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포춘코리아 매거진 최신호를 무료로 읽어보세요.

본문영역

손정의가 자금난에도 포기 안한 데이터플랫폼기업 '트레저데이터'

“반도체 대란, 데이터 잘 쓰는 기업은 달랐다”

  • 기사입력 2022.10.14 16:48
  • 최종수정 2022.10.14 16:56
  • 기자명 문상덕 기자

트레저데이터는 손정의의 ‘AI 비전’을 이룰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 소프트뱅크의 통신망, ARM의 반도체에 이곳의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결합하는 것. 손 회장은 막대한 돈을 투자했고, 스바루 등 글로벌 기업은 이곳 솔루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유진 사부리 트레저데이터 최고사업책임자(CBO). MS에서 19년간 글로벌 영업을 이끌었다. 이후 어도비 일본법인 CEO를 거쳐 2019년 기술 스타트업 자문사 지오퓨전을 창업했다. [사진 강태훈]
유진 사부리 트레저데이터 최고사업책임자(CBO). MS에서 19년간 글로벌 영업을 이끌었다. 이후 어도비 일본법인 CEO를 거쳐 2019년 기술 스타트업 자문사 지오퓨전을 창업했다. [사진 강태훈]

‘벤처투자의 큰손’ 손정의가 사랑하는 기업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빅데이터 분석기업 트레저데이터(Treasure Data, 이하 TD)다. 

TD는 고객데이터플랫폼(CDP)을 주특기로 한다. CDP는 고객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프로파일링이다. 기업 안팎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한데 모아 고객 아무개 씨에 대한 프로필을 만들어낸다. 기업에선 고객 프로필을 바탕으로 타깃 광고 등을 할 수 있다. 기존의 마케팅기법인 고객관계관리(CRM)와 발상은 같지만, 데이터의 종류와 양이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다. 렌터카에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설치하고 실시간 정보를 수집할 정도다.

손정의는 2018년 반도체 설계기업 ARM을 통해 TD를 6억 달러(8371억원)에 인수했다. 그의 인공지능에 대한 비전이 있기에 가능한 딜이었다. ARM 칩을 쓰는 IoT 센서에서 데이터를 만들고, TD의 솔루션은 데이터를 실시간 관리하는 그림이었다. 당시 TD는 ARM의 IoT 서비스 사업부로 편입됐다. 2년 뒤 유동성 위기를 겪은 소프트뱅크가 ARM을 매각하려 할 때도 손정의는 TD를 놓지 않았다. 독립 법인으로 분리된 TD에 지난해 11월 2억3400만 달러(3263억원)를 투자했다. 

그런데 2018년 인수전 때 TD를 주의깊게 본 사람이 또 있다. 지금은 TD에서 최고사업책임자(CBO)를 맡고 있는 유진 사부리(Eugene Saburi)다. 당시 스타트업 자문사에 있던 사부리 cbo는 td의 기술력 등을 들여다봤다. 

그는 지난해 11월 TD의 CBO로 합류했다. 쉽게 납득할 만한 행보는 아니다. 19년간 마이크로소프트(MS)에 있으면서 데이터베이스 서버,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등 솔루션의 글로벌 사업 책임을 맡았다. 마케팅 캠페인에만 수천만 달러를 집행할 수 있는 자리다. 반면 TD는 이제 매출 1억 달러를 앞두고 있다. 8월말 한국법인 사무실에서 만난 유진 사부리 CBO는 도전을 자처한 이유로 자신의 “반항아 기질”을 말했다.

 

고객 한 명의 정보, 170개 조각으로 쪼개져

그의 이런 기질은 이력에도 스며 있다. 그가 MS에 합류했던 1995년은 PC용 운영체제인 윈도 95가 큰 인기를 끌 때였다. 하지만 그는 회사가 새로 꾸린 사업부에 지원했다. 조직원은 4명, 부서 이름은 임베디드 시스템(Embedded Systems)이었다. 미래엔 컴퓨터 말고도 다양한 전지기기에 운영체제가 필요할 거란 관측에 바탕을 두고 만든 조직이었다. 오늘날엔 IoT로 불린다. 사부리 CBO는 “당대에 주류인 것보다는 가능성과 기회를 보고 선택하는 편”이라고 돌이켰다.

현재 고객데이터 분야에서는 CRM이 주류다. 기업과 고객이 직접 소통했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사이트를 만들고, 마케팅에 활용한다. 보통 고객센터에 문의한 내용, 고객 설문조사 결과 등을 데이터로 쓴다. 이 업계 강자로 미국의 세일즈포스와 어도비, 독일의 SAS가 꼽힌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는 이들 기업을 ‘고객 분석 기술’에서의 리더 그룹으로 분류했다(2022년 2분기 기준). 해당 조사에서 TD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그룹에 속했다.

