 상황을 파악했다.

몇 년 후, 고객들의 습관이 바뀌자-사용자들은 페이스북보다 틱톡에 브랜드 광고를 올리고 싶어했다-캔버는 새롭게 정비된 플랫폼에 편집 도구를 추가했다.

최고제품책임자를 맡고 있는 애덤스는 “우리는 가장 큰 기회가 있다고 판단되는 곳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우연히도 소셜 미디어였다”며 “하지만 항상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기를 원했다”고 강조한다.

현재 사용자가 캔버의 플랫폼 디자인 도구를 활용하면 글꼴과 로고, 기타 디자인 요소를 저장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페이스북 배너 광고, 인스타그램 스토리, 포스터 등을 위한 콘텐츠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구글 닥스(Google Docs)와 마찬가지로, 이 제품도 협업 툴이다. 즉, 여러 사용자가 동일한 디자인과 영상, 그리고 지금은 문서까지 한 번에 작업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이 플랫폼에서 130억 개의 디자인을 제작했다. 한 여성은 자신의 생모를 찾기 위해 포스터를 만들었고, 어느 수영복 디자이너는 비키니 하의에 덧댈 플라스틱 라이너를 제작했다. 틱톡 동영상, 업무 프레젠테이션, 마케팅 자료 등 모든 것이 캔버에서 창작되고 있다.

2013년 첫 해에 캔버는 75만 명의 사용자를 유치했으며, 현재는 최대 90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중 1000만 명이 유료 구독자들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450만 명이 ‘캔버 포 팀즈(Canva for Teams)’라는 유료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이 서비스는 캔버가 기업 고객들을 타깃으로 사용해 온 포맷이다. 총 유료 구독자들이 지난해 창출한 매출은 10억 달러(약 1조 4250억원)를 돌파했다. 이들 중 다수가 아마존과 월마트 등 대기업에 소속돼 있는 소규모 팀들이다.

기업만 커진 게 아니다. 퍼킨스 개인도 성장했다. 그녀는 “내가 낙하산으로 직원 3000명 이상의 한 회사의 CEO에 올랐다면, 그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캔버를 키워오며 거둔 성공은 그녀에게 큰 자신감을 줬다.

퍼킨스는 경영 서적을 읽지 않는다. 다만 그녀와 오브레흐트는 때때로 친구 마이크 캐넌-브룩스와 스콧 파쿠하(공공 소프트웨어 기업 애틀러시언의 공동창업자다. 이 회사는 현재 호주의 또 다른 주요 성공 사례로 꼽힌다)로부터 조언을 구한다. 동료들은 “퍼킨스가 종종 본능에 따라 움직이며, 뭐든 금방 배운다”고 귀띔한다.

퍼킨스와 오브레흐트가 거의 매일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들의 관계는 예전보다 더 좋아지고 있다. 둘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캔버와 관련된 일 얘기는 하지 않고 오랫동안 산책을 하곤 한다. 2019년 오브레흐트는 터키 여행 중 프러포즈를 했고, 2021년 둘은 결혼했다. 퍼킨스는 다이아몬드 대신 평범한 은 팔찌를 차고 있다.

오브레흐트는 종탑 아래에서 만났던 10대 소녀 퍼킨스에 비해, 지금의 아내가 “좀 더 배타적이고 사람을 덜 신뢰한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억만장자 여성 CEO만이 느낄 수 있는 압박감 때문일 것이다. 퍼킨스와 이야기를 나누며, 필자는 ‘그녀가 분명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계속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가끔 질문에 답을 한 후 “미안하다. 그건 적절한 대답이 아니었다”고 사과했다.

