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포춘코리아 매거진 최신호를 무료로 읽어보세요.

본문영역

기나긴 이별: 맥도날드의 힘들었던 러시아 철수 결정

  • 기사입력 2022.10.21 08:00
  • 최종수정 2022.10.21 10:24
  • 기자명 포춘코리아
작업자들이 지난 6월 러시아 킨기세프의 한 매장에서 맥도날드 로고간판을 떼어내고 있다. {Anton Vaganov - Reuters]
작업자들이 지난 6월 러시아 킨기세프의 한 매장에서 맥도날드 로고간판을 떼어내고 있다. {Anton Vaganov - Reuters]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매거진 2022년 10월호에 게재돼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자,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단 며칠 만에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맥도날드는 예외였다. 이 햄버거 대기업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어려운 선택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맥도날드의 국제사업부 사장 이언 보든은 런던 시간으로 2월24일 새벽 4시, 시카고에 있던 신임 CEO 크리스 켐프친스키(53)에게 긴급 뉴스를 문자메시지로 알렸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한 시간 전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발표했고, 키이우와 하르키우, 오데사 등지에서 공격이 시작됐다. 보든은 켐프친스키에게 “회사의 우크라이나 매장 107곳이 문을 닫았고 직원 핫라인을 설치했다”고 전했다.

당시 시카고는 오후 10시였다. 그때까지 켐프친스키는 다른 사람들처럼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며, 정말 교전이 벌어질지 의문을 가졌다. 그는 “전쟁을 위협하는 많은 무력 시위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어떤 형태로든 침공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는 이제 정말 다른 국면을 맞게 됐음을 깨달았다. 

이후 81일 동안, 켐프친스키는 수백만 명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우크라이나 사업에 대한 결정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긴 했지만, 우크라이나 매장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돌보는 결정은 간단했다.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라 러시아와 관련된 것이었다. 즉, 맥도날드가 853개 매장을 가진 시장을 포기할 필요가 있느냐의 문제였다. 러시아 시장은 맥도날드가 역사상 가장 지배적인 글로벌 브랜드 중 하나가 되는데 필요한 경제적 이익과 직결됐다. 아울러 회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계속 사업을 하든 혹은 철수하든, 러시아에서 근무하는 6만 2000명의 직원들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거의 모든 러시아 매장들이 가맹점이 아니라 회사 직영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직원들은 맥도날드에 직고용 됐다. 그 문제 또한 회사 재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지난 2019년 맥도날드 CEO에 오른 크리스 켐프친스키는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에서, 취임 후 이제까지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Photograph by Mackenzie Stroh]
지난 2019년 맥도날드 CEO에 오른 크리스 켐프친스키는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에서, 취임 후 이제까지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Photograph by Mackenzie Stroh]

러시아는 지난해 회사 글로벌 매출의 7%를 차지했다. 판매금액이 팬데믹 저점에서 계속 상승함에 따라 상당한 수입을 올린 것이다. 좀 더 광범위한 의미에서, 켐프친스키는 자신의 결정이 맥도날드의 브랜드와 명성을 강화하거나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 부하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쫓겨난 전임 CEO의 당혹스러운 스캔들에서 회사가 회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압박감은 더욱 컸다. 이 사건은 맥도날드의 문화와 가치에 대한 내부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직원들은 그 관점에서 켐프친스키의 선택을 면밀히 검증할 것이 분명했다.

가장 넓게 보면, 그의 결정은 매우 상징적일 것이다. 맥도날드가 1990년 최초로 러시아에 매장을 연 사건은 세계적인 뉴스였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개방정책이 확대되는 가운데, 맥도날드의 모스크바 상륙은 러시아가 외부 세계에 문호를 더욱 활짝 여는 계기가 됐다. 러시아는 자본주의의 강력한 상징이자, 활기 넘치는 이 미국 기업을 적극 환영했다. 따라서 철수 결정은 서방세계가 물러나며, 이 나라가 다시 폐쇄의 방향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낼 것이다.