그러나 사부리 CBO는 TD에서 기회를 엿봤다고 말했다. TD의 CDP 솔루션으로 수집 가능한 데이터의 소스가 CRM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기 때문이다. CRM 데이터부터 보통 ‘쿠키’로 부르는 온라인 방문기록(로그), 카드결제(POS) 데이터, 사회관계망(SNS) 데이터, 고객이 사용한 기기에서 전송한 IoT 데이터 등 다양한 소스에서 데이터를 얻는다. 사부리 CBO는 “고객 한 명의 데이터가 보통 170여 개 조각(소스)으로 쪼개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다양한 소스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면 더 정밀한 마케팅을 할 수 있다. 고객의 취향이 무엇인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고객이 매장에 있든, 웹사이트에 있든, 또 어떤 기기로 접속했든 일관된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CRM보다 쓰임새도 넓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사는 조만간 고장이 날 만한 부품을 예측해서 고객에게 알릴 수 있다. 그리고 미리 서비스센터에 교체할 부품을 구비해둘 수도 있다. 사부리 CBO는 “CDP는 마케팅을 넘어 기업 전략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만의 생각이 아니다. TD는 지난해 말 기업의 캐치프레이즈를 ‘비욘드 마케팅(Beyond Marketing)’으로 정했다. 

사부리 CBO는 일본 자동차 제조사 스바루를 성공 사례로 꼽았다. 스바루는 2016년 TD의 CDP 솔루션을 도입할 당시 200개가 넘는 소스에 데이터가 흩어져 있었다. 마케팅 부서는 온라인 로그를, 영업 부서는 구매 내역을, 고객지원 부서는 서비스 데이터를 제각각 관리했다. 또 각 자동차 모델의 광고 데이터는 개별 대행사에서 관리하는 식이었다. 이를 단일 플랫폼으로 통합한 결과, 웹사이트 방문이 구매로 이어지는 전환율이 18%에서 31%로 높아졌다. 또 온라인 광고 클릭당 비용은 12% 낮아지고, 광고 클릭률은 350% 늘었다.

공급망 위기를 넘는 데도 스바루는 CDP를 활용했다. 웹사이트를 찾은 잠재 고객이 자동차 모델에 색을 입히고 옵션을 적용해보는 것을 보고 미리 자재와 부품을 조달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사부리 CBO는 “고객이 주문하면 차량을 만드는 비즈니스 모델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문 후 생산 방식을 적용하면 수요가 몰리는 차량 생산에 집중할 수 있고, 재고 비용도 준다. 사부리 CBO는 “혁신을 고민하는 제조사라면 반드시 데이터 플랫폼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진 사부리 CBO는 “CDP는 마케팅을 넘어 기업 전략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강태훈]
유진 사부리 CBO는 “CDP는 마케팅을 넘어 기업 전략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강태훈]

 

과거의 디지털 마케팅, 방향 잘못돼"

그런데 CDP가 제공하는 고객 프로필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기업에서 나의 행적과 취향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구매를 할지 말지, 내가 쓰는 기기에 문제가 생길지 말지 예측까지 할 수 있다. 정작 고객 스스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TD 측은 오히려 CDP가 개인정보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두 가지 이유를 든다. 하나는 고객이 동의한 데이터만 프로필 구축에 쓸 수 있도록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영혁 트레저데이터 한국법인 대표는 “고객의 동의는 여러 채널에서 수시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3분 전에 웹사이트에서는 쿠키 수집에 동의했다가 모바일 앱에서는 동의하지 않는 식이다. TD의 CDP는 채널과 상관없이 자동으로 최신의 상태(앞선 예에서는 ‘동의 거부’)로 업데이트해준다. 

다른 하나는 고객이 요구하면 즉시 해당 고객의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양대 개인정보 보호 규정인 유럽연합의 일반정보보호규정(GDPR)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소비자정보보호법(CCPA)은 고객데이터에 대한 고객의 ‘변경사항 고지 안내, 삭제, 접속, 이동, 처리 제한’ 등의 권리를 보장해주도록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위반 시 막대한 벌금을 물 수 있다. 고 대표는 “고객데이터가 소스별로 흩어져 있으면 고객이 자기 정보를 요구해도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영업을 맡아온 고 대표는 “CDP의 여러 기능 가운데 개인정보 보호는 추가로 돈을 내야하는 고급 기능인데도 기업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개인정보 보호 규정이 한층 강화되면서 TD는 수혜를 볼 전망이다. 내년부터 구글이 제3자 쿠키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제3자 쿠키는 온라인 광고 사업자가 자산의 사이트가 아닌 다른 웹사이트에서 수집하는 데이터다. 이들 광고 사업자는 사용자의 방문기록을 수집하지만, 직접 동의를 얻진 않았다. 웹사이트 운영자의 협조만 구했을 뿐이다. 제3자 쿠키를 활용할 수 없게 되면, 결국 기업이 직접 갖고 있는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사부리 CBO는 “(개인정보 보호) 규제와 정책은 갈수록 엄격해질 것”이라며 “자체 데이터를 활용하는 선택을 미루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가 자신의 정보에 대한 통제력을 점차 잃어갔던 점에서 과거의 디지털 마케팅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ARM과 TD를 묶으려 했던 손정의의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한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는 말처럼 모든 사람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는 일은 결코 예상된 방식으로 안 일어나기 마련. TD는 이제 CRM이 상상하지 못했던, 마케팅 시장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 포춘코리아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15 (엘림넷 빌딩) 1층
  • 대표전화 : 02-6261-6149
  • 팩스 : 02-6261-615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노경
  • 법인명 : (주)에이치엠지퍼블리싱
  • 제호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 등록번호 : 서울중 라00672
  • 등록일 : 2009-01-06
  • 발행일 : 2017-11-13
  • 발행인 : 김형섭
  • 편집국장 : 유부혁
  • 대표 : 김형섭
  • 사업자등록번호 : 201-86-19372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1-서울종로-1734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kpark@fortunekorea.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