그녀와 오브레흐트 둘 다 억만장자라는 새로운 지위를 거부해왔다. 실제로 그들은 전용기가 아닌 일반 비행기를 탄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유 시간을 퍼스로 돌아가 오래된 학교 동창들을 만나거나, 시드니 외곽에서 캠핑을 하는데 보낸다. 아울러 워런 버핏이 주도한 ‘기빙 플레지’에 가입했다. 최상위 부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기부하는 서약 운동이다. 그들은 소유한 캔버 지분 30% 중 대부분을 캔버 재단에 넘겼다. 이 단체는 지금까지 가난을 완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가난퇴치라는 명분에 대한 열정은 퍼킨스가 인도 여행에서 겪은 경험에서 기인한다. 또한 어릴 때 난민과 호주 원주민들을 가르친 어머니의 영향도 받았다. 오브레흐트는 “코흘리개 자녀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재산을 물려 받지 않도록 키우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일찌감치 기부 약속을 한 덕분에, 퍼킨스는 자신들의 재산을 다루는 언론보도에서 자유롭다. 그녀는 “기부에 대한 내 의도를 알렸고, 그 약속을 이행하는 첫 단추를 꼈다. 때문에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선행을 실천하려 한다”고 강조한다.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는 않는 이 커플은 예전만큼 부자는 아니다. 캔버는 유동성이 풍부한 시기에 성장하며, 투자자들로부터 총 5억 8000만 달러(약 8260억원)를 유치했다. 블랙버드가 시드 자금에 투자하고 2년 후, 캔버는 당시 펠리시스 벤처스 소속의 웨슬리 챈이 주도한 시리즈 A 투자로 1500만 달러(210억원)를 조달했다. 챈의 실리콘밸리 동료들은 그 투자를 실수라고 비웃었다. 그들은 챈이 캔버 사업에서 발견한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너럴 캐털리스트에서 세쿼이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실리콘밸리 투자업체들이 동참했다. 프랭클린 템플턴과 T. 로 프라이스 같은 대형 기관 투자자들, 그리고 배우 우디 해럴슨과 오언 윌슨 등 유명한 에인절 투자자들도 뜻을 같이했다. 지난해 캔버는 2억 달러(2850억원)를 조달하며, 400억 달러(57조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 불과 10개월 전에 그 가치가 150억 달러(21조 3750억원)였던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장세였다.

그러나 호시절은 끝났다. 금리가 급등하고 인플레이션이 치솟으며, 시장은 타격을 입었다. 프랭클린 템플턴은 올해 캔버의 마지막 기업가치를 59%로 낮춰 잡았다. T. 로 프라이스도 44%나 내렸다. 베이커는 블랙버드의 유한 파트너들로부터, 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캔버 가치를 재평가 하라는 일부 압박에 직면했다. 비상장 자산을 면밀히 조사하는 호주 규제당국과 보조를 맞추라는 주문이었다. 이에 따라 베이커는 캔버 기업가치를 36% 낮춘 260억 달러(약 37조원)로 조정했다. 증권시장의 평가에 더욱 근접한 밸류에이션이다. 이번 하락으로 퍼킨스와 오브레흐트의 예상 순자산은 130억 달러(약 18조 5250억원)에서 78억 달러(약 11조 1460억원)로 축소됐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상위 억만장자 순위에서도 밀려났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는 그녀가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밥 아이거 전 디즈니 CEO 및 현 캔버 투자자.

캔버에 투자하지 않은 G2 벤처 파트너스의 모니카 바먼은 “작년 밸류에이션은 정확한 데이터가 아닐 것”이라며 “2021년의 강세장이 반영된 다소 왜곡된 수치”라고 지적한다.

인스타카트 같은 신생기업들의 기업가치도 역시 하락했다. CB 인사이츠에 따르면 올 2분기 시리즈 E 투자 단계 이상 기업의 밸류에이션은 작년 동기 대비 9% 감소했다.

벨류에이션 하락은 호주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퍼킨스와 오브레흐트, 애덤스는 그런 가치 하락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회사는 투자를 받은 동종 고성장 스타트업들 중에서, 매우 드물게 수익성이 좋고 보유 현금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바먼은 “캔버가 대부분의 다른 회사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고객 1명당(Unit Economics) 수익성이 높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라며 “그들 제품의 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이 매우 뛰어나다는 증거”라고 평가한다.

공동창업자들은 회사가 곧 400억 달러(약 57조원)의 밸류에이션을 다시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한다. 베이커는 “그런 추정치는 캔버가 작년에 보여준 실적만을 기준으로 평가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제 막 시작한 모든 형태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사업에 대한 전망은 포함되지도 않았다”며 “이것이 내가 이 회사에 투자한 이유”라고 자신감을 보인다.

5500석 규모의 한 시드니 극장 안에서, 캔버 직원들-이들은 회사에서 캔버노츠(Canvanauts)로 불린다-이 반짝이는 챙 모자를 쓰고, 은색의 우주비행사복을 입고 있었다. 회사 창립 기념일과 신제품 출시, 그리고 TED식 토크가 어우러진 이 행사의 주제는 ‘미래는 시각 플랫폼에 있다’였다. 종종 이상한 의상을 입고 모이는 일은 캔버에서 드문 사건이 아니다. 직원들은 분기마다 한 번씩 그렇게 한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더 특별하다는 느낌을 줬다. 무대 메인 화면에는 캔버 경영진이 나타날 때까지 카운트다운 시계가 깜박이고,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초기 투자자 웨슬리 챈(이후에 FPV 벤처스를 독자 설립했다)은 이번 행사 참석을 위해 와이오밍 잭슨 홀에서 날아왔다. 이날 행사는 그가 중시하는 ‘의상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정장을 입을 때, 그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직원들도 복장을 갖춰 입지 않는다”고 말한다.