켐프친스키가 2월24일 사무실로 향하는 순간, 그 무거운 문제들을 다루는 일이 갑자기 최우선 순위가 됐다.

창업자 레이 크록 이후 맥도날드의 모든 과거 CEO들과 달리, 켐프친스키는 사내에서 차근차근 커온 인물이 아니었다. 대신 그는 2015년 맥도날드에 합류하기 전에 듀크 대학교와 프록터 & 갬블, 하버드 경영대학원, 보스턴 컨설팅 그룹, 펩시코, 크래프트 푸드 등 미국의 엘리트 교육 및 기업 경영 아카데미를 두루 거치며 성장했다. 그는 회사의 최대 시장인 미국 맥도날드에서 빠르게 승진했고, 2019년 CEO에 올랐다. 4개월 후 팬데믹이 강타했고, 그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회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이제 그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우선, 켐프친스키와 그의 팀은 추후 별도 안내가 있을 때까지 우크라이나 매장들의 폐쇄조치를 연장했다. 모두 회사 직영 매장들이다. 그는 마침 맥도날드가 코로나를 극복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전체 시장을 매우 빠르게 봉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전쟁 초기에 사망한 직원은 없었지만, 분명 안전한 곳은 없었다. 회사는 모든 우크라이나 직원들에게 계속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어려운 문제는 러시아였다. 다른 조직들은 빠르게 움직였지만, 맥도날드는 그렇지 않았다. 침공 첫날 델타 항공은 러시아 아에로플로트와의 제휴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포뮬러 원 레이싱은 러시아 그랑프리 대회를 취소했고, 유럽축구연맹(UEFA)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파리로 옮겼다. 일주일 만에 애플과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이케아, 메타 플랫폼(페이스북의 전신), 넷플릭스, 나이키, 셸, 폭스바겐 등은 생산 중단과 판매 중지, 매장 폐쇄 또는 기타 중대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맥도날드는 아무 발표도 하지 않았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흐름이 맥도날드의 행동을 압박했다. 예일대 산하의 비영리 단체 <최고경영자 리더십 연구소>는 러시아를 떠나거나 체류하는 기업들의 온라인 명단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했다. 제프리 소넨펠드 교수가 이끄는 이 명단의 작성자들은 행동하지 않는 주요 기업들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침공 일주일 후 CNBC 방송에 출연한 그는 맥도날드가 침묵을 지키고 있다며, 회사에 대해 “마치 게임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등장하는 ‘끔찍한 변종’ 같다. 모든 동종기업들은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침묵한 기업들이 받은 피해는 비난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소넨펠드의 명단은 시장을 움직였다. 그가 러시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은 여러 기업을 언급한 CNBC 방송 이후, 맥도날드를 포함한 다수 기업의 주가가 하락했다. 명성은 맥도날드에는 축복이자 때로는 저주로 작용한다.

회사 설명에 따르면 미국 인구의 85%가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맥도날드 매장에서 식사를 한다. 아울러 100개가 넘는 나라에서, 그것은 문화의 일부다. 따라서 사람들은 맥도날드가 무엇을 하는지 혹은 하지 않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방송 후 며칠 만에, 트위터에서 #맥도날드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맥도날드 주식을 보유한 뉴욕 주의 대형 직원 연기금 신탁관리감독관인 토머스 디나폴리는 켐프친스키에게 “러시아에서 사업을 중단하거나 완전 철수하는 방안을 고려해달라”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그럼에도 회사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시간은 계속 흘러 갔다.
그러나 맥도날드는 막후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회사 최고경영진 50명이 참석하는 연례 회의는 3월 초 포르투갈에서 예정대로 진행됐다. 러시아 담당 팀은 심지어 러시아 관리들도 맥도날드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알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러시아에 가한 제재였다. 가장 중요한 조치는 3월 26일부터 시행될 러시아 최대 금융기관 스베르방크에 대한 미국의 제재였다. 맥도날드의 많은 매장들이 작은 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그 제재는 회사에 큰 문제였다. 켐프친스키는 “많은 경우, 러시아 시골 마을에서는 스베르방크가 유일한 은행”이라며 “우리는 HSBC나 소시에테 제네랄 등으로 거래 은행을 바꿀 여유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스베르방크 제재가 가까워지며, “당시 상당한 어려움에 처했다”고 회상한다.

 

맥도날드가 러시아에서 신속하게 철수하는 데 실패하자, 한 비평가는 공개적으로 회사에 대해 “마치 게임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등장하는 ‘끔찍한 변종’ 같다. 모든 동종기업은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켐프친스키가 힘든 결정을 내리려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다른 CEO들은 중요한 조언자였다. 그는 “다국적기업 CEO들끼리 많은 통화를 했다”면서도,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켐프친스키는 그들이 서로 자주 통화하며 자료를 비교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사태의 추이를 평가하고, 그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파악했다고 설명한다. “정확한 상황에 대해 더 큰 그림을 그리려는 공동의 노력이 실제로 큰 도움이 됐다.”

내부 논의는 점점 치열하게 진행됐다. 켐프친스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회사를 위해 직접 일한 경험이 있는 보든과 “매시간 연락”을 했다. 이사회와는 일주일에 몇 번씩 논의를 했다. 그는 케빈 오잔 CFO와도 자주 대화를 나눴는데, 부분적으로 “우리가 재무상 몇 가지 중요한 ‘손실처리’를 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한 데지레 랄스 모리슨 법률 고문과 함께, 미국과 유럽연합이 가한 제재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많은 제재 조치들이 성급하게 마련되고,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전쟁의 앞날은 더욱 점치기 어려워졌다. 침공 전만 해도, 러시아가 순식간에 우크라이나를 제압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미국 정보당국은 그 기간으로 4일을 추정했다. 영국 정보당국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5시간 안에 무너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2주째에 접어들자, 분쟁은 점점 장기화 될 것처럼 보였다.

시시각각 바뀌는 문제를 보다 체계화하기 위해, 켐프친스키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질문의 답에 집중했다. ①법적으로, 우리는 러시아에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나? ②우리는 그럴 자유가 있나? ③우리 결정이 맥도날드 브랜드에 도움이 되나? ④우리 결정이 사업적으로 타당한가? ⑤우리 결정이 회사 가치와 일치하나? 전쟁이 3주째로 접어들자, 켐프친스키는 “그 질문들에 대해 좀 더 부정적인 답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3월 8일, 그는 사업의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회사는 모든 러시아 매장이 ‘당분간’ 문을 닫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맥도날드는 처음으로 분쟁에 대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야기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불필요한 고통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는 공개 입장을 밝혔다.

대신, 모든 러시아 직원들은 계속 급여를 받게 된다. 켐프친스키는 회사가 그들에게 “도덕적 의무”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현실적인 고려도 있었다. 한 달 동안만 중단했다가 다시 문을 열면” 급여를 계속 받은 숙련 인력은 매우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회사 발표는 시카고 시간으로 오전 11시에 나왔다. 그날 밤 늦게, 코카콜라와 펩시코, 스타벅스도 러시아에서 판매와 다른 영업활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맥도날드가 러시아에서 주요 사업을 벌였다는 사실은 기적적인 일이다. 퀵서비스 매장 산업의 많은 경쟁업체들은 러시아에서 맥도날드의 성공을 따라가지 못했다. KFC와 피자헛, 타코벨을 소유한 얌 브랜즈는 결과적으로 더 많은 러시아 매장을 보유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매장이 가맹점이어서, 모기업의 매출은 맥도날드보다 적었다. 러시아에 진출한 다른 경쟁업체들은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맥도날드는 캐나다 사업부 대표 조지 코혼 덕분에, 러시아에서 퍼스트 무버로서 확고부동한 우위를 점했다. 그는 1976년 소련 관리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고, 14년간 최악의 관료주의에 맞서 싸웠다. 특권 지배층의 설득에 성공한 것은 ‘절반의 승리’에 불과했다. 마침내 모스크바에 매장 오픈 허가를 받았을 때, 맥도날드는 맨땅에서부터 공급업체들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했다.