퍼킨스는 늘 입던 검은색 정장에서 벗어나, 파란색 장신구가 달린 콤비상의와 밝은 색의 운동화를 신고 무대에 올랐다(그녀는 가끔 직원들과 구분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잘 어울린다. 그래서 캔버 경비원이 그녀가 신분증 배지를 놓고 왔을 때 출입을 막기도 한다). 동료들은 퍼킨스가 대중 연설가로서 항상 편안한 모습은 아니라고 기억한다. 하지만 이날 그녀의 연설은 기대감으로 활기가 넘쳤다. 퍼킨스는 오래 전에 착안한 후, 지난 10년간 혼자만 간직해 온 비전을 드디어 공개했다. 그녀는 “캔버는 우리가 알고 있고, 사랑했던 그래픽 디자인 도구에서 통합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외쳤다. 예상대로 행사 참여자들은 열광했다.

그녀의 중대 발표 이후, 캔버 경영진-퍼킨스와 오브레흐트는 물론 마케팅, 영상, 실물 제품 책임자들-이 모두 무대에 올랐다. 그들은 캔버가 어떻게 현대적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거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게 됐는지 동료들에게 설명했다. 가장 큰 역할을 할 제품은 캔버 문서 편집기(Canva Docs)다. 이 제품은 구글 닥스의 대항마로, 디자인 템플릿과 영상 도구 등 캔버가 자랑하는 그래픽 기능을 통합한다. 아울러 회사의 디지털 화이트보드는 시각 협업 플랫폼업체 미로(Miro)와 경쟁할 계획이다. 사용자들은 끝없이 확장하는 화이트보드에 스티커 메모를 추가할 수 있다. 

캔버는 웹사이트 구축 도구도 출시, 동종업체 스퀘어스페이스(Squarespace)와 경쟁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사용자들이 캔버를 통해, 티셔츠와 머그에 디자인을 직접 인쇄할 수 있는 실물 신제품을 선보일 것이다. 회사는 또 신규 매출원을 창출할 계획이다. 이른바 ‘크리에이터 네트워크’를 구축, 디자이너와 사진작가가 그들의 템플릿을 업로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개발자들이 유료나 무료로 추가 기능을 도입할 수 있는 앱 스토어도 출시할 예정이다.

아울러 캔버는 글자로 된 명령어를 이미지로 변환하는 기술을 실험하는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다. 내년에 그 기술은 캔버 사용자들이 쓰는 도구 상자에서, 또 다른 ‘마법 지팡이’가 될 수 있다. 퍼킨스는 무대에 다시 올랐을 때, 2023년 핵심 제품으로 이 비장의 무기를 살짝 공개했다. ‘자전거를 타는 너구리 판다’를 검색하면, 캔버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바로 그 이미지로 변환시켜준다.

캔버의 기존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업무용 작업 공간인 ‘워크 스위트(Work Suite)’도 무료 이용 가능한 웹 기반 도구다. 추가 기능은 구독이나 구매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구조다. 

제품책임자 애덤스에 따르면, ’워크 스위트’ 메뉴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기능은 문서 편집기다. 캔버의 충성 사용자들이 그것을 맨 처음으로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사용자가 영상과 다른 디자인 요소를 문서에 통합할 수 있도록 만든 이 제품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와 구글 닥스를 대체할 수 있다. 캔버 직원들은 이제 문서 편집기가 탑재된 자체 플랫폼에서 업무의 95%를 처리한다(나머지 5%는 슬랙을 사용한다).

자산운용사 제프리스의 애널리스트 브렌트 틸은 “이는 단순히 어도비와의 경쟁이 아니다. 이것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와 벌이는 전쟁”이라고 설명한다. 경쟁심이 강하지만 이상주의 성향을 지닌 캔버 창업자들은 그런 비교를 좋아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들은 자사 제품을 경쟁사로부터 사용자를 빼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기보다 더 많은 시각적 도구들로 시장을 확장하는 방법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어도비를 향한 캔버의 공세는 더 격렬해졌다. 그래서 캔버의 발표 며칠 후, 이 거물 기술회사는 피그마라는 디자인 스타트업을 200억 달러(약 28조 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 신생기업은 어도비의 일부 사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잠재력 때문에 큰 주목을 받았다. 바먼은 “이번 인수 가격은 꽤 비쌌다. 그만큼 어도비가 캔버를 위협적인 존재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라고 평가한다.