러시아 툴라시 맥도날드 매장.
러시아 툴라시 맥도날드 매장.

맥도날드의 수입 전문가들은 러시아 농부들에게 프렌치 프라이용 러셋 버뱅크 감자(전분 함량은 높고 수분은 적어 맛이 좋다)와 햄버거 고명용 아이스버그 상추(잎이 공처럼 단단히 말려 있다)를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또 맥도날드 제품에 사용할 고품질의 쇠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목우법도 교육했다. 미국과 유럽의 제빵사들은 모스크바 교외의 솔체포에 위치한 11만 평방피트(약 3100평) 규모의 ‘맥콤플렉스’에서 현지인들에게 햄버거 빵을 굽는 법을 가르쳤는데, 이 곳에서는 쇠고기와 저온 살균 우유도 가공했다.

회사는 자체 인적 자본도 구축해야 했다. 손님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식당 종업원은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지만, 러시아인들은 배우기를 열망했다. 맥도날드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새 매장에서 630명을 신규 채용한다는 구인광고를 내자, 2만 70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마침내 1990년 1월 31일, 크렘린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푸시킨 광장의 1호 매장이 문을 열었다. 당시 모스크바 시민들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미국에서 건너온 이 이국적인 신문물을 경험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섰다. 맥도날드가 상륙하기에 이상적인 순간이었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한 길을 찾기 위해, 서구로 눈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맥도날드만큼 서구적이고, 소련과 거리가 먼 문화는 없었다. 새 매장은 첫날 폐점 시간을 훨씬 넘겨서까지 영업을 하며 3만 명의 손님을 맞이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러시아인들이 맥도날드를 그들의 문화로 쉽게 수용했다는 사실이다. 첫 해가 끝날 무렵, 포춘은 맥도날드 1호 매장이 과거 모스크바의 최고 명소였던 레닌 무덤보다 3배나 더 많은 방문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4년 인류학자 멀리사 콜드웰은 “모스크바 시민들은 맥도날드와 그 제품을 자신들의 사회생활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요소로 받아들였다. 즉, 공개적으로 그 문화를 긍정하고 수용했다”고 썼다. 러시아인들에게 맥도날드는 심지어 더 이상 이국적이지 않은 대상이 됐다. 그녀는 “많은 모스크바 시민에게 맥도날드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더 이상 이질적인 특별한 문화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맥도날드는 러시아어로 ‘우리 것’을 의미하는 내시(nash)가 됐다.

그러나 32년이 흐른 지금, 이 독특한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 3월8일 영업이 중단되기 전까지, 맥도날드의 러시아 사업은 훌륭한 수입원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매출은 전무했지만, 회사는 직원들과 건물주들에게 계속 비용을 지급했다. 오잔 CFO는 월가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한 달에 약 5000만 달러(약 670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켐프친스키는 이제 남을지 아니면 철수할지, 양단간에 결단을 해야 했다.

그는 매우 투명한 과정을 통해 그 결정을 내릴 생각이었다. 맥도날드는 지난 5년간 회사의 문화와 가치에 대해 활발한 내부 논의를 벌여왔다. 영국과 북유럽 사업부 수장을 역임한 스티브 이스터브룩이 2015년 3월 CEO에 오른 게 출발점이었다. 회사는 쇄신이 절실히 필요했고, 그의 강경한 대책에는 문화 개혁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상징적으로 보이는 한 가지 변화를 단행했다. 회사 직원들을 가리키는 ‘맥패밀리’라는 단어 사용을 공개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직원들이 반발했다.

그가 단행한 개혁은 일부 효과가 있었다. 회사 시장가치는 2019년 11월까지 78% 상승하며, 500억 달러(약 67조원) 이상 늘었다. 하지만 그 때 기업문화가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스터브룩이 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회사 정책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해고됐기 때문이다.

1997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맥도날드 첫 매장을 열었을 당시 분주한 모습. 오른쪽 사진은 맥도날드에서 브쿠스노 이 토치카로 이름을 새롭게 바꾼 매장의 2022년 6월 모습.
1997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맥도날드 첫 매장을 열었을 당시 분주한 모습. 오른쪽 사진은 맥도날드에서 브쿠스노 이 토치카로 이름을 새롭게 바꾼 매장의 2022년 6월 모습.

이사회는 켐프친스키를 후임자로 지명했다. 직원들은 비교적 외부인사로 분류된 그를 경계할 이유가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사내문화에 대한 논쟁을 부추기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맥패밀리를 다시 도입했다. 아울러 직원들에게는 자신이 받은 철저한 가톨릭 교육과 그에 수반되는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회사의 목적과 가치를 재정립하기 위해, 수개월에 걸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고객과 사람을 우선시한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한다” 등의 TV 광고 캠페인을 통해 이런 노력을 홍보했다.

이제 220만 명의 맥도날드 직원들과 광고를 본 수백만 명의 소비자들이 회사가 그 약속을 이행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켐프친스키를 지켜볼 것이다.

내부적으로 그 가치들의 의미에 대한 공감대가 항상 형성됐던 것은 아니다. 고객과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일부 직원들에게 이는 계속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러시아 직원 6만 2000명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했다. 켐프친스키는 “그러면 다른 직원들이 ‘우리가 그곳에서 계속 사업을 벌이는 건 러시아의 전쟁 노력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건 옳은 일이 아니다’는 반대의견을 표명했다”고 회상한다.

시간이 지나며 겨울이 봄으로 바뀌었고, 다른 기업들은 러시아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워너 브라더스, 유니버설, 소니는 그곳에서 영화 개봉을 중단했고, 디즈니는 모든 사업을 중단했다. 골드만 삭스와 JP모건도 사업 규모를 서서히 줄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맥도날드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켐프친스키는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고 말한다. “리더십 문제에 대해 내가 보통 취하는 방식이 있다. 그건 결정을 내려야 할 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시간의 여유를 두고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왜 그 이점을 활용하지 않겠는가?” 그는 외부 압력을 알고 있었지만 “서둘러서 실수하는 것보다 조금 더 느리게 행동하는 게 낫다. 잘못된 결정의 결과는 우리에게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그 영향은 러시아의 다른 많은 서구 기업보다 맥도날드에 훨씬 더 컸다. 예를 들어, 빠르게 철수한 컨설팅 회사와 로펌들과 달리 맥도날드는 러시아 내에 건물과 차량, 기계 같은 유형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많은 기업의 러시아 사업 규모는 너무 작아서 포기하는 데 드는 비용은 미미했을 것이다. 하지만 맥도날드에 러시아 시장은 중요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이 회사의 2022년 총 매출 성장률이 6.2%인지 아니면 6.3%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매출의 7%가 사라지는 것이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문제는 아니었다. 

 

“일부 러시아 직원들은 평생을 맥도날드와 함께 해왔다. 그래서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맥도날드 CEO 크리스 켐프친스키

맥도날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가치의 이슈’는 러시아 직원들의 처리에 관한 문제였다. 러시아의 맥도날드 매장 종업원들은 미국과 달리 몇 년씩 근속하는 경향이 있었다. 켐프친스키는 “러시아 리더십 팀에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푸시킨 광장의 1호점에서 계산대 일부터 시작했고, 그 이후 계속 회사와 함께 했다. 한마디로 이 일에 평생을 바쳤다. 떠날 결정을 저울질하며,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말한다.

그 이후 상황은 더욱 꼬여만 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 기업들의 러시아 신규 투자를 금지하고, 서비스 수출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제재가 시행되면 맥도날드가 매장들에 자금을 보낼 수 있을까? 또 가맹점들을 위해 교육과 마케팅 같은 일상적인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을까?