틸은 “엑셀과 워드, 파워포인트는 현재 많은 기업들이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하지만 (경쟁사들이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은 회사 컴퓨터를 부팅할 때, 캔버가 데스크톱 아이콘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며, 정말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캔버가 데스크톱 시장을 차지하려면, 소규모 유료 고객들이나 무료 고객들에게 도구를 제공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대신, 대규모 기업용 패키지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 틸은 “프리미엄(Freemium) 상품으로는 장기적인 비즈니스를 구축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베이커는 “대다수 사용자가 2주에 한 번 정도 캔버에 로그인한다”며 “현재 시스템을 워크 스위트로 전환하는 것은 사용자가 캔버를 매일 이용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관건은 워크 스위트가 오늘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다른 업무용 플랫폼들과 비교할 때, 사용자를 유인할 정도로 충분히 우수한지 그리고 그 도구들이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인지 여부다.

캔버가 어도비의 시가총액 1340억 달러(약 190조원)를 따라잡을 가능성은 희박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와 단절돼 있는 이 호주 스타트업이 수십억 달러의 가치로 평가 받을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결국 현실이 됐다.

 

“(경쟁사들이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은 업무용 컴퓨터를 부팅할 때, 바탕화면에 캔버 아이콘이 기본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정말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다.”

- 브렌트 틸 제프리스 애널리스

퍼킨스가 취업 면접에서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는 “0에서 100까지, 그리고 혼돈에서 명확성까지, 당신은 어느 곳에서 성장 가능한가?”이다. 그녀 자신의 대답은 0부터 25까지이다. 그녀는 새로운 것을 이제 막 시작하는 혼란의 상태를 선호한다. 하지만 현재 캔버는 설립 후 두 번째 10년차에 접어들었고, 야심 차게 준비한 ‘마지막 신제품’을 출시한 상황이다. 

이런 중차대한 순간에서도, 퍼킨스는 캔버와 비슷한 연혁을 가진 다른 스타트업 창업자 겸 CEO들처럼 불안해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 주변을 둘러보자. 에어비앤비와 펠로톤, 핀터레스트의 공동창업자들은 최근 몇 달 동안 모두 회사를 떠났다. 퍼킨스는 “나와 회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종종 “캔버는 내가 품고 있던 초기 비전을 향해 ‘1%의 길’을 걸어왔을 뿐”이라고 반복한다. 나머지 99%의 여정은 퍼킨스만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심지어 오브레흐트도 “회사가 목표의 최소 5%만 달성했다”고 말한다.

퍼킨스는 “IPO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 현재로서는 당장 상장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다. 퍼킨스와 오브레흐트, 베이커, 챈(아이거는 아직 합류하지 않았다)으로만 구성된 이사회를 보더라도, 기업공개가 당장 임박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캔버 이사회는 기업공개를 앞둔 대부분 스타트업의 이사회 모임과 다르다. 퍼킨스는 재무 목표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이 구상하는 광범위한 제품 로드맵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 IPO를 겨냥하거나, 혹은 그를 통해 부상할 때, 창업자들은 종종 경험이 풍부한 CEO로 대체된다. 하지만 캔버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 퍼킨스를 대신할 다른 CEO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들은 입을 모아 “비전, 문화, 제품, 그리고 추진력이 모두 멜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아이거는 지난 5월 캔버 기업가치가 400억 달러(약 57조원)로 가장 높았던 시기에 투자를 단행했다. 그는 퍼킨스의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집중력, 결단력을 인용하며 현재 경영진에 신뢰를 표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런 사업을 할 때, 한발은 ‘현재’에 놓고 다른 발은 ‘미래’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시점에서는 경영 효율성을 관리해야 한다. 그녀와 클리프가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캔버의 첫 10년을 돌아보고, IPO까지 아직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를 미래를 생각하면 '인내심'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퍼킨스는 이 단어를 무시한다. 그녀는 “내게 인내심은 단지 길가에 서서 방관자처럼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들린다”며 “그런 태도는 성공과 거리가 멀다”고 강조한다. 

※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 By Emma Hinchlif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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