켐프친스키는 맨 처음 던졌던 5가지 질문을 계속 곱씹었다. 그는 “우리는 각 질문에 대해 정말 아니라는 답변을 다시 얻게 됐다. 아닐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확실히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회고한다. 

시베리아에서 맥도날드 매장 25곳을 관리했던 알렉산드르 고보르는 지난 5월 회사의 러시아 사업을 인수했다.
시베리아에서 맥도날드 매장 25곳을 관리했던 알렉산드르 고보르는 지난 5월 회사의 러시아 사업을 인수했다.

마침내 답이 분명해진 것이다. 맥도날드는 러시아를 떠나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회사가 어떻게 철수하느냐가 중요했다. 맥도날드는 자신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6만 2000명의 직원들을 즉시 해고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귀환이 가능한지, 그렇다면 언제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853개 매장에서 철수하며 광대한 공급업체 네트워크를 포기하는 일은 분명 최적의 철수 방식이 아니었다.

맥도날드는 결국 지난 5월16일 철수를 발표했다. 회사는 “러시아에서 더 이상 사업 소유권을 유지할 수 없다. 그것은 맥도날드의 가치와도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맥도날드는 또 ‘러시아 사업을 매각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며 3일 후 인수자를 발표했다. 부유한 사업가이자, 시베리아에서 25곳의 맥도날드 가맹점을 관리했던 알렉산더 고보르였다(회사는 매각 가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매각과 관련된 수입으로 13억 달러를 책정했다). 그 계약은 고보르가 ‘동등한 조건으로 최소한 2년간’ 모든 매장 직원들의 고용을 승계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맥도날드 매장. 맥도날드는 러시아 내 850개 매장을 폐쇄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맥도날드 매장. 맥도날드는 러시아 내 850개 매장을 폐쇄했다.

아울러 그는 맥도날드의 명칭과 로고, 브랜드나 메뉴를 사용할 수 없다. 맥도날드가 러시아에서 모든 상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맥도날드의 ‘색깔 지우기’ 과정은 즉시 시작됐다. 매장들은 ‘두말할 필요 없이 맛있다’로 번역되는 브쿠스노 이 토치카(Vkusno-i Tochka)라는 새로운 러시아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고 있다. 이 새로운 로고는 두 개의 감자튀김과 한 개의 햄버거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히 M자처럼 보인다.

맥도날드의 5월 발표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월가 또한 회사가 시간을 끌었다고 응징하지 않았다. 주식은 최근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 맥도날드는 제프리 소넨펠드 교수와도 사이가 좋다. 그는 “그들은 내게 화를 내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며 “대신 비판을 경청했다”고 말한다.

공식적으로 맥도날드는 러시아 복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켐프친스키는 분명 원할 것이다. 그는 회사의 러시아 사업을 되돌아보며, 여전히 가끔은 ‘현재형 시제’로 표현한다. “러시아 직원들은 최고다. 아니 그들은 최고의 직원들이었다.”

그는 외부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복잡한 상황으로 가득 찬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는데 거의 3개월을 보냈다. 켐프친스키의 결정은 그를 역사의 바른 편에 서게 할 것이다. 동시에, 그는 러시아 복귀가 옳은 일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영영 이별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대신, 그들이 러시아어로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라고 말하자”고 밝혔다. 

/ By Geoff Colvin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15 (엘림넷 빌딩) 1층
  • 대표전화 : 02-6261-6149
  • 팩스 : 02-6261-615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노경
  • 법인명 : (주)에이치엠지퍼블리싱
  • 제호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 등록번호 : 서울중 라00672
  • 등록일 : 2009-01-06
  • 발행일 : 2017-11-13
  • 발행인 : 김형섭
  • 편집국장 : 유부혁
  • 대표 : 김형섭
  • 사업자등록번호 : 201-86-19372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1-서울종로-1734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포춘코리아(FORTUNE KOREA).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kpark@fortunekorea.co.kr
ND소프트